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담 - 메기야 경(Meghiya-sutta)(A9:3), 법구경 제33/34게송
내 마음은 누구의 것인가?
총무 동명스님
우리는 흔히 내 마음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것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을 이용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내 마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던가요?
혹시 마음이 제멋대로 날뛰어서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던 적도 있으신가요? 날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내 손에 쥔 물건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용할 수 없으신 적도 있으신가요?
마음과 관련된 경전과 게송을 살펴보겠습니다.
한때(13년째 안거) 세존께서는 짤리까에서 짤리까 산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메기야 존자가 세존의 시자로 있었다. 그때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잔뚜가마에 탁발을 가고자 합니다.”
“메기야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라.”
메기야 존자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탁발을 위해 잔뚜가마로 들어갔다. 잔뚜가마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 끼미깔라 강의 언덕으로 갔다. 메기야 존자는 끼미깔라 강의 언덕에서 이리저리 경행하다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망고 숲을 보았다. 그것을 보자 ‘이 망고 숲은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수행자가 정진하기에 좋겠구나. 만일 세존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이 망고 숲으로 정진하러 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잔뚜가마로 탁발을 갔습니다. 잔뚜가마에서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끼미깔라 강의 언덕으로 갔습니다. 저는 끼미깔라 강의 언덕에서 이리저리 경행하다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망고 숲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자 ‘이 망고 숲은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수행자가 정진하기에 좋은 곳이구나. 만일 세존께서 허락하신다면 나는 이 망고 숲으로 정진하러 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께서 만일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그 망고 숲으로 정진하러 가겠습니다.”
“메기야여,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여기 있도록 해라.”
두 번째로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더 해야 할 것이 없으시고 더 보태야 할 것도 없으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더 해야 할 것도 있고 더 보태야 할 것도 있습니다. 세존께서 만일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그 망고 숲으로 정진하러 가겠습니다.”
“메기야여,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여기 있도록 하라.”
세 번째로 메기야 존자가 세존께 간청하자 세존께서는 허락하십니다.
“메기야여, 그대가 정진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메기야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라.”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망고 숲으로 갔다. 그는 망고 숲으로 들어가서 한 나무 아래 앉았다. 조용히 명상하고 있는 메기야 존자에게 세 가지 번뇌가 일어났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 분노, 남을 해치는 생각이었다.
그때 메기야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그런데도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과 분노와, 남을 해치는 생각에 빠져 있다니!’
메기야 존자는 세존께 다가가 절을 올리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망고 숲에 명상하고 있는데, 세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번뇌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 분노, 남을 해치는 생각이었습니다.”
“메기야여, 다음 다섯 가지 법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마음의 해탈을 성숙하게 한다. 그것은 첫째, 좋은 벗, 둘째, 계율 지키기, 셋째, 법에 관해 얘기하기, 넷째, 정진, 다섯째, 통찰지이다.
메기야여, 비구는 이러한 다섯 가지 법에 굳게 서서 다시 네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 부정관을 닦아야 한다. 악의를 제거하기 위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 일으킨 생각을 자르기 위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을 뿌리 뽑기 위해 인연 따라 생긴 모든 것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는 인식을 닦아야 한다.”
법구경에도 메기야를 위한 게송이 있다.
“메기야여, 내가 너에게 ‘내가 지금 혼자 있으니 다른 비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는 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시자(侍者)의 책임을 저버리고 수행하러 간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비구는 생각나는 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란 변덕스러운 것이어서 사람은 항상 마음을 잘 조절해야 한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법구경 제33, 34송을 읊으셨다.
흔들리고 동요하며
보호하기 어렵고 지키기 어려운 마음을
슬기로운 이는 바르게 만든다.
화살을 만드는 이가 굽은 곳을 곧게 펴듯이.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가 몸부림치듯
이 마음도 또한 그렇다.
악마의 왕국에서 벗어나려고 수행 대상에 집중하면
마음은 싫어하고 몸부림친다.
- 법구경 제 33/34게송
내 마음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은 마치 물 밖을 벗어난 물고기가 몸부림치듯 요동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해탈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해탈은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달마조사에게 신광이 물었습니다.
“스님,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 괴로운 마음을 이 앞에 내놓아 보아라. 내가 편안하게 해줄 터이니.”
“마음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마음이란 놈은 실체가 없어서 내놓을 수가 없는데요.”
달마조사가 껄껄껄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케 했느니라.”
이에 신광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신광의 마음은 번뇌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지, 마음이 어떤 실체여서 마음 자체가 괴롭거나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자유로워졌던 것입니다.
부처님 시대에도 부처님의 말씀이나 게송을 들은 제자들이 그 자리에서 수다원과나 사다함과 아나함과를 얻기도 할 뿐만 아니라 아라한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한생각 돌이키면 자신의 마음을 해탈시킬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마음을 해탈시킨다는 것은 마음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해탈을 위해 다섯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첫째, 좋은 벗, 둘째, 계율 지키기, 셋째, 법에 관해 얘기하기, 넷째, 정진, 다섯째, 통찰지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려우시다구요? 친절하신 부처님은 또 가르쳐주십니다. 즉, 위 다섯 가지 법의 토대 위에 부정관과 자애와 마음챙김을 닦고, 아울러 인연 따라 생긴 모든 것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는 인식을 닦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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