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번 답사보고서는 다녀온 3곳의 향교(鄕校)를 중심으로 쓰려고 한다. 향교란 고려,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으로 유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1894(고종31)년 이후 과거제가 폐지되고 향교는 이름만 남아서 문묘(文廟)를 향사하고 있다. 향교는 입구에 홍살문(紅─門)이 있고, 제일 바깥문인 외삼문(外三門), 유생들이 공부하며 기숙의 용도로 사용했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교육을 담당했던 강당인 명륜당(明倫堂), 그리고 안쪽 문인 내삼문(內三門), 마지막으로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대성전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석전을 지낸다. 향교가 위와 같은 다섯가지 구조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향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번 답사보고서는 3곳의 향교를 다녀와서 받은 느낌을 중심으로 쓰려고 한다. 순서는 전주, 양천향교, 과천향교 순이다. (전주한옥마을은 2월 말에 갔는데 당시 향교를 다녀왔기 때문에 추가했다.)
본론
1)전주한옥마을
전주역에서 부터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지나 한옥마을 입구에서 내리면, 전동성당이 보이는데 그 곳부터가 한옥마을의 시작이다. 한옥마을에는 전동성당과 경기전(慶基殿), 오목대(梧木臺), 전주향교(全州鄕校)가 모여 있다. 이외에도 한옥마을이라는 명칭답게 한옥으로 디자인 된 카페와 액세서리가게, 음식점, 개인 집들이 늘어서 있다.
전주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성계(李成桂, 1335 ~ 1408)의 본관이며 조선 500년의 역사의 시작을 연 곳이다. 동시에 조선 역사에 관한 연구에 상당히 중요한 지점으로 보인다. 경기전(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1410년(태종 10년)에 창건.)과 오목대(이성계가 조선왕조 개국 후 정자를 짓고 오목대라 이름 지음.)가 이성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적이라는 점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한옥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조선시대의 사극을 보는 듯한데, 그만큼 조선의 정취가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다. 오목대는 전주한옥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으로 경치가 대단한데, 이성계가 남원의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이곳에서 연회를 푼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목대는 고종이 친필로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는 비문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경기전부터 15분정도 걸어가면 전주향교가 나오는데, 원래 전주향교는 경기전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향교를 찾아 한참 걸었지만 향교의 입구를 못 찾고 비각에 가기 전 골목길 깊숙이 숨어있는 입덕문(入德門)으로 들어갔다. 향교에 들어서서 여행의 힘듦을 달래고자 서재의 마루에 잠시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향교에 들어서자 바람과 공기가 외부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만화루(萬化樓)-일월문(日月門)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덕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대성전 앞의 보호수 두 그루는 만화루로 나오면서 제일 늦게 보게 되었다. 나오면서 보게 된 거대한 보호수 두 그루를 보고서야 공기가 왜 다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은행나무는 40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당시 공부를 하러 향교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은행나무에게서 맑은 기를 받았을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 만화루는 복층구조인데 이층은 유생들이 올라가 쉬기에 적합해 보였다. 대성전의 규모는 과천향교와 양천향교를 다녀온 후에 알게 되었는데 상당했다. 다른 외지의 향교는 가보지 못해서 크기를 가늠할 수 없겠지만 수도 근처의 향교보다 크기가 상당하고 건물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2)과천향교(果川鄕校)
과천향교는 1398년(태조 7년)에 설립되었다. 과천향교는 관악산 연주대와 연주암을 통하는 가장 가까운 등산 코스에 자리 잡고 있다. 과천향교 앞으로는 연주암으로 부터 내려온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지금은 교회나 학교 등 건물이 경치를 막고 있지만 당시에는 전망이 좋았을 것이다. 대성전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면 당시에 펼쳐질 경치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현대의 건물이 없는 당시에는 향교는 관악산 밑자락에 자연 속에 위치했을 것이다. 과천향교를 품고 있는 관악산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따라서 과천향교의 유생들이 자연과 더불어 공부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과천향교의 내부는 굉장히 작고 아담하며 건물의 수는 두 개이다. 과천향교는 입구부터 차례대로 홍살문,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있다. 현재 이곳의 명륜당 안에는 봉사활동을 하는 분이 관리자가 되어 팜플렛을 나눠주고 향교에 대한 안내를 하는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가운데 계단은 밟지 못하게 되어있다. 대성전은 향교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과천향교를 나오면서 아쉬운 점을 느꼈다. 향교 주변에는 관악산으로 향하는 등산객이 많았지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향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길을 간다. 향교로 들어가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700년 역사의 향교가 사진의 배경만이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3)양천향교(陽川鄕校)
태종 11년(1411)년에 창건되었다. 양천향교는 양천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 향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지역이 수도 안이 아니라 지방이었다는 것을 추측했다. 양천향교는 조용한 주택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분위기는 매우 한적했으며 이곳에 있으면서 서울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어느 시골동네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주변은 차분했다. 유예당(遊藝堂)의 옆구리를 통해 양천향교에 발을 들였다. 양천향교 홍살문의 오른쪽에는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또한 왼쪽에는 2007년 강서구청에서 유예당을 설치해 놓았는데 유예당은 무료로 문화행사와 민속놀이 공연 등 을 위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놀이마당이다. 무료급식을 시행하고 놀이마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향교를 유적의 기능으로 볼 수 있게 한 것 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홍살문의 왼쪽에는 송덕비들이 세워져 있었다. 양천향교에는 동재와 서재,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典祀廳)이 축조되어 있는데 현재 동재 안에는 관리인이 지내고 있었다. 기숙을 목적으로 사용 되었던 동재와 서재에 관리인이 지낸다는 점이 독특했다. 또한 양천향교의 주최로 한국고대사 특강 및 선사고대유물전람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개제된 책자를 보았다. 양천향교는 옛 향교가 맡았던 교육의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명맥이 이어져오는 모습에 감탄하게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대성전으로 향하는 내삼문이 닫혀 있어 담 넘어로 살펴본 것이다.
결론
세 곳의 향교를 둘러보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당시 학생들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보게 되었다. 현재의 학생들처럼 조급하고 바쁜 모습이 아닌 여유있는 모습의 당시 학생들의 모습이 상당히 부러웠다. 동시에 유적이 사람들에게 많이 이용되어져야 한다고 느꼈다. 유적에 대해 사람들이 자주 생각하고 왕래해야 그것의 존재감과 중요성에 대해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유적이 사람들에게 이용되어 지고 유적이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될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선시대 유적들을 보면서 역사를 현대인들에게 의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적을 관람하는 목적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목적을 만들어 사람들이 유적을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유적은 한번 가서 구경하고 난 후 다음에 갈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거나 갔던 곳이기 때문에 다시 안가기 마련이다. 또한 보통의 사람들은 유적에 대해 거리감을 두고 어려운 곳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는 유적이 정기적으로 오거나 다시 와보게끔 하는 목적성을 갖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유적에 가야 할 목적을 갖게 하려면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와보게 하는 능동성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초등교과 또는 대학 과목에서 유적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적의 중요성에 대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면 그들은 유적에 관한 여러 가지 관심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되고 후에 이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유적에 대해 수용하고 인식하고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재청이나 유적을 담당하고 있는 시, 구청 등 에서는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양천향교에서 유예당을 설치한 것처럼 지역구민과 동네주민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거나 흥미를 이끌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전주향교가 속해있는 한옥마을은 여행객들에게 전주를 들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야하는 필수코스로 인식되어 있다. 동시에 경기전, 오목대, 전주향교 등 수 많은 유적들이 있음으로 여행객들에게는 단시간에 수 많은 볼거리를 안겨준 셈이다. 이처럼 관광단지를 구성해서 볼거리가 모여 있다는 이점을 살리거나 다른 지역과 차별화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유적 주변에 여행 코스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유적들이 산재해 있을 경우에는 국가에서 버스 등 이동수단의 운영 및 지원을 통해 근처의 유적들을 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도도 필요하다.
이상 마무리하며 유적에 대해 관심이 없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추천해 주고 싶다. 그 곳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바쁜 현대생활에서 한걸음 쉬어가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경기전
과천향교 대성전
전주향교 만화루
양천향교 전경
양천향교 명륜당
담으로 넘어 본 양천향교 대성전
과천향교 전경
전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사회와 제도 답사리포트 20090580 박성우.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