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목) 아침
투루판
투르판이란 위그르어로 '파인 땅, 분지’라는 뜻으로
투루판 분지에서 가장 낮은 곳은 중국에서도 최저인 해발 -154m이다.
'과일의 고향’이라고 불릴 만큼 과일 생산량이 많고, 맛도 훌륭하며,
가격도 저렴해 현지인들은 예전부터 많은 양을 섭취했다고 한다.
덕분에 한없이 척박한 이런 사막 지대가 세계 장수촌의 하나로 꼽힌다고 하나
단지 과일등의 덕택만은 아닐테고....,
우리도 노씨 패거리나 김정일식의 스트레스,
노망난 노인의 주책만 접하지 않아도 평균 수명이 5년씩은 늘어 날게다..
고창고성
오늘도 역시 새벽부터 서두는 이유는
바로 여기 古城입구에서 타야될 마차의 순번을 확보하기 위함이란다.
버들 가지와 마른풀을 섞은 흙벽돌로 축조된 이 성은
오랜기간 농부들이 성 벽돌을 빼내 자기 집을 짓던지,
혹은 부셔서 농토 개량용으로 소비했다고 하니
남은 것은 그야 말로 황성옛터 정도이다.
폐허가 된 성이 어제까지의 맑은 하늘이 사라진
구름낀 잿빛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陰散美를 돋군다.
구경할 것을 찾기 위해 눈과 마음만 바쁜데
그래도 2천년 전의 성터의 규모는 놀랄 만했다.
사진 같이 찍어주고 돈을 받는 기쁨조가
그나마 무채색에 액센트를 넣는다.
입구로 돌아오니,
위그루 동자들이 작은 기념품들을 팔기위해 덤벼드는 데,
조그만 관심에도 치열하고 엄청난 압박으로 보답 한다.
이스타나 古墳群
모래 가루를 동반한 바람은 점점 강해졌다.
벌판에 흔적도 희미한 봉분중 유적이 나온 두어개를 관람하는 데,
또 미이라다.
기분도 날씨와 부서진 성벽등으로 심란하고 우울하구만..
과히 흥이 나지도 않는 것을 여러 곳에서 접하게 된다.
양반들의 공동 묘지였다는데, 약간의 벽화도 남아 있으나 별로......
천불동
어제 온 길을 거슬러 화염산으로 들어가면
헐벗은 산 사이에 물과 숲이 우거진 계곡이 나오고,
그 옆의 절벽에 동굴들이 있다.
돈황 동굴보다 무척 많이 훼손 된 것은,
돈황에는 계속해서 관리하는 스님(비록 그가 돈황문서를 일부 팔아 먹기는 하였으나)이 거주했는데,
이곳은 그야 말로 사람도 없는 무주공산이었으니
인디아나 죤스의 주인공같은 약탈꾼들이 마음놓고 벽화를 뜯어가고,
불상을 집어 간 것도 모자라,
우상 숭배에 적대적인 이교도들은 그림들의 눈알까지 철저하게 파 놓았다.
게다가 나머지 그림들은 흙으로 도배칠을 해,
원래의 밑그림을 손상않고 복원하는 방법을 연구중이란다.
이곳도 몇 개의 굴들만 관람이 가능한 데,(사진 금지)
비교적 관광객도 적고 자유롭다.
나에겐 주변의 화염산 광경들이 더 큰 볼거리인데,
산행 할 시간이 없었거니와
점점 강해지는 바람과 날리는 모래로 시야가 흐려지고 분위기도 탁해졌다.
(손오공의?) 화염산
엊저녁 버스로 지나치면서 가이드가
오늘 화염산의 증명사진 찍는 지점 앞에서 쉴 거라고 했었는데
안개 낀 듯한 황사때문에 전혀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다행히 어제 차에서 찍은 엉성한 사진은 있었지만..
손오공 말대로....?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하여간 지나치는 여정에는 기회가 있을 때를 절대 놓치지 말고 샤타를 누를지니............
단 밧테리와 메모리는 여유있게..
붉은 연기 피는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화염산은
동서길이가 100km, 남북길이가 9km의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더운 여름에는 지표면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로 인해,
(史上 최고기온은 48.5도, 지표면 온도는 82.5도였다고 함)
그리고 산줄기가 마치 불타는 듯이 보인다는 의미란다.
한여름의 더위를 자랑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온도계를
관람실(더위를 피해 모두 지하 속에 있다)입구에 설치 해 놓았다.
손오공을 가마에 넣고 며칠을 푹 삶은 후
죽은걸 확인하려 가마를 열어보니,
녀석이 생생하게 뛰쳐나와 놀란다는 콘셉인데,
석유가 쏟아져 나와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날씨 나쁜날 방문해
바로 뒤쪽에 있는 화염산도 못보는 우리를 약올리는 듯도 싶다.
어제 마귀성에서 마누라가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만.......
별식이라며 징기스칸인지 스키야끼인지로 점심을 때우고
모처럼 두시간의 휴식시간을 준다기에 뒷 동네를 돌아다닐 계획을 했었으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돌풍에 포기하고 그대로 호텔에서 낮잠에 떨어진 후,
10월 5일 (목) 오후
소공탑
사막에서는 등대 역활도 했었다는 18세기의 공동묘지인데,
뒷편에선 위그루 아낙네들이 촟불을 켜고,
가장 좋은 옷을 공물로 바치며 간절하게 소원들을 빌고 있었다.
카레즈
어느새 간간이 파란 하늘이 보이고 바람도 많이 잦아 들었다.
만리장성, 운하와 더불어 중국 고대 3대 대공사라는 카레즈(지하 관개 수로)는
천산산맥에서 60km떨어진 투르판까지 1,000개가 넘는 지하수로(총 길이 5,000km)로
2,000년 전부터 시작해 현재도 미래를 위해 계속 공사 중이다.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은....??)
관광한 것은 실제 사용중인 초라한 마을속을 흐르는 몇십m의
극히 단편적인 한 부분이었으나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숙명적인 경건한 종교 행사와도 같은 이런 성스러운 현장을 보며
깊은 감명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뒷 마을
호텔로 다시 돌아오니 식사때까지 시간이 남아 홀로 뒷골목을 배회했다.
우리의 옛날 시골을 연상 시킨다.
위그루 소수민들은 사진 찍히기를 싫어 한다는 가이드의 엄포와는 달리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어 달라며 매달린다.
남루한 옷차림과는 달리 해맑은 눈동자에 어린이들의 미소가
아직도 찌푸린 날씨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한쪽에선 가지채 말린 포도를 벼 탈곡하듯이 알맹이만 분리하고 있었다.
주인인 듯한 뚱뚱이가 맛을 보라며 많이 집어가라고 손짓 하지만 ...
전체 분위기가 비위생적인 것이 부담감을..........
해가리개만 걸친 옆집 흙마당에는
여러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링겔등 치료를 받고 있었다.
너무나 열악한 의료 행위에 마음이 답답하다.
위그루족 민속 공연
저녁 식사후 같은 호텔에서 공연했다.
피리를 맡은 단장은 시간이 날적마다 내 옆으로 내려와
관람객의 숫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휘날레에 신이 나서 피리를 부는 것을 보니 수입은 충분했었나 보다.
음악이 너무 현대적이라 약간은 당황했다.
다시 어제의 시장에 나가
가게에 포장된 건전지를 뜯어 직접 확인해 보면
모두 불량이라 환불을 하는데,
주인들은 괜히 자기 죄인양 계면쩍어 하고
호기심 많은 아들녀석만 사진 찍어 달라며 손을 잡아 끈다.
택시를 타고 더 큰 시장까지 가 보았으나
역시 건전한 건전지 구입에는 실패했다.
(값이 4-5배 차이가 나는
관광지에서 사는 건전지는 비교적 사용 가능했다)
오늘은 무척 바쁘게 돌아 다니며
백화점식 아이 쇼핑을 한 셈인데
황사에 가려진 화염산의 자연 경관이 그나마 볼만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