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 우리는 친구다!)
러샨따포(洛山大佛) / 어메이산(峨眉山)의 보현보살상 / 묘족(苗族) 아가씨들
중국은 알수록 아리송한 나라이다. 이 에피소드(Episode)가 그 한 예(例)가 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무례하고,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고, 잘난 체를 좋아하는...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그뿐이랴, 중국산 상품들은 싸구려고, 가짜가 많고, 믿을 수 없고...
대부분 거부감을 주는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중국 여행을 선호하는 까닭은 유구한 역사에 따른 엄청난 유물 유적들, 곳곳에 널려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경관들이 여행객들을 유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두 명과 배낭을 메고 홀가분하게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를 다녀오기로 하고 난징(南京)에서 침대(軟臥)열차를 탔는데 청두까지 25시간이나 걸린다.
이곳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유비(劉備)가 세운 촉한(蜀漢)의 수도(首都)였던 곳으로, 쓰촨(四川)이라는 지명은 성내(省內)로 장강(揚子江), 칭이강(靑衣江) 등 네 개의 강이 흐른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면적은 약 49만 ㎢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약 5배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
이곳에는 동방불도(東方佛都)로 알려진 곳으로, 어메이산(峨眉山)의 수많은 불교 성지(聖地)들과 거대한 불상(佛像)이 조각된 러산따포(洛山大佛) 등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다.
여행일정은 중국내륙 청두(成都)의 불교 성지 어메이산(峨眉山) 등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웃지 못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일행 세 명 중 한 명이 중국어를 조금 하고 나와 다른 한 친구는 중국어를 거의 못하여 짧은 중국 토막말과 영어로 같은 칸 중국인들과 겨우 눈인사로 얼굴을 익혔는데.....
저녁을 먹으러 식당차로 갔더니 만석으로 자리가 없다. 식탁은 네 명이 한 테이블로 뜨문뜨문 빈자리가 하나씩 있어서 할 수 없이 세 명이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는데 눈인사를 나누던 40대 전후의 중국 젊은이 셋이 저녁을 먹다가 종업원을 불러 간이의자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우리보고 같이 합석을 하자고 한다.
그러잖아, 말도 통하지 않아 곤란하던 차라 덥석 합석하게 되었는데 빠이주(白酒/배갈)로 이미 얼굴이 불그레한 친구가 일어서더니 우리 세 명 저녁을 자기가 사겠단다. 극구 만류하는데도 우리를 눌러 앉히고는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음식을 시키는데 제법 가격이 나가는 고급요리를 시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빠이주(白酒)를 종이컵에 따라주며 신나게 마셔 보잔다. 그리고는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우리는 친구다)’를 외치며 이빠이(一杯/원샷)를 하자고 한다.
우리 세 사람 중 둘은 술을 조금 하지만 나는 거의 술을 못 마시는데 분위기를 봐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호기 있게 ‘워먼더 펑요’를 외치며 목구멍으로 술을 쏟아부었다.
바로 옆자리에 않았던 40대 중반의 대머리 중국 녀석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더니 자기가 마시던, 옆에 손잡이가 달린 됫병보다 큰 술병을 들고 오더니 합석을 하며 오늘 신나게 마셔 보잔다.
또 잔을 채우고는 ‘이빠이(一杯),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일어서서 ‘워 아이 쭝궈런!(我愛 中國人/나는 중국인을 좋아한다.)’, ‘한궈런 쭝궈런 펑요!(韓國人 中國人 朋友/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은 친구다)’
어쭙잖은 중국 토막말을 내뱉으며 서로 얼싸안고 목구멍에 술을 들이붓다 보니 모든 술병이 바닥이 났는데 이미 모두 곤드레 만드레.... 술에 약한 나는 대취(大醉)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이 없는 중에도 술기운인지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허리를 굽실거리고 두 손을 모아 흔들며 사방을 둘러보고 큰 소리로
‘워쓰 한궈런, 워아이 쭝궈런, 워먼더 펑요(我是 韓國人, 我愛 中國人, 我們的 朋友/나는 한국인이요. 나는 중국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친구요)’를 외쳤더니 옆자리 사람들도 모두 두 손을 모아 흔들며 답례를 하고 웃는다.
마침 조금 떨어진 자리에 기차 안 내 옆 침대의 20대 초반 아가씨가 앉았기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국노래 첨밀밀(甜蜜蜜/꿀처럼 달콤하다)의 한 구절을 불러제꼈다.
‘테엔미미 니 샤오더 티엔미미 하오샹화얼 카이자이 춘펑리( 甛蜜蜜 爾笑得 甛蜜蜜 好像花儿 开在春风里/꿈처럼 달콤하구나 너의 웃는 모습이 꿀처럼 달콤해. 너는 봄바람에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구나!)’를 큰 소리로 불러 제꼈더니 모두 손뼉을 치며 웃는다. 아니 시끄럽다고 인상을 찌푸린 사람도 몇몇은 있었겠지....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는데 어쨌거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짜이찌엔(再見/안녕!)을 외치고 일어섰는데 도무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친구 셋이 부둥켜안고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침대칸 자리까지 왔는데 대취(大醉)한 40대 대머리 중국 놈이 따라와서 주절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두 친구를 가까스로 침대로 밀어 넣는데 이미 인사불성인 한 친구는 바닥에 꼬라 박히며 이마에 주먹 같은 혹이 생겼다. 자려고 누웠던 중국인 승객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더니 몇몇 중국인이 일어나 주절거리는 중국 놈을 데리고 간다.
나는 침대칸 자리가 3층이라 가까스로 기어오르는 데는 성공했는데, 웬걸 누워서 설핏 잠이 들려는가 싶더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취한 중에도 잘못하다가는 아래층 자는 사람들한테 복중주(腹中酒)를 쏟아낼까 조바심을 하며 다시 기어 내려와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복중주를 쏟아냈다.
몇 번을 토하고 나니 조금 나은데 자는 승객들이 얼마나 짜증날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엉금엉금 기어서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도 쓰레기통이 있어 몇 번을 더 머리를 처박고 쏟아내고는 그 앞에 그냥 주저앉았는데 머리가 빙글거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팔짱을 끼고 앉았는데 화장실 있는 곳이 열차 두 칸의 연결 부위라 바람이 들어와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턱을 가슴에 처박고 얼마나 덜덜거리며 비몽사몽 간을 헤매었는지...
정신이 혼미한 중에 갑자기 누군가 내 가슴에 이불을 씌워주는 기척이 있어 가까스로 눈을 뜨고 쳐다보았더니 아까 내가 손가락질하며 노래를 불렀던 그 20대 초반 중국 아가씨가 이불을 가져다 내 가슴에 여며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없는 중에도 셰에셰에(謝謝)....
얼마나 지났는지 이불을 들고 다시 내 자리로 기어 올라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나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겠는데 두 친구는 아직도 술이 깨지 않아 눈을 멀뚱거리며 두리번거리는 것을 강제로 질질 끌고 기차에서 내려야 했다.
가방이고 여권이고 지갑이고...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을 중국 승객들이 주워다 준다.
그 이후로 나는 중국을 무지무지 사랑하게 되었다. (워 아이 쭝궈/我 愛 中國)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