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슈트케이스 두 개를 들고 떠났는데, 일본 생활까지 포함해서 6년 반 만에 귀국할 때는 배로 부쳐야 할 만큼 짐이 늘었다. 그로부터 4년 반이 흐르고 나니 포장 이사를 맡겨야 할 만큼 짐과 가구가 늘어버렸다.
아무래도 이사를 위한 짐 정리는 평소의 정리와는 다르게 좀 더 강도가 높다. 내가 기껏 포장비까지 내고 챙겨간 짐이 결국 안 쓰는 물건이나 쓰레기는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어떻게든 짐을 줄여 이사 견적도 좀 싸게 받을 요량으로, 서랍 하나하나까지 다 뒤지면서 정리를 해나갔다. 한 번씩 정리해서 진작에 버린 것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서류와 노트,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그릇, 읽지 않을 책, 꺼내보지도 않는 기념품 등이 제법 많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버리는 쪽에 뒀다가 다시 가져가는 쪽에 뒀다가 하면서 망설이기를 여러 차례. 미국으로 유학가서 처음 핸드폰을 개통할 때 받은 서류에는 현지에서 살아갈 준비가 이제 되었다는 당시의 설렘이 담겨 있고, 일본에서 국내로 이사할 때 받은 이사 업체와의 계약서는 어찌어찌 2년간 구르다 보니 일본어로 일 처리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뿌듯했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물며 박사 시험 볼 때 썼던 노트들은 어떠하랴. 그 노트들을 보면 학교 도서관에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앉아서 하루에 한 권씩 해치워 가며 박사 시험공부를 하던 때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이렇게 하나하나 추억하다 보면 짐 정리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지만, 마침 그 무렵 중고 서점에서 사 들고 온 두 권의 책이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평소에도 더 이상 책꽂이에 다 꽂지 못할 만큼 책이 늘어나면 중고 서점에 내다 팔고, 그렇게 생긴 몇 푼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사서 나오기도 하는데, 두 권의 정리 길잡이 책도 그렇게 손에 넣게 된 책들이다.
한 권은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에 대한 책이었다. 데스클리닝이란,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죽기 전에 자신의 짐을 정리하는 스웨덴의 관습인데, 마당이 딸린 큰 주택에 살다가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한 나이 지긋한 스웨덴의 할머니가, 모아 둔 편지에서부터 정원 도구까지 하나하나 처분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하고는 규모가 다른 생활을 하신 분이라 그 내용을 나에게 다 적용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정리에 동기 부여는 잔뜩 해주었다. 그냥 이사 준비가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데스클리닝이라니, 제법 엄숙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날 함께 사 온 또 다른 책은, 데스클리닝의 디귿도 안 하고 갑자기 죽은 쉰넷의 중년 남성이 남긴 짐을 정리하면서 그 여동생이 쓴 일본의 책이었다. 콘도 마리를 낳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리의 고수 일본인도 케바케(케이스바이케이스)인 듯, 이 오빠는 정리를 안 하는 차원을 넘어서 쓰레기와 동고동락하며 살다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혼자 집에서 죽었다. 데스클리닝을 안 했을 때 남은 사람이 보게 되는 광경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면에서 이 책도 역시 열심히 청소하자는 쪽으로 동기 부여를 해주었다.
하지만 좀 과도했던 것일까. 평소에도 정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책으로 의미까지 부여받으니 일에 속도가 붙었고, 한번 버리기 시작하니 마음도 홀가분해져, 그래 싹 정리하자, 하는 기분으로 밀어붙였다.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이 세상에는 관성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어서 한번 발동이 걸리니 손대지 않아도 되는 곳까지 눈이 갔고, 어느새 철거의 단계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원래 어머니가 사셨다가 잠시 내가 들어와 살게 된 집인데, 어머니가 사실 때 설치한 주방 싱크 쪽 보조 등이 진작에 고장이 나서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되었건만, 나는 무슨 강박적 미니멀리스트라도 된 것처럼, 내 정리의 완성도를 한층 더 올리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그것을 철거하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죽다 살았다. 데스클리닝에 고무되어 죽음으로 나를 클리닝할 뻔한 것이다.
아, ‘적당히’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적당히 타협하라는 말과 함께 쓰여서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적당히’를 몰라요, 하는 말처럼 어디에서 멈출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도 함의하는 말이다. 그날 나는 그 ‘적당히’를 몰라서 나까지 청소해버리는 데스클리닝의 끝판을 볼 뻔했다.
사실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산다고 딱히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 물건을 다 정리하지 못하고 가는 게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갑자기 죽은 그 오빠의 경우, 일본 문화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여동생에게 큰 폐를 끼쳤지만, 오빠가 데스클리닝을 하지 않고 산 덕분 또는 탓에, 사이가 좋지 않아 30여 년 거리를 두었던 오빠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이 여동생의 몫으로 남았다. 썩 반가운 흔적은 아니었어도, 냉장고에 남은 여러 종류의 장아찌를 치우며 오빠가 의외로 장아찌를 담가 먹는 남자였다는 것을 알았고, 마지막까지 취업을 위해서 썼던 이력서를 보면서 오빠가 얼마나 많은 자격증을 땄는지를 알았으며, 벽에 붙여 놓은 여러 장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오빠에게 어느 때가 가장 행복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고, 그 쓰레기통 같은 집에서도 같이 살던 초등학생(일본에서는 소학교 학생) 아들을 위해 거북이와 물고기를 키우는 아빠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오빠가 혼자 쓰러져 죽은 그 작은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여동생은 그동안 만나지 않고 살던 오빠와 제대로 이별할 수 있었다.
스웨덴 할머니는 데스클리닝을 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잉마르 베리만 같은 사람을 꼽았는데, 그가 하나도 정리를 하지 않고 산 덕분에 후대를 위해 많은 연구 자료를 남겼다고 했다. 베리만 같은 사람에 비하면 그 오빠가 남긴 것은 연구거리는커녕 오롯이 민폐지만, 여동생은 그 경험으로 책 한 권을 남겼으니, 나름 자료라면 자료 아닐까.
이 여동생은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남긴 유품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자신의 짐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하는데, 사실 나의 어머니도 너무 버릴 줄 모르는 분이라 본가에 다녀오고 나면 정리 강박이 한 번씩 발동하곤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짐을 좀 정리하시라고 여러 번 종용드렸지만,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나 가고 난 다음에 니들이 버리든 어쩌든 마음 대로 해라, 라는 말로 응대하신다. 그래, 큰이모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짐을 정리할 때 사촌 언니들이, 정리하다 보면 어디에서 현금이 나오고 보석 반지도 나오고 하는 통에 그냥 마구 가져다 버릴 수도 없어 애를 먹었다고 했는데, 나도 나중에 엄마 짐을 정리하면서 돈이든 추억이든 또 무엇을 건질지 어찌 알랴.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까지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무탈하게 장수한 스웨덴 할머니, 그리고 잔재주는 많지만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해 이혼당하고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고 건강은 상할 대로 상해버려 중년의 나이에 돌연사한 일본의 남자. 데스클리닝은 이처럼 데스와 클리닝 사이에 있는 무수한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이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고(마 8:20), 전도 여행을 나서는 제자들에게는 돈은 물론이고 여벌 옷도 챙기지 말라고 하셨으니(막 6:8-9), 클리닝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역시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정리를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쌓아놓고 있는 물건들에서 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박사 공부할 때 썼던 노트는 추억도 추억이고, 언젠가 강의나 연구에 필요할 것 같아 가지고 있었지만, 그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하는 마음으로 남아 나를 과거에 묶어 두는 물건일 수도 있다. 라떼의 기나긴 이야기는 거기에서 나오고, 아무도 듣지 않는 독백 속에 스스로 갇힐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어떤 물건이 오히려 대화의 물꼬를 트는 물건이 될 수 있다면, 그 물건은 조금 더 오래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추리고 추린 나의 추억 박스에는 곧 입대를 앞둔 아들을 임신했을 때 썼던 산모 수첩, 그리고 죽어서 태어난 둘째 아들의 산모 수첩이 아직도 있다. 이런 물건들은 클리닝하지 않고 그냥 두고 가도 좋지 않을까. 이번 이사에도 이 추억 박스는 그대로 나와 함께 새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