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0년대🍁 | |
✿1757년 7월12일..22살(사도세자의 죽음-임오화변)
사도세자는 영조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자신의 형 효장세자가 일찍 죽자 그는 영조의 총애 속에서 컸는데요. 그는 무려 3살 때부터 글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그가 성장하면서 학문이 아닌 그림과 같은 기예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심지어 그는 1757년 22살에 이르렀을 때, '무기신식'이란 책을 만들 정도로 무예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네요. | |
| 🌹1900년대🌹 | |
| 🌲06년 일본 경찰, 경운궁의 경비권을 강취(경위원 폐지) | |
🌲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 드레퓌스에 무죄 선고
알프레드 드레퓌스.
프랑스 최고재판소가 1906년 7월 12일 1894년 독일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군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드레퓌스 대위에 대한 재심을 열고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7년전 영국으로 망명한 에스테라지 소령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혔음에도 권위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프랑스 군사법원은 계속해서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해왔다. 이날의 무죄판결은 그동안 유태인인 드레퓌스에 대한 군대내의 편견과 선입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프랑스 법원의 양심을 드러냈다.
드레퓌스 대위는 1894년 12월 22일 군사기밀을 독일에게 팔아넘겼다는 혐의로 프랑스 군사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단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건은 에밀 졸라가 ‘나는 규탄한다...’는 6단자리 기고문을 파리의 ‘여명’이라는 조간신문에 게재함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집단적 편견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드레퓌스를 구해낸 프랑스 지식인의 집단적 저항은, 지식인의 양심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 |
🌲08년 황해 송화에서 의병 150명, 왜병과 접전 🌲09년 사법 및 감옥업무 위탁에 관한 기유각서 조인 (10월 법부 폐지) 기유각서 조인 : 사법과 감옥 사무를 일본에 위탁. 🌲22년 독립운동가 김영란(1894-1922) 사형 당함 🌲25년 남한 일대에 대홍수, 697명이 죽거나 다침, 가옥피해 5만9942호 🌲31년 만보산 사건 발생(만주 水田개간공사로 한ㆍ중 농민 충돌, 중국인에 대한 보복습격사건 ) 🌲46년 제1회 여자경찰관 졸업 | |
🌲48년 대한민국 헌법 국회 통과 제헌국회, 대통령 중심제 헌법 의결 17일 국회의장이 서명하여 공포
1948년 - 7월12일..제헌국회, 헌법 제정
1948년 오늘! 제헌국회는 대통령책임제와 국회 단원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했다. 제헌헌법은 일본 헌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모방해 3권 분립을 규정하고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또 미국식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고 지방자치를 규정했다. 두 달 전 5.10 총선거로 성립된 제헌국회는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양원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강력한 주장으로 대통령책임제와 국회 단원제로 수정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같은 해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쫓겨 1948년 오늘 국회에서 첫 헌법이 통과됐다. 제헌헌법은 닷새 뒤인 7월 17일 공포됐다 | |
🌲50년 대전 협정 체결 : 주한 미군의 범죄 재판권과 국군 통수권을 미군에 이양. 🌲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및 휴전협정 합의 등 발표 🌲61년 남원,영주지방수해(이재민 15,000.사망119) 🌲70년 주한미군의 관할권에 관한 협정(대전협정) 체결 | |
🌲71년 제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국방각료회담 개칭) 개최(서울)
1971년 제1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개막
1973년 9월 12일 개막된 한미안보협의회의.
한반도의 안보에 관한 제반 문제를 중점적으로 협의하는 제1차 한미안보협의회의가 1971년 7월 12일 서울에서 개막됐다. 회의는 1968년 5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국방장관 회담이 모태였다. 제1차부터 3차 회의까지는 한미국방장관 회담이었으나 1971년 회의부터 양국 국방장관을 대표로 하는 한미안보협의회의(한미연례안보협의회)로 칭했다.
협의회는 한미간의 각종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협의기구로 매년 교대로 회의를 가졌다. 그 후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창설에 따라 양국간 군사적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양국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군사위원회가 1978년부터 별도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 |
🌲79년 차범근, 서독 축구팀 프랑크푸르트팀 입단
차붐 선수시절의 차범근 커리어 | |
| 🌲80년 계엄사, 신부등 카톨릭계 인사 7명을 광주사태 유언비어유포 혐의로 연행 | |
🌲80년 계엄사 합수부, 김대중 등 9명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구속
내란음모혐의로 구속된 김대중씨(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문익환씨(왼쪽).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1980년 7월 12일 김대중씨 등 9명을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반공법, 외환관리법 위반 그리고 계엄포고령 위반 등 혐의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김대중씨 등과 같은 혐의로 송치된 사람들은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고은 김상현 이신범 장기표 심재권 등이었다.
원심과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씨에 대해 대법원은 1981년 1월 23일 그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이 내려진 바로 같은 날 김대중씨는 무기로 감형됐다. 무기로 감형된 김대중씨는 1월 31일 청주교도소로 이감됐고 이듬해인 1982년 3월 3일 다시 무기형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았다. 그는 같은 해 11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한달여 뒤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났다. | |
| 🌲82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 개최 - 제22회 하계 올림픽 모스크바, 서방 60여 개국 불참. | |
🌲 82년 이탈리아, 제12회 월드컵축구대회서 서독 꺾고 우승
이탈리아가 월드컵을 차지했다. 1982년 7월 12일 새벽 마드리드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열린 제12회 스페인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접전끝에 서독을 3대1로 물리치고 44년 만에 대망의 월드컵을 가슴에 안았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2회(1934년) 3회(1938년)에 이어 브라질과 함께 영광의 3번째 우승국이 됐으며 월드컵을 영구 보존하는 두번째 국가가 됐다.
1982년 제12회 스페인 월드컵 우승국 - 이탈리아
전날 벌어진 3~4위전에서는 폴란드가 프랑스를 3대2로 물리쳤다. 이탈리아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은 한데 엉켜 울었고 응원석도 국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이날의 영웅은 단연 첫 골을 헤딩슛으로 성공시킨 로시였다.
로시는 개인득점 6골로 단독 득점왕이 됐다. 결승전이 거행된 10만명 수용능력을 갖고 있는 베르나베우경기장 주위에는 11일 저녁부터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이들 대부부은 차안에서 밤을 지새거나 경기장 근처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1982년 제12회 스페인 월드컵 : 우승국 : 이탈리아, 준우승국 : 독일(서독), 아디다스 골든슈 수상 :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6골아디다스 골든볼 수상 :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 (관련 : 미셀 플라티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