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가서 삽 들고 우물을 파느니, 차라리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 취직해 수입의 10%를 기부하라!” 아프리카와 월스트리트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자의 은유적인 표현인가?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이 책의 저자는 윌리엄 맥어스킬이다. 저자는 28세에 옥스퍼드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젊고 냉정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비영리 단체 ‘기빙 왓 위캔’, ‘8만 시간’의 공동 설립자다. 젊은 철학자인 맥어스킬은 기부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다.
1. 냉정한 이타주의란 무엇인가
맥어스킬은 머리말에서 국제개발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던 ‘플레이 펌프 캠페인’을 소개한다. 플레이 펌프는 아프리카 지역에 아이들이 놀 때 발생하는 힘을 이용해 마을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장치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광고, 각종 수상과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아 1800대를 설치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국제개발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된다.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한 사람의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이 플레이 펌프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플레이 펌프를 응원하고 지원했던 그 어느 누구도 이 기계에 대한 실제적 효과를 검토하지 않았고, 설치 이후에 벌어지는 돌발적 또는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플레이펌프 미국 지부는 폐업을 하고, 플레이 펌프의 후원재단도 사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맥어스킬은 이 사례를 시작으로 우리가 어떤 것을 시작하고 선택할 때 감정에 치우쳐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수많은 사례와 근거로 우리의 잠자고 있던 냉정한 이성을 깨운다. 그리고 우리의 이타주의가 얼마나 감정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감정에 의존하는 이타주의가 어째서 기회를 놓치게 만들까? 저자는 “사람들은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 때문에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무분별한 선행이 무익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2. 열정과 냉정사이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맥어스킬은 우리 자신이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어야만 세상에 이로운 선행을 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에게도 이 잣대를 이용해 적합한 직업을 찾고 성공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내 삶의 성공을 위해서 열정을 버리라니. 갑자기 스티브잡스의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연설이 생각난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직업은 여러분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일들이 늘 그렇듯. 그런 일은 발견하면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찾으세요.” 이 연설문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말들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열정이 없는 나 자신을 탓하며 끊임없이 열정을 불러일으킬 동기부여를 찾아 헤맨다.
맥어스킬은 이런 말들에 절대로 따르지 말라고 한다. 열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순간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직업에 관한 문제를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열정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열정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감정에 의한 열정은 환경에 부딪히면 식어버린다. 직업은 내 감정이 없더라도 해야만하는 끈기의 요소가 필요하다. 열정은 언젠가 변하기에 계속해서 열정만을 쫓는다는 건 이리저리 방황만 하는 허송세월로 이어질 수 있다. 열정 외에 객관적인 현실이 존재함을 염두해야 한다는 것이 맥어스킬의 생각이다.
맥어스킬의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타주의라는 평범한 소재를 다양한 삶의 영역에 접근하는 방식은 신선하고 획기적이다. 기존의 지식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융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한 가지 지표를 열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단체를 찾는 일, 나 자신을 위해 직업을 고르는 일,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려는 큰 뜻을 품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현실적 조언들로 가득하다. 그 조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