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사건으로 인해서 대략 100만명 전후 정도 죽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모두 민간인들이었고 이들은 공산주의나 좌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이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불러 온 비극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당시 남북한 인구 3천만명.. 남한이 2천만명이라고 본다면 지금은 5천만.. 지금으로 치면 약 250만명에 해당합니다.
엊그제까지 알고 지내던 이웃을 내 손으로 학살합니다. 제정신들이었을까요?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도 학살을 하는 사람들도 거의 미친 상태였을 것입니다.
보도연맹원들을 공산주의자라거나 혹은 좌익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이제 막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라서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도 드물었고 좌익이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보리쌀 한됫박 준다더라.. 고무신짝 한켤레 준다더라 라는 식으로 꼬셔서 보도연맹에 가입시켜 놓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이 북한군을 도울 수도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져서 무차별적으로 살륙했습니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어떻게 해서 중단되었는 줄 압니까? 당시 한국 6.25 전쟁에 종군기자로 와 있던 미국인 기자가 전선 후방에서 벌어지는 학살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백악관에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를 받고 트루먼이 이승만에게 당장 학살을 중지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협박, 중단된 것입니다.
6.25전쟁이 벌어지기 전 이승만은 주구리장창 북진통일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짐작이지만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전쟁만 하면 남쪽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주장했을 겁니다. 지금의 상황과 아주 유사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러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자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려 버리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동포를 학살했던 것입니다.
정보에도 어둡고.. 현상파악도 하지 못했으며, 전술도 없고, 계획도 없이 무조건 북진통일만 주장했던 이승만.. 막상 전쟁 터지자 곧 바로 대전으로 도망가서는 라디오로 "우리 국군이 잘 싸우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라" 고 방송하고는 서울 시민들 피난가지 못하게 한강 다리 폭파.. 이게 이승만의 실체입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를 국부로 떠 받드는 자들이 지들의 국부가 했던 한 없이 어리석으면서도 잔인한 짓을 또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하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한발, 한발 전쟁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전혀.. 며칠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헬렐레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아마도 대규모 집단자살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겠지만 언론을 통해서 그리고 각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전쟁을 통해서 대규모 집단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 눈이 이상해져 버린 것일까요? 차라리 제 눈이 이상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한국은 전혀.. 조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승리 하고 있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바보 얼간이입니다.
군경에 의한 경북 문경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현장인 문경군(현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야산(애까매 고개). 사진 속 신청인은 애까매 고개로 불리던 곳을 희생 현장 중 한 곳으로 지목하였다. 이 사건 당시 현장까지 연결된 차도가 없어 인근까지 트럭으로 싣고 간 뒤에 희생자들을 내리게 한 뒤 현장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제공
한국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 등으로 경찰에 예비검속되어 인근 야산과 고개에서 집단살해된 경북 문경 지역 민간인 학살 피해자 62명이 74년 만에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받았다...중략
수행자에게 후원하기 계좌 번호 : 농협 : 302 3171 9116 61 예금주 : 이선명, 후원과 상관 없이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 상담해 드립니다. 전화하실 분은 문자 먼저 주셔요. e-mail : persona6219@hanmail.net T. 010 5042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