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참고로 '휴양림 매표소 → 차단기 → 등산로 입구 → 삼거리 → 매봉산 정상 → 삼거리 → 연화동계곡 갈림길 → 칠절봉 정상 → 임도 → 능선 갈림길 → 등산로 → 진부령 정상'의 17km 구간을 7시간 동안 탐험할 예정이었다.
1
매봉산
높이: 1,271m
위치: 강원도 인제군 북면
강원도 인제에 솟아있는 매봉산은 설악산의 고함에 오금을 못 쓰다가 동쪽 자락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부터 명함이 밝혀지게 되었으나 지금도 꼭대기는 파리채만 들고 있다.
한반도의 등허리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 북측의 진부령 정상 부근에 있으며, 국립공원 설악산과 동해로 통하는 46번 국도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대부분 천연활엽수 임지나 일부 인공조림지도 소면적 분포하고 있다.
매봉산(해발 1,271m) 칠절봉(해발 1,172m)으로부터 형성된 크고 작은 계곡을 따라 맑고 깨끗한 물이 휴양림 중앙으로 흐르고 있다. 산림 수종도 다양하여 계절에 따라 녹음, 단풍, 설경 등 자연경관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 74호인 열목어와 멧돼지, 토끼, 꿩, 노루, 다람쥐,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평일 산행은 26일 수요일 양평 중원산을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종일 비에 중간중간 폭우까지 예보하고 있어 포기하고, 그나마 오전에만 비가 내린다는 도봉산 여성봉, 오봉 산행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산행 시간이 가까워지며, 일기예보의 정확도가 높아지자, 도봉산 역시 중원산과 다름없어, 산행을 포기해야 할 상태였다. 그렇다고 쉬어 가면 그다음 산행이 힘들어, 북한산 우중 산행이나 해야지 생각하며, 기상청 '산악날씨'에서 다른 지역은 어떤가 확인하다가, 경기도와 거리가 먼 강원도 지역은 비 예보가 없다는 걸 알았다. 해서, 평일 산행을 진행하는 안내산악회에서 강원도 지역 산행이 있는지 찾아봤으나, 계곡 물놀이는 있지만, 산행 계획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강원도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북한산에서 우중 산행을 즐길 정도로 비를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라, 이런 때를 대비해 대중교통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한 계획을 찾아봤다. 먼저 눈에 띄는 게 오대산 호령봉이고, 다음이 인제 매봉산과 백두대간 칠절봉 연계 산행이다. 그런데, 호령봉은 안내산악회에서 자주 찾는 오대산 국립공원에 속한 봉우리라, 가성비 좋은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는 게 정답이라는 판단이 들어 안내산악회에서는 눈길도 주지 않는 매봉산, 칠절봉 연계 산행을 선택했다. 산행 계획은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토대로 만들었는데, 대략 17km 거리라, 7시간 정도가 필요한 코스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르는 매봉산은 높이가 1,271m로 산행지 선정의 최우선 목표인 천고지 산이다. 그리고 그와 연계하는 칠절봉은 백두대간 상에 있는 봉우리로, 하산 코스인 칠절봉에서 진부령까지가 백두대간이다. 고로 이번 산행은 170번째 천고지이자, 민간인이 특별한 허락 없이 갈 수 있는 백두대간의 최북단 구간으로, 개인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 그래서 아껴 두고 있었지만. 어쨌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강원도까지 가면서 7시간 이상을 확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동서울터미널에서 6시 30분에 출발하는 원통행 첫 버스를 타야, 귀가하는 차편에서 약간의 여유를 부릴 수 있다. 그럼 4시 반에는 기상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니, 부족한 잠은 원통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보충하기로 했다. 당연히 김밥 등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 점심은 현지에서 라면으로 해결한다. 그 외는 다른 산행과 같다.
2 - 1
4시 30분경 기상해 끓인 누룽지를 아침을 먹고,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연신내역에서 구파발발 오금행 첫 열차인 5시 32분 차를 타기 위해 5시 15분경 집을 나섰다. 이후 버스로 연신내역으로 향해 5시 25분경 도착해, 역 구내로 내려갔다가 진정으로 놀랐다. 이 시간 정확히는 연신내역에서 시내로 향하는 첫 차를 타려는 승객이 이렇게 많을 거라곤 상상을 못 했다. 이 차를 타기 위해 4시 30분에 기상했는데, 이들은 몇 시에 일어났을까? 그리고 얼마나 잤을까? 평일이니, 나와 같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사는 게 쉽지 않다. 어쨌든 제시간에 맞춰 들어온 열차를 탄 후 을지로 3가에서 강변 터미널로 향하는 열차로 갈아탔다.
6시 16분경 강변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일기예보와는 달리, 강남 쪽은 먹구름이 걷히고 있다. 강북은 여전히 먹구름이지만! 하늘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잠깐 목적지를 바꿀까 생각하다가, 일단 기상청을 믿기로 했다. 터미널로 들어가 6시 30분발 원통행 첫차 표를 끊고, 승차장으로 가니, 6시 30분 첫차와 6시 49분 두 번째 차가 나란히 서 있다. 첫차가 속초행이라 한계령을 넘어가나, 49분 차는 대진행으로 진부령으로 향해 용대삼거리에 정차한다. 고로 저걸 타고 용대삼거리에서 내려, 휴양림 정류장까지 1.4km를 걸어가도 된다. 해서 이번 산행 계획을 세울 때, ‘19분을 더 자고, 1.4km를 걸어갈 것이냐? 잠을 좀 줄이고, 버스가 다니는 곳은 버스로 가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실천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가, 신념을 지키기로 했다. 물론 버스를 갈아타는 게 여유 시간도 더 확보할 수 있다.
출발 5분 전 텅 빈 버스에 타 옆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으니, 잠이 안 온다. 잠을 못 자면 산행이 힘들어져, 자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실패다. 해서 자는 걸 포기하고 책을 보며, 가끔 창밖으로 눈을 돌렸는데, 강원도가 가까워지자, 반대편에서 오는 차의 와이퍼가 정신없이 움직인다. 응? 비 오나? 해서 창밖을 유심히 살펴보니, 도로가 흥건히 젖었다. 그런데, 홍천으로 들어서니, 비도 그치고, 햇볕이 쨍쨍하나, 도로는 여전히 젖어 있는 게, 폭우가 내린 거 같다. 비구름이 동에서 서로 가는 건가? 그럼, 지금 서울도 비? 인제 쪽도 비가 내렸으면, 등산로의 울창한 풀이 비를 머금고 있어, 등산화가 젖는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 될 게 뻔해, 아큐아슈즈를 신고 오지 않을 걸 후회하며 계속 책을 봤다.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가끔 창밖을 주시하며, 책을 보고 있는데, 버스가 8시경 인제로 들어가, 승객을 내려주고, 원통으로 출발해 8시 10분경 도착했다. 예정된 소요 시간 1시간 40분을 지켰다. 원통에서 진부령행 버스는 8시 20분이다. 고로 10분의 여유가 있다. 그런데, 비도 오고, 평일이라, 시간을 지킬 수 있었지, 휴일이라면 시내버스 출발 시각인 8시 20분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다음 진부령행 시내버스는 9시 50분이라는 거! 그리고 그 시간에 맞는 동서울 출발 원통행 버스는 7시 30분 차다. 예정대로 원통에 도착하면, 9시 10분으로 시내버스 출발까지 40분이 남으나, 휴일은 1시간 40분이 아니라, 2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봐야 하니, 9시 50분 차도 아슬아슬할 수 있다. 어쨌든 휴일은 9시 50분 차에 맞추기로 하고, 진부령행 8시 20분발 7006번 버스를 타고 미시령 구도로를 달려, 8시 50분 용대자연휴양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2 – 2
버스에서 내려, 복장을 정비하고, 연화교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를 기록으로 남긴 후 등산 앱을 기동하고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457m! 오차를 고려하면, 437m 내외다. 매봉산의 높이가 1,271m니, 표고차가 810m가 넘어 한국산으로는 꽤 높은 편이다. 올려야 할 높이를 확인하고, 연화교를 건너 휴양림 관리사무소로 갔다. 다리를 건너자 바로 반겨주는 게 '용대 자연휴양림' 안내도다. 물론 매봉산도 정보가 있고, 등산로로 표기했다. 그런데, 거리와 범례는 찢어진 거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청테이프로 가렸다. 이유가 뭘까? 산은 오르지 말고, 계곡에서만 놀라는 건가? 어쨌든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입장료를 내기 위해 사무소로 향했는데, 매표소와 사람이 없다. 입장료가 없는 휴양림?
어쨌든 관리사무소를 지나 오른쪽의 계곡과 그 건너편 가옥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등산로 입구를 향해 포장도로로 올라가는데,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여성이 ‘어디 가냐?’고 묻는다. 관리자다. 해서 매봉산에 간다고 하니, 가지 말라고 말린다. 입산을 통제하는 거 같지는 않으나, 군인 얘기를 하는 거 보니, 칠절봉으로 가는 걸 말리는 거 같다. 해서, 알았다고 얘기하고, 길옆의 산딸기를 따 먹으며 위로 계속 가, 9시 21분에 펜션촌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주변을 둘러보고 기록으로 남길 건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위로 4분가량 올라가자 다시 안내도다. 이번 안내도는 청테이프로 가리지 않아, 등산로 입구에서 매봉산까지 3.7km라는 걸 알 수 있다. 고로 정상적으로 오르면 2시간 정도면 되는 거리라, 11시 반경이 도착이다.
9시 29분 야영장 아래 화장실에 도착해 보니, 이정표가 등산로 입구까지 1km라고 알려준다. 평일임에도 야영장에서 뛰어노는 애들과 그 아래의 이동식 가옥을 구경하며, 위로 올라 마지막 주차장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봐서는 앞의 고개를 돌아가면 등산로 입구다. 그런데, 그 고개를 도는 곳에 휴양림 직원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야영장 갑판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직진하면 산행을 막을 거 같은 분위기라, 그 방향으로 가지 않고, 그 전의 계곡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때 차가 도착하고 있어, 혹시 관리자일 모른다는 생각에 휴양림 도로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빠른 속도로 올랐다.
예상대로 계곡 옆으로 산악회 리본이 달린 희미한 등산로가 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대로 올라갔다가는 막판 급경사로 고생길이 훤히 보여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기로 했다. 산세로 봐선 그 능선이 정규 등산로다. 해서 계곡을 따라가다가 능선과의 거리가 가장 짧아 보이는 곳에서 치고 올라갔으나, 내가 생각한 능선이 아니다. 어쨌든 그 올라간 능선에도 희미하나마 길의 흔적이 있어, 오른쪽의 정규 등산로가 있는 능선을 주시하며 위로 가. 10시 7분경 능선 바로 아래에 도착했다. 기쁜 마음으로 쓰러진 나무를 헤치며 위로 오르자, 사람이 보여 휴양림 직원인 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런데, 남녀 한 쌍인 그 둘도 나를 보고 놀라더니, 혹시 계곡으로 올라간 사람 아니냐고 묻는다. 맞는다고 얘기하니, 그들도 나를 따라 계곡으로 올라오다가 길이 보이지 않아 돌아갔다고.
원래 정규 등산로로 갈 예정이었으나, 그 길목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셋이 보여 계곡 길을 선택했다고 하자, 그중 남자가 아래 관리사무소 여직원은 산에 오르지 말라고 했으나, 그 셋은 아는 체도 안 해, 부담 없이 올라왔다고 했다. 괜히 사서 고생한 건가? 어쨌든 그들이 막을 권한은 없으나, '오를 수 있네, 없네'로 다투는 게 싫어 계곡을 택했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다른 산꾼은 보지 못한 계곡도 탐험했고. 그렇게 그들과 몇 마디 더 나누고 거의 고속도로 수준인 등산로를 따라 매봉산으로 향했다. 울창한 숲 사이로 가끔 매봉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의 모습 외에는 보이는 게 없어, 그저 앞만 보고 가, 몇 개의 기복을 넘자, 등산 앱이 알람을 울려 확인하니, 만 보를 걸었단다. 그 시각이 11시 27분으로 원래 목표라면 매봉산 정상 부근에 있을 시간이나, 계곡을 탐험하느라 지체했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깐 쉬는 동안 주변의 야생화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마지막 깔딱이라 생각되는 급경사를 오르자, 거의 평지에 가까운 곳이 나타났다. 느낌상 정상이 멀지 않다. 지도에 의하면 칠절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매봉산을 왕복해야 한다. 말인즉 칠절봉으로 가려면, 매봉산에 갔다가 갈림길로 돌아와야 한다. 칠절봉 방향은 산꾼이 많이 찾지 않아, 갈림길을 찾는 게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예 핸드폰의 등산 앱 지로를 보며 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갈림길이 너무 뚜렷하다. 물론 산악회 리본도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물론 이정표도 있다. 그에 의하면 매봉산까지 남은 거리는 100m다! 갈림길에 배낭을 벗어 두고 갈까 하다가, 100m에 불과하고 배낭을 벗고 다시 매고 하는 게 더 귀찮아, 바로 매봉산으로 좌회전했다.
평지나 다름없는 길을 신이 나서 가는데, 등산 앱이 매봉산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줘, 그 순간부터 동영상을 찍으며 갔다. 그런데, 정상 직전은 이게 길이 맞나 할 정도로 무성한 풀이 앞을 가려 그걸 힘들게 뚫고 올라가야 했다. 막판 풀의 방해를 뚫고 목표보다 30분가량 늦은 11시 54분에 매봉산 정상에 도착하니,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고, 삼각점 안내문도 같은 높이로 서 있다. 일단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170번째 천고지에서 인증을 남기고 있는 거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남은 천고지는 다섯이다! 그런데 결과적인 얘기나 산행 후 천고지 목록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매봉산이나 칠절봉이 없다! 목록을 만들 때 가지 못할 산이라 생각해 포함하지 않았으나, 그걸 망각하고 언제 갈까 계속 고민했던 거다. 고로 남은 천고지는 변함없이 여섯이다. 다만, 전체 목록이 169에서 171로 둘 늘었을 뿐이다! 이런 식이니, 천고지 목표 달성이 싶지 않다!
인증을 남기고 나서 그래도 혹시 조망이 있나 정상 바위에 올라섰으나, 보이는 게 없다. 다만, 마산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조금 보일 뿐이다. 그리고, 올라온 반대쪽 무성한 풀 사이로 산악회 리본이 보이는 게 등산로다. 휴양림 말고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는 코스가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있다. 남교리에서 오는 등산로다.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칠절봉 갈림길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오늘 만난 유일한 산꾼 한 쌍이 반대쪽에서 오고 있어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서로를 지나쳐 각자 목적지로 향하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여성 산꾼이 '원점회귀 할 거냐?'고 물어, 일단 칠절봉으로 갈 생각이나, 상황에 따라 연화계곡으로 환 종주할 수도 있다고 답해줬다.
그들과 헤어져 12시 4분 휴양림 갈림길에 도착해 망설임 없이 리본이 잔뜩 달린 칠절봉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앞선 산꾼이 길을 잃어 고생했다는 산행기를 많이 봤는데, 그럴 만했다. 무성한 풀이 길을 가리고 있다. 고로 조금만 길을 잘못 들면 그대로 알바다. 해서 무조건 능선을 따라가고 길처럼 보여도 능선에서 벗어나면 그걸 버리기로 했다. 울창한 숲 사이로 가끔 보이는 칠절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그 방향으로 가는데,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점심은 준비해 왔으나, 의자를 가져오지 않아, 비를 머금은 풀이 아닌 퍼질러 앉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하기 전에는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태라, 사탕과 단백질 바로 에너지를 보충하며 갔다. 당시만 해도 퍼질러 앉아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일찍 하산해 식당에서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도 있다.
점점 고파오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길을 가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산악회 리본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휴양림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연화계곡’이다. 물론 직진하면 칠절봉! 돌다리도 두들기라고,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정확하다. 처음 계획은 아니나, 휴양림에서 만난 여성 관리자의 말에 따라, 매봉산에 오른 후 연화계곡으로 하산하는 방향으로 코스를 바꿀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직진 방향으로 출입 금지 구역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경고문이나, 안내문, 금줄 등이 없다. 말인즉 가도 된다는 얘기라, 망설임 없이 칠절봉 방향으로 직진했다. 오히려 길은 매봉산에서 연화계곡 갈림길까지보다 더 좋아,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그런데,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프다. 다행히, 비를 머금은 풀숲이 사라지고 일정한 간격으로 조림한 거로 보이는 숲이 이어져, 바지 젖을 걱정 없이 군데군데 보이는 바위나 쓰러진 나무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다.
☆ ☆ ☆ ☆ ☆
해서 쓰러진 고목에 넓은 풀잎을 깔고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물론 점심 먹는 동안, 땀에 전 윗도리를 벗어 나무에 걸어 말리는 걸 잊지 않았다. 기온은 높으나, 울창한 숲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바람도 간간이 불어 산행하기에 나쁜 날씨는 아니나, 습도가 높아 땀을 많이 흘렸다. 대략 28분 동안 준비한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주변의 모든 인적을 깨끗이 치운 후, 준비한 오이를 꺼내 입가심하며 다시 칠절봉으로 향했다. 혹시 전망대가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며 가는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한 쌍을 이룬 리본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인제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본으로 '인제천리길'임을 알리는 리본이다[기사].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가, 2시 8분경 조림된 숲에서 빠져나와 다시 풀숲에 들어섰다.
그 풀숲을 지나자 다시 울창한 숲이다. 그리고 드디어 나타났다. '산림유자원보호구역'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경고 플래카드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어쩌란 말인가? 아래로 내려가는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화계곡 갈림길로 돌아가란 말인가? 혹시 주민이나, 대간꾼이 다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찾아보니, 예상대로 있다. 그 길로 계속 가자, 개활지로 누군가, 정확히는 군인들이 관리한 흔적이 있다. 풀이나 주변 상태로 봐서는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거 같지만. 어쨌든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나는 개활지라 일단 주변을 둘러봤다. 절경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남으로는 설악산이, 북으로는 향로봉과 금강산이다. 오른쪽은 동해, 왼쪽도 파도치는 산맥이나, 봉우리나 산의 이름은 모르겠다. 북한 지역일 수도 있고. 그리고 다시 풀숲을 헤치고 위로 가자, 등산 앱이 칠절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다른 봉우리와 다름없이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2시 14분 백두대간 칠절봉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산림청에서 세운, 전면에 '백두대간 칠절봉'이라 음각한 정상석이 우뚝 서 있다. 뒷면은 '칠절봉' 소개다. 일단 정상석의 앞. 뒷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남한 백두대간 최북단 봉우리에서 다시 사방을 둘러봤다. 정상 직전 개활지에서 본 것과 같다. 다만, 아래에서는 칠절봉 정상이 북쪽을 막고 있었으니, 여기서는 발해물이 전혀 없다. 주변의 절경 조망이 끝나고,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그리고 향로봉을 배경으로. 인증까지 찍었으니, 더는 여기에 머물 이유가 없어, 백두대간 연결을 위해 진부령을 향해 하산을 시작해, 울창한 관목을 뚫고 내려가자, 임도다. 정확히는 작전도일 확률이 높다.
진부령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10분가량 가자, 관리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가 서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니 철책이 쳐진 임도 갈림길이다. 지세로 봐서, 왼쪽은 향로봉, 오른쪽은 진부령이다. 그리고 철책에는 산림유자원보호구역이라 출입을 통제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설마 모든 지역이 아니라, 철책 너머가 통제구역이라는 얘기겠지?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임도는 능선 즉 대간 위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아래로 우회하고 있다. 아예 안 하면 모를까 일단 백두대간에 들어섰으면 대간 위로 즉 능선 위로 하산해야 해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들어섰다. 그 능선 즉 백두대간을 따라 23분가량 가자, 왼쪽으로 비석 같은 게 보여 내려가서 보니, 대간꾼에게는 유명한 추모비다.
그 앞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주변을 둘러봤다. 앞선 대간꾼의 산행기를 보면, 추모비에서 내려가라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내려가면 임도다! 말인즉 백두대간에서 벗어난다는 거다. 대간꾼이 대간을 버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일단 임도를 버리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 계속 대간을 따라갔다. 그런데, 울창한 관목이 길을 막아 전진이 쉽지 않다. 이래서 임도로 가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가니, 이번에는 소나기다. 아니 기상청 친구들이 경기도 지역에 비가 온다고 해서 강원도 동북쪽 끝인 매봉산으로 피신 왔는데, 여기도 소나기면 어쩌란 말인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레인 커버를 꺼내 배낭을 덮고, 역시 우산도 꺼내 쓰고 아래로 내려갔다.
추모비에서 15분가량을 내려가니, 다시 임도와 만나, 도로로 내려서자, 저 앞에 비석이 보여, 저건 뭔가 하고 가봤다. 역시 같은 추모비다. 한 영령에 두 개의 추모비다. 추모야 많이 할수록 좋겠지만, 비만 놓고 보면 위의 전우들이 세운 돌비석이 훨씬 좋았다. 여기 대리석 추모비는 뭔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추모비가 두 개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해, 앞선 대간꾼이 추모비에서 아래로 내려가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이 추모비를 말하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임도는 대간을 벗어나고, 대간은 추모비 뒤로 이어지는 게 맞다. 해서 추모비 뒤로 돌아갔다. 쉼터다. 그리고 철책으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철저히 차단했다. 물론 위험 경고문과 보호 안내문이 있다. 비록 백두대간 연결이 목적이기는 하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소나기가 내리는데 사서 고생할 생각도 없어, 임도로 갔다.
임도로 진부령으로 향해 가는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정표가 서 있다. 'DMZ 트레일'의 정보를 알리는 게 목적이다. 그걸 보자 혹시 이게 향로봉으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정표까지 만들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할 정도면,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는 얘기라, 어떻게 하면 방문할 수 있는지 귀가해서 찾아보기로 했다. 결과적인 얘기나, 산행 후 중위와 얘기하며, 방법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어쨌든 추모비 뒤 철책을 넘으면 어디로 나오는지 궁금해 계속 능선 방향을 노려보며 진부령으로 내려가다가, 이정표에 의하면 '진부령 초소 1km' 이정표 200여 미터 아래 철책에서 그 흔적을 발견했다.
대단한 대간꾼이라고 감탄하며 내려가, 3시 50분에 진부령 미술관 뒤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초소가 보여, 검문에 대비하며 내려가 보니, 초병이 없다. 그리고 군 초소가 아니라, 산림청 초소다. 그리고 그 앞에는 'DMZ 트레일 안내도'가 서 있다. 그 안내도를 자세히 살펴본 후 뒤로 돌아서 보니, 저 아래고 부대의 정문과 위병소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출입을 막는 차단봉도. 어쨌든 3시 54분에 산행은 끝났고, 목표한 7시간을 약간 초과했다.
3
아래로 기어다니는 사람이 많았는지, 윤형 철조망을 두른 차단봉이 길을 막고 있어, 위병소 방향을 보니, 초병이 보고 있다가 다가와 차단봉을 열어주고, 관등성명과 방문한 목적을 묻는다. 감출 게 없으니, 사실대로 모든 걸 얘기했다. 특히, 용대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해 매봉산에 오른 후 칠절봉 방향으로 향해, 연화계곡 갈림길에서 출입 금지 경고문이나, 철책 등이 있었으면, 계곡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런 경고가 없어, 계속 갔다는 걸 강조했다. 그리고 칠절봉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왔을 뿐이라고. 그런데, 칠절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는 걸 모른다. 해서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전입해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얘들 교육은 시키는 건가? 이후 기다리라고 하더니, 상황실에 보고하러 갔다가 다시 오더니, 적어 달란다. 해서 수첩에 코스를 그대로 적어줬다. '용대자연휴양림 → 매봉산 → 칠절봉 → 진부령' 그걸 들고 다시 보고하러 간 사이, 다 끝난 거로 생각하고 진부령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지난 7월 2일 마지막 백두대간 연결 산행 때[산행기] 지나쳤던 진부령 전망대로 가, 주변을 둘러보고, 진부령 표지석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전망대를 떠나, 백두대간 진부령 정상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린다. 진부령 정상 반경 50m 내라는 얘기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3시 59분에 도착했다. 7월에 두 번 방문으로 백두대간을 칠절봉까지 연장했다. 그리고 인증을 남기기 위해 삼각대를 꺼내려고 보니, 없다! 물통 하나도! 길이 없는 관목 구간을 통과하는 사이 산신이 가져갔다. 산신이 달라면 기꺼이 주는 게 산꾼의 도리로, 그나마, 물통 하나는 남겨준 것에 감사했다. 어쨌든 인증은 포기하고, 원통행 버스 시간까지는 1시간 가까이 남아, 배나 채울까 하고 식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영업 중인 식당을 찾으며, 식당가를 가고 있는데, 반대편에 흰 차가 서더니, 중위가 길을 건너 달려온다. 그리고 ‘DMZ 트레일 신청자냐?’고 묻는다. 아니고, 등산객이라고 하자,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냐고 묻는다.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초병이 묻던 걸 다시 묻고는 바로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며,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해서, 그럼, 그늘로 가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자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그늘진 진부령 미술관 옆으로 가 지시를 기다렸다. 한번에 처리하면 될 걸, 지시만 대여섯 번 받은 거 같다. 그것도 7~8분 간격으로. 결국 산림청이 등판해 과태료를 물고 상황이 종료된 시각이 5시 20분경으로, 3시 55분부터 1시간 25분가량 걸렸다. 물론 애초 타려고 계획했던 5시 원통행 버스는 떠난 후다! 이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많으나, 술자리에서!
다음 차는 5시 55분이라, 과태료를 물리고 산림청 정직원이 떠난 후, 노년의 비정규 직원 둘과 세상 사는 얘기, 동네 얘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 후 먼저 그들이 떠났다. 그나마 남아 있던 물도 다 떨어져 편의점으로 가, 물 한 통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신 후 5시 45분경 도착한 버스에 탔다. 그리고 55분 정각에 출발해, 6시 30분경 원통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 시간표를 보니, 적당한 차가 안 보여, 창구로 가 동서울행 가장 빠른 차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7시 30분이 막차라고 알려준다. 일단 그 표를 끊고, 밖으로 나가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았으나, 군인을 상대로 먹고사는 동네답게 치킨 아니면 김밥이라, 어쩔 수 없이, 과거 선현이와 설악산 천제단 산행[산행기] 후 갔었던 '실내포장마차'로 가 그나마 1인 주문이 가능한 알탕과 공깃밥, 이슬이를 주문했다.
주문한 걸 다 먹고, 7시 20분경 계산을 하고 나와, 터미널로 가서 보니, 아직 차가 도착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다른 건 몰라도, 흘리와 물굽이계곡 물놀이 때문에 여길 다시 올거라, 정확한 버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래봐야, 성수기에는 환승을 제때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동서울행 버스가 들어와, 거의 완행이나 다름없이, 홍천 지역은 다 들리는 차를 타고 동서울에 도착한 시각이 9시 30분으로 두 시간밖에 안 걸린 건 이 구간 버스를 탄 이후 처음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백두대간을 칠절봉까지 연장한 걸 축하하겠다는 흥수를 만나, 0시 30분까지 마셨다. 이슬이를 네 병을 마셨나, 다섯 병을 마셨나? 이후 전철이 중간에서 끊겨 택시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해 2시경 도착했다는 게 가족의 전언이다.
처음 계획대로 '휴양림 매표소 → 차단기 → 등산로 입구 → 칠절봉 갈림길 → 매봉산 정상 → 칠절봉 갈림길 → 연화동계곡 갈림길 → 칠절봉 정상 → 임도 → 능선 갈림길 → 등산로 → 진부령 정상'의 17.6km(트랭글) 구간을 7시간 9분 동안 탐험했다. 이동 6시간 41분, 휴식 28분!
170번째 천고지 산행이지만, 앞으로 남은 천고지는 여전히 여섯 봉우리다. 산행 후 확인해 보니, 매봉산은 포기했는지, 목록에 없었다. 그런데, 왜 꼭 올라야 한다고 각인되어 있었을까?
해프닝은 있었으나, 백두대간 종주를 진부령에서 칠절봉까지 연장한 산행이다.
울창한 숲이라 매봉산에서 조망은 꽝이나, 칠절봉에서 조망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