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전날의 산행이 긴 데다 잠이 너무 늦게 들었다.
바보가 밥을 차려 놓고 출근한 후에도 계속 침대에 누워 있다.
게으름을 피우다 늦은 아점을 먹고 또 논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다.
할 일이 많은데 걱정해 봐야 해결되지 않는다고 회복을 겸해 범재등으로 올라간다.
하는 일 없이 프랑카드로 덮어놓은 나무만 보고 호계를 지난다.
정우아재 집앞에서 건너 시누대 터널을 지나 서산정으로 간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엊그제 내려온 봉두산 임도를 잡아간다.
가파른 길 우에 트럭이 서 있고 윗쪽에서 포크레인이 소릴 내며 일하고 있다.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돌아선다.
큰고개 끝에 오른쪽으로 보니 임도가 이어진다.
경운기 다닌 흔적도 보여 들어가니 묘지들이 많다.
오른쪽 봉우리 쪽으로 가 보니 마서 종손인 광수조상들의 묘다.
그의 할아버지 묘까지 능선에 죽 이어져 잇다.
돌아와 오른쪽 임도로 들어가니 여산송씨들의 묘가 여럿이다.
죽헌 송계문의 묘지까지 본다.
호계에 죽헌독서비는 이 분이 글을 읽었던 곳일까?
비석을 차분히 읽지 못하고 앞면과 글을 짓고 쓴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게 사진만 찍는다.
짐작만 하고 옛 고구마 농사를 짓던 고개 끝의 모습을 잃어버린 밭에서 내려온다.
건너에 샘이 있었고 두어채의 집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없을 정도로 우거져 있다.
그래도 논밭의 흔적은 보인다.
거친 임도에 그래도 성묘인지 시제인지 다닌 흔적이 봉니다.
내려오다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니 또 새로운 무덤과 비석이 나탄나다.
정성들이 대단하다.
고개로 건너가는 묘지들도 여산송씨 무덤들이고 아버지가 가끔 드나들던
제공에 살았던 송채만씨의 묘지도 보인다. 족질 재열이 짓고 수봉이 썼다는데
규철이와 선옥이 아버지인 듯하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분의 아들이 서울 주변 어디에선가 안경점을 하는데
날 심부름꾼으로 보내기로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 내가 서울로 갔더라면 나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이제 봉두산을 가는 길을 제석사에서 오르면 될 것 같은데 관일 스님을 뵙기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