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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2
야훼 하나님의 능력 / 신정환 목사
여호수아 10: 42
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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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4-25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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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기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이후에 우리에게 주 신 특권이 있습니다. 이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정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만하기 보다는 부족하게 살아갑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곧 하 나님께로 부터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 남을 통해서 다시 이세상에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복하고 다스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니까 결코 우리가 싸워서 이 세상을 이기는게 아니고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능력과 지혜만이 이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고 질서있게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여호수아서 10장 42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고로 여 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야훼께서 싸우시고 일하신고로 여호수아가 승리했다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싸우신고로 내가 이세상에 승리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세상에 살아가면서 승리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보십시오. 이렇게 질서있는 것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천체들이 부딪치지 않고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매일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얼마나 질서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지 않고 우리가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능력을 알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있도록 맡기는 삶이 기독교의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 믿음의 정도는 하나님을 아는 정도입니다. 믿음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내 인생을 맡길 때 그분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어준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아는 만큼 내가 구원의 은총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를 공부하면서 기생이었던 라합의 고백을 잘압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의 하나님이 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천하의 제일가는 신이다 라는 것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신분에 관계 없이 구원의 은총을 입고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조상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본문에 이스라엘이 가나안땅 라무브지방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안 는 기브온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 가나안땅 남쪽지방에 있는 타스트왕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기브온이 같이 합쳐도 그 타스트왕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12절말씀에 보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낮 시간에 이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태양이 하늘에 멈추도록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달이 하늘에 멈추도록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태양이, 달이 하늘에 멈추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여호수아의 대단한 믿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급해도 태양이 멈추도록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 굉장히 바쁠 때가 있지요?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내일까지 꼭 해야 되는 일들, 오늘 이일을 끝내지 않으면 내일 엄청나게 큰 손해를 본다고 할 때, 그런 위기 앞에 하나님께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태양을 멈추어서 이 하루를 길게 하여 주십시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그것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너희에게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옮겨서 저 쪽으로 옮 겨져라 해도 분명히 옮겨질 것이라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우리는 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역사들이 우리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 게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지식 속에 하나님을 끌어 넣습니다. 내 능력 속에 하나님을 끌어 넣습니다. 내 생각 속에 하나님을 끌어 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은 부분들에 내게 들어오면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내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데 대한 우리의 나타남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안다면 예배를 구경하듯이 왔다 갔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곧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하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알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너희가 다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 도안에서는 우리가 다시 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천국열쇠를 갖고 충만케 되는 능력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 입니까?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십자가의 의미는 자기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올려서 하나님이 하시게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는 것입니다.
누가 요단을 건너게 했습니까?
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셨습니까?
누가 태양을 중천에 머무르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싸우신고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이 승리를 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서 6장 27절 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땅에 퍼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방법, 철저히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도구는 스스로 하려 고 나서지 않습니다. 경쟁하거나 비교하거나 다투지 않습니다. 다만 도구는 주인의 쓰임에 쓰여질 뿐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여호수아는 철저히 하나님께 붙잡혀 쓰여지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내가 뭔가를 이루어 갈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도록 내어 맡기시기만 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지혜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너를 통해서 아들이 태어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어떠한 것으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니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아내 사라가 단산을 하고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고 아브라함 역시 나이 99세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하나님이 거기에 개입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삭을 낳게 합니다. 야곱이 한평생 자기의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취하기 위해 쫒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얍봅강가에서 주님을 만나고 거기서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야곱 을 통해서 12족속들이 성경전체의 배경이 이루어지기 시작함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사도바울의 예를 들어봅시다.
사도바울이 자기의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자기의 힘을 가지고 무 언가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셋 도상에서 태양빛보다 더 강렬한 예수를 만나면서 그 앞에 그는 꿇어 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바울은 사울이 바울이 되어집니다. 사울은 큰자이지만 바울은 작은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작은자임을 시인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그를 크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그는 성경에 12번에 편지를 쓰면서 로마교회, 고린도전교회, 갈라디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골로새교회, 여러 편 지를 쓰면서 하는 얘기가, 십자가의 과정을 거쳐라.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십자가에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는 더욱더 사도바울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여러 사람을 꼽을 수가 있겠지만 저는 성어그스틴을 꼽아봅니다.
그러나 어그스틴이 어떻게 성어그스틴이 되었을까?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 까?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힘들어 집니다. 열심히 하려고 하니 또 힘이 드는 것입니다. 너무나 고달팠습니다. 그래서 그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한 소년이 바닷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만히 지켜보니 그 아이가 모래성을 쌓아서 거기에 작은 구 멍을 뚫고 커다란 조개껍질로 물을 계속 퍼담고 있었습니다. 힘들면 쉬었다가, 또 퍼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그스틴이 가까이 가서 “너 지금 무엇하며 놀고 있니?” “나는 이 조개껍질로 내가 만든 웅덩이에 이 바닷물을 퍼담고 있어요” “언제까지 할건데?” “이 바닷물을 다 퍼담을 때 까지요” 하더랍니다.
거기서 성어그스틴은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소년의 모습이 내 모습이었구나 너무나 하잘 것 없는 내 속에 위대하신 하나님을 집어 넣으려고 하는 잘못된 신앙관을 가졌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내 속에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붙들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큰 바다 앞에서 어린 소년이 하는 행위가 우리들의 행위임을 알았습니다.
좀더 잘 살아보려고, 좀더 채워보려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한평생 노력하는 것이 마치 바닷물을 작은 구덩이에 집어 넣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크신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그스틴에게 물었습니다.
기독교의 첫 번째 미덕이 무엇이냐고,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미덕이 무엇이냐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도 겸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세 번째도 낮아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낮추었을 때 주님이 그를 들어 쓰셨습니다. 그가 주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과 지혜가 성어그스틴을 통해서 나타났고 어그스틴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자 신을 멈추는 자에게 바로 축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우리자신을 멈출 때, 자신을 낮출 때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개입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곧 인본주의의 끝이 신본주의의 시작인 것입니다. 인성의 끝이 곧 신성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말은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내 뜻을 내려놓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당신의 뜻이 내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위대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오!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고백했을 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태양이 멈추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죽음을 멈추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연장 시켜주시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태양을 멈추게 하는 주님이 죽음을 멈추게 하지는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전술이 곧 하나님의 전술이었고, 여호수아의 용기가 곧 하나님의 용기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일치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되면서 곧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러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순절하면 십자가와 관계되어져 있습니다. 곧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 우리는 40일동안 그리스도께서 가신 과정을 같이 경험해가면서 가는 것입니다. 곧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의 도를 배우고 십자가의 도를 배워서 거기에 따르는 훈련을 하는 기간들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의 주장을,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이루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십자가의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우리의 삶에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에서 지배당하지 않고 이 세상을 정복하면서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것에 의해서 끌려다니지 않고 우리는 참 하나님으로 인하여 충만한 어지러운 세상을 질서의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질서있게 다스려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다시한번 사순절에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지혜가 과연 내게 있는지 없는지 다시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과정이 없이는 절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과정이 있다면 하나님은 죽은 나를 살리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세상의 어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그런 능력과 지혜를 우리에 게 주십니다.
사순절기간을 통해서 더욱더 십자가의 도를 배우고 훈련해서 철저히 십자가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위대한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