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투어를 나서
올해부터 문학 동인 넷과 매달 다녀오던 트레킹이 지난달은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건너뛰었다. 한 회원이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팔목 골절상을 입어 수술 후 깁스 상태로 열흘 넘게 입원해 불편을 감내했다. 짧은 병문안을 다녀오면서 나는 그동안 수없이 다닌 산행이나 산책에서 가벼운 찰과상도 입지 않음은 조상의 음덕이거나 뒷골 여우가 돌봐 준 것으로 감사히 받아들였다.
십이월 첫날은 동인들과 트레킹이 아닌 갤러리 투어에 나서기로 했다. 어제부터 기온이 급전 직하한 영하권으로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둘러도 옷깃을 여미게 했다. 이웃에 사는 문학 동인이 운전한 차로 진해에서 넘어온 회원과 동승해 창원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로 가서 아직 깁스를 풀지 않은 회원을 태웠다. 아침나절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로 가는 도중에 잠시 한군데 들렸다.
충혼탑 근처 창원수목원 언덕으로 올라 쉼터에서 한 회원이 챙겨온 따뜻한 커피로 한담을 나누었다. 길섶 산수유나무에 조랑조랑 맺힌 빨간 열매는 새들이 겨우내 먹잇감으로 삼아도 될 듯했다. 곁에는 가시가 박힌 대추나무와 밑둥치가 울퉁불퉁한 나이 든 모과나무도 보였다. 시골집 마당귀서 옮겨왔을 높이 자란 감나무는 까치밥으로 남겨 있을 법한 홍시는 하나도 없어 허전했다.
하늘정원에서 수목원 중심 시설로 열대식물을 키우는 대형 유리온실에 드니 남국의 여러 종류 상록 화초와 형형색색 선인장을 볼 수 있었다. 내게는 철 따라 우리 고장 산천을 주유하며 눈익게 봐왔던 들꽃과 사뭇 다른 이국적 정취가 물씬한 풀꽃과 나무들을 만났다. 마침 수능을 마친 고3 여학생들이 현장학습을 나와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학업에 지쳤던 심신을 힐링하고 있었다.
일행은 수목원에서 미술관 투어 첫 코스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창원공단 경남스틸 공장 부속 송원갤러리였다. 기업 경영자가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 일원으로 공장 내 상설 갤러리에서 지역 화가들에게 작품 전시 공간을 제공했다. ‘김종원–미의 역정’은 현 도립미술관장으로 재직하는 작가의 서화전이었다. 그의 독특한 서체에서 묻어난 묵향과 회화적 색채감을 동시에 접했다.
송원갤러리를 나와 점심 자리를 가졌는데 한동안 병상에서 갑갑한 생활을 보내다 나온 회원이 퇴원 기념으로 마련한다기에 황송하기만 했다. 도심을 벗어나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마을 고갯마루 오리구이 식당에서 신선한 쌈을 곁들인 넉넉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식후에 동읍 남산마을을 지나다가 예전 근무지 동료였던 퇴직 선배의 블루베리 농원에 들려 안부를 나누었다.
퇴직 후 칠순에도 건강한 농부가 된 선배와 작별하고 25호 국도의 정병산터널을 지나 도립미술관으로 갔다. 구내 카페에서 유자차를 들고 난 뒤 1층 전시실 백순공 ‘선의 흔적’을 먼저 관람했다. 지역 미술 흐름과 미술사적 가치를 연구하며 지역 작가를 조명하는 작품전 일환이었다. 백 화백은 작고 이전 작년까지 생전에 남겼던 화실 소묘와 메모지 유품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2층의 또 다른 전시실에는 ‘회화, 마주한 서화와 미술’ 전이 열렸다. 3층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시와 연계한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전시였다. 특별 기획전에 앞서 도립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을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기회였다. 향토 출신 김종영의 조각품과 나라 밖에서 더 유명한 이우환의 그림도 만났다. 이를 관람한 후 3층에서 해설사와 동행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관람했다.
이건희,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삼성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기업가 아니었던가. 그분은 필생에 걸쳐 예술에도 심취해 수집했던 방대한 우리나라 근현대 명화의 일부나마 실물로 감상할 기회라 마음이 뿌듯했다. 고인 유족의 뜻에 따라 사회에 환원되어 전시하는 작품이었다. 변관식, 박수근, 김기창, 이중섭, 김환기, 이응노, 장욱진, 방혜자 등이 남긴 화폭 앞에서 눈이 호사를 누렸다. 22.12.01
첫댓글 강요배와 박대성 장욱진의 작품을 관람하는 기회였습니다
같은 동선에서 함께 한 시간이라 행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