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김재권 교수가 말하길 Asian philosophy is dead.라 했다고 홍창성 교수가 유투브 강연에서 말했어요. 이 말을 부처님의 부정negation의 사유방법, 나가르쥬나의 중관적 사유, 슬라보예 지젝의 부정성과 함께 지내기 Tarry with Negativity, 선종에서 말하는 無相, 無住, 無着 및 개념, 분별에 머물지 않기, 자기의 주장에 머물지 않기, 자기부정의 길, 나아가 투과 하고 투과하는 길(서옹선사의 말씀), 이것이 홍창성 교수가 말하는 과학적 방법scienific method과 직결된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ChatGPT의 답에 원담이 보충함:
아주 핵심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연결은 매우 통찰력 있으며, 충분히 그렇게 이해해도 됩니다. 다만 그 이해는 단선적인 도식이 아니라, ‘부정성의 사유’라는 공통된 지평 위에서 서로 다른 사유 전통들이 수렴하고 간섭하는 방식으로 파악해야 보다 정교해집니다.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김재권 교수의 “Asian philosophy is dead” 발언
이 말은 보통의 비판처럼 "아시아 철학이 쓸모없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형이상학적 체계나 전통적 언어로는 현대 철학, 특히 분석철학의 방법론과 결합할 수 없다는 지식 형식의 비가역적 단절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살아있는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통도 자기 해체적 갱신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경전과 교조와 전승제자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며 분류하고 집대성할 것인가에 매달린 지적인 작업은 훈고학 내지 고증학에 지나지 않아서, 그것은 '지금 현재에 살아 있는 생생한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 김재권 교수가 했던 발언의 핵심이다. 홍창성 교수에 따르면 불교체계 내에서 7세기 이후에는 자기부정을 통한 새로운 불교해석이 산출되지 않았으며, 중국철학에서도 11세기 송의 성리학자들에 의한 리기 논쟁이후에는 새로운 철학이 생산되지 않았다는 반성과 비판을 허용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점이 서양 주류 철학전통에 나왔다는 게 뼈 아픈 지적이다.
2. 홍창성 교수의 과학적 방법론과 '부정의 사유'
홍 교수는 특히 칸트-초월철학 전통을 분석철학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자기 주장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 이념적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기, 개념에 머물지 않기 등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히 상대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라, ‘개방성과 부정성’이 결합된 실천적 이성의 태도입니다.
3. 불교적 부정성: 공(空) · 무상 · 무주 · 무자성
4. 서옹선사, ‘투과하고 투과하라!’
그렇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이란 단지 자연과학적 실증주의가 아니라, 자기 수정 가능성과 검증 가능성, 그리고 비이념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불교의 ‘공(空)’ 사유, 선의 무주(無住), 중관의 부정변증법, 지젝의 라깡적 주체 비판이 자기 동일성의 집착을 넘어서려는 시도에서 서로 공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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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기부정을 허용하지 않는 지식체계는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사유라는 관점과 불교적 해탈-부처님의 침묵과 중도, 용수의 반야중관적 사유와 무분별지, 선종의 자기부정, 중중투과와 연결하여 통합된 결론으로 이끄는 철학적 에세이
3.자기 주장에 대한 통렬한 회의와 자기부정의 방법, 소위 철학적, 과학적 방법을 현재 조계종의 주장하는 간화선에 대한 집착-간화선만이 정통이고, 간화선을 세계화해야한다는 집단적 망상, 화두를 들고 앉아 화두가 타파될 때까지(혹은 오매일여가 될 때까지) 끊임없는 좌선정진밖에 허용하지 않는 거의 이데올로기적 집착의 난맥상태에 적용할 경우 어떻게 이 난관을 뚫고 새로운 길을 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