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향유하는 완벽한 자유와 보호받는 고독.
' 보호받는 고독 ' 이란 아무 때고 헤어 나올 수 있는 고독을 말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 별로 깊지도 않은 늪의 바로 옆에서 지켜주는 노처와 딸이 있으니 실상 고독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잘 때나, 이른 아침 걸을 때나, 아침 저녁 해놓은 음식 알맞게 꺼내어 먹는 일을 전혀 방해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가지도 벗어 놓으면 하얗게 세탁하여 내 방 옷장에 잘 개어 놓으니 완벽히 보호받는 고독이며 ' 외롭지 않은 고독 ' 이란 말이지.
어불성설, 말이 되던 안되던 그것은 형식적, 문법적, 단순 修辭的 논리의 문제일 뿐이지 詩的, 文學的, 哲學的 사고와 포용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못된 놈들, 수많은 자들이 천길 낭떠러지를 가리키며 천국이라고 우기는 판에 나만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 고집 좀 부려 본다고 안된다는 법 어디 있으랴!.
내가 노처와 각방을 쓰는 이유는, 벌써 5,6년 전부터 정확하게 잠든 지 3시간이 지나면 아이들 서툰 말로 꿈 꼬대, 언어 난리와 귀신 잡는 物理 폭력 - 주먹질, 발길질 - 때문에 옆 사람의 큰 부상이나 혹 사망에 이를 위험을 막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몽유병 증상까지 겹치게 됨으로 신경내과 전문의 와도 상의해 보았으나 처방은 오직 " 그거 참 위험한 것인데..."가 전부였다.
위험하고 대책 없는 불치의 노환임으로 사방 벽과 바닥을 부드러운 보호막과 깔개로 두르는 방법을 가족들이 마련하여 주었다.
미국살이( lives in the US) 세 번째이며 마지막 정거장이 될 外邦 생활에서 겪어야 할 번잡 多岐한 日常事들 마저 이제는 나의 손에서 떠나 변호사 두 딸의 책상이나 집에 던져 놓으면 된다.
여섯 살에 처음 미국 땅에 옮겨 온 큰 애는 아이들 놀이터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 엄마, 애들이 나보고 하춘화래! "
아이들이 " What's your name? "이라고 물은 것을 한국의 유명가수 이름으로 오해를 한 것이었다.
자식 자랑 한마디를 도저히 생략할 수 없는 것은 그 딸이 포항 소재 한동대학교의 미국식 Law School을 거쳐 미국 변호사(Tennessee 州)가 되었는데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 로스쿨 법률 경연대회에 츨전하여 특등을 수상, 애국가 봉창, 태극기 게양에 더하여 국내외 신문 방송에 보도되고 임기응변 미국 말 잘하기로 으뜸이 된 것이다.
사람의 한 생애는 어린아이 때 걷기에서 시작하여 8,90세의 걷기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 이제 나는 별세할 때까지 내가 할 일은 잘 걷기만 하면 되고 내가 키운 딸은 내게 treadmill을 사다 주고 자꾸 걸음마를 하라고 시킨다.
아이와 나의 역할이 완벽하게 바뀐 것이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아이 떼는 누구나 예쁘고 재롱스럽지만 할 일을 다 마치고 소멸되기 전에는 누구나 한 예외도 없이 주름지고 한번 안아 볼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휴 ~, 끼리끼리 늙은? 병아리들처럼 서로서로 긍휼히 여기며 모여 살아야지 4,50세 중장년들 까지 우리를 부담스러워하는지 산보길에 자주 만나는 미국 사람들에게 " Call me Kook " first name을 알려 주어도 며칠 후 " Sir! " 로 돌아오니.
고독에 익숙해야지.
가까이해 주는 벗은 그 밖에 없으니 .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