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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최근에 <올사모 카페>에 소개됐던 존경하는 두 분 원로 학자님의 수필 옥고와 올사모 회원님 댓글 소감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수필 옥고와 댓글 소감 모두 소중하여 '대전수필문학회 / 수필예술'과 '한국문학시대' 카페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훌륭한 인품의 원로 학자님들의 수필 옥고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느끼는 것도 귀한 인생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상자 윤승원] |
[윤승원 독서일기]
두 분 원로 학자님 수필을 읽고 소감을 달다
알밤
낙암 정구복(문학박사, 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제 가을 문턱을 넘어서니 알밤이 밤나무 밑에 나뒹굴고 있다. 9월 13일 아침 6시 반에 법화산 둘레길을 오르다가 우리 집 뒤의 말끔하게 잡초를 깎은 파평윤씨네 가족 묘 곁에서 자연 분만한 알밤 세 알을 주었다. 주황색의 알밤이 토실토실 잘 여물었다.
900미터 쯤 걸어 올라가서 우리가 쉬는 첫 쉼터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내년 봄에 알밤이 싹 틔우기를 내 마음속으로 기다려 보겠다.
이곳은 소나무 재선충 병을 차단하기 위해 작년에 이십여 년 자란 큰 소나무를 잘라낸 곳이다.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허전함을 느끼는 곳이다.
14일 아침에는 알밤 5개를 주어다가 다시 그곳에 심었다. 알밤이 어제 주운 것 보다는 조금 더 튼실하다. 15일 아침에는 세 개를 주어다가 옮겨 심었다. 11개의 알밤에서 몇 그루의 나무가 나올는지 모른다.
나의 동반자가 그 곳에는 밤을 심어서는 안 되고 상수리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하기에 16일 아침에는 알밤 주은 데서 조금 올라가다가 길에 나뒹구는 상수리 세 개를 주어다가 알밤을 심은 근처에 심었다.
이런 일들은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존하는 일에는 규칙위반이다. 알밤을 옮겨 심은 이유는 첫 번에 주운 알밤을 먹기에는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훤히 빈 언덕이 허전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알밤을 심어 다시 탄생하는 자연의 신비를 확인하고 싶은 뜻도 있었다. 여름을 지내온 생명체인 알밤을 묻은 것은 장례라고 한다면 죽음과 태어남이 인연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알밤하면 우리는 다람쥐의 동요와 '군밤'를 연상한다. 알밤은 다람쥐에게는 쌀밥이다. 요즘 법화산에는 다람쥐는 구경하기 어렵다. 청솔모만이 눈에 띈다. 우리 국토의 작은 동물 주인도 미국의 청솔모에 의하여 압도되어 안방 터를 쫓겨났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생각된다.
겨울철 거리에서 파는 군밤을 호호 불면서 까먹는 맛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알밤은 제사상에도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과일이다. 밤은 싹을 내고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속성에서 조상이 자신을 태어나게 하는 은공을 생각하여 제사상에 올린다는 속설이 있다. 알밤은 속에 씨가 없다는 점이 다른 과일과 다른 점이다. 이는 짐작컨대 엄청난 가시 외투에 질긴 가죽 옷, 그리고 속옷까지 차려 입은 결과가 아닐까 한다. (2020년 9월 17일)
※ 올사모(올바른역사를 사랑하는 모임)회원 소감 댓글
■ parkkyungouk 20.09.18 10:18
인생을 관조하시는 여유로운 모습이 참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장천 윤승원 20.09.19 09:18
묻어 둔 알밤이 튼실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다람쥐는 자기가 묻어 둔 알밤을 기억 못한다지요? 그래서 싹이 트고 산에 나무가 존재한다지요?
■ 정 박사의 글 알밤을 읽고 - 동촌 지교헌(낙암 정구복 교수 옮김)
지교헌 교수님은 저보다 10년 연장이 되시는 분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 1985년부터 저와 함께 재직했습니다. 선생님은 동양 철학을 전공하시고 동양의 고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셨습니다. 인품은 온화하시고 예절이 바르시고 겸손하셔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분이십니다. 한국학대학원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수필문학에 일찍이 등단하셨고, 주옥같은 많은 수필을 쓰셨습니다. 1998년에 퇴임하신 후 지금까지 필자와 연락을 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지금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논어’ 강독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날로 발전하는 인터넷에 조금 서투르셔서 저에게 이메일로 보내서 올려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아 제가 대신 올림을 알려드립니다. |
정(鄭) 박사의 글 ‘알밤’을 읽고
- 스승은 바로 나의 곁에 있었다 -
동촌 지교헌(수필가, 철학박사,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鄭) 박사와 그 친지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를 방문하다가 알밤을 산에 심었다는 글에 이끌리게 되었다. 정 박사는 아침 6시 30분에 동부인하여 법화산(法華山)에 이르러 알밤 3개를 주워서 나무가 없는 빈자리에 묻어주었다. 다음날에는 5개를 또 줍고 그 다음날에도 또 3개를 주워 묻어주었다.
다람쥐가 알고 먹어버릴 걱정은 필요치 않았다. 다람쥐는 제가 묻어 둔 것도 잊어버리는 건망증환자들(?)이라니까. 그런데 그 곳에는 밤나무 보다는 상수리나무가 더 적절하다는 사모님의 조언이 있었다. 마침 다음날에는 상수리 세 알을 줍게 되어 같은 곳에 묻어주었다. 봄이 오면 새싹이 올라와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상수리는 ‘꿀밤’이라고도 하고 ‘도토리’라고도 한다. ‘꿀밤’은 어느 왕이 피란 중에 먹어보고 붙인 이름이고 ‘도토리’는 피란이 끝나고 궁궐로 돌아와 먹어보다가 ‘도루 토했다’는 데서 유래한단다. 도토리는 대체로 밤보다 작은 편이고 날 것으로 먹기는 부적합한 편이다. 그래서 밤은 삶거나 굽거나 아니면 날 것으로도 먹지만 도토리는 솥에서 삶아서 도토리 묵을 만들어 먹는다. 밤이나 도토리는 모두 모자라는 식량을 보탤 수 있는 구황식품(救荒食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초가을 알밤이 얼마나 맛있고 예쁘고 아름다운가! 일부러 시장에 가서 사오기라도 할 기분인데 정 박사는 땅에 떨어진 알밤 몇 개를 주워들자 산에다 심을 생각을 하였다니!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나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20여 년 전이던가. 나는 친구의 권유를 받아 알밤을 주우러 갔었다. 모처럼 소풍도 할 겸, 한 번 와서 자기 집 산에 있는 밤이나 주워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등산복차림으로 이(李)박사와 더불어 친구를 찾아갔던 것이다.
밤은 귀한 과일이다. 예로부터 대추와 배와 감과 함께 제사상에도 올라가지만 실지로 껍질을 까서 먹어보면 그 맛이 달콤하고도 부드럽고 향기롭다. 그래서 그것을 산에서 줍게 되면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가져오거나 아니면 산에서 껍질을 벗기고 맛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출생하여 자라난 곳은 청주국제공항의 북쪽에 있는 석화천(石火川)과 미호천(美湖川)이 흐르는 시골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형을 따라 동네 앞에 있는 안산(案山)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 도토리나무(참나무) 밑에 가서 그 언저리를 살펴보면 도토리가 저절로 떨어져서 풀 섶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얼른 주워서 망태기에 담고 또 풀 섶을 살펴보았다.
형은 커다란 도토리나무를 손으로 흔들기도 하고, 가지고 간 떡메로 뚜들기기도 하였다. 도토리는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두어 차례 떨어지면 더는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진 것을 하나씩 주워 담고 다른 나무로 가서 같은 방식으로 도토리를 털었다. 그러나 나무마다 모두 도토리가 털리는 것은 아니고 나무도 몇 그루 되지 않았다.
망태기가 조금이라도 무거워지면 대만족이었다. 어쩌다가 밤나무를 만나면 알밤도 몇 개 주을 수가 있었다. 나는 그때 도토리나무가 해마다 돌이나 떡메에 얻어맞아서 커다란 상처가 생긴 것을 보았다. 그 상처는 사람의 얼굴만 하고 아주 흉하게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침략자가 남긴 학정(虐政)의 그림자요 굶주린 백성들의 몸부림에서 나온 하나의 비극적 예술작품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8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땐 일제의 총칼 앞에서 농사지은 곡식은 거의 모두 공출(供出)로 바치고 먹을 것이 매우 부족하였다. 마을에는 떼거지들이 자주 나타나고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 보면 친구들은 꽁보리밥이나 감자밥이나 조밥이나 밀밥이나 도토리밥이나, 심지어는 아카시아꽃을 삶아서 싸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
나는 정 박사가 도토리와 밤을 주워서 산에다 심고 왔다는 글을 읽고 내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가 만일 산에서 밤이나 도토리를 발견하였다면 과연 어찌하였을까. 나는 그 신기한 보물을 집어서 얼른 주머니에 넣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은근히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바로 몇 년 전에 가까운 산에 갔다가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끼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범법(犯法)이라는 의식이 거의 없었다.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으로 서로서로 도토리를 주워 가는 것이었다. -도토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열매나 식물들이 함께 채취 당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토리를 함부로 주워가는 행위는 산림을 보호하기 위하여 엄연히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산림보호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고, 당국에서는 일반 국민들에게 산림보호나 동물보호에 대한 홍보를 실시하지도 않고 거의 방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 박사는 알밤을 주워서 무조건하고 산에다 묻고 도토리도 주워서 산에다 묻었다는 것이다. 알밤 몇 개쯤이야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그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나 정 박사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으로 그대로 실천한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정 박사를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분이 바로 우리 국민의 선각자요 지도자요 지성인이요 인격자요 군자가 아니겠나? 그는 나에게 평범하면서도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다. 스승은 멀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나의 곁에 있었다. 스승을 발견하는 것은 다시없는 행운이다.
(2020.09.27.)
■ 지교헌 수필가님의 귀한 옥고를 읽고
장천 윤승원 20.09.30
정구복 교수님의 <알밤> 옥고도 철학적 의미와 삶의 귀한 가르침이 담겨 있어 좋지만, 지교헌 수필가님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는 <알밤, 작품 해설>도 한 편의 명 수필입니다. 두 분 원로 학자님의 따뜻한 인연을 바라보면서 한없는 존경심이 생깁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문학지를 통해 지교헌 수필가님의 명 수필을 읽었는데, 최근에는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제하의 지교헌 수필가님의 명 수필을 읽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올사모 카페에도 옮겨 많은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 윤승원 감상 - |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지교헌
탄천변(炭川邊) 산책 길 옆에는 크고 작은 나무와 어른 키보다도 높이 자란 갈대와 억새가 끝없이 우거져 있는데 거기에는 너구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풀 섶에 숨어있는 너구리는 작은 편이었지만 사나운 모습이었다. 이때 어떤 사람이 하얀 애완견을 한 마리 끌고 다가 왔다. 주변에 서 있던 여인들은 소리쳤다.
“너구리가 있어요. 강아지 조심하세요!”
나는 여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였다. 사람이 여럿이 있고 주인이 끌고 가는데 감히 그 작은 너구리가 애완견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나는 다만 너구리의 행동이 궁금하기만 하여 지켜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젊은 여자가 하얀 애완견을 끌고 너구리 옆으로 다가오고 너구리는 뒷걸음을 치며 몸을 숨기는 듯하였다. 여인은 무사히 애완견을 끌고 너구리 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애완견이 약 15미터쯤 지나갔을 때 너구리는 잽싸게 달려가 애완견의 엉덩이를 무는 것이었다. 애완견은 비명을 지르고 주인은 깜짝 놀라 애완견을 끌어안았다. 너구리는 계속하여 다시 달려들 기세였으나 사람의 팔에 안긴 애완견에게는 뛰어오르지 못하였다. 바로 며칠 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언저리에 너구리 새끼가 네 마리나 있고 어미도 두 마리라는 것이었다. 어미는 먹이를 사냥하여 새끼들과 잔치를 벌일 작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판단이 너무나 현실과 어긋난 것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바로 앞에 서 있고 아직도 날이 어둡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람이 끌고 가는 애완견을 그 너구리가 감히 공격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너구리는 사냥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몸을 뒤로 숨겼다가 안심하고 지나가게 한 다음에 뒤에서 재빨리 달려들어 공격한 것이다. 공격을 받은 애완견은 틀림없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동물병원으로 갔을 것이다.
나는 생각하였다. 너구리에 물린 애완견은 국제무대에서 침략을 당하는 약소국(후진국: 저개발국)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하고. 침략을 받는 약소국은 어떤 강대국이 자기를 침략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거나, 알고 있더라도 대비가 소홀하였을 것이며, 때로는 어떤 강대국의 보호를 받으며 사대주의정책(事大主義政策)을 견지하다가 뜻밖의 적에게 공격을 받은 사례도 있을 것이다.
16세기 말엽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명(明)나라를 사대하여 많은 문화적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혜택을 받으면서 일본(日本; 倭)을 ‘섬나라오랑캐’라고 멸시하였다. 그러면서 많은 관료들은 사색당쟁과 부정부패를 일삼고 왜구의 침략을 예고하는 선각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배격하였다. 이때의 조선은 믿을만한 주인에게 보호를 받으며 의기가 양양한 애완견과 흡사한 처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믿고 섬기던 명(明)이라는 보호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너구리(?)에게 여지없이 꽁무니와 몸통을 물리고 말았다. 국왕은 국경선까지 몽진하고 백성은 코가 잘리고 귀가 잘리고 조총에 맞아 죽거나 날카로운 일본도(日本刀)에 목이 잘렸으며, 많은 백성이 사로잡혀 가고 문화재가 불타거나 약탈당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는 국가의 주권(主權)마저 송두리째 강탈당하고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륙민족과 해양도서족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왔다. 1636~37년에 있었던 병자호란에서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겨우 멸망을 면하였다. 어찌 그뿐인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남북이 분단된 후로는 이른 바 6.25사변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연출되어 3천리 근역은 피로 물들고 정전협정 후에도 군사적 충돌과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빈번한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일부의 통치자나 지도자들은 파렴치한 범죄자에서 위대한 영웅으로 둔갑하거나 커다란 실수가 궤변으로 합리화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오늘 너구리가 애완견을 공격한 사건은 여인들이 그 너구리의 공격성을 인지하고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지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따라서 애완견이 물린 책임은 제1차적으로는 주인에게 있겠지만 제2차적으로는 사전에 경고하던 여인네들의 말을 함부로 무시하고 가로막은 나에게 있는 것이었다. -나는 피해자에게 달려가서 보상이라도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나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면서 남의 생각을 물리친 것이 나의 커다란 오판이요 실책이요 독단이요 교만이요 만용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흔히 ‘실수’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실수란 ‘부주의로 잘못을 저지름’이라고 하는데 영어의 ‘mistake, error, blunder, wrong, failure’ 등과 같은 단어와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실수’라는 말에 대하여 용서될 수 있는 것, 대단치 않은 것, 누구나 저지르는 것으로 너그럽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실수도 있고 중대한 실수도 있으며 그 사소하거나 중대하다는 기준이 뚜렷한 것도 아니어서 쉽사리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마치 동기를 중시하는 ‘동기론’이나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론’처럼 어느 한 쪽에 치우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저질은 실수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아주 작은 실수도 무수히 많았지만 커다란 실수도 많았다. 그 중에는 나에게 유형무형의 피해를 준 것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허다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각계각층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지식층과 지도층 인사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그릇된 지식이나 이기심이나 배타심이나 편견이나 영웅심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위선과 허세와 과장과 기만과 궤변과 망언을 서슴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발전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오판이나 실수의 수준을 멀리 넘어서서 철면피와 범죄의 수준에서 날뛰고 있는 모습이다.
날이면 날마다 들려오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의 망언들은 내가 저지른 실수처럼 어리석기 그지없다. ‘너구리는 결코 애완견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처럼 말이다.
※ 소감
■ 낙암 정구복 2020.10.01 06:26
제가 가까이 모시고 있는 줄 알았던 지 교수님의 명 수필을 한 바퀴 돌아서 윤 선생을 통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넓으며, 무한한 공간을 가졌지만 인연의 고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천선생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지 교수님의 이 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장천 윤승원 2020.10.01 07:34
추석 명절에 정 박사님의 옥고 <알밤>과 지교헌 수필가님의 <너구리...> 옥고를 읽는 독자들은 그 의미가 각별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르신이 안 보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두 분 원로 학자님의 옥고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 시대 영혼이 맑은 어르신의 훌륭한 인품과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두 어르신의 귀한 옥고를 올사모 카페에서 읽을 수 있어 저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동촌 지교헌 2020.10.01 12:27
실은 윤승원 선생님께서 소개하신 졸고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는 제가 어디에 발표하였는지 까맣게 잊고 있는 형편이었는데 갑자기 우리 카페 <올바른 역사를 사모하는 모임>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변변치 못한 작품이지만 과분하게 칭찬해주시니 정말로 감당하기가 어렵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교육계에 복무하면서 때때로 아무거나 쓰고 싶은 충동에 이끌려 잡문을 쓰게 되고 그것을 출판하기에 이르러 출판사의 권고에 따라 <월간수필문학> 에 등단하는 과정이 필요하였다.
나는 바로 앞서 <창조문학>의 권고에 따라 등단한 형편이었다. 그후 <성남문학> <경기수필문학>, <월간문학> <국제 PEN한국본부경기지회> <한국공무원문학> <내수문학>등에 참여하게 되었고 <창작문예수필>에도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다. 대단히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의 잡문은 진정으로 글다운 글인지, 수필다운 수필인지 자문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염치를 무릅쓰고 여기저기 투고하면서 인연을 맺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의 魯迅은 의술을 집어던지고 문학을 택하였는데 그는 의사로 봉사하는 것보다는 문학으로 중국인들의 머리를 깨우치는 것이 더 큰 일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나의 잡문은 魯迅의 문학을 본받는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는 것이고 이른 바 문학정신이 의심스러운 잡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면서도 이따금 붓을 들고 쓰게 되어 나타난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칭찬을 듣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한 인연일 것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 나이는 먹고 건강은 좋지 않아서 보잘 것 없는 잡문이나마 쓸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졸고에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시는 윤승원 선생님과, 정구복 교수님과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의 여러 회원들 앞에 부끄러운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다. 너그러운 용서를 바라며 서로서로 허물없이 주고받고 소통하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 성남에서 지교헌(일명 池大庸)
■ 장천 윤승원 2020.10.01 17:58
지교헌 수필가님의 <너구리...>옥고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자기 성찰’입니다. 수필의 강점 요소 가운데, 교훈[배움]도 있고, 교육적 훈계[가르침]도 있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수사[修辭]도 있을 것이나, 독자에게 가장 설득력을 주는 것은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깔고 남에게 훈계하거나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일입니다. 수필은 1인칭 자기 이야기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촛불처럼 밝혀주기도 하고, 작지만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도 하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속성을 지닌 문학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이 수필이라고 하지요. 자기 수양과 지성이 바탕이 되지 않고 남에게 가르치려들면 독자가 외면해 버리는 것이 수필이기도 합니다.
수필계의 대가 어르신 앞에서 제가 이런 주제 넘는 언사를 감히 적는 것은 <너구리...> 옥고에서 받은 감동의 여운이 제 가슴 속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원숙한 경지에 이르신 문사의 수필 한 편이 혼자 보기 아까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수[학자]라는 ‘최고의 지성’으로 한평생 교육 현장에서 맑고 올곧은 영혼을 후학들에게 심어주신 지교헌 수필가님의 수필 작품과 고매하신 이력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으로도 만날 수 있고, 월간 <수필문학>지에서도 뵌 적이 있습니다.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한 채, 문단경력 30여년이 쌓이다보니, 훌륭하신 문사의 명 수필 식별 안(眼)은 조금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저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낙암 정구복 2020.10.2. 09:50
동촌 선생과 장천 선생이 이 카페에서 만나니 수필문학론에서부터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수필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지만 수필은 문학이면서도 예술적 성향을 가진 글이 아닌가 합니다. 예술이기에 그 작품은 길이 생명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분의 좋은 수필은 연못에 뜬 연꽃과 같아 이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우리들 이웃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여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런 훌륭하신 두 분의 만남이 올사모 카페에서 만나게 된 것을 거듭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에서 작가의 소개의 글에서 제가 일방적으로 간략하게 소개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올사모 카페지기 올림
■ 동촌 지교헌 2020.10.2. 11:23
낙암 정구복 교수님과 장천 윤승원 선생님의 격려는 나에게 과분한 것이지만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변변치 못한 글이나마 이따금 보내드리고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글쓰기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똑 같은 主題나 題材라도 열 사람이 쓰면 열 사람이 모두 서로 다르게 쓸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가운데서도 서로 같은 것이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오며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2020.10.02 성남에서 지교헌
■ 장천 윤승원 2020.10.2. 14:38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제목의 수필은 글의 제재나 구성도 좋지만 ‘제목’에서 성공한 수필로 봅니다. 제목이 길어서 좋다, 그렇지 않다는 판단은 논외로 하고, 이 작품에서 제목은 작품을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신비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든지 제목을 잘 달면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완벽한 성공’입니다.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시각은 보편적인 작가의 상식이면서 독자의 평범한 지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공격한다.’는 반전! 그것이 작가의 ‘실수’와 ‘자성’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독자의 상식까지도 뒤집어 버리는 겁니다.
독자는 언제나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합니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 흥미 찾기에 골몰합니다. 새로운 지식과 흥미는 이 작품에서 신비감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몸집 작은 너구리 한 마리가 ‘병자호란’과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까지 등장시킵니다.
단순히 <너구리>라고 제목을 달았으면 어땠을까요? 저의 상상으로는 100명의 독자가 있다고 가정하면 절반인 50명 정도만 읽었을 것입니다. <너구리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흥미롭고 신비로운 제목으로 인하여 100명의 독자가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독자의 지적 호기심은 충족되었습니다.
- [윤승원 감상 記]
첫댓글 ※ 대전수필문학회 카페 댓글을 소개합니다.[10.3일 오전 7시 현재까지]
■ 이득주(수필가, 대전수필문학회 사무국장) 20.10.02 17:56
수준 높은 수필 두 편을 소개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저에 모자람을 채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답} 윤승원 20.10.02 18:08
팔순, 구순 연세를 바라보시는 노학자님들의 깊은 인생 연륜이 느껴지는 귀한 옥고이기에 소개했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가기천(수필가, 전 서산시부시장) 20.10.03. 06:00
두 분 학자님의 차원 높은 글이 저에게는 벅찰 만큼 좋고,
세 분이 나누는 글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낍니다.
옛 선비들의 품격을 보는 듯합니다.
읽고 생각하기에 좋은 계절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답} 윤승원 20.10.03. 07:10
수필의 맛과 멋과 진정한 의미를 아시는 가기천 선생님의 품격 있는 댓글은 보석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두 분 노학자님의 고매한 인품이 느껴지는 수필 2편은 우리 대전수필문학회 카페에 소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옮겼습니다만 가기천 선생님의 호평과 찬사를 듣고 보니, 옥고를 옮긴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어설픈 저의 글(알밤)을 띄워주셔서 부끄럽습니다. 이런 수고로움을 해주신 장천선생, 그리고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동촌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점은
반면교사로 삼아 주셨으면 합니다. 대전수필문학회 카페에 올려진 영광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나누어져 있는 글을 한데 모아 정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다소 길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으면 원로 학자의 내면 세계인 수필을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시 대전수필문학 카페 회원님들이 반겨주시니 힘은 들었지만 글을 정리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글 자료는 한번 스쳐 지나가는 일회용 글이 아니라 이 시대 귀한 역사로 남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대전수필문학회 카페 댓글[추가] - 2020.10.03. 13:10현재
■ 강표성(수필가, 대전여성문학회장) 20.10.03. 11:46
좋은 수필을 감상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변에 이리 좋은 작품이 많은데 몰라서 읽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덕분에 관록 있는 낙암 선생님과 겸손한 지교헌 수필가님까지 알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답]윤승원 10.03. 13:01
글도 그렇고, 자연의 열매도 그렇고, 익은 것이 있고, 덜 익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수필을 공부하기 전에 훌륭한 인품의 학자 분들의 평소 생활 태도와 자세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무르익은 연륜을 학계 저명 석학 어르신들의 옥고를 통해 느낍니다. 강 선생님도 함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