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정기를 받은곳이 여러곳 있겠지만 경남산청도 그 중에 한곳 일것이다. 날씨 좋은 주말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 보기 위하여 친구들과 함께 잠시 들린곳이 가야의 마지막 왕의 무덤이라는 구형왕릉을 찾았다.
입구 간판에서부터 전(傳)구형왕릉이라며 전(傳)자를 붙여 쓰고 있다. 전(傳)자를 왜 썼을까 싶다. 우리나라 역사의 많은 부분이 전(傳)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꼭 아니라고 증명된 것도 아닌데 .... 하는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돌탑 무덤이 잘 만들어져 있고 신비롭기도 하였다. 지리산 골자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건너면 홍살문이 서있고,
그 홍살문 우측에는 구형왕의 손자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지리산 자락을 돌며 훈련을 했다는 사대비가 세워져 있으며 좌측엔 비각이 세워져있다
왕릉을 빙둘러 쌓은 돌이 제주도 돌담을 연상시킨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이라고 새긴 석비가 있고 비석 좌대에는 연꽃.연잎이 새겨져 있고 좌우 양쪽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문무인석(文武人石), 돌짐승, 상석(床石), 장명등(長明燈) 등도 배치되어 있으나 근래에 만들어진 느낌이다.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구형왕릉 ,저 능 위로는 나무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새도 능 위에서는 똥을 누지 않는다는 그러고보니 돌무더기위에 나뭇잎이나 새똥은 보이지 않았다.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것 처럼 신비롭기도 하였다
주차장 맡은 편에는 구형왕의 손자 김유신이 용화향도를 이끌고 지리산 자락을 돌며 훈련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활을 쏘며 연습을 했다는 사대비가 세워져 있다.
산을 다 내려간 입구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시는 덕양전(德讓殿)이 있다. 덕양전 경내에는 홍살문, 영정각, 안향각, 정숙당, 추모재 등의 건축물과 연못이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제향(祭香)이 올려지고 있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371에 있는 덕양전은 양왕(仇衡)과 왕비(桂化)양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향례와 삭망향화를 드리는 덕양전이다.
그 유래는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 19년(가락기원 492년)나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王山) 수정궁(水晶宮)으로 들어온 5년후 돌아가셨다.
그후 향화를 계속하다가 전화로 중단되었다가 서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서기 1898년 숭선전(김해수로왕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여 서기 1930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어 1991년 문화재 정화사업에 의하여 중건된 곳이다
구형왕의 릉인지 아니면 그를 기리기 위한 탑인지 아니면 그냥 돌무지인지는 모르지만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구태여 아니라고 할필요는 없을것 같다. 역사학자들이 할일인 것을................
둘레길 출발지를 향하여 또 다시 발길을 돌려 지리산속으로 들어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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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혜천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