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이 나타났다.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중국의 한 도시에서 소문이 퍼지더니 새해 벽두부터 불안과 공포를 이끌고 도시와 국가를 차례차례 점령했다. 감염, 감염, 감염, 순식간에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신종(新種)바이러스 위력에 세상이 혼란에 빠졌다. 하늘길, 바닷길이 닫히고 여행길이 막혔다. 계절이 무너지고 꽃소식, 축제, 행사. 모임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짐 안에 갇혔다.
망중투한이어라
(자발적 고립 첫 주)
와중에 자신만의 오롯한 고립이 나쁘지 않다. 아니 왠지 좋았다. 날마다 허겁지겁 바깥을 오가는 대신 종일 ‘집콕’하며 실내에서 조용히 설쳐 대었다. 쌓아 둔 책 탑을 정리하고 묵은 물건들을 솎아 내니 더부룩하던 속도 후련했다. 햇살 반짝이는 거실에 앉아 눈앞의 시간을 한가히 즐기는 맛,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시 낭송에 가슴이 녹녹해지는 맛도 괜찮았다.
뜻밖에 얻어진 망중투한(忙中偸閑)의 맛이 그럴싸하다. 스스로 갇혔으도 집은 감옥이 아니라 둥지여야 하는 것. 골라 놓은 책 맛나게 읽기, 자신과 대면하는 글쓰기, 리모컨으로 채널 돌려가며 TV프로 설렵 후 늦게 푹 잠자기, 한껏 평화로웠다. 자발적 고립은 아무에게도 신경 쓸 일 없는 자신만의 몫. 성분이 다른 무한 자유일 수 있다.
격식은 가시라
(고립 이 주째)
그런대로 괜찮다. 무한 자유 속에서도 ‘산다’는 ‘먹는다’를 함의하는 바, 누구라서 감시 식(食)을 초월하랴. 헤쳐 온 세월이 무색하게도 부엌일에 어설픈 손이, 오이소박이를 담고 소갈비 찜도 만들어 냈다. 나도 요리가 되네, 물론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레시피’를 따라 했으며 마트에서 사다 둔 양념 소스를 사용하고 시간이 엄청 걸렸지만 내심 뿌듯했다. 거추장스러운 격식은 가시라. 골치 아픈 관계망과 연락도, 사절이다.
삼시 세끼 만들고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고, 그리고 또…. 근원 불명이던 에너지가 슬슬 바닥을 드러낸다. 좀 지친다. 나를 책임져야 하는 건 모름지기 나 아닌가. ‘집콕’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절해고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생활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나의 느려 터진 주방일을 간소화할 방법이 절실하다. 집 앞 마트에서 평소 애용하던 몇 가지 간편 조리 식품을 사 와 낸장고에 저장했다. 약국에서 종합비타민 한 통도 챙겨오는 것으로 방전되는 양식 충전의 걱정을 살짝 덜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개개의 생존 방식은 각양이다. 다만 사회 테두리 안에서 저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 낸다는 게 하나의 공통점일지니.
지금 여기는 어디?
(고립 사 주째)
균형추가 덜커덕거린다. 입맛이 떨어지고 기분도 내리막길을 탄다. 전자레인지에서 덥혀 낸 양념치킨과 과일 김치와 나만의 즉석 칵테일을 외식인 양 차려 놓고 먹어도,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고 간식으로 음악을 곁들여도,‘ 우울’이란 놈이 식탁 위에서 스멀댄다.
잠시 칩거의 봉인을 해제하고 외부로의 길을 튼다.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고 나서 본 거리, 풍경이 달라졌다. 사람들로 북적이든 길거리엔 마스크로 복면을 한 자들이 묵묵히 오갈 뿐, 말소리 고함 소리 웃음소리가 절연된 싸늘한 공기라니. 낯선 곳에 불시착한 듯 하다.
손님 없는 가게들이 하나둘 셔터를 내렸다. 동네 식당도 문을 닫았고 백화점의 문화센터도 휴강에 들어가고 시와 구의 문화회관들도 휴관한다는 소식이다. 학교도 집단감염의 위험으로 개학을 미루었고 성당의 미사도 중단되었다. 얼굴끼리 마주 보기도 곤란하여 몸이 아픈들 병원도 함부로 찾지 못한다. 흉흉한 풍문이 불안을 달고 떠다닌다. 바야흐로 죽은 도시다. 누가 이곳에서 저 홀로 몽생취사(夢生醉死) 하길 바랐는가.
나를 진단해 볼까
(고립 육 주째)
앞은 오리무중 뒤는 좌불안석, 뉴스는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알리며 바깥출입을 자제해 달라고 한다. 한 개인의 부주의가 타자의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걸 지금처럼 혹독하게 느껴 본 적 있던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역병보다 안으로 침투한 심각한 불안으로 사람들은 집단적 우울의 늪에 빠졌다. 언제 어디서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경로를 알 수 없고 치료 약도 없다는 불확실성에 마스크는 동이 났다. 마스크 두 장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상상이나 해 봤으리.
우리가 안달하던 꿈과 야망은 어떤 형태일까. 제 나름의 입신으로 호의호식하며 권위와 부와 명예를 영유하는 것? 혹 없어도 무방한 것들에 죽자고 집착한 탐욕은 아니었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의 급습이야말로 생태계를 교란시킨 인간 욕망의 실책일진대, 결국, 우리들 자신이 갇혀 버렸다.
일상의 리듬이 파괴되면 생각의 길도 잃는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낮게 밀물져야 한다. 했거늘. 왜 자꾸 어깨가 흔들리는지. 겨울을 살아 낸 나무라야 봄에 얼마나 긴 사무침인가를 안다 했거늘. 왜 자꾸 무력해지는지, 다행히 내일은 날씨가 포근하고 봄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자연 앞에 고개 숙이고 엄숙히 나를 진단해 봐야 할 차례다. 생존이 더 이상 고독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 코로나 19라는 미물이 절대적 지배력을 과시하는 중에 쓰다 *
첫댓글 절절히 공감합니다. 선생님의 글은 닫힘 속에서도 시가 되고 있습니다. 풍진 세월을 견뎌내신 분이라 어딘가 다르 다는걸 느낍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