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복원력의 회복
2023.4.23.
찰리 채플린은 자신 만든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톱니바퀴에 따라 도는 자기 모습을 보여 준다. 그가 희화화한 현대의 공장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현대인의 꿈이 실현되는 장소였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처럼 작업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어 분석해 가장 경제적인 동작을 작업에 적용할 만큼 생산성과 효율성의 향상은 기업 경쟁력과 수익성의 밑거름이었다. 그러기에 현대 사회는 사람의 인격보다 효율과 생산성이 중요했다. 사람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의 노동은 그저 공장 운영의 한 부분이요, 사람은 거대한 생산 기계의 한 부품일 뿐이었다. 삶의 주체로서 자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계획하고 보람을 느끼기는 힘든 환경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노동이 본인의 뜻과 계획과 유리되었기에 노동은 의미 없고, 하기 싫어도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활동이었다.
이런 불만족스러운 노동에 대한 대리 만족을 위해 그리고, 대량 생산으로 급증하는 물품을 팔아 경제를 계속 성장시키기 위해 소비를 조장하는 경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의 끝없는 효율과 생산성, 팽창(성장)과 소비의 추구가 현재 인류가 직면한 환경과 생태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왜 현대 인류는 이런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을까? Jeremy Lifikin은 “The Age of Resilience: Reimagining Existence on a Rewilding Earth”에서 인류가 열역학 2 법칙을 무시하고 뉴턴과 같은 단순한 세계관 속에 세계를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흡수된 이산화탄소의 양에서 호흡으로 잃은 이산화탄소를 뺀 값이 순 근본 생산(net primary production)으로 이것이 지구의 모든 부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이는 지구 생명체가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여 지구에 추가한 에너지이다. 그런데, 2050년이면 이 근본 생산 자원의 44%를 인류가 혼자 쓴다고 한다. 이 정도면 생태계 전체가 생산한 부의 원천을 사람 혼자 독점 사용하는 셈이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현대 인류는 산업 혁명으로부터 200여 년 만에 숲과 들, 물에서 얻는 재생 가능한 자원을 넘어 지구가 수억 년에 걸쳐 쌓아 놓은 화석 연료, 수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표토, 대수층을 고갈시키고 있다. 제약 없는 지속적 성장이란 병에 걸린 인류는 신용 대출과 신용 카드라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런 미래를 저당 잡히는 생활 방식에 현대인은 너무나 익숙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지속 가능할 수는 없다. 지구는 인류라는 한 특이한 생명 집단이 지금 영위하고 있는 생존에 필요한 이상의 과도한 소비와 생활 방식은 물론 급격하게 늘어난 그들의 수도 감당할 수 없다.
계속해서 수입보다 많이 지출하면 그 경제 주체는 가계이던, 기업이던, 아니면 정부이건 결국 파산하고 만다. 이런 경제의 원리가 자연계, 생태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개개인이 자기의 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듯이 인류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활동을, 소비를 스스로 제약하고 다른 생명을 위한 공간과 자원을 배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굳이 다른 생명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당장 미래 세대의 삶이 위태롭다. 기술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던 지난 2백여 년의 성장과 효율, 생산성의 추구는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하는 자연 복원력의 회복을 지향하는 미래는 결국 성장과 소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사고에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지구라는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이 지속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생산성과 효율 만능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근본적 변경을 요구한다. 재생 속도보다 빨리 천연자원, 에너지, 표토, 대수층을 고갈시키고, 자연의 정화 능력을 넘어서 생명의 토대인 대기와 수질, 토질을 오염시키는 문명은 지속될 수 없다.
이런 근본적 변화는 지구 전체, 모든 사회, 국가에서 일어나야 한다. 한 사회, 한 국가의 힘이나 영역 안에서 지구의 자연 복원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지혜와 힘을 합쳐야 하는데 세계는 여전히 우리 사회, 우리나라라는 작은 우리의 틀에 갇혀 있다. 지역주의, 민족주의, 자국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생태계 전체가 지속 가능한 길을 찾아 실천해야 하는데, 자기 지역 사회와 자기 나라만의 단기적 이익, 성장과 소득 증가를 정책 목표로 내세우는 근시안적 지도자, 자리를 유지하는 데만 몰두하는 이들이 사회를 이끌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자발적으로 지구의 자연 복원력을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일반인들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 분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할 터이니.
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려요. 자연은 우리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자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요.
김영선 선생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은 유일한 우리의 생존의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