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댕기머리 소녀.
조선하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고, 하얀 민들레가 한두 송이씩 피어나는 이른 봄.
이중부는 한준과 당나귀를 몰고 땔감 나무를 구하고자 강 쪽으로 나갔다.
강에는 큰 나무들이 홍수가 발생할 때, 강물에 떠 내려와 강둑의 모래톱이나 자갈밭에 가끔 누워있기도 했다.
강물에 떠내려온 나무들은 대부분 뿌리가 뽑힌 채 홍수 때, 큰물에 휩쓸러 떠내려온 마른나무로서 땔감으로 즉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마른나무가 되어 운반할시 가벼운 것이 가장 큰 잇점이다.
화력 火力이 약한 겉껍질은 큰 물에 휩쓸러 내러오는 동안 이곳 저곳이 떨어져 나가고, 화력 좋은 심재 心材 부분만 남아 있어 화목 火木으로서 안성맞춤이다.
운 좋게 크고 단단한 나무를 만나면, 열흘 정도는 땔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큰 고목을 하나 발견하였으나, 가진 연장은 낫 두 자루뿐이다.
아름드리 거목을 조그만 낫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큰 나무는 다음에 도끼를 가져와 작업하기로 하고 잔가지들을 주워 모은다.
큰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조선하 朝鮮河다.
본시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조선인들의 거주터라 하여 조선하 朝鮮河라 불리던 강이다. 줄여 조하 朝河라고도 한다.
조선하의 위치는 황하 북쪽의 호타하와 영정하를 지나 유주(지금의 북경 부근) 동쪽에서 남쪽의 발해만으로 흐르는 강이며, 난하의 서쪽 지점이다.
그러니까 조선하는 영정하와 난하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요하와 난하가 워낙 큰 강이라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지 몰라도 제법 큰 강이다.
황하나 요하처럼 큰 강들은 하구에 뻘이 많아 거주하기에 불편하고, 홍수 때 피해입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오히려, 작은 강이 안전하고 생활하기에 용이 用利하므로, 초기 청동기인들은 이곳을 거주지로 삼았을 것이다.
강둑을 따라 이어지는 나지막한 구릉에는 진달래꽃들이 붉게 물들이고 있고, 노란 개나리도 무더기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꿀벌과 배추흰나비도 봄바람을 타고 열심히 꽃들을 찾아 날아다니고 있다.
돌연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 멀리서 빨간 댕기 머리를 땋은 어린 소녀 하나가 노란 개나리꽃 덤불 속에서 뛰쳐나온다.
소녀의 뒤를 따라 털이 긴 푸른색 강아지도 한 마리 같이 뛰어나왔다.
그 뒤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7, 8마리의 들개 떼들이 소녀와 강아지를 뒤쫓아 오고 있다.
댕기머리 소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나물 캐던 대바구니를 내던지고 허겁지겁 달아나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기어코 언덕에서 굴러떨어진다.
멀리서 이를 발견한 이중부와 한준은 손에 들고 있던 땔감 나무들을 버리고, 당나귀를 몰아 소녀 곁으로 달려간다.
8마리의 들개 떼들은 어느새 소녀와 강아지를 포위한 형태로 진형을 짜고는 곧바로 달려들 태세다.
소녀 곁의 중개 크기의 푸른색 강아지가 소녀를 보호하고자, 들개 떼들을 보고 ‘으르렁’ 거리며 나름, 전투력을 과시해 보지만 어림도 없다.
때마침, 당도한 이중부와 한준은 타고 온 당나귀 위에서 각기 들고 있던 창으로 들개를 겨냥하여 찌른다.
이중부는 들개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덩치가 제일 큰 놈을 겨냥하여 창을 힘차게 내 찔렸다.
창은 들개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간다.
한준의 창은 또 다른 들개의 엉덩이를 살짝 스쳤다.
그런데 들개 무리는 흩어지더니 도망을 가지 않고, 무리가 일렬로 재정비하더니 이중부와 한준을 보고 되레 공격태세를 갖춘다.
웬만한 들개 무리는 성인 남자에게는 달려들지 않는다.
멀리 피해 다닌다.
이중부와 한준은 12세 가량의 소년이지만, 수년간 무예를 연마하여 평소에도 자세가 각 角이 서 있는 모양새라 덩치는 작아도 그 기세가 일반 성인들 못지않다.
그런데도 들개들은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공격하려는 자세다.
‘아차’ 이중부도 섬찟해진다.
섬짓한 느낌에 재차, 들개떼 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은 들개 무리가 아니라 승냥이 떼다.
* 승냥이
승냥이는 늑대보다는 작고 여우보다는 크다.
생김새나 크기가 늑대와 붉은여우의 중간 크기인데 사납기는 늑대에 버금가며, 교활하기로는 여우 못잖다. 승냥이 떼들은 일단 목표물이 정해지면 어지간해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악착 齷齪같은 근성 根性이 있다.
보통 떼를 지어 다니는데, 적게는 4~5마리 많게는 20여 마리씩 무리생활한다.
얼마나 사나운가 하면 염소나 노루는 물론 자신의 몸 크기 10배 이상이나 되는 큰 대륙사슴이나 말, 소까지도 사냥하는 포악스러운 놈들이다.
짐승을 길러 생업을 유지하는 유목민들에겐 암적인 존재로 골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아귀 같은 무리다.
어지간해서 ‘못 된 승냥이 같은 놈’ ‘승냥이처럼 흉악한 놈’이란 말들이 있을까?
서남아시아와 한반도 그리고 중앙아시아 일원에 분포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승냥이를 자칼, 코요테, 이리 등과 혼동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승냥이’라고 하며, 늑대를 ‘말승냥이’라 부른다.
늑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늑대는 야간에 달을 보며 ‘우~~ 우~~~’하고 우는 하울링을 하는데, 승냥이는 하울링을 하지 않고 마치 흑염소와 비슷한 소리로 ‘캭 캭’ 거리며 짖는다.
승냥이는 개과 중에서 젖꼭지가 제일 많다. 12개나 된다. 출산율이 높은 특이한 개과 포유류다.
“조심해! 승냥이다”
이중부가 큰소리로 외치며 얼른 당나귀에서 내려, 소녀의 오른쪽에서 창 자루를 고쳐 잡는다.
한준도 나귀 안장에서 소녀의 왼편으로 뛰어내리며
“햐! 오늘 만만찮겠는데.”라며 오른손으로 창을 재차 꼬나쥐며, 창끝을 승냥이들의 눈 위치로 겨누며 수비 자세를 취한다.
청동제 창날이 햇살에 반사되어 노랗게 반짝인다.
승냥이 떼들도 상대가 만만찮은 녀석들 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한다.
그 사이, 댕기 머리 소녀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옆의 막대기를 주워 자신의 가슴 앞을 보호한다.
강아지도 원군을 얻었다는 생각이 드는지 조금 전보다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소녀 바로 옆에 붙어서 승냥이 떼들을 보고 힘차게 짖어댄다.
서로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대치하는 상황이다.
승냥이 무리는 위세가 등등한 여덟 마리다.
이중부네 편은 사람이 세 명, 강아지 한 마리, 나귀 두 마리가 전부다.
숫자로 부족하다. 더구나 강아지는 덩치는 승냥이와 큰 차이가 없으나, 전투력은 승냥이 한 마리의 삼 할에도 미치기 어렵고, 나귀들은 덩치만큼 전투력이 어느 정도 있다하나, 거의 수비형이다.
나귀들은 양옆 쪽의 방어선을 지켜준다.
그래도 싸울 병력이 부족하니 없는 것보다는 옆에 있는 것이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
병력이 부족하니 상대를 이길 방법은 적의 우두머리를 치는 수밖에 없다.
이중부는 승냥이 우두머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
창끝은 승냥이 우두머리의 양 눈 사이 미간을 겨냥하고 서로 눈길을 떼지 않고 기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한준도 우두머리에 버금가는 큰 승냥이를 계속 노려보고 있다.
승냥이 우두머리도 ‘캭 캭’ 거리며 상대들의 허점만 노리고 있다.
약간의 허점만 보이면 언제든지 달려들 태세다.
승냥이 우두머리와 중부가 서로 노려보며, 눈으로 싸우고 있는 기 싸움이 대등한 모양이다.
승냥이떼들도 함부로 달려들지는 않는다.
대치 시간이 흐르니, 소년과 소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조금씩 배어 나온다.
이제 세 명, 모두 다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버티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점을 지금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를 감지한 승냥이 우두머리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롭게 바뀌어 간다.
즉시 공격할 태세다.
중부와 한준은 쌀쌀한 날씨지만 긴장된 관계로 손에 땀이나 미끌거리는 창 자루를 재차 꼬나쥔다.
일촉즉발 一觸卽發의 위급한 상황이다
그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우렁찬 것이 상당히 큰 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강아지는 그 소리를 듣고는 더 큰 소리로 짖어댄다.
용기백배 勇氣百倍다.
아마 강아지의 어미가 되는 것 같다.
그러자 막 공격을 시도 試圖하려던 승냥이 떼들이 갑자기 주춤거리더니, 한쪽으로 슬그머니 비켜선다.
그러더니 우두머리가 갈대숲으로 먼저 들어가니, 다른 녀석들도 우두머리를 따라 마른 갈대숲 사이로 사라졌다.
우렁차게 짖으며 달려온 큰 개는 굵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댕기 머리 소녀와 강아지에게 반갑게 다가간다.
위기 상황에서 푸른빛의 큰 개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 변수 變數로 작용하여, 상반 相反간에 팽팽히 대치되었던, 힘의 균형을 깨뜨린 것이다.
큰 청삽사리가 나타나자 강아지는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어미의 입을 핥고 귀를 물고 바닥에 나뒹굴기도 하며 야단법석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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