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906년 베르몽 신부가 신자들과 협력해 약 45만평 천호일대 산지를 매입하면서 지금 천호성지 모습의 기틀을 닦았다. |
신전라박물지 62. 완주군 비봉면 굽이굽이 가다보면 인적이 끊긴 듯한 느낌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더니 주차장이 나온다.
천호성지 방문객을 위한 곳이다.
대형버스 7대가 주차된 것을 보니 이른 아침부터 많은 방문객들이 서둘렀나 싶다.
천호성지로 올라가는 좁은 길이 나온다.
승용차 길이 따로 있지만 걷기로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다.
완만한 길을 걷다보니 먼저 커다란 예수상이 방문자를 맞는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양팔을 벌린 모습은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는 의미다.
천호(天呼)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 산다’는 뜻을 가진다.
이와 별도로 이 마을을 둘러싼 천호산(天壺山) 역시 ‘순교자들의 피를 가득 머금은 병 모양의 산골’이란 의미로 불리기도 한다.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에 묻히고 그 후손들의 삶의 터전이 된 이유인 듯싶다.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거처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한 시점이다.
충청도 지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했고, 정착을 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1906년 고산본당에 부임한 베르몽 신부가 신자들과 협력해 약 45만평 천호일대 산지를 매입하면서 현재 모습의 기틀을 닦았다.
1939년엔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당한 손선지 등 6위의 순교비 제막식이 거행됐고, 이후 천호 일대 순교자 묘소를 새롭게 찾게 되면서 성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삶과 죽음이 깃든 이곳은 이들의 무덤과 집터, 교회사연구소, 피정의 집 등이 들어서면서 호남지방 교회사연구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좁은 길로 오르면 천호가톨릭 성물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엔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다양한 가톨릭 성물 600여점이 전시돼 있고, 천주교 신앙의 발달과정이나 전달과정의 역사 등과 관련된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때마침 찾은 부활성당 건물엔 미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성지를 찾은 신자들로 본당 내부는 발 디딤 틈이 없을 정도다.
주차장의 대형버스 주인공인 듯 싶다.
미사를 마친 신자들은 바로 옆 식당을 이용한다.
청결한 식당 내부에서 먹는 밥 한 끼는 비록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의 은총을 받는 느낌이 들 정도다.
순례 차원에서 방문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초록이 우거지고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없던 편안함을 가슴 한 가득 느낄 수 있다. | | | ▲ (왼쪽부터) 커다란 예수상, 천호성지 내부 |
/조석창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