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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연구공간<수유+너머> 아래 다중문화공간 왑wab |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삶’과 ‘지식’을 매개로 한 ‘지식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이다. 이 공간은 - 우리가 ‘꼬뮨’이라고 부르는 -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를 실험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생산된 지식의 내용 못지 않게 그것을 생산하는 방식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이곳에서의 실험이 함께 하는 삶, 그리고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와 방식에 대한 모색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1997년 서울 수유리에 있던 고미숙의 개인 연구실에 몇몇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그리고 거기에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활동하던 고병권과 이진경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99년에 공개강좌를 열면서 대학로로 진출했고, 이사에 이사를 거듭하면서 현재의 위치(원남동)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수유연구실’과 ‘연구공간 <너머>’라는 두 개의 명칭은 자연스럽게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합쳐졌다. 사실, 학문을 자기 삶의 방향으로 삼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서관이나 사무실처럼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것과, 불특정의 다수가 집합적인 리듬을 형성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도서관이나 사무실에서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그들은 각자의 공간, 그러니까 다른 공간에서 각각 다른 방식의 삶을 산다. 그러므로 공공 도서관이나 공용 사무실에서는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연구실에서 각자의 삶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는다. 지식 공동체든 연구자들의 꼬뮨이든 그것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비용을 절감한다는 경제적 동기에서 시작된 모임이 아니다. 삶과 지식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배움은 유희이고 잔치이고 충전이고 활력이다”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비단 현재의 삶이 즐겁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지는 법을,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운다.
목요일 저녁 7시,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는 하나의 지적 실험이 행해진다. ‘케포이필리아’(우정의 정원)라고 불리는 이상야릇한 세미나가 그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스승이고 제자이고 친구”가 되는 새로운 관계를 경험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가 되지 못한다면,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연구자의 꼬뮨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일반회원(정회원)과 세미나회원(준회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60여 명의 일반회원과 100여 명의 세미나 회원이 한 건물에서 세미나와 강좌 등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그들은 세미나와 강좌의 중간에, 혹은 각자의 공부가 진행되는 사이에 ‘밥상’에 마주앉는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준비된 음식을 먹는 행위는 한끼의 식사를 해결한다는 상식적 의미를 넘어 삶을 공유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다중문화공간 왑(wab : within, against, beyond) 역시 지식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실험공간이다. 왑은 “제국 안에서, 제국과 싸우며, 제국을 넘어선다”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이 정치적 지향점이 선명한 공동체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생활 공동체적인 면모를 지닌다면, 왑은 현대의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다중multitude의 자율적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지식-실험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 번도 왑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상을 공유하는지, 또는 그들이 어떤 방식과 과정을 거치면서 공부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제국’이라는 자본의 새로운 통치 질서에 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치열한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왑의 대부분 활동은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세미나, 강좌, 포럼 같은 전통적 소통방식을 ‘웹’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통해 실험한다. 다른 지식 공동체들과 달리 ‘웹’에 대한 왑의 의미부여는 상당하다. 그러므로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일정한 공간을 연상시키는 ‘공동체’에 가깝다면, 왑은 ‘네크워크’적인 측면이 강한 지식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지식 공동체에게 그렇듯이, 그들에게 ‘지식’이란 ‘지식-실천’의 의미를 띤다. 왑의 활동에서 ‘웹’이 차지하는 의미를 단순히 오프라인의 확장이나 웹을 매개로 한 소통의 보충적 형태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이버대학이나 여타의 연구집단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활동은 그 지향점의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따른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그래서 왑은 대학이라는 제도적 학문의 공간과도, 또한 1990년대 이후에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시민사회적 대안문화공간들과는 선명하게 구분된다. 물론 이 공간에서도 영화·음악감상은 이루어지며, 문예창작이나 독서모임도 존재한다. ‘웹’은 이러한 활동들을 네트워크적인 장소의 개념으로 바꿔버림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관계를 생산한다. 그들의 활동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많은 게시판들을 보라. 이론과 실천이라는 구분이 모호해진 오늘날,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지식들을 웹 상에서 공유함으로써 그것이 또 다른 지식 생산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 그것은 정보를 독점하거나, 공동체 바깥의 존재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온 기존의 공동체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정보-소통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공동체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운동은 자본주의적 관계나 욕망에 대한 대항-대안적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집합적인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개별자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자본의 전략에 대한 저항이며, 집합적 경험을 통해 ‘희망’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도 ‘관계’에 대한 대안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에른스트 블로흐의 말처럼 “희망은 집합적이다.” 그것은 언제나 함께 하는 관계에 대한 희망이라는 점에서 집합적 욕망이다.
고봉준│1970년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2000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등단. 현재 반년간 <작가와비평> 편집동인.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홈피 : http://www.transs.pe.kr |
첫댓글 감사합니다..지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