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義理) 속에 흠뻑 젖게 하라
“선악(善惡)의 나뉨은 호리(毫釐, 매우적은 분량의 차이)의 사이에 있는 것이고 인심이 수습되고 흩어짐은 무상한 것이어서, 반드시 학문을 강론하고 이치(理致)를 밝혀 이 마음으로 하여금 의리(義理) 속에 흠뻑 젖게 해서 물욕(物慾)에 가려지는 바가 없게 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임금이 경연(經筵)을 열고 강독을 하는 것은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1636년 인조14년 4월 22일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이 임금에게 드린 말씀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도 성현(聖賢)들의 학문을 배워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환히 알아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으로 하여금 하늘의 도리(道理) 즉 의리(義理) 속에 깊숙이 들어가게 해서 이생의 자랑, 안목(眼目)의 정욕, 육신의 정욕과 같은 속세의 욕망을 넘어서서 성인(聖人)·군자(君子)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야한다. 그 길이 가장 가치 있는 인생길이 될 것이고 또한 가장 차원 높은 행복의 길이 될 것이다.
그런고로, 자신의 일생을 건 목표를 세우는 일 소위 입지(立志)를 함에 있어서는 성인(聖人)혹은 군자(君子)를 목표로 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이 그러하였고 백강 이경여 선생도 그러하였다.
이후 성인·군자를 삶의 지향점으로 두고 살아간 한포재 이건명 선생에 대하여, 정조대왕은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 치제문(致祭文)’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추모(追慕)한 바가 있어 주목할 만하다.
자신의 몸을 죽여 순국함을 / 殺身殉國
군자가 인(仁)이라고 하는데 / 君子曰仁
백대에 걸쳐 한 사람이 있으니 / 百世一有
경(卿)이 실로 그 사람이구려 / 卿實其人
천지의 경상(經常)이 / 天經地彝
경의 덕분에 인멸하지 않았도다 / 賴以不湮
한편 기독교의 목표도 이를 한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는 것이라고 할 것이니, ‘의리(義理) 속에 흠뻑 젖게 하라’는 백강 이경여 선생 말씀의 소중함은 더욱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을 닮는 데 일생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경우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福)을 받음은 물론, 죽어 저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으니, 누구든지 그렇게 된 사람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2026. 5.14. 素澹
의리(義理) 속에 흠뻑 젖게 하라 [백강(봉암) 이경여 선조]
인조 32권, 14년(1636 병자 / 명 숭정(崇禎) 9년) 4월 22일(병신) 1번째기사
경기 삭녕군 등에 많은 우박이 내려 곡식이 손상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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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삭녕(朔寧) 등의 군에 크게 우박이 와서 화곡이 많이 손상되었다. 일을 보고하자, 상이 승지 심액(沈詻)·이경여(李敬輿) 등을 불러서 묻기를,
“어떤 재변인들 두렵지 않겠는가마는 한재(旱災)가 가장 절박한 걱정거리다.”하니,
심액이 아뢰기를, “국상이 있어서 부역이 번거롭고 무거운데 한재가 또 이와 같으니,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하고,
이경여는 아뢰기를,
“선악의 나뉨은 호리(毫釐, 매우적은 분량의 차이)의 사이에 있는 것이고 인심이 수습되고 흩어짐은 무상한 것이어서 반드시 학문을 강론하고 이치를 밝혀 이 마음으로 하여금 의리 속에 흠뻑 젖게 해서 물욕에 가려지는 바가 없게 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임금이 경연을 열고 강독을 하는 것은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임금의 희로(喜怒)로, 임금의 희로 역시 한 하늘인 것입니다. 지금 하늘의 가뭄이 이와 같으니, 상께서 특별히 크게 은전을 내리시어 반드시 천리에 합하고 인심에 순응한 다음에야 비로소 하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주고 벌주는 즈음에 편벽되게 한다면 무엇으로 한 나라의 인심에 답하겠습니까. 강상죄(綱常罪)를 지은 무리들은 혹 석방하거나 양이(量移)하였는데, 말로 인해 죄를 얻은 사람은 용서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정이 민망해 하고 답답해 하는 것은 모두 다 형벌이 맞지 않아서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무릇 형벌을 쓰는 방도는, 죄목이 중하더라도 위협에 못 이겨 한 경우에는 혹 용서할 수도 있으나, 죄목이 가볍더라도 그 마음씀이 선하지 못하여 말할 수 없는 유폐가 있을 경우에는 결코 가볍게 용서해 주기는 곤란하다. 이는 사사로운 뜻에 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사리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