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어느 날 고요로의 초대장을 받았다고 하자. 고요가 사는 집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돌벽은 담쟁이넝쿨로 덮여 있다. 우리는 문 앞에서 인기척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거기 사는 적막이 옷매무새라도 만지고 우리를 마중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요는 옛날이다. 옛날 속의 스러짐이다. 고요가 지나간 자리는 황폐하다. 그 폐허 속에서 달빛과 모기와 먼지들이 소찬을 벌이기도 한다. 고요에 초대받는다면, 우리는 무거운 머리와 헐벗은 두 손은 고요에 맡겨도 좋으리라.
소음은 문명과 인위의 산물이지만, 고요는 자연의 선물이다. 소음은 악몽을 낳고 고요는 평화로운 마음을 낳는다. 소음 공장지대인 도시에 견줄 때 산골은 바위와 나무들의 은둔지이고 물소리 바람소리의 서식지이다. 문태준은 고요를 “족제비가 뒤를 돌아가는 소리도 들릴 만하게 조용하고 무섭고”(〈추운 옆 생각〉)라고 구체적 실감을 부여하지만, 조정권은 단지 고요의 서식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은 고요가 깃들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그 고요의 서식지에는 오랫동안 쓰지 않은 벽난로, 장작들, 흔들의자, 부엌과 찬장, 그릇들… 따위가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대신에 이 공간에는 달빛과 모기와 먼지들이 가끔씩 고요의 소찬을 벌인다. 어느 날 시의 화자는 이 고요로의 초대를 받는다. 이 초대를 받아 “문간에 서 있는 나”를 “하인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간 건 다름 아닌 바로 ‘나’다. ‘나’는 고요의 서식지에 초대된 주인공이고, 동시에 초대의 주체다. 내가 고요의 객체이며 동시에 주체라는 암시다.
고요는 욕망을 비운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마음이 번잡하고 욕심으로 차 있으면 고요는 들어서지 못한다. 욕망을 비운 마음자리에 그윽하게 서리는 게 바로 고요다. 고요는 감흥도, 파토스도 아니다. 고요는 사물들 사이의 평화고 질서고 리듬이다. 다른 한편으로 고요는 혼란의 살해이고 무질서의 파괴이며 견고한 강령들의 해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삶에의 의지가 아니라 고요에의 의지로 더 고결해질 수 있다. 아무래도 고요와 고집은 친족이거나 이웃사촌이다. “고통과 대화를 하고 / 오랜 시간을 나눠도 / 고집을 꺾지 못했다 // 고집은 혼자 사신다. // 거식(拒食)하고 계신다. // 아무래도 나는 저 지독한 고집을 / 노인네처럼 강가에 혼자 버려두고 온 것 같다”(〈장벽〉). 고요가 그렇듯 고집도 떠들썩한 것 보다는 독거(獨居) 취향이 짙다. 고요가 스스로 욕망을 비움으로써 고요에 닿듯 고집 역시 거식으로써 제 안을 비운다. 비우고 혼자 꿋꿋하게 서려는 고요와 고집의 이 독거 본성은 꺾기 힘들다. 고요해진 뒤에 비로소 보게 되고, 보게 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 바라봄은 고요의 촉수들이 이 세계를 향해 내미는 수줍은 초대장이다. 사랑은 시끄러움이 아니라 마음의 고요 속에서 싹튼다. 차라리 사랑은 고요가 일으키는 시끄러운 사건이다.
대개 정치는 시끄럽다. 고요가 단순함에서 발현된다면 정치는 복잡함의 소산이다. 아울러 정치는 맞섬이고 다툼이고 물어뜯음이다. 노자는 “맑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바름이다”(《도덕경》 제45장)라고 했다. 정치가 있는 곳이 늘 시끄러운 것은 정치가 애초부터 바름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바름이 없는 곳에 다툼이 잦고, 다툼이 잦은 곳에서는 욕망과 분노와 교만이 활개를 친다. 노자는 가장 좋은 정치는 그런 것이 있는 줄조차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태평한 시대에는 군주의 존재 자체를 잊고 산다. 무위이치(無爲而治), 즉 무위의 정치를 펴기 때문이다. 무위의 정치는 비가 내려 마른 땅을 적시고, 햇빛이 내려 식물에 골고루 자양분을 주듯 한다. 그것은 늘 있으면서 없는 듯하다. 이게 바른 정치다. 정치에 바름이 없으니까 세상이 시끄럽다. 차라리 정치란 고요에서 달아나기고, 고요의 집어삼킴이기 때문이다.
고요는 내적 혁명의 단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고요가 내면의 동력학에서 나오는 능동 가치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 가만히 있는 자에게 고요는 다가오지 않는다. 고요는 능동의 산물이다. 고요한 자가 가장 혁명적이다. “고요 속에서 우리는 부단히 묻고 절망 속에 꿈꾸면서 변모되어간다. 꿈꾸는 자의 집은 고요이고, 그가 움직이는 방식은 성찰이다. 홀로 있는 고요함이 존재의 결핍을, 현존의 누락을 살펴 묻게 하는 것이다. 충일에 대한 자족이 아니라 결핍에 대한 이 절망적인 물음으로 하여 고요는 꿈꾸는 자의 실천적 에너지로 빛난다. 결핍에 대한 고요 속의 물음이 충일한 존재의 빛을, 그 빛에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고요 속에서 묻는 한, 존재는 언젠가는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삶 전체의 충일적 질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문광훈, 《숨은 조화》) 고요는 마음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제 존재를 파릇하게 드러내며 빛난다. 고요는 마음의 가능성을 열고, 실천의 계시(啓示)로 나아가며, 아직 아무것도 아님을 됨으로 갱신의 눈부심에 이르게 한다.
고요는 욕심의 비움, 혹은 가난의 산물이기도 하다. 가난은 가진 것들이 적고 소박한 살림에 바탕을 둔다. 그런 까닭에 가난은 필연적으로 욕망을 줄이고 정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2006년 3월 / 파리 남동쪽 70킬로미터 / 시골 마을 바르비종 / 쇠스랑을 든 채 / 저물어가는 들녘을 배경으로 부부가 / 흙 속에 누워 있는 나를 /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 이 가난은 종교적 상태의 고요를 준다. / 하루 일과를 일생처럼 아직 마치지 못한 내게.”(〈가난함〉) 가난은 가장 숭고한 형식의 고요를 불러온다. 시인은 그것을 “종교적 상태의 고요”라고 명명한다. 고요의 시공에로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고요에 빙의된다. 언젠가 자작나무 숲에 들어간 적이 있다. 나는 거기에 깃들어 있는 고요의 청정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때 고요는 진리고 청정함이고 마음의 본원이다. 얕은 계곡의 돌 틈을 흐르는 물과 나무들 사이를 불어가는 바람은 이곳이 고요의 요람지라는 걸 말해준다. 고요는 소리의 부재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소리와 자아 사이에 평화와 조화를 느끼게 하는 매개물이다. 시인은 빈 것에서 성스러움을 본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저 포장지가 성체(聖體) 아닌가. / 저 빈 바구니가 성소(聖所)가 아닌가.”(〈꽃을 전해주는 스무 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 고요는 비어 있는 것이기에 성스럽다. 〈고요로의 초대〉는 고요의 파릇함을 엿보게 하고, 고요가 존재를 정화시키는 성소(聖所)라는 걸 일깨워준다. 아울러 고요로의 초대가 잃어버린 ‘나’를 찾고 본원의 ‘나’에게로 인도하는 초대라는 사실도.
조정권(1949~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남대문로에서 금은방을 하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문재는 양정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나타난다. 1970년에 박목월의 추천을 받아 시인 전봉건이 주재하던 <현대시학>으로 등단한다.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를 나와 김수근이 발행인으로 있던 <공간>지의 편집장을 지냈다. 그 시절은 당대 예술가들과의 잦은 교류로 그의 예술적 취향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 / 신 없는 성당. / 외로움의 성전.”(〈은둔지〉)이라고 믿고, 더 나아가 “시인은 1인 교주이자 / 그 자신이 1인 신도.”(〈은둔지〉)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는 시라는 종교의 교주이자 단 하나인 신도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과묵 속에 은둔한다. 과묵과 은둔은 시의 배양지이기도 하다. 그는 중세 음악을 즐기고, 단순하고 명징한 시 세계를 추구한다. 그의 시에 두드러지는 여유와 달관은 한때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 철학에 경도한 흔적이다.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떠도는 몸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