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법고 예비 신학생들과의 미사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
2023. 10. 4.
<오늘 강론은 예비신학생을 중심으로 하려고 하니, 다른 분들께서는 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예비신학생 여러분, 여러분이 예신반 학생이 되신 것이 여러분 자신이 원해서 되었거나, 주위 분들의 권유를 받아서 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크게 볼 때, 둘 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점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제가 사제의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말씀드립니다.
1958~9년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중학교를 좋은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서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유학 -> 6학년 말에 집에 다녀온 형이 저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기도생활과 주일지키는 것을 잘했지만, 신부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사랑해주셨고 제가 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사제가 되는 길을 권하시니, 분명 좋은 것을 권하신다고 저는 믿었고,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신학교 가기로 결심하여,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신학교 간 것은, 하느님께서 저의 아버지를 통해서 저를 부르셔서 간 것이라고 저는 믿었습니다.
예신생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이 직접 신학교에 가고 싶어서 예신반에 들어오셨든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왔든지, 크게 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예신반으로 부르신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신생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왜 여러분을 부르셨을까요? 미워서? 야단치시려고? 그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에게 무언가 중요한 임무를 주시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높으신 분이 여러분을 부르신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부족하기에 때로는 두렵기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아버지/어머니가 나를 부르실 때처럼,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게 달려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해 주시고 큰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부모님 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사랑과 신뢰 가득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나시며,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확실한 응답을 주님께 드리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고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시며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번 여러분을 부르셨기에, 당신의 부르심에 잘 따를 수 있도록 여러분을 지속적으로 사랑해 주시고 지혜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여러분 중에, 자신이‘예비신학생’신분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있는 학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사제가 될 마음도 있고, 사회 대학을 가거나 직장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 학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때가 있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고등학생으로 여러분의 인생목표를 분명히 정할 때입니다. 제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쌍갈래 길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도 손해요, 신학교를 가려고 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아직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학생이 있다면, 속히 결단을 내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러분이 쌍갈래 길에서 단호한 결단을 내려 사제의 길을 걷고자 결심을 하면, 여러분의 삶에는 마술 같은 일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사제가 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마치 처음 에베레스트산 등반을 할까 말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과 같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기로 결단을 내리면, 그 사람은 그후부터 등반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려고 힘쓰고, 장비, 등반 루트를 정하고, 식량 등을 챙기고 몸만들기를 열심히 할 것이다. 이처럼 여러분도 ‘나는 사제가 되겠다’는 확고한 결단이 내리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집중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학생의 예신반에서의 생활이 확 달라질 것이다.
물론 내가 이미 목표를 결정한 다음에 가끔은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잠시 후회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잠시 동안 후회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가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빨리 떨쳐버려야 한다.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계속 고민을 하게 되고, 그렇게 살면 그의 삶은 쭉쭉 뻗어나가지 못하고 오그랑이 들게 마련이다. 이는 결코 현명한 삶의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해보고 싶은 일들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이런 갈등 중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즉, 유혹은 물리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제는, 여러분 중에 이미 신학교 가기로 마음을 굳힌 학생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예비신학생 여러분, 예수님의 12사도들과 바오로 사도를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고 하시자 즉시, 배와 그물, 아버지와 고향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번에는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12사도들처럼 마음을 다해 예수님께 “예, 따르겠습니다”하고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여러분을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지를 지도신부님을 통해 배워나가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가진 좋은 초심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다음 성경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2베드 1,10-11: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뽑아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고 또한 여러분에게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예신생 여러분에게 딱 맞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시작하시면서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안녕과 평안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편히 먹고 쉬실 곳조차 없는 방랑 복음전파자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일상적 관습(예: 아버지의 장사에 가는 일;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는 일)에서 초연하여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선택과 헌신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뛰어넘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행위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루카 8,19-21 참조) 관계의 변화, 곧 ‘예수님과의 새로운 가족 관계’의 설정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아가 –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남녀 사랑하는 관계로 들려주고 있고, 특히 여자 수도자들은 주님을 정배로 생각하고 일생을 살아가며, 주교가 낀 이 반지도 마치 결혼반지처럼 주님과 주교와의 깊은 관계를 잊지 않기 위하여 몸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혈연관계를 뛰어넘어서, 주님과의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을 따르려는 예비신학생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모든 것들을 버린 여러분의 선배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의 12사도들과 사도 바오로가 바로 그분들이십니다. 여러분, 그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떻게 예수님을 따랐는지 보십시오!
마태 4,18-22: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모든 것(그물, 배, 아버지)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 9,9: 세리였던 마태오는 세관이라는 직장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도행전 9장: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바오로)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경력과 과거와 귀하게 여기던 것들((바리사이로서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직업 등)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에게 이롭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쓰레기로, 해로운 것으로 여기셨습니다(필리 3,7-8 참조).
이처럼 12사도들과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만 생각하는 그런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계획을 설계하는 것을 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자기 가정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이익과 세상적 성공과 영예를 추구하는 삶을 살든가,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을 위하여, 교회나 국가나 세상을 위하여 자기 삶을 내놓는 헌신적인 삶을 살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후자가 사는 삶은, 자기 삶을 공동선/공동이익을 위하여 내놓지만, 그렇게 하여 도움받는/사랑받는 이들이나 교회, 국가, 세상이 보다 행복해지는 것을 보고 기쁨과 감사, 보람과 행복을 누리는 생활입니다.
사제의 길을 걸으려고 결심하신 예비신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좋은 길을 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여러분을 부르셨기에,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굳게 믿고 신뢰하며, 주님을 친가족 보다도 더 사랑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기쁨과 감사의 생활, 보람과 행복한 생활을 하시게 될 것이고,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