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12. 3 주일예배설교
우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룻기 2:1-7)
서론
우리가 살다보면 우연하게 일어난 일들이 좋은 결과를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화) 노총각의 결혼 이야기
한 노총각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한 처녀를 치게 되고 그 처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몇 번 찾아가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필연적이 아닐까요?
여러분! 오죽했으면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래까지 발표되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분의 배우자를 만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일까? 물론 결혼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결혼 이후에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의심할지도 모른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섭리라면 어떻게 이러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날 수가 있지. 우리는 잘못된 만남이었어.”라고 한탄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우연과 하나님의 섭리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고 함께 은혜를 나누자.
본론
오늘 본문에는 너무나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것은 룻과 보아스와의 만남이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은 만남이다. 왜냐하면 룻은 모압 여인이고, 보아스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사는 신앙이 좋고 유력한 자(부유한 자)이기 때문이다(룻기 2:1).
특히 신명기 23:3에 보면 “모압인은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들을 멸시하고 천대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신앙이 좋은 보아스가 이방신을 섬기는 지역의 여인 모압 여인 룻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이들이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패가망신한 집안의 며느리요 과부로서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모압 여인 룻이 유대 베들레헴 땅에 신앙이 좋고 부유한 사람 보아스와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믿지 않는 가난한 과부와 신앙이 좋고 부유한 남자가 그 여인의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결혼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전혀 불가능하다. 혹시 모압 여인 룻이 절세의 미인이요, 돈 많은 과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보아스는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려는 독실한 신앙의 사람이기 때문이다(룻기 3:12-13).
따라서 이들의 만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두 사람 룻과 보아스가 보아스의 밭이라는 장소에서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훗날 이 두 사람은 결혼하여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게 된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우연일까? 하나님의 섭리일까?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섭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성경은 룻과 보아스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우연히 만난 것으로 표현한다.
룻기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우연’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그것은 참으로 불신앙적인 언사가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위의 구절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이 하나님의 섭리라면, 왜 “우연히..”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 그것은 룻과 보아스 이 두 사람의 만남 가운데 인간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룻과 보아스는 자신들이 만날 것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들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손길이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우연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룻과 보아스의 만남에 있어서인간적인 의도가 전혀 없었고,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 즉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되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여러분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가운데 룻과 같이 이러한 엄청나고 영광스러운 복을 받아 누리기를 축원한다.
* 그러면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가운데 룻처럼 엄청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을까?
1. 하나님과 사람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룻기 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 룻은 하나님을 섬기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겠다고 약속한다.
룻기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한다.
2.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룻기 2: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약속)에 충성된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서 자신의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 요셉을 보라.
하나님은 요셉에게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꿈(비전)을 주셨다. 그러나 요셉의 삶은 그 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난이 계속해서 닥쳐왔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고 만민의 생명을 구하는 꿈을 이루게 된다.
여러분! 본문에 나타난 룻은 참으로 비참한 처지에 있었다. 그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외로운 과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셔야 하는 힘든 처지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시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흉년을 맞아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모압으로 이민 갔지만 패가망신한 집의 며느리로서 오히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하는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소망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나오미를 따라 무작정 베들레헴에 온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룻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방인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제정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이삭을 줍는 것밖에는 없었다(레위기 19:9-10).
레위기 19:9-10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여러분! 룻에게 있어 이삭을 줍는 일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또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일이다(룻기 2:9).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요행을 바라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고, 이삭을 줍는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로 알고 최선을 다한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사실을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일하는 룻을 발견하고 그녀에 대해서 사환에게 물었을 때, 그 사환의 대답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사환은 룻기 2:7의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룻기 2: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이 구절은 룻이 얼마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된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바로 룻의 이러한 삶이 바로 룻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받게 된 비결이 아닐까?
하나님은 룻의 우연한 발길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시고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하시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주신 것이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인간의 우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여러분도 룻처럼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가운데 영광스러운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업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처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하시면서 그의 선하신 섭리를 따라 인도하신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선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도 본문에 나타난 룻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오늘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그럴 때, 매일의 삶 속에서 우연히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발길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선한 길로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룻처럼 영원히 빛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은총이 여러분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섭리; 세상과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