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집 욕쟁이 할머니 / 김석수
점심을 먹으려고 오랜만에 친구 셋이 죽집에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기 2인분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할머니 혼자 죽을 파는 식당이다. 그녀는 “오메 썩을 놈들 셋인데 두 그릇만 주라고, 한 놈은 안 묵을 것이여.”라고 욕을 퍼붓는다. 이곳에 처음 오는 친구는 “저 할매 보통이 아니다. 세 그릇 시키지 그래.”라고 불편한 듯이 언짢게 말한다. 잠시 뒤 세 그릇이 나온다. 3인분 같은 2인분이다. 새알 팥죽은 감칠맛이 나고 달짝지근하다. 먹고 나면 배가 불룩하다. 나가면서 얼마냐고 물으면 “2인분 시켰으니 두 그릇 값이지 이놈아, 잘 처먹었어?”라고 한마디 한다.
장날이면 그 집은 죽솥 안 새알처럼 사람이 들끓는다. 팔순 할매가 혼자 반죽하고 밀가루를 연잎처럼 넓적하게 민다. 팥물이 펄펄 끓어오르면 사리와 함께 연근 뿌리 가루를 넣는다. 팥물과 사리가 잘 엉키면 욕을 중얼거리면서 한 대접씩 상마다 갖다 놓는다. 점심때면 장꾼들이 우르르 죽집으로 몰려가 허기진 배를 채운다. 계산대 앞에서 이 집은 왜 혼자 장사하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글씨, 영감탱이가 좀 도와주면 오죽이나 좋아 뭣이 바쁘간디 죽도 못 먹고 가부렀당게.”라고 하면서 웃는다.
유명 정치인이 그 집 팥죽이 맛있다는 말을 듣고 지나가는 길에 수행원과 함께 들렀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서 자리가 없었다. 수행원이 높은 사람을 모시고 왔으니 따로 자리 좀 마련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이런 호랭이 물어갈 놈이 어디서 특별 대우를 해달라고 해? 먹고 싶으면 기다렸다가 처먹어.”라고 해서 꼼짝없이 문밖에서 줄 서서 기다렸다. 할머니는 그 정치인에게 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고 주문은 받겠지만 뻘소리 말고 빨리 먹고 꺼지라면서 정치 잘하라는 훈계까지 했다고 한다.
그녀는 열아홉에 이곳으로 시집왔다. 남편은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다. 그는 아이가 셋이 생길 때까지 1년에 한두 번 집에 들어왔다. 집에 먹을 것이 없었다. 여러 날 끼니를 걸러서 아이에게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았다. 시장에 나와서 남의 식당에 기웃거렸다. 아이 키우면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했다. 남편은 병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밉기도 했지만 불쌍했다. 병시중하느라 젊은 날이 훌쩍 지나갔다. 남편이 저세상으로 간 뒤 한두 푼 모아서 죽집을 차렸다.
어려운 시기에 시장 사람이 많이 도와주었다. 식당 손님 대부분은 동네 사람이다. 하루하루 일하고 사람과 부대끼는 맛에 식당에서 일한다. 그래서 편하게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선지 욕이 많이 나온다. 욕을 섞어서 말해야 정이 있다. 그녀는 찾아오는 사람이 잘 먹으면 맘이 편하다. 손님을 많이 받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단골에게 맛난 것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는 정이 많고 인상도 푸근하다. 밉지 않게 욕을 한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내와 함께 가끔 그 집에 가서 팥죽을 먹는다. 혼자 그 집에 가면 “각시는 어디다 두고 혼자 왔어? 한 그릇은 안 파는디.”라고 하면서 내게 나무라는 듯이 말한다. 빈자리에 앉아 있으면 한참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사발을 내밀면서 “다음에 혼자 오면 안 줄 거여.”라고 하면서 히죽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