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길
어제까지 겨울을 재촉할 비가 내린 십일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다. 일기예보는 기온이 급전 직하해 영하권으로 곤두박질한다 했고 재난 문자에서도 한파경보에 대비하십사는 안내가 뜨고 있다. 한밤중 잠 깨어 책을 몇 줄 읽다가 날이 밝아오기 전 산책 행선지를 정해 보온도시락을 챙겨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대학 앞을 거쳐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갔다.
역사로 들어 매표창구에서 한림정역으로 가는 표를 구해 정한 시각에 출발하는 순천에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로를 탔다. 진례터널을 빠져나간 열차는 들녘과 공장 지대를 지나 진영역에 잠시 멈추었다가 연이어 세운 한림정역에서 내렸다. 한적한 시골 간이역과 같은 한림정역에는 역무원이 상시 근무하지 않아 용역의 환경미화원도 내가 타고 간 열차에 함께 타고 가 근무를 시작했다.
역을 빠져나가 철길과 나란히 북녘으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이 차가워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둘러도 한기가 느껴졌다. 역사와 인접한 시멘트 저장 창고 곁 갓길에는 화물연대에서 파업 투쟁을 독려하는 구호가 걸린 펼침막과 함께 텐트가 설치되어 밤을 새워 투쟁한 몇몇 조합원들이 보였다. 시멘트는 아스콘을 제조하는 직접 원료라 파업이 계속되면 파장이 클 듯했다.
벼농사 추수가 끝난 드넓은 한림 들녘은 뒷그루 작물을 더 신경 써서 가꾸었다. 비닐하우스단지가 들어서 여러 특용 작물을 키웠다. 토마토나 오이를 비롯해 계절을 앞당겨 봄부터 여름 채소를 따내는 농사였다. 비닐하우스단지가 아니라면 논바닥에 비닐을 멀칭해서 마늘이나 양파를 심어 벌써 이랑이 파릇파릇했다. 가뭄을 타던 새싹들은 이번 내린 비에 한층 생기를 띠게 되었다.
시전마을 앞을 지나니 텃밭에 가꾼 김장 채소 가운데 무는 뽑아 처리되었으나 배추는 상당량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올해는 여름부터 초가을 사이 무와 배추 가격이 고공행진을 해서 농가에서는 가을 채소 경작 면적이 늘고 작황이 좋았다. 이런 관계로 무와 배추 시세는 안정되어 소비자들의 김장 경비는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으나 농가 수지 타산은 재미가 적을 듯했다.
배수장이 가까운 화포천 늪지에 고인 물은 바람이 세게 불어 물결이 일렁거렸다. 북녘에서 선발대로 내려왔을 큰고니 가족 여남은 마리가 물결을 따라 둥둥 떠다녔다. 덩치가 큰 고니들의 특성은 호수나 수면이나 늪지의 흙바닥에서 먹이활동을 즐겼다. 몸집이 작고 깃털이 새카만 물닭은 물 위에 동동 떠다니면서 추위도 잊은 듯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한 무리 오리들도 오글거렸다.
한림배수장 곁의 신촌마을에서 술뫼생태공원 강둑으로 올라섰다. 강 건너는 밀양 상남의 강둑이 밀양강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그 아래 뒷기미나루는 낙동강 파수꾼 요산 김정한의 소설 배경이다. 술뫼 둔치 생태공원에는 색이 바랜 물억새와 갈대들이 넓게 펼쳐져 평원을 이루었다. 강바람을 마주하고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니 체감온도는 영하권을 밑돌 듯 살을 에는 추위가 느껴졌다.
술뫼마을에 이르러 지인 농막에 들리니 농장주는 부산 본가로 복귀하고 문이 닫혀 있었다. 전망이 탁 트인 밭둑에서 낙동강을 굽어보고 다시 자전거길 따라 술뫼 파크골프장을 거쳤다. 추운 날씨에도 차를 몰아온 골퍼들이 삼삼오오 팀을 이루어 작은 공을 깃발이 꽂힌 구멍을 겨냥해 몰아갔다. 나는 그들의 취미와 무관한 혼자만의 트레킹이라 소 닭 쳐다보듯 하고 그냥 스쳐 지났다.
가동마을을 돌아가는 둔치 어디쯤 쉼터에서 배낭에 넣어간 도시락을 꺼내 비웠다. 찬바람에 손가락이 굳어 잘 펴지질 않아 수저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마 보온도시락이라 온기가 있는 밥을 비울 수 있었다. 이른 점심 끼니를 해결하고 물억새가 일렁이는 둔치의 자전거길을 걸어 유등마을에 이르렀다. 배수장 수문 밖 낙동강 물길에는 청둥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22.11.30
첫댓글 첫추위라 매섭습니다
건강조심하셔요
염려, 감사합니다.
이 정도 추위는 우리 모두
거뜬히 넘겨 건강한 나날을 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