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우우제(秋雨偶題): 정사도
招遞雲連塞(초체운련새)/구름이 계속하여 오라고 손짓하며 부르네!
凄凉雨送秋(처량우송추)/가을 비로 애처롭게 보내는 구나
滴階驚坐睡(적계경좌수)/뜰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앉아 졸다가 놀라고
着柳長詩愁(착류장시수)/버들가지에 긴 시름의 시(詩)를 그리네!
夜暗憐鷄叫(야암련계규)/어두운 야밤에 닭 울음소리 애련하네!
天寒愧客遊(천한괴객유)/나그네들이 노는데 하늘은 더욱 차갑네!
戀君心愈切(련군심유절)/마음은 더욱더 임이 그리워지네!
矯首獨登樓(교수독등루)/ 그래서 누대에 홀로 올라 보았다네!
◎ 고주사에서 놀며(遊高住寺): 정사도
偶出村廬成獨遊(우출촌려성독유)/우연히 집을 나와 노닐며
尋僧馬上更悲秋(심승마상경비추)/ 좁은 돌길, 말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자태처럼 쓸쓸한 가을이 슬퍼지네!
長松偃蓋如迎送(장송언개여영송)/손을 막고 보내는 듯 큰 소나무들이 양산처럼 펴고 있네!
疊山章開屛解挽留(첩장개병해만류)/나를 붙잡을 듯이 산들은 병풍을 치고 있네!
坐久夕陰生邃壑(좌구석음생수학)/한참동안 앉자 놀다보니 저녁
노을에 골짝그늘도 생겨나고
風來霜葉亂虛樓(풍래상엽란허루)/빈 누각은 바람 속에 낙엽들이 어지럽게 하네!
團欒煮茗同淸話(단란자명동청화)/차를 끓이며 도란도란 청담을 나누니
忘却悠悠放逐愁(망각유유방축수)/나도 모르게 걱정과 시름이 말끔히 잊어지네!
◎ 영일한거(迎日閑居):정사도
屛迹村廬車馬稀(병적촌려차마희)/영일시골에 마차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네!
出門看雪立移時(출문간설립이시)/눈내리는 것을 문밖에 나가 보니
漁蓑堪畵晩江上(어사감화만강상)/만강위에 있는 어류그림들 도롱(풀가리게)이로 덮을 수 있을까?
只恨都官無好詩(지한도관무호시)/좋은 시가 없으니 도관에게 한스럽다고 하였네!
◎ 서강증 정선생 달가봉사 강남
(西江贈鄭先生達可奉使江南) : 정사도
去年京洛遇中秋(거년경락우중추)/지난해엔 송도에서 추석을 맞아!
醉擁笙歌月下樓(취옹생가월하루)/ 달 아래 누대에서 술을
거나하게 취하며 피리불면서 노래를 하였더니
今夜船窓滿江雨(금야선창만강우)/오늘밤 선창에는 강비가 가득한데!
一燈離思浩難收(일등리사호난수)/한 등불 앞에서 석별의 정을 걷울 길 없어라
◎ 진수서강작(鎭守西江作): 정사도
將軍兀坐貧如絲(장군올좌빈여사)/장군이 우뚝 앉으니 귀밑머리 새 하얗고
風雪連江五夜遲(풍설련강오야지)/ 밤 늦은 오경인데 눈바람은 강까지 휘몰아 친네!
天近鸞鳳正翔集(천근란봉정상집)/하늘이 가까워 난새와 봉황새 들이 모여 있네!
路長騏驥倦驅馳(로장기기권구치)/길이 멀고도 멀어 천리마도 달리기에 치쳤도다
敢希令尹三無溫(감희령윤삼무온)/영윤이 세번 쫓겨나도 노염 없기를 감히 바랄까
每憶陳平六出奇(매억진평육출기)/진평이 6번 쫓겨나도 기발한 계책 매양 생각하노라
刀斗聲殘無夢寐(도두성잔무몽매)/조두소리 사라져도 도무지 잠 못 이루어
呼燈援筆寫新詩(호등원필사신시)/등불 밝히고 붓을 들어 또다시 시를 쓰노라
◎ 서강사부(西江師府): 설곡 정사도
出獵凌霜曉(출렵릉상효)/서리 내리는 새벽녁에 사냥을 나아가서
彎弓愧빈毛(만궁괴빈모)/활을 당기니 하얀 살쩍이 부끄럽도다
放鷹窮野闊(방응궁야활)/매를 놓아주며 넓은 들판 한껏 날리우고
馳馬試山高(치마시산고)/말을 달려 올라가려니 산 높음을 알아 보노라
詭遇元非意(궤우원비의)/짐승 속여 잡는 것이 원래 내 뜻이 아니니
長驅不覺勞(장구불각로)/멀리 달려보아도 피로 한줄 모르겠어
擊鮮將獻闕(격선장헌궐)/날고기 잡아 대궐에 바치리니
肯蔿作遊傲(긍위작유오)/어찌 이것이 놀이 하기 위함 이겠는가
◎ 진수동강계축구일(鎭守東江癸丑九日): 정사도
登高誰擧酒(등고수거주)/높은 데 올라 누구와 술을 마실까 하다가
橫삭出城東(횡삭출성동)/창 비껴들고 성 동쪽으로 나서보니
漠漠連江雨(막막련강우)/아득하게 강에 닿은 빗줄기요
蕭蕭落木風(소소락목풍)/우수수 나뭇잎 지는 바람이어라
聖明容我老(성명용아노)/임금님 밝음이 나의 늙음 받아들여
甘苦與軍同(감고여군동)/군사들과 더불어 기쁨과 고생을 같이 하느라
定被黃花笑(정피황화소)/반드시 국화꽃에 조롱 받으리니
醒吟酒가空(성음주가공)/ 술도없이 깨여서 시만 읊는다고 말일세,
◎ 유동암(遊東庵) : 정사도
無家遠客奇山中(무가원객기산중)/산중에 자기 몸을 맡기고 집 없는 떠도는 나그네냐!
試得禪家定裏功(시득선가정리공)/속사정은 조용한 집에서 시험지식을 얻고 싶구나!
脚困危梯緣絶壁(각곤위제연절벽)/절벽같이 높은 사다리를 오르니 내 다리가 후들거리네!
眼明飛閣聳層空(안명비각용층공)/고층누각 공간에 나르는 쎈빛이 내 눈을 스치네!
疎鐘隱隱催西日(소종은은최서일)/해질 무렵에 은은한 종소리가 막힌 마음을 트이게 하는 구나!
高鐸鈴鈴饗北風(고 탁령령향북풍)/북풍소리는 고성방울처럼 땡땡거리네!
夜坐浦團心正靜(야좌포단심정정)/맑고 바른 마음은 뭇사람들이 통행하는 강가 포의 조용한 밤거리와 같다네!
老僧無語佛燈紅(로승무어불등홍)/절간에는 붉은 등불만 있고 노승은 어디 있나 말이 없구나!
◎ 차운정한산군이영숙(次韻呈韓山君李穎叔): 정사도
柳巷輕煙寒食後(류항경연한식후)/한식을 지난 뒤엔 버드나무꽃잎들이 가벼운 연기처럼 날리네!
松山翠色晩晴餘(송산 취색만청 여)/늦게 푸르게하는 여유로 송산을 비취색으로 만드네!
苦呤未得賞春句(고령미득상춘구)/봄에 취하고 속삭일 시(詩) 구하나 얻지 못하네!
還向明窓讀佛書(환향명창독불서)/불경을 읽는 소리가 밝은 창을 넘어서 돌아오네!
西江贈鄭先生達可奉使江南(서강증정선생달가봉사강남)
◎ 제충순당(題忠順堂): 정사도
交情曾得卜鄰時(교정증득복인시)/정의는 이웃하여 살며 두터워지며
共道風儀老益奇(공도풍의노익기)/뜻을 같이하는 그의 풍채는 늙을수록 뛰어나네!
把策幾年留白屋(파책기년유백옥)/ 책을 손에 들고 몇해를 초옥에 머물렀고
曳裾今日根丹墀(예거금일근단지)/옷자락을 끌고 지금은 궁중을 출입하는데
試看逸翮淩雲漢(시간일핵릉운한)/바라보건데 그의 비상한재주는 하늘을 찌르는데
自笑羸蹄困路岐(자소리제곤로기)/파리한 내 신세는 기로에서 피곤함을 스스로 웃네!
報答重思常有志(보답중사상유지)/성은을 보답할 뜻은 마음속에 항상 있으니
莫憂雙鬢己垂絲(막우쌍빈기수사)/양족 살쩍이 실같이 드러웠음을 근심하지 않네!
◎ 득질청우안성(得疾請寓安成)
立家秋雨連日(입가추우연일)/우거하는데 가을비가연일 내리네!
秋宇凄凄久未晴(추우처처구미청)/가을비가 처량하게 오래 개이지 않고
煙林寂寬斷人行(연림적관단인행)/안개긴 숲풀엔 적막하여 인적이 끊어지네!
愁添巷柳空濛色(수첨항유공몽색)/동네버들의 어스름한 빛은 수심을 더하고
睡破茅簷點滴聲(수파모첨점적성)/초가집 처마 끝 낙숫물 소리에 조름이 깨었네
獨自思家嫌地遠(독자사가협지원)/저절로 집생각나니 먼길이 한스럽고
敢能披霧覩天明(감능피무도천명)/안개를 헤칠 수 있다면 밝은 하늘을 보련만은
漫漫寒夜知何刻(만만한야지하각)/지루한 이한밤에 지금은 어느때인가?
喜有隣雞不廢嗚(희유계불발오)/고맙게도 이웃집 닭이 울어서 때를 알리는 구나!
◎ 근부가예천(謹賦賀醴泉)
- 송곡 정연(鄭淵)
英陵幸溫泉時(영릉행온천시)/영릉(세종)이 온천에 행하였을 때
馨香至治格于天(형향지치격우천)/향기로운 지치(至治)가 하늘에 이르으니
感應昭昭以鏡懸(감응소소이경현)/감응이 밝에 나타남이 거울 같도다.
臭奪掓蘭噴玉色(후탈숙난분옥색)/냄새는 초란보다 짙고 옥색을 뿜어내니
古傳神瀵見斯天(고전신분견시천)/ 예로부터 전해오는 신분을 이샘에서 보는구나!
翠蓋臨風影拂天(취개임풍영불천)/푸른 일산이 바람에 나부켜 하늘을 털고
旌旗掩映彩龍懸(정기엄영채용현)/ 정기가 하늘을 가리니 용이 빛나는 것 같도다.
欣瞻日月明郊殿(흔첨일월명교전)/ 일월이 행굼을 밝혀줌을 기꺼이 우러러보면서
共射乾坤坼玉泉(공사건곤탁옥천)/ 이세상에 온천이 솟아남을 감사하도다.
※ 세종대왕은 본시로 인해 지방행정 조직단위를 온양현에서 온양군
으로 승격시켰으며 현재는 충남 아산시 온양1동~6동으로 변경되었다.
문정공(文貞公) 정사도(鄭思道, 설곡1318~1379년) 감무공파로 형양공 후손 휘 인언(仁
彦)의 처남이요, 초휘는 양필(良弼)로 종부서령 휘 유(侑)의 차남으로 고려조 1336년 병자
18세 때 연평군 안규 순천군 채홍철 공과 관장 한 시험에 공이 단번에 합격하기도 했다. 보
직은 추밀원집사에 이르러, 모든 업무를 잘 처리 일국에 명예를 으뜸으로 날린 자가 오천
정문정공이라 한다. 공민왕 때 문정공은 정치적 욕망을 저 버리고 낙향 산수를 벗 삼아 13
년 한거하니, 오랜 뒤에 가상이여겨 왕이 불러 일성군에 봉하고 얼마 후 밀직상의 재상에
임명하여 합포와 동북면에 출진 입상출장하는 등 중임을 맡겼다. 우왕 때는 문정공이 병
이 나 중용을 하지 못 했다. 이색(내가)이 문정공의 와병 중 문병을 갔을 때에 심하지 안했
는데, 재차 갔을 때에는 접객이 불가 했고, 상당 한맹훈과 장례참석 제사를 올리려고 가고자
하였으나 내가(이색) 병중이어서 하지 못 했다. 이를 한스럽게 하고 있었는데, 사위들이 묘
지명을 지으라 하니 아? 차마 사양 할 수가 없구나! 문정공의 어려서 이름은 良弼 이고, 諱.
字는 모두 思道(사도)인데, 과거급제 후 출사시 피할일이 있어 思度라 하였으나 공민왕이후
이리 개명하였다. 이름의 지닌 뜻은 나라에서 일하든 초야에서 일하든 道로 매사에 전념 한
다는 것이다. 1341년(신사년) 봄 권지전교교감을 거쳐 주부로, 이해 여름에 랑관으로, 겨울
에 그만하다가 당후관으로, 공로가 있어 승봉랑을 거쳐 감찰사규정으로 입사 10년만에 참관
이 되었다. 1344 갑신년 충목왕 즉위시 군부좌랑, 다음해 봄 정랑, 여름에 전리가 된지 18
일만에 봉선대부 성균사예, 겨울 11월에 밀직사우부대언 군부총랑 예문관직제학 지제교 充
춘추관편수관에 탁발로 벼슬이 중정대부에, 그해 겨울 정순대부 우대언 동지춘추관사가 되
었다. 다음해 성균관 시사에 지밀직 박형외 92인을 잘 뽑아 칭찬 받고, 여름 지신사 지전리,
가을에 봉익대부 전리판서, 얼마 있다가 충목왕이 공이 있어 기용 밀직사에서 직제학으로
한바 대언이 되고, 22개월 만에 양부에 승진 공이 30세이나 사론에서 이르다 하지 않으니
시기에 명예를 얻었다.1356 병신년 모친 별세하니 공이 시묘살이 3년상을 마치었다.
정연(鄭淵, 1389~1444): 자는 송곡(松谷), 시호는 정숙(貞肅), 부친(洪)의 아들, 안
평대군의 장인 태종5년(1405년) 사마시에 합격, 지평(1414년), 종부시소윤, 장령시절[세
종20년(1420년]에 상왕(태종)을 철원으로 간하였다가 노여움에 진산(珍山)으로 유배 뒤
에 풀려나와 장령과 선공감정, 집의동부대언, 세종12년(1430년) 천추사에 명나라에 사신,
형조참판, 이조참판, 중추원사, 병조판서, 세종24(1442년)년에 사은사 겸 주문사로 명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세종 26년(1444년) 운명, 묘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 있으
며 시제일 음력 10월2일이다. 묘역 전체를 경기도 기념물 13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