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손으로 짓는 전원주택] 충북 진천군 이영건·김혜경 부부의 흙집
▲ 재활용 재료로 지은 충북 진천 이영건·김혜경씨 부부의 흙집. |
재활용 재료로 가족끼리 시간 날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지은, ‘단아한 흙집’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영건·김혜경씨 부부는 지난 98년 서울 생활을 접고 충북 진천으로 내려왔다. 시골에서 소박한 농부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이씨 부부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전형적인 시골집인 본채 한 채와 맞은편의 우사가 전부였다. 본격적인 집짓기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가족과 함께 황토흙집인 사랑채와 공방을 손수 지은 이씨 부부의 집짓기 이야기를 들어본다.
▲ 2000년에 완성한 사랑채 흙집. 전부 재활용 재료로 만들었다. 지붕 위에 걸린 초승달이 이채롭다. |
충북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 마을 이름처럼 구수한 정경과 안심이 풍길 것만 같은 산골마을이다. 마을 초입에서 백곡초등학교를 끼고 구불구불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얼마쯤 갔을까. 나른한 봄볕을 받으며 올망졸망 자리잡은 집들이 한두 채씩 모습을 드러낸다.
슬래브 지붕의 농가를 사이에 두고 드라이비트로 단장한 전원주택, 너와집, 나무집들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눈에 ‘쏙’ 들어오는 집이 있다. 바로 이영건·김혜경씨 부부가 둥지를 튼 ‘흙집’이다.
이씨 집 지붕에 걸린 초승달 한 조각을 보자. 마음 한구석이 탁 풀린다. 농가와 우사(牛舍
)를 사서 손수 지었다는 흙집이 어떨까, 은근슬쩍 걱정했지만 결국 기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씨 부부의 흙집은 마치 동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집처럼 마음을 설레게 한다.
◀ 사랑채 전경. 넓은 창과 한옥 문짝 등 아담한 황토흙집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설계도도 없이 막 지은 집
“용기가 없으면 시골에 절대 못 내려옵니다.”
집주인 이씨 부부는 원래 서울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까지. 꼬박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IMF를 경험하고 서울에서의 생활이 점차로 지겨워져 이곳 진천에 자리를 잡게 된 것.
이씨는 시골행을 결심하면서 틈틈이 도예공부도 하고 귀농학교를 다니는 등 농부로써 시골에 정착할 준비를 해두었다. 부인인 김씨 역시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다 남편과 마음이 맞아 흔쾌히 시골행에 동참했다. 98년 4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 창민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됐다.
“일명 ‘막집’입니다. 막 지은 집이죠. 설계도도 없었어요. 그때 그때마다 땅에 그렸죠. 처음 집짓기를 결심했을 때 형태는 퓨전, 뼈대는 한옥으로 짓자고 가족끼리 합의했어요. 기능 위주로 소박하게 짓자는 것이었지요. 재료는 흙과 나무를 쓰고 가능하면 남의 손 안 빌리고 가족의 힘으로 짓자! 이렇게 시작했지요.”
◀ 이영건·김혜경씨 부부. 작년에 완성한 흙집 도예공방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씨 부부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전형적인 시골집인 본채한 채와 맞은편의 우사가 전부였다. 그러나 집짓기를 시작하면서 사랑채와 공방으로 쓰는 흙집을 각각 한 채씩 더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총 4채가 된 셈이다. 우사도 개조해 살림집으로 쓰다가 지금은 욕실로, 또 공방에서 만든 그릇들을 보관하는 창고로도 쓴다.
이씨가 자신이 지은 흙집을 ‘막집’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겸손’이 묻어 있는 말. 아무리 둘러봐도 막 지은 집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이씨 집에는 부부만의 정성과 철학이 흙덩이처럼 꽉꽉 담겨 있다.
집을 지으면서 이씨는 마치 철학자가 다 된 모습이다. 아마 자연과 삶, 손수 집을 지으면서 얻은 지혜가 많아서일 것이다. 이를 두고 스스로 ‘개똥철학’이라며 이씨는 또 겸손을 피운다.
◀ 공방 안의 아궁이. 방에는 구들장을 깔고 황토를 발랐다. 바닥도 황토로 마무리했다.
집 지으려면, ‘개집’ 정도는 지어 봐야
집짓기 이야기가 나오면 부부는 마냥 즐겁다. 즐겁게 지은 집이니 그럴 수밖에. 이씨는 집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기의 분수에 맞는 집짓기’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고 잘 지은 집이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 그리고 생활이 그렇지 않다면 소용없다는 얘기다. 스스로 만족하는, 집주인이 안분지족할 수 있는 집이 가장 좋은 집이라는 것이다.
“집을 지어 보니까,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누군 태어날 때부터 망치 들도 태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짓다 보니까 배우는 것도 많고 결국은 되더라구요. 하다 못해 ‘개집’을 지을 때도 신경 쓰이는 데 자기 집인들 오죽하겠습니까? 자기 집 지으려면 최소한 ‘개집’ 정도는 손수 지어 보고 짓는 게 훨씬 수월하지요.”
이씨는 집을 지으면서 몸무게도 빠졌다. 서울에서 살 때보다 20kg 정도나 빠졌다니 과거 그의 서울 생활(?)이 능히 짐작됐다. 집을 지으면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졌다. 아들 창민이에게 산교육을 시킨 것도, 가족이 화합한 것도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 우사로 쓰던 것을 개조해 살림집으로 쓰다가 지금은 욕실과 그릇들을 놓아두는 창고로 쓰고 있다. |
“손수 집 지으면 좋은 게 많습니다. ‘이게 좋다, 저게 좋다’며 서로 부부 싸움도 했는데 아주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싸움이에요. 서로 이해도 하구요. 특히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씨는 남들처럼 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지었다. 2000년에 완성한 사랑채는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 주위에서 버린 것들, 쓰다 남은 재료들을 재활용해서 지은 까닭이다. 집에 쓰인 흙이나 돌을 자연에서 가져온 것처럼, 나중에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창틀과 문짝 등도 남의 집에서 버린 것을, 돌덩이들은 길가에서 틈틈이 모은 것을 요긴하게 썼다.
작년에 지은 공방도 그랬다. 밖에 버려진 재료나 자재들을 이래저래 긁어 모아 지은 것이다. 그래서 공방의 경우 총 공사비가 300만원 가량밖에 들지 않았다. 단 돈 300만원에 17평짜리 흙집이 생겼으니 이만하면 손수 지은 보람을 톡톡히 챙기고도 남은 셈이다
◀ 기존 본채 대청 앞에 따라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동네 앞길이 훤히 보인다.
그릇의 쓰임은 텅 빈 공간에 있다
“처음 집을 짓고 나서는 달밤에 몰래 나와 집을 발로 차보곤 했어요. 행여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더라구요. 근데 지난 여름 폭우 때도 끄떡 없더라구요. 엄격한 안전 테스트를 거친 셈이지요.”
이씨 부부와 아들 창민이는 시골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 손수 집 지을 줄 알고 손수 씨 뿌려서 곡식 거둬 먹고 하니 걱정이 없다. 여기에다 그릇도 굽고, 황토 옷가지 등도 만드니 그야말로 청정한 ‘자연 생활’이다. 이들 부부는 얼마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그릇 전시회도 가졌다.
“우리 삶도 손수 짓는 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땀 흘리고, 보람을 찾고,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짓는 것이지요. 흙처럼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왔으니, 자연스럽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떠나면 되지 않겠어요?”
▲ 사랑채 내부. 특이한 모양의 창문에 한옥 문짝도 달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왼쪽) 농가였던 본채 실내. 구들장과 서까래에서 만만치 않은 집의 내력을 볼 수 있다.(오른쪽) |
흙집에 있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니 꽃과 나무, 바람과 산, 그리고 흙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흙집을 떠나오며 문득 공방의 문에 쓰여 있던 이씨의 ‘개똥철학(?)’이 떠올랐다.
“그릇의 쓰임은 텅 빈 공간에 있다
.”고. 우리의 삶도, 집의 쓰임도 결국은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띄네’ 구석구석 집 구경
◀ 서쪽을 바라보는 일면 ‘죽음의 의자’. 이 집에는 두 개의 의자가 있다. 동쪽에는 ‘삶의 의자’가 놓여 있다.
▶ 옛 집의 대청을 뜯어다 만든 야외 탁자.(왼쪽 위) 사랑채 바깥에 새집을 만들었다.(오른쪽 위) 마당 한 켠에 아궁이를 내놓았다.
무쇠솥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왼쪽 아래) 공방의 격자 창문. 창가에 부부가 만든 그릇들이 평화롭게 놓여 있다.(오른쪽 아래)
◀ 처마에 매달아 놓은 풍경. 봄바람을 제일 먼저 알아본다.(왼쪽)
공방 뒤켠에 있는 생태뒷간. 즉 ‘해우소’다.(오른쪽)
황토공방 손수 짓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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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둥, 보, 촉을 세우는 기초 공사를 하고 있다. |
‘적은 비용과 재활용 재료로, 즐거운 집짓기’ 1. 기초공사
줄기초 들어가기 전 바닥 기초에는 철근을 쓴다. 기초(줄기초를 택함)에는 벽돌과 블록을 썼다. 기둥과 보, 촉을 세우는 데는 낙엽송과 수입목을 쓴다.
창틀이나 문틀로는 육송이 좋고, 지붕 아래(서까래와 지붕 사이) 부분에는 수입 재활용 박스를 넣었다. 몰탈은 시멘트와 모래가 알맞은 비율로 합해 있어 작은 면적에 쓸 데 경제적이다. 벽체는 진흙을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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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들 창민이와 함께 지붕에 슁글을 얹고 있다. | 2. 지붕 및 단열공사
역시 집짓기의 가장 큰 난코스는 지붕공사. 서까래 작업부터 방수 시트, 슁글작업이 끝날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 먼저 방수 매트를 깔고 지붕 단열에 쓸 인슐레이션을 넣었다.
각목을 세우고 OSB작업을 마쳤다. 슁글 아래에 깔아주는 고무 방수 시트는 서늘한 곳에서 펼쳐야 서로 들러붙지 않는다. 지붕 위로 가져가서 롤을 펴다가 봄볕에도 쩍쩍 달라붙는 시트 때문에 애를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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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들 위에 황토를 바르고 있는 모습. | 3. 벽체 공사 및 마무리 공사
벽, 황토와 나무로 쌓아나가려던 것을 재활용 나무가 많이 남아 그것을 이용해 벽체를 만들었다. 두 평 남짓한 구들방은 구들 위에 흙을 두텁게 발랐다.
작업실 바닥도 황토로 마무리했다. 채에 곱게 내린 황토가루에 소나무 속살 부드러운 톱밥을 섞어 손으로 비벼가며 방바닥 맨위 부분 갈라진 틈새를 덧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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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집의 골격이 갖춰지고 있다. | 황토의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밀가루를 섞기도 하고 습기를 물었다 뱉었다 하라고 숯가루를 섞기도 한다. 은행나뭇잎을 말려 손으로 비벼 분말처럼 섞어 쓰는 사람도 있다.
이웃 어른 말씀으로는 황토에 모래를 섞어 써야 갈림이 없다는데 아마도 전통적인 방법인 듯하다. 어떤 방법을 취하든 갈라진 틈새를 여러 번 매꿔 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침 소나무 톱밥이 있어서 그것을 섞어 사용했다.
외벽에 바른 재료는 테라코타가 아니고 황토를 그물 고운 튀김 뜰채로 쳐서 물에 이겨 발랐다. 황토로 염색을 할 때처럼 흙에 물을 붓고 고루 저어 풀어놓고 그대로 두었다가 물 윗부분에 밀가루처럼 곱게 올라 뜬 부분을 살며시 건져 올려 바르면 적은 양으로도 색이 더 곱고 은은하게 먹는다 |
첫댓글 소박하고도 운치가 멋지네요...저도 저걸 위해 던을 모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거든요..
무조건 부럽네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