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에서
방금 달구경을 하고 들어왔다. 법당 용마루 위로 둥글둥글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다.
달빛을 벗삼아 마당을 서성이는 시간은 좋다. 겨울 달은 차고 선명하지만 가을 달은 따스하고 정겹다.
바람이 차갑지 않아서 가을 달빛을 감상하기에는 아주 적기다.
허균의 『한정록』에는 “강산과 풍월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이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달구경은 한가한 사람만이 누리는 호사다.
달빛 아래 오래오래 서 있는 것을 문텐이라 말하고 싶다.
은은한 달빛에 온몸을 드러내고 있으면 가슴까지 그 따스함이 전해지는 것 같다.
햇살에만 몸을 말릴 게 아니라 달빛의 정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권할 만하다.
햇빛은 생명을 키우지만 달빛은 감성을 여물게 한다.
추석날 저녁에는 서울 창덕궁 달빛 기행이 인기라고 들었다.
도심의 고궁에서 바라보는 둥근달은 어떤 감화일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여기도 달빛 기행 하기엔 손색이 없다.
달빛 따라서 마을길을 돌아오는 코스가 괜찮다.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휘적휘적 들판을 걷다 보면 살아가는 일이 괜스레 즐거워진다.
한겨울에 달이 뜨면 뒷길을 따라서 야트막한 동산에 오른다.
그곳에 서면 세상은 온통 설경, 머리 높이 두둥실 달이 떠있는 정경은 참 교교하다.
이때는 혼자 서 있지만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겨울 달빛은 무뚝뚝하지 않고 다정하기 때문이다.
겨울 새벽에 홀로 잠이 깨었을 때 창으로 비치는 달빛은 참 뭉클하다.
저 달빛이 없었다면 내 독신의 삶이 힘들 뻔했다는 생각을 해 보곤 했다.
때로는 겨울 달빛이 독신의 삶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위로가 된다는 것을 산거를 통해 알아 가고 있다.
나의 안부가 궁금하여 잠시 들렀다던 동학사의 비구니 스님이 이런 시를 남기고 갔다.
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이 좋아서
병 속에 물과 함께 달을 담았네.
절에 돌아와 물을 따르니
길어온 달은 사라지고 없었다네.
달빛을 찻물에 길어온 산중 스님의 정취가 느껴지는 이 글은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시였다.
그날 그 비구니 벗은 떠났지만 달빛 향기를 담은 시 한 소절이 남아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이다.
오늘 하루의 일들을 적어본다.
점심 무렵 절 초입의 외딴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며느리들이 다녀갔다. 명절이라서 시골에 들렀다고 했다.
살다 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는 손님들이 방문할 때가 더러 있다.
그 집 할머니가 며느리 자랑을 많이 했는데 오늘 궁금증이 풀어졌다.
인연의 시절이 오면 만날 사람은 만나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게 세상 이치.
뒤이어 청주에서 노보살님이 찾아왔다. 초로의 아들을 대동해서다.
대학 입시를 앞둔 손녀의 기도를 부탁했다. 부모의 마음은 이렇다.
명절에도 자식 걱정이 먼저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사랑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자식 사랑의 정성은 언제 어디서나 무궁무진이다.
늦은 오후에는 방문객이 없어서 마을길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을집마다 손님이 가득했다.
음식을 나누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들이 사립문 너머로 넘쳐났다.
이런 명절날이 되면 절집 분위기는 진짜 ‘절간’처럼 ㄱ조용하다. 모여들 식구들이 없어서 그렇다.
저녁 공양 후에는 산책길에 봐 두었던 밤송이를 주었다.
밤 줍는 재미에 맛들이면 아침저녁으로 밤나무 아래를 찾게 된다.
특히 간밤에 바람이 불고 나면 그 다음날은 거져 줍기다.
이런 날은 설렁설렁 주워도 금세 주머니가 불룩해진다. 오늘 주워 온 것은 알이 토실토실 잘 익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달이 떠올랐는지 궁금하여 몇 번 내다보았다.
밤 여덞 시경에 드디어 기다리던 월광보살 친견. 홀로 즐기는 이런 달맞이는 시골 생활의 잔잔한 기쁨이기도 하다.
보는 이가 아무도 없어 잠옷바지에 뒷짐 지고 한참을 어슬렁거리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호시절이다.
내 생애에 다시없을 소중한 하루가 달빛 따라 흘러가고 있다.
출처 ; 현진 스님 /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