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모임 나가서 점심 먹고 올게요'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날마다 삼식이가 된 나는 집밥이나 먹는다.
하루 세 끼니.
아내는 성당 모임에 나갔다.
나는 사이버 세상인 컴퓨터에서 잡글 쓰고, 댓글 달다가 잠깐 쉴 겸해서 주방에 나가서 뭐 좀 먹거나 마실 것이 있나를 찾았는데도 없다.
당뇨약을 10년도 훨씬 넘게 먹는 남편을 배려해서인가? 군것질을 남기지 않았다? 냉장고 냉동고 문을 다 열어도 조리하지 않는 식재료, 반찬만 있다.
주방 뒷편에 보니까 고구마를 담은 비닐 봉지가 두 개가 있다.
일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한 바퀴 돈 뒤에 어둑컴컴해서야 귀가하는데 길 모퉁이에서 농작물을 파는 작은 트럭을 보았다.
벌전 좌판이다. 작은 바구니에 담겨져 있는 농산물 가운데 고구마가 보이기에 두 바구니를 사서 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다.
아직도 비닐봉지째.
오늘 오전에 아내가 외출했고, 나도 출출한 생각이 나서 비닐 봉지 안에 든 고구마를 꺼내려는 순간 내 눈이 크게 떠졌다.
고구마가 상했고 곰팡이가 잔뜩 서렸다.
왜 공기 소통이 안 되었나?
그게 아니다. 고구마를 캘 때부터 부러지고, 살짝 냉해를 입은 불량 고구마를 팔았다는 뜻이다.
어둑컴컴한 저녁무렵에 귀가하다가 사 온 내가 잘못이지.
여러 차례나 물건을 팔아주었는데도 이번에는 왜 불량 농작물을 팔았지?
나도 안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지금도 산골마을에 주소지를 둔 사람이기에 농사 짓는 게 얼마나 어렵고, 농작물도 상품가치가 있는 것도 있고, 상품가치가 전혀 없는 것도 수두룩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해서 고구마를 캘 때 부러진 것, 호미에 찍힌 것, 살짝 얼어서 겉껍질에 검게 퇴색하고, 곰팡이가 스며 든 것은 애당초부터 시장에 유통해서는 안 된다. 설혹 유통을 시키려면 소비자한테 사전에 양해를 구했어야 이치에 맞다.
도시 장사꾼은 슬쩍 속이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상품은 다 팔아야 하겠지만서도 사전에 소비자가 알 수 있게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신뢰가 있으면 싶다.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서로를 배려한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시골 태생인 내가 별 것을 다 탓하는가 싶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든 그 작은 물량에 내가 옹졸해졌다.
한 번만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 게 도시 소비자의 심리이다.
하나의 예다.
1960년대 말, 대학생 초년생인 나는 서울 남대문 시장에 구경 갔으며 리어커에서 파는 와이셔츠를 샀다.
빨간색.
돈 치룬 뒤에 고개를 가우뚱했다. 근육질인 내 몸뚱이. 작을 성싶어서 바꿔 달라고 했더니 장사꾼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정을 해도 그 장사꾼은 끝내 거절했다.
나는 결심했다. 남대문 시장에서는 결코 물건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이 약속은 벌써 50년도 더 넘는다. 남대문 시장에 별로 가지도 않거니와 간다고 해도 물건을 사지 않는다.
바가지를 씌운 듯한 상술은 딱 한 번뿐일 게다.
나는 퇴직한 뒤 시골로 내려가서 고구마를 해마다 심었다.
많게는 모종 700 ~900개.
다 캔 뒤에 보일러 광에 임시로 보관했는데 늦게 캔 탓으로 고구마가 마구 상했다.
냉해를 입고, 쉽게 상한다는 것을 체험한 뒤로는 조금만 심었다.
또 늙은 어머니가 너무나 늙어서 힘들어 갈수록 나도 어머니의 안위에 걱정해야 했기에 작물농사 규모는 자꾸만 줄여나갔다.
과일나무 꽃나무들이 늘어가기에 채소류의 농사채 규모도 들어줄었다.
대신 마을사람한테 고구마를 사 먹는 때가 늘어났다.
아내와 나는 큰 것보다는 중간치기를 더 선호했다. 크다고 해서 좋은 상품성을 띈 것은 아니기에.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생고구마를 냄비 안에서 삶았다. 삶은 시간을 재면서.
몇 차례 냄비 뚜껑을 열어서 젓가락으로 살짝 찍어서 잘 익었는지를 확인했다.
음식물은 만든 뒤 그 자리에서 뜨거울 때 먹는 게 가장 맛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거듭 네 개를 먹었다.
당뇨병환자가 고구마를 욕심 내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고구마 껍질은 어찌한다?
음식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데도 오늘은 베란다 위에 올려놓은 화분 속에 살짝 묻을까?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화분 속에서 껍질이 썩으면 냄새도 나고 벌레도 꼬일 텐데.
아파트 화분이 뭐 텃밭이라도 되는 거여?
화분농사를 짓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골사람이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시골에 가 있기에.
시골에서 농사 짓는 분들이 부럽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꼼지락거리고. 일한 만큼 터가 나는 농사이기에 더욱 그렇다.
고구마 삶은 물은?
식힌 뒤에 화분 흙에 나눠서 부어줄 계획이다.
도시 아파트 안에서 화분농사를 지으려면 이런 궁량도 해야 한다.
그나저나 맛있는 고구마를 벌써 네 개나 먹고는 콩나물 반찬 젓가락으로 쳐들어서 먹었더니만 점심은? 건너뛸까?
작은 것으로도 행복해 하는 오후이다.
三食이가 된 나는... 또 빙그레 웃는다.
식물이 있는 곳으로, 가을들판이 있는 그곳으로... 더 나아가면 갯바람 불어오는 그 곳으로 가고 싶다.
더 욕심을 낸다면 단풍잎 물들어 내려오는 높은 산으로 힘들어서, 숨 내면서, 후이적 후이적 걷고 싶다.
일전 '꽃섬농원'에서 택배 보낸 고구마 5박스.
하나는 큰사위네한테 주었다.
앞으로도 큰아들네, 작은딸네한테 나눠준다고 한다.
그럼, 아내와 내가 먹을 수는 박스는 두 개? 그거 부족하잖여!
퇴직한 지가 벌써 10년도 더 되는 나는 三食이다.
하루 세 끼 집밥을 먹기에 아내한테서 어쩌면 미움을 받을 게다.
어제 저녁무렵에도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에서 빠져 나온 뒤 소형 트럭을 세워놓고 감자 고구마 애호박 버섯 등을 파는 장사꾼을 보았다. 깡마르고 꾀죄죄한 늙은 영감이다. 그 옆에서는 틔밥을 파는 아주머니도 있고...
석촌호수 서호 놀이터 안에는 운동기구가 있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무척이나 많이 꼬인다. 대부분 나이 많은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저녁 무렵에 귀가하면서 푸성귀를 사서 집으로 가져가기에 장사꾼도 전을 벌린다.
일전에 이 분한테서 산 고구마 두 바구니.
내가 얼른 먹어야겠다. 아파트 지키미, 삼식이가 되었기에.
첫댓글 집에서 식사를 하셔도 가끔은 아내가 집을 비우면 반도 해놓으시고 하시면 아내가 좋아 하실겁니다.
저희 남편은 일하시면서도 밖에 나가 놀고있는 저한테 밥해 놓았다고 같이먹자고 전화온답니다.
그럴까요?
퇴직한 뒤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밥 하는 거 길들였지요.
아흔 살을 훌쩍 넘긴 어머니와 밥을 먹으려면요? 죽처럼 질턱하게 짓거든요.
이런 밥을 서울 사는 아내가 좋아할까요? 아내는 꼬두밥. 마치 술밥처럼 물기 없이 밥 짓거든요. 그게 맛이 있다며...
사실 밥 짓는 게 아무 것도 아니지요. 쌀 씻어서 보온밥통에 넣고는 전원 보턴만 누르면 저절로 되는 세상이기에...
밥도 지어서 그 자리에서 먹으면 그게 맛이 있지요. 시간이 지나면 맛이 줄어들대요.
저... 바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남자였어유. ㅠ.ㅠ. 지금은 직업도 없기에..
건달농사꾼 흉내를 내지요.
서울로 도로 올라와서는 이렇게 사이버 카페에서 농사 짓는체..
ㅋㅋㅋㅋㅋㅋㅋㅋ 사는게 참 힘듭니다.
제친구 남편도 평생 고생하고 퇴직해서 집에 계시는데 일주일에 한두번 강의 나가는 것 외에는 종일 집에만 계시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종일 집에 계시니 친구가 미칠려고 하더라고요. 차츰 헬스도 보내고,.(남편이 일부러 지에서 먼 곳으로 헬스를 끊었다고)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가시더라고요. 이제 일년이 조금 넘었는데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부부가 노력을 많이 해겠지요.
@까마귀
저는 퇴직한 그날부로 시골로 내려가서 그때까지 혼자서 고시랑거리면서 살던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지요.
퇴직한 뒤의 허무함을 텃밭농사 지으면서 달랬지요.
처자식은 서울에 남고... 몇 해 그렇게 살았지요. 그 엄니 인생말년 병원에서 돌아가신 뒤에서야 저는 서울로 올라오고... 시골집은 겨울철에는 비워두고요. 자꾸만 텃밭 세 자리가 억새 잡초가 점령하는군요.
@까마귀 저는 퇴직한 그날부로 시골로 내려가서 그때까지 혼자서 고시랑거리면서 살던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지요.
퇴직한 뒤의 허무함을 텃밭농사 지으면서 달랬지요.
오늘은 삼식이 남편이랑 경주 불국사근처로 벼메뚜기 잡으러 갔엇습니다..오십여년만에 잡아보는듯 합니다..울대장은 처음 하는일이라 없다는 소리만 연짱 해대더군요..
점심 한그릇 사먹고 경주에 핑크뮬리 구경하고 귀가햇더니 ..아유 삭신이 다 아픕니다.
어릴적생각하고 떠낫는데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요.
세월이 야속합니다..
예전 1950년대 말.. 시골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서 닭장 안에 넣어주면 닭들이 잘도 쪼아 먹었지요.
커다란 방아개비는 불에 구워먹고... 1960년에 대전으로 전학 갔는데 대전 촌놈들은 메뚜기를 잡아서 볶아서 반찬하대요. 부럽습니다. 메뚜기 잡는 활동이...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는 산림조합중앙회 건물이 있는데 도로변에 핑크뮬리 화분으로 장식했더군요.
아주머니들, 어린아이들은 사진 찍고....건달농사꾼인 저는 '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씨앗 떨어지면 밭 다 버리겠는걸' 하면서 걱정이나 했지요.
도시사람과 시골에 주소지를 둔 사람과의 차이이겠지요.
저는 그저 먹을거리나 찾는 농사꾼이지요.
핑크뮬리
저도 올해, 얼마 전에서야 처음 보았습니다.
오늘도 그 씨앗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텃밭에서는 잡초일 터... 오늘 서울 산림조합중앙회 건물 빈 터에 억새 등 잡초와 화초가 든 큰 화분이 잔뜩...
세상에나. 제 텃밭 세 자리에서 가장 골치아픈 잡초가 억새인데... 이게 서울 도심에는 거리화단의 장식용이라니...
세상 이치는 생각차이에 따라서 가치가 사뭇 달라지겠지요.
핑크뮬리 사진이 좋군요.
바른 생활 사나이로 평생 살아오신 게 느껴져요 삼식이 하실 자격이 되셔요^ ^
당뇨가 있으시군요ㅠㅠ
잡곡밥 드셔야겠어요..
쌀밥이던 잡곡밥이던간에 혈당수치는 거의 비슷하고요.
단지 잡곡밥이 쌀밥보다 소화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일 뿐 당의 본질을 같다고 봅니다.
잘 먹어서 생긴 병일까요?
아직은 왜 당뇨가 생기는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히지 못했고, 단지 하나의 임시처방으로 약 개발하고, 음식물로 조율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먹을 거 다 먹습니다. 먹는 재미가 좋지요. 단 과식은 안했으면, 과식하더라도 한 두 번에 그치도록 자제해야겠지요.
예전에는 쌀이 비쌌는데 지금은 잡곡이 훨씬 비싸서...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네요.
"큐어링"이라고 해서
잘린 고구마도 제대로 아물게 하면 상품이 되지요 문제는 온도&습도 그게 조금만 보관 잘못해서 탁나고 곰팡이가 날 수 있어요 농사꾼들이 젤 어려운 숙제가 그래서 보관이랍니다^ ^,,
공기 잘 통하는 곳에 두면 상처난 부위가 큰 탈 없이 아물지요.
아무래도 제가 비닐봉지에 오랫동안 그댈로 놔둬서 그럴 겁니다. 도시 아파트에서는 바람 소통도 안 되고...
농산물은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나고 등 차이가 엄청나겠지요. 모두가 다 소중한 먹을거리입니다.
잘났던 못났던 간에 잘 보관해서 적절하게 다 소비되었으면 합니다. 그게 식물한테도 고마워하는 길이고요.
댓글 고맙습니다.
제일 어려운 숙제는 농산물을 제때에 다 잘 파는 것...
그래야 내년에 또 일할 의욕과 생산자본이 생기거든요.
정말 농사는 어렵지요 베테랑들도 한순간에 망치는게 농사더라구요
배워도 배워도 어려운게 농사인거 같아요
아직은 아주아주 초보이지요
저는 '농사는 해마다 새롭게 배운다'라고 봅니다.
해마다 날씨가 다르거든요. 대충은 얼추 맞지만 진짜는 해마다 다 다르거든요.
씨앗, 땅, 수분, 날씨, 거름 등도 다르기에.
늘 배우고, 연구하고, 경험해야겠지요.
누구나 다 초보이지요. 우리나라 식물보유숫자를 인터넷에서 검색했지요.
자생식물 4,179종. 재배식물 10, 327종, 귀화식물 321종.
언제적 통계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숫자이네요.
이처럼 많은 종류 가운데 극히 일부만 재배하는데도 힘이 들겠지요.
늘 배운다는 생각이면 기꺼이 즐거히 식물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지겠군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