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팔찌 / 김인숙 (2024.10.)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하다. 살펴야 할 부분이 많다. 여름철엔 옥상 배관 상태, 방수, 냉방까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실내외 환경을 점검하고 일정의 가중치를 메모한다. 번호를 매겨가며 꼼꼼히 순서를 정한다. 이러다 보면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밝고 경쾌한 목소리의 인사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아침을 연다. 얼른 눈에 띄는 손목에 걸려있는 두 개의 팔찌가 몇 년 전 기억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삼 년 전 어느 날 아침, "아야!"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당직 교사의 눈이 동 그래졌다.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끓여놓은 보리차를 보온병에 옮기려다 끓는 물이 손목을 덮쳤다. 순식간에 손목과 팔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선생님, 팔찌부터 좀 빼 주시겠어요?" 도움을 청한 뒤, 응급처치 방법을 잊은 채, 바로 수돗물에 팔을 맡겼다. 화상 부위의 열을 빼내는 것은 차가운 물에 팔을 담가 열을 빼는 것이 기본인 것을 까맣게 잊고 흐르는 수돗물에 의지했다. 환부는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고, 군데군데 물집이 생겼다.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쓰리고, 아팠다. 손목에는 열기 묻은 팔찌의 형상이 훈장처럼 찍혔다.
순간의 부주의로 빚어진 일이기에 직원들 보기에 민망했다. 아프지 않은 체했지만, 덧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교직원들은 응급실 가기를 권유했다. '바로 낫겠지.' 애써 호기를 부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부는 커지고, 물집도 번졌다. 심재성 2도 화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미련스레 버텼다. 병원에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교사 한 명이 자리를 비운 터라 어린이집을 비우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직원의 성화에 더는 버틸 수 없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이른 시간이라 응급실 진료만 가능했다. 자초지종 설명하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방문한 병원의 특성상 의술의 한계로 화상 전문병원에 치료받기를 권했다. ‘이 나이에 흉터쯤이야 어때.’ 되뇌며 의사 말씀을 무시해 버렸다. 호전될 줄 알았던 화상 부위의 통증 강도가 점차 높아졌다. 환부가 덧나면서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진물이 그치질 않았다. 먹는 약은 독해 어질어질했다. 속은 매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삼 일째 되던 날이다.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더럭 겁이 났다. 보다 못한 선생님 한 분이 거울 쪽으로 나를 이끈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이 거울 속에 있지 않은가. '더는 미적거려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화상 전문병원을 찾았다.
“왜 이렇게 늑장을 부렸느냐?”, “그렇게 우둔하냐.” 힐난조 질책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수술 절차를 밟으란다. 하는 수 없이 중간 관리자에게 꼼꼼하게 업무 지시를 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장기간 비워야 할 직장 업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수술 후 흉터는 안 남을지…. 온갖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마른침을 연방 삼키는 사이에 전신마취 주삿바늘이 나의 몸을 꾹 질렀다.
"선생님 정신 드세요."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내가 잠든 사이에 수술이 진행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수술 후유증은 만만찮았다. 만사가 귀찮았다. 그러나 어쩌랴. 극복해야 하는 것을. 식욕이 없었지만, 열심히 챙겨 먹었다. 좋다는 연고도 수시로 발랐다. 산소, 고압 치료, 영양제 등 좋다는 건 죄다 했다. 예상외로 차도가 빨랐다. '이 나이에 흉터쯤이야.'라는 생각이 바로 어저께였는데…. 아이러니의 극치다.
나의 손목은 소중한 선물 두 개를 걸게 되었다. 학위를 받았을 때 시아버님이 마련해 주신 것과 화상이 손목에 찍어준 팔찌다. 시아버님의 내린 팔찌는 사랑의 징표이며, 화상火傷이 가져다준 팔찌는 삶의 교훈을 담고 있다.
"손목에 팔찌가 두 개네요. 화상 팔찌도 이쁜데요. " 주치의 선생님의 익살이 밉지 않다. 두 개의 팔찌를 들여다보며 삼 년 전 아찔했던 기억을 더듬는다.
첫댓글 김인숙 선생님, 두 개의 팔찌가 글로 탄생했군요. 모두 의미가 깊습니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대구지부 김인숙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필과비평작가회의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