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도 멋진 한 폭의 그림

[남상선]

                          화려하고도 멋진 한 폭의 그림

                                솔향 남상선/수필가

   나는 2011년 2월 28일 유성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교직 생활 마지막 담임이었던 내 반 반장 최재용의 자당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여사님은 나한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분이시며 기억에 남아 있는 훌륭한 분이시다.

   내가 2008년 12월 8일 TJB방송국에서 TJB 교육대상을 받을 때 오셔서 축하도 해주셨다. 그때 진행자가 건네주는 마이크에 내가 수상 소감을 말했을 때 그걸 듣는 방송국 안의 시청자들이 모두 훌쩍거렸는데, 여사님도 함께 눈시울을 적시다 가신 분이셨다. 게다가 2009년 아내의 소천으로 내가 힘들어하고 고분지통(叩盆之痛)의 슬픔에 빠져 있었을 때, 큰 위로까지 주고 가신 여사님이셨다.

이렇듯 잊을 수 없는 분이시기에 지금껏 매일같이 카톡 자료도 보내드리고 있다.

   전화 내용은 희소식이었다. 재용 군이 7월 16일 PM 6시 30분에 서울 강남 소재

‛라움’ 예식장에서 결혼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남녀 간의 인연을 맺어주는 신화적인 인물에 '월하빙인(月下氷人)'이란 말이 있다. 남녀 간 인연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사람이니 중매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제자 부부 한 쌍이 서로 어울리는 훌륭한 의대생들이었기에 그냥 둘 수가 없어 월하빙인까지 동원하여 맺어준 천정배필이 되았다 생각한다.

   신랑 재용 군은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였다. 게다가 그 자당님까지 잊지 못할 특별한 분이어서 열 일 제쳐 놓고 결혼예식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여사님께서 보내주신 모바일 청첩장과 안내 문자가 왔다. 세이 백화점 주차장 입구 근처에 관광버스 ‘스마트 투어’가 대기하고 있을 테니 PM 2시에 출발하는 그 차를 승차하라는 말씀이었다.

    장마철 날씨에 예서제서 물난리 소식이 방송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가 걱정돼서 스포츠용 미니 가방에 우산을 하나를 챙겨 넣었다.

PM 2시 출발 예식장행 ‘스마트 투어 버스’를 타려고 정각 1시에 집을 나섰다.

거서 보니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이 바로 나였다.

   신링 신부, 양가 부모님들이 얼마나 잘 사셨던지 내리던 비까지 멈추었다. 올 적 갈 적 하늘이 새었더라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녔을 텐데 천우신조가 따로 없었다. 마냥 감사했다. ‘역경’에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어쩌면 결혼하는 신랑 신부 양가 부모님을 일컫는 말 같기도 했다. 선하게 사신 분들이셨기에 날씨도 도와주는 것 같아서였다.

   사회자가 결혼식 개회 선언을 했다. 사회자가 먼저 주례를 소개했다. 이어 우레 소리 같은 박수세례를 받으며 신랑 부모님이 입장을 하셨고 이어서 신부 부모님이 뒤를 따르셨다. 중후하면서도 원숙미가 묻어나는 양가 부모님의 입장 모습이 존경스럽고 부러워 보였다. 고개까지 숙여졌다.

   이어 주인공인 신랑이 입장을 했다. 긴장을 한 거 같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전날 전화로 긴장을 풀어주는 얘기를 해준 것이 약효가 나타난 것 같았다.

전화 내용은 이렇다. <결혼식 날은 신랑 신부가 실수를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해 주었다. <다른 때 실수는 좋은 게 아니지만 결혼식 날 예식장에서의 실수는 많을수록 좋고 어떤 실수도 흠될 게 없다.>고 말해 주었다. <실수가 많을수록 많이 웃게 되어 예식장 분위기가 밝게 된다.>고 하여 긴장을 풀어주었다.

   결혼식 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가 입장을 했다. 신부는 좋아서 입고리가 귀에 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 화장을 한 미인이 결혼 드레스를 입었으니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미인’을 비유한 말에 ‘해어화(解語花)’란 말이 있다. 이는 ‘말을 알아듣는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일컫는다. 어쩌면 결혼하는 신부를 일컫는 말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몸매에 화장한 예쁜 얼굴, 거기에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 천사 같은 자태, 마냥 좋아 입 고리를 귀에 걸고 다니는 모습은 아름답기가 꽃이 아닐 수 없었다. 아름다운 꽃이 말까지 하고 있으니 정녕 신부는 ‘해어화’라 해도 흠 될 게 없지 않겠는가!

    사회적 지위도 있고 덕망 높은 주례가 성혼 선언을 했다. 이어 주례사로 신랑 신부에게 인생선배로서 당부하는 얘기를 했다. 여러 덕담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한 마디는 영국의 성직자 토마스플러의 명언이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고 살아야 하지만 결혼 후에는 상대방의 단점에 한 쪽 눈을 감고 살아야 한다는 당부였다. 그래야 가정평화가 유지된다는 일깨움이었다.

    뒤를 이어 신랑 신부 친구들의 축가가 있었다. 노래로 축하하고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는 그 마음이 가상했다. 멋지고 믿음직한 친구들임에 틀림없었다.

    양가 부모님께 신랑 신부가 드리는 인사가 있었다. 아들딸이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부모님께 드리는 인사, 감개무량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부모님이 인사로 절을 받고 답례로 아들 딸 며느리 사위를 포옹으로 안아주는, 행복하게 잘 살라는, 무언의 사랑을 나누는, 그 시간은 봐도봐도 아름다운 화폭이 아닐 수 없었다.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팡파르 행진곡에 맞추어 두 손 잡고 걷는 신랑 신부의 모습!

보고 또 바라봐도 천정배필임에 틀림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하객들이 많이도 오셨다. 원거리 예식장에 장맛비까지 많이 내려 하객이 얼마 없으리라 예상했는데 빗나간 기우였다. 예식 홀 좌석이 다 채워지고 그것도 모자라 서 있는 하객들이 상당수였다.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간유대관계를 알아보려면 애경사 때 보면 알게 된다고 했다. 당사자 유사시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참석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자 결혼식에는 지적인 분들이며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신랑 신부 양가 부모님들이 훌륭하게 사신 분들이어서 좋은 분들로 성황을 이룬 것 같았다. 유유상종 초록동색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피로연 장소에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각처에서 모여든 하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신랑 신부가 예식 마치고 인사하러 왔다. 자신들 축하를 위해 찾아오신 하객들을 찾아 일일이 테이블마다 인사를 다니는 거였다. 역시 훌륭하신 부모님 자녀들이라 교화를 주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양가 부모님들이 희색만면한 얼굴로 당신들을 찾아오신 하객 테이블마다 감사하다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진풍경이었다.

   7월 16일의 제자 결혼식!

화려하고도 멋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제15대달라이라마]

퇴직 후에도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제자분들이 많아 작가님 인생이 참으로 풍요로울 듯 합니다.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는 제자를 보시며 더없이 흐뭇하셨을 것 같습니다. :)

[서용선]

시집을 안 가겠다고 하는 딸을 둔 부모 이고보니 부럽기만한 글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