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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16-21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16-21 / 나 예수는 이 모든 것을 교회에 알리려고 천사를 네게 보냈다. 나는 다윗의 뿌리이며 그의 자손이다. 나는 빛나는 새벽별이다.' 17) 성령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도 같이 '오시옵소서' 하고 외치십시오. 목마른 사람들은 누구든지 와서 생명의 물을 거저 마시십시오. 18)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엄숙히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여기에 기록된 것에다 어느 하나라도 덧붙이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책에 기록된 재난을 내리실 것입니다. 19) 또 만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말씀에서 어느 하나라도 떼어 내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권리와 그 거룩한 도시에 들어 갈 자격을 거두어 버리실 것입니다. 20) 이 모든 것들을 계시하신 분께서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속히 가겠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본문은 성경 전체, 특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결론이자 초청과 확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통치하는 때는 모든 성도가 가지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며, 찬란한 새벽 별인 것을 밝히십니다.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 광명한 새벽 별(16-17)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윗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자, 동시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인 것을 나타냅니다(사 11:1, 계 5:5).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신다는 구절은 성령님과 교회가 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동시에 세상 사람들을 생명수로 초대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초대를 받는 사람, 더 나아가 그 초대에 믿음으로 응답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리지 말라(18-19)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며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거나 빼는 자에게 주어질 심각한 경고를 기록합니다. 말씀을 더하면 하나님이 기록된 재앙을 더하시고, 빼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갈 권리를 빼앗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하며, 인간이 자기 뜻대로 수정하거나 왜곡할 수 없다는 것을 엄중히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종종 강조되는 선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0-21)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마지막 약속을 주십니다. 이에 사도 요한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모든 성도가 고백해야할 종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오늘 믿음으로 살고 승리하는 결정적인 힘입니다. 마지막 절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축도로 성경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흐르는 성경의 중심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재림 신앙은 단순히 종말론적 지식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과 교회의 사명은 오라고 초청하는 복음전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왜곡하거나 가감하지 않고, 주신 그대로 붙들며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고백해야 참된 성도입니다.
습관보다 강한 것은 없다.-오비디우스. 21일은 어떠한 행동이 사람의 몸에 습관으로 드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꾸준히 노력하면 그 다음부터는 노력하지 않아도 평생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21일을 투자해서 평생이라는, 이만큼 효율성이 좋은 것도 없겠지요. 평생에 비하면 21일은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당신의 평생을 위해 21일만 투자하세요.
호크마 주석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 본문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그 신빙성이 분명함을 강조한다. 예언의 말씀은 그리스도에게서 사자 곧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그리고 요한이 교회들에게 증거한 것이다(1:1). 여기서 '너희에게'로 번역된 헬라어 '휘민'(* )은 복수로 1:1에서와 같이 요한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요한을 비롯한 모든 구속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향한 예언이다. 이 사실은 본서 내용이 심판을 강조하기 위하여 전하여진 예언이 아니라 교회로 환나과 핍박 가운데 온전히 그리스도에게만 충성할 수 있도록 위로와 권면의 내용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는 5:5의 반복이다. 이것은 사11:1, 10에 진술된 약속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집안에서 태어나 구약을 성취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이심을 시사한다(마 1:1;9:27;15:22;21:9;롬 1:3;딤후 2:8 주석 참조). 한편 '광명한 새벽별'은 민 24:17을 반영한다. 민수기에 언급된 '야곱에서 나온 한 별'은 사실상 다윗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상반절의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와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지칭한다(Bruce, Mounce). 이것은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유일한 주이시며 그의 메시야적 통치를 통해 죄로 어두운 세상을 물리치고 오직 의와 평강만으로 다스리는 종말론적인 새 시대의 여명이심을 시사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원하시고 재림하셔서 심판하심으로 사단과 짐승의 핍박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던 어둠을 물리치시고 새로은 시대의 빛을 가져다 주신다(Beasley-Murray, Ladd, Morris, Beckwith).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 '성령과 신부'는 한 목소리로 초청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성령'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며(19:10),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가리킨다(19:7). 성령은 교회에게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도록 영감을 허락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나 전도의 과정 속에서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사람들의 양심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며 증언하신다(요 16:8-11). 그러기에 성령과 교회의 증거는 한 가지이며, 둘이 연합하여 오직 예수에 대해 세상에 선포하며 증거하게 된다(Beasley-Murray). 성령과 교회가 연합하여 행하는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지속된다.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 본문에서는 네번의 초청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앞의 두 가지 초청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뒤의 두 가지 초청은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에의 초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본문의 초청 전체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한다(Johnson, Mounce). 그러나 이 주장은 문맥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본문에 나타난 네 번의 초청 중에서 뒤에 나타난 두 가지 초청에 비추어 전반부의 두 가지 초청을 해석하여 네 가지 초청 전체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에로의 초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Ladd, Morris, Beasley-Murray). 여기서 본문에 나타난 세 번의 '오라'는 현재 시제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더이상 회개할 수 없을 때가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초청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속적인 초청의 말씀을 듣고 갈급하여 생명수를 마시기를 원하는 자들은 무료로 생명수를 공급받아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1절;21:6;사 55:1;요 4;14;7:37, 38).
=====22:18,19
요한은 본서를 마무리하면서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요한은 이 경고를 통해서 본서의 내용이 자신의 상상이나 꿈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임을 밝힐 뿐만 아니라 예언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신 4:2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 자신에게 전하여 준 계시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확증을 강조하는 진술 방법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 '듣는 각인에게'는 1:3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본서가 수신자들 공동체 내에서 크게 읽혀져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질 것을 시사한다. 함편 요한은 본문에서 예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본서 이외에 어떠한 것이라도 더할 경우에 대해 진술한다. '기록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그람메나스'(* )는 완료 시제로 이미 완전히 기록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본서의 예언의 말씀이 더이상 가감할 것이 없는 완전한 것임을 시사한다. 요한은 말씀에 '더한 자들'에게 모든 재앙이 '더하여질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통해 완전한 본서의 예언을 변절시키기 위해 더하는 자들에게 내릴 심판의 엄중함을 경고한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 본문은 앞절과는 대조적으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는 경우에 대한 묘사이다. 본문 역시 완전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에게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하는 축복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수사학적인 비교를 사용하고 있다.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은 구속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서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을 가리킨다. 요한은 본서에 언급된 예언의 말씀을 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의 축복에서 제하여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유황 불못에 던져져 둘째 사망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본문은 본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번째 확증이며(7, 12절) 동시에 그 재림의 확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나타낸다. 본서의 마지막에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준다. 한편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한다(Morris). 이것은 고전 16:22에 나타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 마라나 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마라나 다'는 아람어 '마라나타'(* )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낸다.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본서 전체를 매듭짓는 본절의 축복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는 흔한 결론이 아니라 할지라도, 본서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회중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서신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1:4). '모든 자들에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판톤'(* )에 대해서 혹자는 일반적인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나(Metzger)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Swete, Beasley-Murray).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Revelation 22:16~21 / 최정인목사
도입 Introduction: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요한계시록 Revelation 1:8).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은 하나님의 오심입니다. 요한계시록 1:8에서 주 하나님은 당신을 알파와 오메가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the First and the Last)이시며, 시작이시며 마침(the Beginning and the End)이시라는 뜻입니다(요한계시록 22:13 참조). 하나님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올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전에도 우리와 함께 계셨고, 장차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십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8의 바로 앞 절인 7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성부 하나님의 오심뿐만 아니라, 종말은 우리 주님의 오심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육체적으로 이 땅 위에 살아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 모두를 의미합니다. 주님과 만남이 기쁨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애곡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성도의 구원과 나머지 사람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오심과 성자 하나님의 오심은 두 구별되는 사건이 아니라 한 번에 이루어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을 봅시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란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강림이 이루어지는 이전까지 죽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들의 육체는 이 땅에 있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늘 보좌에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성자 하나님이 함께 강림하시며, 이미 죽은 성도의 무리도 함께 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이 이루어지는 장엄한 모습이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는 모습입니다.
중요한 점은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도냐는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입니까?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서 영적 부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이들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5:24~25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을 얻은 것,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성도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영적 부활이고, 이 영적 부활을 참여한 자가 육체적 부활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참여합니다. 25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우리 주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듣고 살아난 사람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이 “이 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이 때” 영적 부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바로 복되고 거룩한 성도입니다.
성도의 위치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지금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하늘 보좌입니다. 에베소서 2:1을 봅시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지만, 원문을 따르면 영어 번역처럼 “너희로 말하자면,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4~5절을 봅시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죠. 그런데 영적 부활,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부활은 우리 주님의 부활과 하나로 묶여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시간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시간만 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6절을 봅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무슨 말씀이죠?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모든 성도는 시간을 초월하여 함께 승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관점인 영원 현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영적인 위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도입니까? 요한계시록 20:4를 봅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본 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하늘 보좌에 앉아 있는 성도를 본 것입니다.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성도는 하늘에 속하였기에, 비록 이 땅에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하는 권세대로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따라 지금 여기서 사는 것이 곧 심판하는 권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성도는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따르는 이들입니다. 예수를 증언하는 고백과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대로 예수를 따르는 삶은 참믿음을 드러내는 두 요소입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성도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묘사할 때,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은 사탄을 따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아닌 사람은 짐승의 표를 받고, 성도는 하나님의 인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받습니다.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성도는 이 땅에 있든 하늘에 있든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가 왕이신 것처럼 성도도 주님의 왕권을 가지고 삽니다. 심판하는 권세와 왕의 권세는 같은 성도가 누리는 권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나 영원히 누리는 권세입니다.
요한계시록 20:5입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아나지 못하더라)” 이 천 년은 주님께서 오실 때 시작하여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이때 성도는 살아나는 일이 계속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기 때문에 죽은 상태로 있을 뿐입니다. “이는 첫째 부활이라”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주님이 생명을 주심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것이 바로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둘째 부활에도 참여합니다. 성도에게는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영적인 부활이 없기에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부활 -> 죽음 -> 부활”이지만, 불신자는 “죽음 -> 부활 -> 죽음”입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20:6을 봅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로다” 제사장은 백성이 있어야 하고, 왕도 역시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제사장과 왕으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오늘을 사는 것이 곧 종말입니다. 이것을 시간으로 표현하면 “미래의 현존”(the presence of the future)입니다. 오시는 하나님을 오늘 여기서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우리 주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 22:16~21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눕니다.
1. “교회들을 위하여” “For the churches” (16~17).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6 “I, Jesus, have sent my angel to give you this testimony for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and the bright Morning Star.”
이제 16절은 우리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기록한 사복음서 다음으로 우리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가장 많이 전하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이는 이미 1:1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그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1:1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 -> 성자 하나님 -> 천사 -> 요한 -> 종들”의 순서로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시 22:16에서는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너희”는 처음으로 이 말씀을 들은 교회지만, “교회들”은 아시아 속주의 일곱 교회를 포함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 위의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 말씀은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서 증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인봉하고, 덮어두고, 읽지 않고,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 앞에 얼마나 큰 죄가 되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당신을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소개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을 다윗의 자손으로만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시편 110편을 인용하십니다. 시편 110편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 성자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은 그것을 상기시키시면서 주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지만, 다윗의 주이기도 하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45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주님이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심은 주님의 하나님이심과 사람이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또 주님은 당신을 “광명한 새벽 별”(the bright Morning Star)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금성(the Venus)이라고 부르는 이 별은 사실은 지구처럼 태양을 따라 도는 행성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등의 순서로 행성들이 공전합니다. 밤하늘, 특히 새벽에 달 다음으로 가장 빛나는 것이 바로 이 금성입니다. 그래서 이 별은 새벽이 옴을 가리킵니다. 아직 어둡지만, 광명한 새벽 별을 보고 곧 아침이 옴을 아는 거죠. 그래서 이 말씀은 주님의 오심이 임박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도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리라 하시더라
17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who hears say, “Come!” Whoever is thirsty, let him come; and whoever wishes, let him take the free gift of the water of life.
이제 17절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하여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라”는 말씀을 세 번 반복합니다. 종말이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오심이지만, 그 날이 오기까지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오라”고 초청합니다. 듣는 자, 원하는 자, 목마른 자가 다 생명수이신 우리 주 예수께 “오라”고 초청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오라”고 초청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함께 살기 위함이죠. 이것이 진정한 종말의 모습입니다. 종말이 미래의 현존이라면,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여기서 체험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종말 신앙입니다.
2.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If anyone adds anything to them...if anyone takes words away from this book of prophesy” (18~19).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8 I warn everyone who hears the words of the prophesy of this book: If anyone adds anything to them, God will add to him the plagues described in this book.
이제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더하는 그 사람은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이 그에게 임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을 공부할 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와 그에 대한 논리적 결과까지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인간의 상상력을 더하여 넣은 것은 결국 인간이 쓴 소설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몸에 나쁜 것을 먹듯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믿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경을 직접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넓게 읽고, 깊게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9 And if anyone takes words away from this book of prophesy, God will take away from him his share in the tree of life and in the holy city, which are described in this book.
이 말씀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구성원이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말씀을 제하는 일을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덮어두고, 인봉하고, 읽지 않고,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분명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입니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을 포함하여 성경 전체를 부지런히 우리의 일평생에 매일 그 날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Amen. Come, Lord Jesus” (20~21).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0 He who testifies to these things says, “Yes, I am coming soon.” Amen. Come, Lord Jesus.
이제 요한계시록 말씀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 즉 1: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신 대로 요한계시록 말씀을 증언하신 분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오늘 여기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모습입니다. “진실로 속히 오시는 주님”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다리며 여기 나의 삶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진정한 종말 신앙입니다.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21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21절의 원어는 한국어 번역처럼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모든 자가 “하나님의 백성, 성도”이기에 영어 번역은 “주 예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되어있습니다.
결론 Conclusion: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0:31).
이제 오늘로써 요한계시록 총 22장을 46회 주일 설교를 통하여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인봉하지 않고 듣고 순종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이번에 많은 부분을 새롭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더 많이 깨달으면 더 많은 책임도 따릅니다. 종말이 더 밝히 보일수록 오늘도 더 밝히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제가 주보에 써드린 고린도전서 10:31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백성, 주님의 신부, 성도인 우리는 우리의 존재 목적, 매일의 삶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씀이죠. 언제 우리의 삶이 끝나도, 오늘 저녁에 우리의 삶이 끝나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준비가 되어있는 삶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이제 반주해 주시는 동안 이 한주도 이렇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으로 주님의 오심을 오늘 여기서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겠다는 결단의 기도를 다 함께 드리겠습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증언하시는 책
계 22장 16~21절 / 김철한목사(오목천교회)
주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주님의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의 삶은 해당된다. 주님의 시간 밖에 머물 자가 없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의 섭리 안에 모든 사람의 삶이 얽혀 있다. 섭리란 하나님이 지으시고 돌보시고 관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다스림의 뜻이다.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았던지 신자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신자의 종국은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 자이고 성 밖에 머물게 될 자들이 있다. 도성은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아버지 집이다. 성 안에 있다는 것은 도성을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아버지 집이다. 성 안에 있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성 밖에 있다는 것은 버려둔 것이기에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즉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지막에는 분명히 나누어진다. 요14:1~4을 보면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하셨는데 주님의 집에 있지 못하고 성 밖에 있는 자는 불쌍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약속대로...
주님은 곧 오신다 -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자. (계22:7)
주님은 곧 오신다 -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계22:10)
주님은 곧 오신다 -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 (계22:14)
주님은 곧 오시기에 그 주님을 기다리며 말씀을 지키고 말씀을 공개하고, 전하고 구원의 삶을 거룩하게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의 성취에 대해 이렇게 성경은 증언한다.
1. 사자를 보내어 증언한다. (계22:16)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예수님이 사자를 보내어 이것을 증언하게 하는 것은 교회들을 위해서다. 예수님이 교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위하시는가?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요, 광명한 새벽별이시다. 다윗의 뿌리란 예수의 신성을 뜻한다. 마22:41~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다음으로 자손이란 예수의 인성을 뜻한다. 롬1:3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렇게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 양성을 지니셨다.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신 분이다. 누가 이 분과 같을 수 있는가? 또한 광명한 새벽별이란 그분이 메시야임을 말한다. 민24:17을 보면 유다 민족은 메시야를 새벽별로 믿고 그 나타남을 기다렸다. 공중 재림하여 나타나실 빛나는 새벽별, 그는 기름부음 받으신 구원자인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교회를 위하여 이 존귀하신 예수가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증언하도록 사자를 보내시는가? 교회는 예수님이 피로 값을 주시고 세우신 것이기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주님의 생명이다. 주님의 지체요, 주님의 소유다. 그래서 이 소중한 진리와 기둥의 터인 교회를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주었다. 오늘 날 교회를 두 짐승이라고 가르치고 교회의 ㅁ고사를 짐승의 표를 받은 자라고 가르치는 이 엉터리 가르침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가 우리 주변의 이단이다. 여기에 속아서 영혼을 팔아버린 자들이 많다.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요한계시록을 주었는데 교회를 헐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사단의 속임수에 빠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위하여 사자들이 증언하는 책이다.
그러면 여기서 사자란 천상의 존재인 천사인가? 아니면 인간적 사신인가? 요한계시록의 사자는 대개가 하늘의 영적 존재다. 그러나 여기서 교회 사자는 교회를 돌보는 목사나 감독 같은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 독일어 성서에는 아예 교구 주관자라고도 하였다. 이유는 지상의 교회를 하늘의 천사가 주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실제로 사람 지도자의 손에 돌보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이유는 책망과 경고의 말을 하늘의 천사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자는 요한이 알고 있는 수신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자를 사람으로 보아야 요한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사자가 이해되고 일곱 별, 일곱 금촛대와 어울린다. 여하튼 이런 면에서 사자는 하늘 천사라기보다 지도자들이다.
우리는 그의 보내심을 받은 올바른 사자들이 되자. 주님을 제대로 모신 종들이 되자.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증언하자.
2. 성령과 신부가 증언하신다. (계22:17)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 초청하는 이가 누구인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증언하는 이가 누구인가? 바로 성령과 신부이시다. 성령은 교회를 움직이는 보혜사이다.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증언하는 구속의 대리자이다. 성령은 신부로 표현된 교회 가운데 역사하시며 사람을 오라 하신다. 신부인 교회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오라고 증언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다. 요한계시록의 드라마를 시작하고 완성한 열쇠를 들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다. 보혜사 성령과 교회로서의 신부는 이 예수를 통해 얻는 생명수를 증언한다.
요한계시록은 결국 생명수이신 예수를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에 눈을 떼지 말라. 예수에게 귀를 기울이며 예수만을 기대하라. 예수만을 높여라. 예수를 자랑하라. 예수가 모든 열쇠를 쥐고 계신 지존자이시다.
3. 요한 사도가 증언하신다. (계22:18~19)
계22: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그렇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다. 아니 요한계시록의 말씀 속에는 구약을 348회나 인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 전체를 말하는 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증언하는 것은 이 말씀에 대하여 가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들 외에 더하는 자, 재앙을 더할 것이요 이것들 외에 빼어버리는 자, 생명나무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날 성경 이외에 성경을 완전하게 한다고 다른 경이나 다른 계시의 책을 붙이는 이들이 많다. 자신들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보혜사라고 말하면서 더하기 하는 이런 죄는 성경에 나오는 재앙을 덧입을 일이다. 그리고 성경의 기적 이야기를 믿지 못하여 과학적, 인본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성경의 사건을 가위질하고 난도질하여 빼어버리는 자들이 있다. 사람의 구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성서를 신화 책으로 돌리려 하며 성경 곳곳을 말씀이 아니라고 빼어버리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안전한 아버지의 집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님은 마24:35에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신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요한계시록도 그대로 믿고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 요한은 두루마리 예언을 본 자요, 들은 자요, 기록한 자로서 증언하고 있다.
4. 예수님이 직접 증언하신다. (계22:20)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의 될 일을 증언하신 분이다. 예수님이 요한계시록의 완성을 위해 이렇게 선포하신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진실로 속히 오시겠다는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4번이나 반복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의 끝은 속히 오시리라는 것으로 맺고 있다. 이는 주님의 소원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어서 와서 신부를 취하고 싶은 신랑의 간절한 소원인 것이다. 뒤죽박죽의 역사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역사의 종국이 희망과 사랑, 환희의 미래이기에 그 신부를 만나려고 하시는 주님의 간절함인 것이다. 그분이 오시므로 요한계시록은 다 완성된다. 오셔야 환난도, 휴거도, 천 년 왕국도, 백보좌 심판도, 도성 안에 거하는 천국도, 사탄이 들어갈 둘째 사망도 다 완성된다.
주님이 속히 오시리라는 주님의 소원,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과 성취를 위해 오실 주님의 소원을 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고대하고 외쳐야 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세요.” 이것이 신자의 환희요 오늘을 사는 설레임이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오시는 그분을 맞이하는 신자의 순정이다. “오지 마세요. 아직은 아니예요. 조금 있다가요.” 등 이는 믿는 자의 기다림의 신앙이 아니다. 무엇인가 거리낌과 죄와 불신에 빠져 있는 문제아 성도의 자신 없는 모습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1은 축도로 끝을 맺는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부 하나님도 아니고 성령 하나님도 아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끝을 맺는 요한계시록!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하고 끝을 맺는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시작도 계1: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신 것이다. 고통을 받고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신랑되신 예수께서 역사의 주인공, 환난 시대의 주인공, 구원의 주인공, 심판의 주인공, 천 년 왕국과 천국의 주인공, 모든 것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장 16~21절 / 이상호목사
오늘 말씀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를 아람어로는 "마라나타"라고 합니다. 먼저 16절에 예수님은 자신을 새벽별이라고 하셨습니다.
새벽별은 아시다시피 샛별, 순 우리말로는 개밥바라기, 장경성, 일몰직후 제일먼저 보이는 별치고, 일출직전에 가장 늦게까지 반짝이는 별이 곧 새벽별입니다. 우리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십니다. 오늘은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역사의 종말,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마라나타, 이 말은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었고, 요한계시록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도래하기를 사모하고 있는 줄 압니다. 왜냐하면 죄악이 너무 성행하고, 세상이 혼돈하며,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이 있습니다.
2000여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초림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예수의 초림 사건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예수가 이 세상에 탄생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초림하신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베들레헴 촌에서 조용히 말구유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예수는 다릅니다. 어느 날인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몇 사람만 알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역사의 종말을 고하시면서 만인이 알도록 오실 것입니다. 계1:7에 보면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요 찌른 자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했습니다. 이 구절만 보아도 다시 오실 예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실런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는 천군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구름을 타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영광중에 오시는 예수입니다.(살전4:16)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오시는 주님의 모습이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왜 주님은 다시 오셔야 하는가?
왜 우리는 "마라나타"하고 기도해야 합니까? 거기엔 다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겠다고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오리라"(마24:44)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또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두 천사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십자가에서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40일간 세상에 계시면서 자신의 부활사건을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500여명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이 때 두 천사가 증언하기를 "예수는 너희가 본대로 다시 오시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신실한 분입니다. 주님의 신실성은 그의 약속과 성취로 증명됩니다. 구약과 신약에 있는 말씀을 보면 셀 수 없는 약속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란 뜻입니다. 신약은 새 약속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특별히 구약성서의 말씀을 보면 모든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초림하시는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오신다는 예언도 적중되었습니다.(미5:2) 그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다는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부활하시리라는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서 부분 중 아직 성취되지 않은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재림에 관한 예언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재림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가 세계가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전쟁과, 갈등, 부정과 부패가 가득한 세계가 아닌 전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도래하기를 원하고 있는 줄 압니다. 특히 주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가운데 C.H Dodd 같은 분은 교회를 "기다림의 공동체"라고 표현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말로 할 수 없는 핍박과 환란을 당했습니다. 특별히 로마 황제 가운데 도미시안 황제나 네로 황제 같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을 모조리 처참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망하지 않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것은 그들이 예수의 재림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소망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망의 반대말은 절망입니다. 절망은 기다림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기다려도 소용이 없다고 포기했을 때 일어나는 심리현상이 절망입니다. 미국의 미쉬칸대학의 사회학과 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현대 미국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일년 내내 절망 속에 빠져 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최고로 발달된 나라에서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살아야 할 미국 사람들의 1/3이 절망 가운데 빠져 있다면 믿기 힘든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구세주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오실 것을 확실히 믿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의 유형 속에 있는 인간상으로 살아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다림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안에 살아 있는 수천만 성도들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이 재림하시면 역사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신 말씀을 보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다"(계22:13)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역사의 끝이 됨을 의미한 말씀인 것입니다. 역사의 끝, 오메가 포인트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이 다 파괴되고 인류가 다 망하는 날입니까? 그래서 다시 창세 전 혼돈의 세계, 무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계시록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날은 현재의 역사와 같은 불완전한 세계가 아닙니다. 그 날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역사 안에 살아있는 자는 물론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함께 부활한다고 했습니다.(살전5:16)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은 영생의 부활로, 어떤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부활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영생의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입니다.
영생의 부활에 참예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이곳은 밤과 낮이 없고 햇빛 보다 7배나 밝은 빛의 세계라고 했습니다.(계21:23)
황금보석과 수정같이 맑은 옥으로 된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눈물이 없고,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일이나, 아픈 일이 없고, 배고픔도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과 매일 함께 얼굴을 대면하여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엔 불공정한 일이나, 불평할 일이나, 싸워야 할 일이 없습니다. 여기엔 억압하는 사람이나 억압당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엔 소외당한 사람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엔 병든 사람이나 암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 사건을 우리는 역사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면 천국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이데오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되면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인본주의의 극치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주인이 되면 세상이 잘 될 것 같지만 여기엔 진정한 평등과 자유, 우애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죄인인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의 길이 곧 천국이 되는 길은 아닙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이 오시는 날만이 곧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확립이 되고, 역사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판의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심판은 죄 값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죄 값은 사망이다"(롬6:23)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심판은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 받는 사람들이 갈 곳은 어떻습니까?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다"(계21:8)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희망이 없는 곳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죄의 문제를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길입니다. 요5:24 말씀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전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심판의 부활에 참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생의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마라나타! 다시 오실 주님을 뵈옵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의 언약
계 22장 16~21절 / 피종진목사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나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old testament'라고 합니다. 또 신약성경은 말구유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영어로는 ‘new testament'입니다. 구약은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하는 약속이고, 신약은 재림의 주님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약속하신 것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셨고, 또 이루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약속 네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7절) 이 말씀은 12절, 20절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구약에 메시아로 오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이 성취되었듯이 또 마지막에는 재림의 주님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하는 이 약속이 반드시 우리 앞에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어떻게 재림하실까요? ①영광의 주로 오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마 16:27) 다시 오실 예수님은 고난의 주님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그 영광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영접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마 25:31,32) 초림으로 오실 때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여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지만, 마지막 재림으로 오시는 주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오셔서 믿는 자는 천국에, 불신자는 지옥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다른 중간의 노선은 없습니다. 적당히 피할 길도 없습니다. 예수 믿었으면 천국이요, 안 믿으면 지옥입니다. 우리 인간은 한 사람도 자기 공로로 구원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다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모태에서 죄 중에 조성되었고, 죄 중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된 것을 평생토록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될 것입니다.
③믿는 자를 영접해서 주님이 예비하신 나라에 있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충성하고 헌신 봉사하며, 주를 찬양하고 주님께 마음과 정성과 사랑을 다 드리면서 주님을 섬기는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간혹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일에 핍박이 있거나 고난이 있어도 그것은 절대로 우리에게 불행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이 모든 일들 때문에 더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상이 크게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한 처소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주님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너무 깊이 빠져 들어가면 채찍을 가하기도 하고, 너무 세상 것을 좋아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에서 마음을 돌이키게도 하십니다. 너무 시간과 자기의 모든 건강 물질 지혜 그리고 권세가 세상에만 활용이 되면 주님이 특별히 쓰시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를 돌이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일찍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주님 오시기만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자는 ‘아멘.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하고 주님을 기다릴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자는 ‘주여, 주님 지금 오시면 큰 일 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축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7절)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모든 전체가 다 복입니다. 구원받은 것도 복이요, 사명 받은 것도 복이요, 천국 가는 것도 복이요, 용서받는 것도 복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것도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28:1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이 땅에 살면서 받는 모든 축복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녀에 대한 복, 신상신변에 대한 보호의 복, 양식과 물의 복도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요한3서 1:2에 보면 영혼이 잘되는 복과 범사가 잘되는 복, 육체가 강건한 복을 약속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 생활 속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명한 강철왕 카네기는 어떻게 해서 영도 복을 받고 물질로도 복을 받아 명성이 뛰어나게 되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항상 감사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평생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했더니 그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어떤 분은 선을 베풀다가 복을 받은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믿음의 그릇이 커서 큰 복을 받는 분도 있습니다. 믿음의 수준은 곧 축복의 수준입니다. 믿음의 그릇은 축복받는 그릇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그릇이 컸기 때문에 축복도 크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는 백 배의 수확을 거두게 했고(창 26:12), 아브라함에게는 천 배의 복을 받게 했습니다(신 1:11).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한 해에 3배 정도 더 수확하면 그것도 많은 것인데, 백 배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작은 축복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지만 큰 축복은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로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심기를 좋아해서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영혼의 축복은 믿음으로, 신령한 축복은 성수주일을 함으로, 능력의 축복은 힘써 기도함으로, 물질의 축복은 뿌림으로, 건강의 축복은 의인의 삶을 살므로, 자녀의 축복은 주의 종을 잘 받듦으로 받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든지 여러분들은 다 복 받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명기 29:9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상에 대한 약속입니다.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12절) 교회에서도 많은 상이 약속되어있지요. 성경 많이 읽은 사람, 전도 많이 한 사람, 또 새벽기도 안 빠진 사람 등등 여러 가지로 교회에서도 때로는 시상식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약속하신 상은 엄청나게 큰 상인데 이 상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상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또 하나님의 사명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①영광의 면류관을 약속했습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4) ②의의 면류관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③금면류관을 약속했습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넷째, 생명수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17절) 꼭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의 기갈을 당한 사람은 아무리 생수를 마시고 이 세계의 좋은 물을 다 마셔도 그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7:17에 보면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주께서 영혼에 주시는 이 성령의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이 영의 만족이 여러분에게 주께로부터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21:6에도 보면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에 있던 수가성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 각자 일한 대로 갚아주시는 상에 대한 약속,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에 대한 약속을 굳게 믿고 이 약속을 다 성취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성경 오직 예수
계 22장 18~21절 / 스데반 황 목사(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누가복음 9:28-36
요한 계시록은 편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통해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때 요한은 그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장 4절을 보면 요한은 보고 들은 환상과 예언의 말씀을 편지로 기록하여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다고 말합니다. 즉, 바울 서신과 베드로 서신이 주님의 교회에 보내어졌던 것처럼 요한 계시록 또한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인 것입니다. 이에 계시록 1장 4-5절에 보면 요한의 계시록 서신의 안부 인사가 나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22장에서는 두루마리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원어로는 ‘Biblio’라고 하는데 책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두루마리 책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18절에 언급한 ‘예언’이라는 단어 때문에 계시록 서신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사실 ‘예언’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완전하게 감동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언’은 말씀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언어로 계시된 것을 뜻합니다. 이에 베드로 사도는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벧후 1:21)라고 하여 ‘예언’을 성경과 동일하게 언급하였고 또한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2:20)라고 함으로써 성경 안에 예언이 있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임을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벧후 3:2)라고 말함으로 구약 성경을 ‘선지자들의 예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아무튼 성경에서 ‘예언’이라고 함은 결코 ‘성경 66권에서 벗어난 예언’이 아닙니다. ‘예언’이란 성경이 계시하는 내용이며 나아가 성경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에 계시록이 말하는 두루마리의 예언은 완성된 성경을 의미합니다. 똑같은 두루마리하는 단어가 정확하게 요한복음 21장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0절부터 읽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도 ‘이 책’은 요한복음 서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루마리’ 즉, 완성된 성경 66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요한복음 21장 25절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나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이 구절이 언급하는 ‘이 기록된 책’ 역시 계시록 22장이 사용하는 똑같은 단어 ‘두루마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확신하는 바는 신약 시대 사도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의 ‘책’이 늘 있었습니다. 그 책의 저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이고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그 책을 마무리 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신약이 완성되기 전에도 그들에게는 구약의 내용을 담은 두루마리 책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라고 증언할 때 그 두루마리 책은 구약 성경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구약의 책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반쪽의 책이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책’이 완성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마무리 하는데 있어서는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사도들에게 ‘예언의 계시’를 주셔야 그 책이 마무리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마음 속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사도들과 제자들은 주 예수님의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가 예수님 승천 40일 후에 성령 강림 사건을 체험하며 확증할 수 있었고, 성령이 오신 후에는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고 다른 사도들에게도 계시를 주시고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록의 계시를 주신 것을 끝으로 성경이 완성된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성경은 성경을 ‘기록된 말씀’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성경’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한권의 책’을 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딤후 3:16). 즉, 요한 계시록이 언급하는 두루마리 책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즉 하나님의 책이 계시록에 의해 마무리된 것을 알게 되며 계시록 22장의 두루마리는 성경 66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18절과 19절은 “내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성경의 에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지지하는 말씀으로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는 말씀이 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6)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는 성경 원본은 없습니다. 또한 각 나라의 성경은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오류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말씀을 의지하는 자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반석을 잃게 됩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어떠한 체험을 해도, 아무리 성령이 역사한 것이라고 고집해도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들의 말과 체험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얼마든지 사람의 주장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탄의 간교한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의 절대 권위가 인정될 때만이 영원한 진리인 그 말씀으로 거짓과 사탄의 음성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감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실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법정에서 거짓말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더한다 감한다’라는 표현은 법정 용어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감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거짓말하는 자로 법적 판결이 난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법정에서 중죄로 판결되면 다른 곳에 호소할 수 없는 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늘 조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감하면 그 심판이 크기 때문이며 나아가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이용하여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입술로 항상 주의 말씀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말씀 그 자체가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도록 훈련하여야 합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라는 자세로 말씀을 대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하나님의 종들의 기본 자세였습니다. “Let the Bible speak itself, then we will listen!”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마지막 때의 가장 악한 현상 중에 하나는 거짓 선지자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의 주된 특징은 말씀을 감하거나 빼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사탄의 전형적인 역사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심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은 창세기 2장 17절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사탄과 대화를 나누는 하와가 말씀을 변질시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결국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말을 주장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결국 사탄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인류의 처음 타락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감하는 것이 얼마나 간교한 사탄의 책략인지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몇 군데만 살펴 보겠습니다. 거짓 선지자에게서 한결같이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현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남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선지자처럼 행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입니다. 가짜입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마24: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이 구절을 보면 거짓 선지자가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큰 표적과 기사”입니다. 심지어 택하신 자들까지도 “큰 표적과 기사”로 미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해서 진리를 가르치는 선지자라고 믿으면 속게 됩니다. 큰 표적과 기사로 주의 참된 종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의 말씀을 감하거나 더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전하게 전하느냐가 거짓과 참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는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예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렘 14:14).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렘 27: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렘 28:15).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13:9).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겔 22:28).
특히 예레미야 23장을 보면 거짓 선지자의 특징들이 더욱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9-39절입니다.
“13절: 거짓 선지자는 바알을 의지하고 예언한다.
16절: 거짓 선지자가 말하는 계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21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른적이 없는데도 예언을 한다.
25절: 이들은 지난 밤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26절: 그들은 자신의 간교함을 이루기 위하여 예언한다고 속인다.
28절: 몽사를 말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이지만, 나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참 선지자이다. 하나는 겨이고 하나는 밀이다. 하나는 쭉정이고 다른 하나는 알곡이요 진짜이다.
36절: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며 거짓을 말하는 자들. "여호와께서 지난 밤에 나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라고 말을 하며 거짓말하는 자들, 가만두지 않겠다. : 이들은 나의 이름을, 나의 권위를, 자신들의 거짓을 권위 있게 하기 위해 망녕되이 쓰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은 간교한 거짓말을 하면서 하나님께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는 매우 심각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29-32).
웨스트 민스터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의 충분성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The sufficiency of the Bible). 성경은 우리의 구원, 우리의 삶의 방향, 지혜를 얻는 길, 진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디모데후서 3:15-17절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또한 모든 선한 일, 즉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모든 일, 곧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구원과 신앙 생활에 있어서 더 필요한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누구든지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을 것을 서슴없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66권을 통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 할 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 8-9절에서 두 번이나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으면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고 읽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만일 성경을 등한히 하고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사탄의 밥이 되어 거짓 선지자로 쓰임 받기가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을 보면 사탄은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속여 사람을 유혹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역사는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으로는 분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성경으로 바르게 알고 있어야 성경을 왜곡하는 사탄의 음성을 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지 않으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최근의 신사도 운동과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등은 철저하게 직통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사도입니다. 새로운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도와 선지자들이 활동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조직과 연합한 곳이 또한 빈야드 운동입니다. 이들에게는 “기름부음” (Impartation)이라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뒹글고 배꼽이 빠지게 웃고 동물 소리를 내고 천사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최근에는 빈야드 및 IHOP 내에 서로 다른 계시를 하나님께 받아서 서로 누가 맞는지 다투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습니다. 성경의 대답은 “둘 다 틀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 집단들은 성경의 귀중함 보다는 개인적인 신비 체험들과 엉뚱한 예언 은사등을 난무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등장은 말세의 가장 뚜렷한 현상이 될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한국에만도 수천수만의 거짓 선지자와 선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결 같은 공통점이 있다면 특별 직통 계시, 또는 예언의 은사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매사에 예언을 받아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사실은 성경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 없이 직통 계시를 받아 신앙 생활하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수 없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분명 종말의 현상이 뚜렷하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더하거나 빼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 66권이면 우리의 구원과 신앙 생활에 충분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성경의 계시 외에 다른 무엇인가를 “더”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인 것입니다. 또는 ‘덜’ 말하는 것은 내 생각과 내 주장을 관철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진실한 주의 양들은 주의 음성을 알아 듣습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3-5, 26-29).
반면에 거짓 형제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음성을 듣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9-12).
예언을 한다는 거짓 선지자들을 멀리하고 항상 성경으로 돌아와 하루에 한 장이라도 성경을 읽는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람마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분량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가운데 성경에서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길 바랍니다.
유대인들처럼 성경을 읽지 말고, 도덕주의자들처럼 성경을 읽지 말고, 예수께서 성경을 보시는 방법대로, 예수의 제자들이 성경을 보는 방법대로, 그리고 성경이 성경을 보는 방법대로, 성령의 조명을 의지하면서 주의 종들의 가르침에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언제나 성경을 통해 우리의 포도나무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누가복음 9장을 또 다른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 9장 본문은 ‘오직 성경’에 선 우리들이 성경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성경을 풀 수 있는 어떤 열쇠가 담겨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다름 아닌 ‘십자가의 도’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새언약입니다. 이 열쇠를 붙들고 성경을 대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대하는지 모릅니다. 불신자들 중에도 성경을 읽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들 중에도 도덕이나 교양을 위해 성경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대교인들도 아직 구약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기적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자들이 다 구원을 얻으며 바르게 깨닫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푸는 열쇠를 가져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후 3:14-16).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만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대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열쇠로 하여 성경을 읽을 때만이 맘껏 성경을 깨달으며 자유함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한구절 더 찾아 봅니다.
누가복음 24장입니다. 누가복음 24장은 십자가의 구속을 마치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 땅에 40일을 계시면서 자신의 부활체를 통해 부활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또한 십자가의 구속과 죄사함이 무엇인지 제자들을 만나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첫번째로 만난 제자들은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고 두번째로 만난 제자들은 함께 모여 있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의 핵심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27).
또한 낙심 가운데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예수님의 제자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던 자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누가복음 24장 32절을 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말하고 있고, 누가복음 24장 45절은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누가복음 24장의 내용을 보면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경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하나는 <모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썼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요, 이러한 이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해 주실 때만이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성경을 보는 비결을 알려주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성경을 보아야 하는 것이요, 또한 우리는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주께 간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1:31)는 목표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읽은 본문을 살펴 봅시다.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본문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36절에 나오는 '오직 예수'입니다. Sola Christos, 오! 오직 예수입니다.
28절을 보니 예수님께서는 제일 좋아하는 제자 3명을 데리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의 인성 속에 가려 있었던 신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신적 본질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변화하셔서 광채와 영광 속에 계십니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어디선가 나타나 영광 가운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 내용을 보니 31절에 '별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놀랍게도 별세의 헬라어 원어는 “엑소더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나눈 내용은 과거의 출애굽 엑소더스가 아니라 새로운 엑소더스(New Exodus)였습니다. 그들은 “뉴-엑소더스”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뉴-엑소더스는 죄악의 세력으로부터, 죄의 심판으로부터, 죽음에서, 병에서, 사탄으로부터, 육욕의 굴레에서부터 탈출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이들에게 임할 뉴-엑소더스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졸다가 깨어 부시시한 가운데 이러한 모든 장면을 보게 되고 그들의 대화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그 광경이 너무나 황홀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황홀함 가운데 헛소리를 합니다.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하나는 모세를, 또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그리고 세 번째는 예수님을 위해 짓겠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함께 놓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때 구름이 덮칩니다. 구름이 자욱이 깔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구름 속에서 들립니다. 대단히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늘로부터 들려 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들리는 음성입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사건은 영음이 아닙니다. 지어낸 이야기도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으로써 증인이 있는 사건입니다. 이 장면이 실제였음을 먼 훗날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변화산 사건은 그의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 베드로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벧후 1:15-18).
사실 오늘의 본문의 장면은 너무 엄청난 장면이라서 말로 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구름 속으로 음성을 들려 주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점은 성경을 자세히 보면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등장 하시지만, 이 분들은 오직 예수를 증거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오직 예수만 외치고 생각하도록 힘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분의 장면은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율법, 출애굽)와 모든 선지자의 대표 엘리야(선지자, 예언)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별세’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곧, 뉴엑소더스, 진정한 의미의 출애굽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모든 구약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모든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로 대표되는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 제자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는 예수님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 제자는 신약의 대표입니다. 즉, 구약의 대표들과 신약의 대표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 있고, 이 모임에서 다룬 핵심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요, 새로운 엑소더스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성부 하나님께서 섭리하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시도록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부 자신께서 주인공이 되시기 보다 아들 예수님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사실 히브리서 1장 8절을 보면, 이를 더욱 명확하게 해 줍니다. 그 구절의 주어는 성부 하나님이신데,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이는 아들을 지극히 높이는 장면입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도 같은 내용을 지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오직 예수가 주로 고백 되어지는 곳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 7일 만에 오순절 날에 오신 성령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자신을 드러내시기보다, 그분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드러내시며 주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이름만 들어도 감사와 사랑으로 울렁거리게 만드는 일을 하십니다.
최근의 성령 운동의 문제점은 바로 이점입니다. 하나님 그분들의 의도는 '오직 예수'인데 사람들은 성령님을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요 15:26-27).
사도행전을 보아도 성령을 받은 자들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라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즉 성령의 증인이 아니라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즉,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내 증인”, 즉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임함은 예수의 십자가를 더욱 알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게 하시며 나아가 ‘오직 예수’만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며 그들을 통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께서는 특히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경을 보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성령-복음적” 성경 해석 방법이라고 칭합니다. 성령의 성경 해석 방법은 성령 충만한 자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를 봅시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성령 강림의 사건을 시작으로 해서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7-21). 그의 설교의 핵심이 사도행전 2장 36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리고 베드로의 이 첫번째 설교로 나타난 결과과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7-31).
다시 사도행전 3장으로 가면 베드로의 설교가 또 나옵니다. 이때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의 핵심은 “오직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행 3:20-24).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서 이삭, 야곱, 요셉,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모세의 탄생, 출애굽, 광야생활, 다윗, 솔로몬, 그리고 그 이후를 파노라마로 이야기하더니 결과를 말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행 7:51-53). 여기서 스데반의 설교의 결론 부분에 나오는 ‘그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처럼 스데반은 모든 성경에서 예수님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빌립의 사역이 나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내시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병거를 타고 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병거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를 만나 물어봅니다. “당신이 읽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이때 내시가 읽고 있던 구절은 이사야 53:7절이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도행전 8장 34-35절을 보겠습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
사도행전 13장에는 성령의 계시를 받는 바울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는 구약의 출애굽 사건부터 시작해서 사무엘, 다윗의 후손,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길,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행 13:28-30)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설교의 결론으로는 사도행전 13장 37-39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라.”
성령이 오순절을 계기로 역사 속에 임하신 이후에, 믿는 자들마다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성령을 받은 모든 신약 사도 및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가르침은 모든 성경을 통하여 '오직 예수'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께서 보내시며, 그 분의 이 땅에서의 가장 큰 사명은 “오직 예수”입니다. 사도 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사역으로서 바로 “오직 예수”의 사역이시며, 이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되어 역사하지 않으시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하나이시면서 “오직 예수”를 외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은 성경을 통하여 “오직 예수”를 증거하시고 친히 당신의 사역에서도 “오직 예수”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마지막 임종시에 유언을 하기 위하여 종이를 요청했습니다. 윌리암 부스는 그 종이 위에 “오직 예수"라는 단어를 쓰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필라 웨스트민트터 신학교 교수 중에 하비 콘(간 하배)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한국 교회를 안정되게 이루신 위대한 일을 이루신 선교사이시며 교수이셨습니다.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은 제가 그 신학교를 다닐 때 설교학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목에서 신학생들이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설교에서 예수가 빠지면, 자동으로 "F"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빠진 설교는 세상 도덕이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그러면 이슬람, 불교등과 다를 바도 없으며, 따라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학교에 에드몬드 클라우니라는 교수가 계셨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설교에서 “오직 예수”가 빠지면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설교는 세상에서의 도덕 및 사회 강연과 다를 바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설교에서 오직 예수가 빠지면, 우리가 성경 보는 것이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36절에서 다시 한번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다 물러 가고, 오직 예수만 남으십니다. “오직 예수”만 남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설교가 마친 후에는 “오직 예수”만이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소리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오직 예수입니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구원에 있어서 다른 길은 없었으며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사도 요한이 외침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9-12). 오직 예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은 “오직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의 말을 들으라”고 선포하셨고, 성령의 역사도 “오직 예수”입니다. 구약의 대표되는 모세와 엘리야도 오직 예수요, 신약을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오직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신구약의 뜻을 따라 “오직 예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성경을 한 구절만 찾고 마칩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십니다. 성령을 거역한다는 말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죄는 다 용서함 받을 수 있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 상태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을 거역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벌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 하였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라. 그분의 십자가를 믿으라. 예수를 너의 하나님과 구세주로 믿으라. 이는 성령의 음성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종교 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오직 성경, 오직 예수를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의 남은 평생이 오직 성경의 권위에 서서 오직 예수로 사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듭난 사람의 믿음
계 22장 18~19절 / 정필도목사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입시공부를 하느라 수고를 참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어떤 학생은 입시를 치르는 날, 시험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제를 다 풀고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험을 잘 쳤다며 기쁜 얼굴로 나왔기에 가족들이 모두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합격발표를 하는 날, 안타깝게도 그의 이름은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자신은 시험을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잘 치지 못해 시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가장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평소에 자기가 예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한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천국백성이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첫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둘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반드시 회개가 있고, 변화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언제나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좋을 때는 천사 같지만, 그 믿음이 식을 때는 마귀 사촌같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를 반복하지만 거듭난 사람에게는 회개가 반드시 있습니다.
셋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 아무렇게나 믿어도 구원받는 것으로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예수를 믿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예배에도 잘 나오고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하지 않습니다. 자기 기분에 따라서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여러분, 아무렇게나 믿어도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은 바로 ‘진리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어야 구원을 받지, 마음대로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진리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 하반절에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믿어야 구원을 받지,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단들도 자기 나름대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자기들만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똑바로 믿지 않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에게 편리한 대로 교리를 만듭니다. 그들은 잘못된 진리를 주장하고 따라갑니다. 예수를 믿어도 진리를 믿고 진리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2절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12장 32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자기 마음대로 가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연옥에 간다는 말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서는 무엇이든지 만들지 말고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나 베드로나 사도 바울의 상 앞에 절하라고 성경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서 섬기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잠언 30장 6절에는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구약 성경을 인용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 예수님은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구약성경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는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가감할 것이 없는 완전한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마디라도 더하거나 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더하는 자에게는 모든 재앙이 더해질 것이고, 제하는 자에게는 영생의 축복에서 제하여지고, 영원한 유황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1)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이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유명한 대학의 생물학과 교수로 있는 장로님은 일류학교를 나온 박사이지만, 진화론을 믿고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힘이 있는 분이었지만, 이 분은 천국에 갈 분이 아니고, 성령으로 거듭난 분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천지창조를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우리 마음에 믿음을 주셔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그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탄생 215주년을 맞이하여서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영국 사람 중에 진화론을 완전히 믿지 않는 사람이 51%였다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은 32%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3년 전에 조사한 미국의 통계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 3분의 2나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경 말씀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도 믿습니다.
(2)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홍해 사건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역사적인 사건을 항상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은 시인은 시편 136편에서는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건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그대로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탄생하셨다는 것(마태복음 1장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더한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십자가로 대속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중보자가 되려면 두 가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죄가 없어야 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기 때문에 신성과 인성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합으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자궁만 빌려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열 달 동안 자라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없으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 사실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말씀을 사랑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말씀대로 축복을 받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변화와 감동을 주어서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존경하는 김장환 목사님은 결혼하였을 때, 자녀를 둘 낳을 계획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덤으로 아들을 하나 더 주셨다고 합니다. 첫째와 둘째는 학교나 교회에 적응을 잘하고 잘 자랐는데, 셋째는 달랐다고 합니다. 장난도 심해서 목사님이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성경을 읽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성경 한 장을 읽을 때마다 백 원씩 주기로 하였습니다. 셋째 아들은 돈 받는 재미에 성경을 읽다가 어떤 날은 100장을 읽었다며 만 원을 달라고 하여 약속대로 만 원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 점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매를 들어도 말을 듣지 않던 아이가 말씀이 들어가니 변화가 되어서 어느 날 부터인가 돈을 받지 않아도 성경을 읽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경을 계속 읽어나가던 중, 사명을 받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단하여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현재는 대전에서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그 가정의 다섯 식구 중에 막내아들의 믿음이 가장 좋은듯하고 순종도 제일 잘한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말씀을 믿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넷째,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고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특별히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겨도 반드시 기도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평소에는 기도생활을 잘하지 않다가도 급한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을 믿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도 하지 않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 죽고 싶은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믿음이 부요해지고, 체험적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거듭난 증거입니다.
강남 중앙 침례교회의 이주선 집사님이라는 분은 간암 3기로 암이 몸에 퍼져서 수술도 너무 늦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포기된 환자이지만 맨발로 날마다 청계산을 올라가서 큰 소리로 힘껏 웃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수리 수양관에 가서도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교회의 기도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를 않아서, 병원에 가보니 암이 모두 없어졌다는 진단을 다시 받았다고 합니다. 이 분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여러분, 암이 퍼졌다고 모두 죽는 줄 압니까? 하나님이 살리시면 삽니다. 암이 생겨난 것처럼 암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은 낙심을 모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환란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말씀과 기도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계 22장 18~19절 / 박봉수목사
수학과 논리학에서 ‘필요조건’, ‘충분조건’, 그리고 ‘필요충분조건’을 이야기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헷갈려서 진땀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필요조건’은 무엇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물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물은 사람의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은 무엇만 있으면 충분한 조건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목자는 양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펴 줍니다. 양들의 안위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럴 때 목자는 양들의 충분조건입니다.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이 꼭 필요하면서 그것만 있으면 충분한 조건을 말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만 곁에 있으면 충분합니다. 엄마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엄마는 갓난아이의 생존에 필요충분조건입니다.
필요충분조건을 다른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행복한 부부는 서로에게 충분한 존재들입니다. 그대로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대 외에 다른 여자 또는 다른 남자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이 부부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주 특별한 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충분한 책입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본문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성경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조건인 셈입니다.
다음으로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 무엇이든 더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이든지 빼면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성경 말씀은 그대로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분조건인 셈입니다.
결국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충분조건인 셈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필요충분한 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을 잘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선 사람이 살아가는데 성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타종교인들입니다. 불교도들, 이슬람교도들, 힌두교도들 등등 저들은 성경 없이 살아갑니다. 성경이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성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단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대표인 예로 통일교를 들 수 있습니다. 통일교도 겉으로는 성경을 존중하고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런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란 자기들 나름의 계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부족한 부분을 이 원리강론이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겉으로 내세우는 장식용이고 실제로는 원리강론을 주로 경전으로 다룹니다.
또 하나 좀 성격이 다른 이단도 있습니다. 성경에 불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입니다. 대표적으로 초대교회의 마르시온이라는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구약을 성경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신약 안에서도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중 10개(딤전후, 딛을 뺀 나머지)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이단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 성경 안에 우리가 들어야 할 꼭 필요한 말씀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없이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만 있으면 충분한 말씀을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만 있으면 우리 신앙생활은 충분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성경은 왜 우리에게 필요충분한 책일까요? 이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위해 필요충분하다.
딤후 3:1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가를 말씀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한 죄인들이라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을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말씀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그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인간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20:3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또 요한일서 5: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을 말씀해 주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 가운데 챨스 피니(Charles G. Finney)라는 분이 있습니다. 원래 이분은 불신자였고, 28세에 변호사가 된 수재였습니다. 서재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책장에 성경책도 있어야 될 것 같아 큼직한 성경을 사다가 꽂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파 자리에 누워있던 어느 날, 성경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데 마음이 답답해 옵니다.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경을 파고들었습니다. 어느 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사무실로 가는 도중에 마음속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너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느냐?" 순간 구원의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그리고 롬 5:1 말씀이 그의 온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이후 이분은 생의 대전환을 맞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법관,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꿈을 접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목사가 되어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을 이끌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이 무엇인지 말씀해 줍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로 안내해 줍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성경은 꼭 필요한 책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원으로 안내받기 위해 또 다른 책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 책 안에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정말 구원을 위해서는 충분한 내용이 여기다 담겨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사랑하고 이 성경을 마음 깊이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구원의 놀라운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인생을 위해 필요충분하다.
시 107:4-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우리네 인생의 문제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첫째,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고 돌아다닌다는 말입니다. 더듬이가 잘린 개미가 집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캄캄한 밤중에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항해 길에 나선 배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 119:105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갈 길을 안내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침반은 중국이 발명한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라고 자랑이 대단합니다.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우선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점을 이용합니다. N극과 S극을 붙여 만든 막대자석은 지구의 자기장의 힘 때문에 어디에 있든지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게 됩니다. 즉 N극은 언제나 지구 북극점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래서 이 나침반을 보면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이 바로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늘 하나님을 향한 길을 안내해 줍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방향을 가리켜 줍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우리가 방황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둘째,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고달프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 11:28 말씀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수고의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 짐을 감당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생활하는 동안 몇 개월 병참부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부대는 군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가 각 예하 부대에 보내주는 일을 합니다.
한 번은 김장철이 돼서 고춧가루가 들어왔습니다. 작은 것은 60키로, 보통 것은 80키로, 큰 것은 100키로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트럭에서 내려서 창고에 쌓아두는 일을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습니다. 처음 그 부대에 갔을 때 제일 가벼운 60키로짜리를 짊어졌습니다. 창고 안까지 30미터 정도를 지고 가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쩔쩔 맸습니다. 그러다 80키로짜리를 지게 됐습니다. 중간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상관에게 혼이 났습니다. 그날부터 힘 기르기 지옥훈련에 내 몰렸습니다. 온 몸에 알이 배길 정도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근육에 힘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균형 잡고 달리는 요령도 터득하게 됐습니다. 한 달이 채 안 돼서 100키로짜리를 등에 짊어지고 달리게 됐습니다. 100키로짜리를 여러 번 짊어졌는데 끄떡없었습니다.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눅 5: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시몬 베드로가 밤새 고기 잡느라 피곤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다시 그물을 던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 힘을 줍니다. 성경은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에게 새 힘을 얻게 해 줍니다.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힘차게 인생길을 걷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성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보물을 귀히 여기며 일고 묵상할 때 우리는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3. 행복을 위해 필요충분하다.
미국의 영화배우였던 마를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아직 젊고 건강할 뿐 아니라, 매우 아름다우며 돈도 많이 모았습니다. 하루에도 수 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의 마음은 외롭고 공허하여 기쁨이나 평안이 없습니다. 나는 불행합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은 마를린 먼로가 가졌던 것 그것을 가지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그것을 가지려고 애쓰며 삽니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을 가진 마를린 먼로는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 나서보지만 결코 스스로 그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연구해 온 데이비드 마이어 박사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자기만족이다.” 행복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행복은 자기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만족할 때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행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무엇이 행복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 말씀해 줍니다.
대표적인 예로 시 1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은 행복 아닌 것을 행복인 줄 알고 잘못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늘 마음속에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눈을 열어줍니다.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줍니다. 행복 아닌 것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달려가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전혀 모르고 있는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행복이라고 깨닫게 해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켜줍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그래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책이고, 또한 성경 말씀을 묵상하기만 하면 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충분한 책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필요충분한 책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충분한 책입니다. 이 책을 가까이 하십시오. 이 책을 늘 읽고 묵상하십시오. 그것이 풍성한 삶의 길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교회
계 22장 18~19절 / 윤봉원목사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1. 성경대로의 삶은 너무 힘들어!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오늘날의 상황은 노아의 때와 같은 상황이 재현될 것임을 예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말씀대로 순종한 자에 대한 축복과 은혜의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말씀을 거역한 자에 대한 징계도 이루어집니다. 약속 이행에 대한 말씀뿐 아니라 모든 성경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평생 명심하도록 합시다.
이 사실을 온전히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바람이 나고 소망이 넘치는 삶을 평생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약속들은 금생 내생에 우리를 가장 행복한 자와 가장 소망이 넘치는 자로 만드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참조. 신명기 28장; .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 29: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이러한 약속들을 믿고 경험하면 할수록 성경대로 사는 것은 너무 힘들어, 그것은 목사나 신앙 좋은 사람들은 그대로 살 수 있으나 나는 못 살아!! 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2. 성경대로 사는 삶
2.1. 성경대로 배우고 실천하라!
우리는 성경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성경에 더하기 빼기를 하지 않고 성경대로 사는 자보다 복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확정 지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대로 살아야 하겠는데 성경대로 살려고 하면 성경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성경을 알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씀 묵상이 즐거운 사람, 말씀 묵상이 즐거운 가정, 말씀 묵상이 즐거운 교회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자 배우려고 힘쓰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갈급함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는 사람보다는 오후 예배까지 드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전, 오후 예배만 드리는 사람보다는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 복 있는 것입니다. 이 보다는 수요일 밤, 금요일 밤 예배까지 다 드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이런 복을 다 누리도록 합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2.2. 성경대로 전도하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가 경험한 좋은 정보는 괜히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기의 장기 자랑, 학교 자랑, 학생들 같으면 선물 받은 것 자랑, 맛있는 음식 먹은 것 자랑 등 다양한 것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문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랑을 잘 못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랑, 예수님 자랑, 성경 자랑, 교회 자랑, 목사 자랑, 신앙 자랑입니다. 사실은 이 자랑하는 것이 우리의 본업이 되어야 하는 데 말입니다. 이 자랑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을 구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수입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낚시로 말하면 가장 큰 월척을 낚는 것이지요. 왜냐고요? 한 사람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전도하여 믿음으로 잘 양육하면 이 세상에서 평생 돈을 벌어서 수 천 억, 수 조의 돈을 번 것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자가 다 되도록 합시다. 자기의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1~5)
2.3. 성경대로 기도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9)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4-15) 그래서 올해에 저는 예배 시간에 아픈 자들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올해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 깨닫는 은혜를 달라고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예배 시간을 통해서 은혜를 받아 현실에서 날마다 매 순간 승리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합시다. 전도 한 사람을 잘 양육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합시다. 성경대로 모든 부분에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날마다 매 순간 경험하여 누리는 신바람 나는 삶이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각 가정, 우리 교회에 일 년 내내 지속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2009년도를 마감할 때 일 년을 돌아보면서 내 인생에서 2009년 한 해 산 삶이 지금까지 수 십 년 산 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는 삶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대로 배우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성경대로 전도합시다! 성경대로 기도합시다!
이 세 가지를 일 년 동안 힘써서 성경에 기록된 재앙은 우리에게 하나도 임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축복만 풍성하게 누리는 주인공이 됩시다. 승리하세요.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장 20~21절 / 이충섭목사(승리교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열두 명의 방청객에게 던진 질문이다.
어린 소녀가 대답을 했다. "두 달 된 아기 때요. 모두가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잖아요. 그리고 모두가 사랑해 주고 관심도 보여주니까요."
또 다른 어린이가 대답했다. "세 살이에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고 하루 종일 놀 수 있잖아요."
십대 청소년이 말했다. "열여덟 살입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자동차를 몰고 어디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도 되니까요."
성인 남자가 대답했다. "스물다섯 살이 제일 좋은 나이죠. 혈기 왕성한 나이니까요" 마흔세살인 그는 이제 야트막한 고개를 오를때조차 숨이 가쁘다.
스물다섯 살 때는 한밤중까지 일을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지금은 저녁 아홉 시만 되면 잠이 쏟아진다고 덧붙였다.
어떤 이는 마흔이 인생의 정점이고 활기도 남아 있어 가장 좋은 때라고 했다. 어느 숙녀는 쉰다섯이 되면 자식을 부양하는 책임감에서 놓여 내 인생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좋은 나이라고 했다.
예순다섯 살이 좋다는 남자는 그 나이에 직장에서 은퇴한 다음 인생을 편안하게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방청객 가운데 대답을 하지 않은 사람은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할머니는 모든 사람들의 얘기를 주의 깊게 다 듣고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모든 나이가 다 좋은 나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자기 나이가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즐기세요."
오늘의 본문 말씀은 가장 중요한 결론의 말씀이며 크라이막스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 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을 아람어로「마라나타」라고 한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소망과 즐거움을 품을 수 있는 말씀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밝히 증거하며 살았고 또한 그것을 위해 싸웠다.
그렇다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이 말씀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1. 마라나타는 회개하라는 것이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께서 임하시기 전에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
회는 주님의 강림하심에 대비하여 항상 깨어 기도하고 헌신하여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미련한 다섯처녀들처럼 되지 말고 주님 오실 때에 데려감을 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24:40-43)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와 같은 사람,/ 내적인 부패와 죄악으로 가득찬 버가모 교회와 같은 사람,/ 미혹되어 행음한 두아디라 교회와 같은 사람,/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같은 사데교회와 같은 사람,/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고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예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는 심령이 있어야 한다. 회개하라는 말씀이 있는대로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셨다.
2. 마라나타는 충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고후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예수님을 위해 미치도록 한 번 충성과 봉사를 해 보시기 바란다.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말씀과 같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헌신하여야 한다.
예수의 복음을 위한 사도바울의 열심과 충성을 다른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였
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는 예수님 보고도 미쳤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충성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
라"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 마라나타는 천국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은 긍극적으로 내세가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요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
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성도들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요 영광인
것이다.
「마라나타」라는 이 말씀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말씀입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안된 사람은 절대
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성도만이 예수님을 향해서 마라나타! 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 계시되신 하나님
계 22장 20절 / 마경훈목사
한 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류의 타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교회시대 그리고 주님의 재림 후 심판을 통한 영원한 세상으로 이어집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이 손 안에 있으며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며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오늘 설교는 인류의 역사 흐름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특징적인 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진화론만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독을 급식용 반찬에 집어넣는 것처럼 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식의 소치라고 봐야 합니다. 미국의 켄사스주에서는 지난 99년 8월 11일 10인의 교육위원회가 모여서 "진화론은 확증 없는 하나의 이론이며 따라서 각급 학교의 교과 내용과 일체의 평가의 시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집마다 지은이가 있듯이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발명왕 아이작 뉴톤에게 무신론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뉴톤이 작은 태양계 모형을 만들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많은 별들이 비치는 모양을 만들어 놓고 그 친구를 초청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태양의 모형을 보더니 "야! 정밀하게 잘 만들었군 이거 누가 만들었나?"하고 물었습니다. 뉴톤은 "하룻밤 자고 났더니 저절로 생겨났어 만든 사람이 없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친구는 뉴톤의 대답을 듣고 "이 사람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만든 사람이 없이 어떻게 이런 정밀한 태양계 모형이 생겨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뉴톤은 "이런 작은 것 하나도 저절로 생겨날 수가 없다면 이것보다 더 정밀하고 질서 정연한 태양계와 우주 만물이 어떻게 설계한 분과 만드신 분이 없이 저절로 생겨날 수가 있겠는가?"하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수 십억 만년 전에 우주에 대 폭발 즉 빅뱅이 있었고 그 때에 떨어져 나온 찌끼가 태양도 되고 달이 되고 태양주위를 돌던 찌끼들이 이리 뭉치고 저리 뭉쳐서 지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합니까?
지구가 공중에서 끈으로 맨 것도 아닌데 정확히 24시간에 한바퀴 자전하고 365일에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합니다. 지구가 태양에 조금만 가깝게 돈다면 생명체는 다 타죽을 것이고 조금만 멀어 졌다면 다 얼어죽어서 생명이 살수가 없을 것입니다. 달과의 거리가 조금만 더 멀거나 가까워도 밀물과 썰물이 달라져서 온 지구가 물로 덮여 버리거나 생물이 살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지구가 계란처럼 타원형이며 조금 기울어져서 돌기 때문에 생물이 사는 것입니다. 만약 기울기가 10%만 달라져도 지구의 생물이 타 죽거나 얼어죽어서 생물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기가 막힌 사실들이 그냥 우연히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 하나만 보십시오. 우주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단순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물건도 저절로 그냥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주가 존재하며 인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요3:16은 성경의 중심 내용입니다. 그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몇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누가 먼저 사랑했는가 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인간을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요일4:10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는데, 그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의 모습이요 죄와 마귀에게 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롬5:6에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격이 없는 내가 사랑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허물로 멸망하여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까지 주신 그 사랑을 받아드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아무런 값도, 아무런 공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은 너무나 단순하며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데 못 믿습니다. 의심을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까지 주신 사랑을 받아드린 사람들에게는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은사 즉 선물로 따라옵니다. 롬8:32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 계시는 대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대속이란 말은 빚을 갚지 못해 종이 된 자에게 그 빚을 대신 갚아 주고 종된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막10:45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내가 죄를 범해서 죄의 노예가 되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자신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셔서 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7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그의 예언을 보십시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사도바울은 갈3;13-14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는 우리에게는 세 가지 축복이 주어짐을 말합니다. 첫째,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인 우리에게 미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네 번째 계시는 보혜사이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기 전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란 헬라어로‘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데, 그것은 나와 똑같은 다른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이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는 말입니다. 즉 성령님이 오신 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이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두 분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똑같은 하나님으로서 똑같은 사역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님이 보혜사 성령님이 구체적으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예수를 믿게 하십니다. 고전 12: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또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요14:25-26절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 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또 다른 일은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롬8:2을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따라 살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또 다른 일은 믿는 자를 복음의 증인되게 하십니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인도하십니다. 롬8:14에서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보혜사 성령님은 신자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롬8:26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은 신자에게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주십니다. 고전12장에 보면 능력적인 차원의 아홉 가지 은사가 성령으로부터 온다고 말씀합니다.
또 보혜사 성령님은 성령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십니다. 갈5:22-23을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주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해서 살면 사람이 바뀌게 됩니다.
다섯 번째 계시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인데, 주님이 오시면 온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은 누가 받게 됩니까? 계20:12 -13절을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살던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판이 끝나면 심판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계20: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즉 영원한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지옥에 대해서 막9:48,49에서는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계20:15을 잘 보면 심판을 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입니다. 그럼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요 3:18에 그 해답이 나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예수를 믿는 여러분과 나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심판을 면했고 심판을 이긴 것입니다.
그럼 심판을 이긴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계21장과 22장에서는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며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고전3:12-15을 보면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영원한 상급이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푯대 즉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
계 22장 20절 / 김필곤목사
과학자들은 크게 4가지 경우로 인류의 종말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핵전쟁, 둘째는 기후 재앙, 셋째는 전염병, 넷째는 태양 폭풍이나 초신성, 행성과 충돌 등과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지구는 끝이 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인류의 멸망을 알리는 “지구 종말의 날 시계”가 있습니다. 올해 종말 시계는 100초 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1947년 생긴 이래 종말에 가장 근접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핵무기· 기후변화· 새로운 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설정했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TO)는 대규모의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즉시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인류가 비축하고 있는 핵은 1만 5천개로 핵 전쟁이 일어나면 방사능으로 인하여 멸종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발로 760만이 즉사한다고 하는데 1%만 터져도 동식물은 전멸한다고 합니다. 빌게이츠는 인류의 멸망은 핵전쟁이 아니라 전염병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 위해 중국 등에 1220억을 기부하였습니다. 인류는 6세기(유스티니아누스역병)와 14세기(흑사병) 두 차례에 걸쳐 당시 세계 인구의 13~16%가 목숨을 잃는 경험을 이미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역병으로 망했고, 로마는 페스트 천연두로 망했다고 합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창궐로 전 세계적으로 5천만명에서 1억 정도 사망했는데 빌게이츠는 “10억명에 달하는 인구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무기는 핵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대로 가면 기후 온난화로 2050년이 되면 지구 평균 기온은 3도가 올라가고 북극 빙하가 사라져 지구는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 사는 사람들이 지구 종말을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제4차 환경보고서는 "현재 지구상에서 생물의 멸종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양서류의 30% 이상, 포유류의 23% 이상, 조류의 12% 이상이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합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지구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태양도 수명이 있습니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 지구 근처에서의 초신성 폭발, 다른 거대한 천체의 폭발 등 다양한 변수들이 어떻게 지구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종말의 시계는 어떤 요인에 의해 언제 0시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죽듯이 우주도, 태양도 수명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태양으로 인해 어느날 지구의 온도는 700도까지 오르고 모든 생명체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유전공학, 정보통신, 인공지능, 항공 우주공학 등의 발달로 인류는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할 것같지만 언젠가 종말이 임하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인류 종말의 때를 계시록은 말씀해 주고 있씁니다. 그 때가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날 각종 재난을 말씀하면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예수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1. 예수님은 진실로 속히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속히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진실로(나이)라는 말은 강한 긍정을 표현하는 말로 “확실히 그렇다”라는 뜻입니다. “속히”라는 말은 임박함을 말씀하지만 시간적 의미인 '곧'보다 '번복되거나 취소됨 없이 반드시 이루어 질 일'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확실하게 속히 오신다는 약속은 역사의 계시를 마감하면서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세 번이나 강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반드시, 확실히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2장 16절, 3장 11절에서도 예수님은 속히 올 것이라고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실 것을 믿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재림은 종교적 허구이며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되기 전의 신화적 사고에 기반한 신앙 고백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학자 중에에는 실현된 종말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림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 속에서 이미 실현되었다고 말합니다. '상징적인 종말론'을 말합니다. 예수의 재림에 대한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재림은 실제적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인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재림설'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성령 강림으로 오순절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오순절에 성령을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재림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을 때 성도의 마음 속에 이미 재림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영으로 같이 계시기 때문에 따로 재림하시는 일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역사 속에 수없이 이런 미혹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이 반드시 속히 오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재림의 약속을 해 주신 분은 인간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속히 온다는 말입니까? “내가”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은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무엇이겠습니까? 복수 지시 대명사로 요한계시록 전체를 말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누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증거했습니까? 나 예수입니다. 천사를 보내어 교회를 위하여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 2절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예수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장 10절에서도 “예수의 증거”를 계시록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통해 나타난 예언의 말씀 전부를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계시이며 주제가 그리스도입니다. 1장 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누구의 계시라고 합니까?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단 교주의 계시가 아닙니다. 요한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화가 아닙니다. 문학 작품이 아닙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그리도께서 보여주신 계시이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계시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1장에서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1:17,18). 2, 3장에서는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장 1절을 보십시오. 일곱 별(사자)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4,5장에서는 천국의 영광이신 그리스도입니다. 4장 11절, 5장 12절을 읽어 보세요. 하나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이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물을 지으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6-18장은 인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 심판하십니까? 6장 1절을 보세요. 어린 양이 일곱 인을 떼십니다. 역사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22장에서는 역사의 완성자도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장에는 어린양 혼인잔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20장에 천년왕국, 21 ,22장에 새하늘과 새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룹니까? 21장 6절을 보십시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인류 구속사에 대한 말씀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사탄의 타락, 우주창조, 인간창조, 인간의 타락,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천년왕국, 사탄과 그 졸개들과 그를 따르는 불신자의 심판, 그리고 영원한 천국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는 것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이 마지막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이 네 번 나옵니다. 구약 창세기 2:1에 한 번 나머지 세 번은 모두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창세기 2장 1절(카라)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그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계획하셨던 모든 것을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9장 30절(텔레오)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인류 구속의 길을 여는 일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류 구속의 역사의 두번째 과정이 다 이루어졌다(It is finished)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6:17(기노마이)을 보십시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It is done.)”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되었다라는 말이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재앙은 사탄과 그 졸개들은 잡아 무저갱에 가두고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는 산채로 불못에 던져 버립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과 박해와 약탈과 순교를 당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시는 일이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인간 세상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기노마이)을 보십시오. ‘이루었도다’(It is done.)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세상 역사가 끝나고 영원한 천국이 시작됨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인류구속 사역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다 이룸으로 어떻게 됩니까?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했습니다.
이 일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천지 창조에서 천지를 시작하신 분이라는 의미에서의 알파요 처음이시며, 사탄과 그 졸개들과 사탄을 따르던 자들을 심판하시는 자로서의 세상 역사를 끝내시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오메가요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의미에서 처음이요 나중이 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습니까? 성경의 중심 인물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였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예수님의 재림은 확실합니다.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예수님이 직접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 13:26)"
재림에 대한 예언은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요14:3; 마24:30; 마26:64). 사람들은 조그만 권위 있는 사람이 말하며 믿으면서도 이런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성경이 확실하게 약속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18-19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7절을 보세요.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1장 3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초림하실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모두 191개나 나옵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대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300회 이상 말씀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림에 대한 기록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록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서 전체 구절 가운데 25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재림에 관한 언급이 없는 책은 요한2서, 3서, 빌레몬서, 그리고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등 뿐입니다. 구약의 주제가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면 신약의 주제는 영광 중에 재림하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약속 있는 예언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흐르고 있는 메시아사상은 신약 요한계시록 끝부분에 와서 재림하실 예수님으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에덴 동산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시작되는 신천신지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재림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야고보도 말하기를, "너희는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5:7)"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약속은 확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땅의 모래알같이 만을 것을 예고하였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노아에게 말씀으로 홍수를 예고하였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을 예고하였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도 수없이 예고되었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된대로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으시고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오늘의 시대는 말씀의 무력화 시대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절대성을 부인합니다. 말씀이 칼질당하고 있습니다. 이성이 말씀보다 앞섭니다. 경험이 말씀보다 앞섭니다. 그래서 이성 만능주의, 경험 만능주의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6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여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으십니다(시119:86; 신7:9)
아직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확신이 없으신 분이 있습니까? 아직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회색지대에 살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직도 믿어지지 않으신 분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확실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하게 믿고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확실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마 16:27) 공회 앞에서 선언하셨고(마 26:64)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요14:1-3) 그리고 천사가 분명히 증명하였고(행 1:11)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습니다(살전 4:14)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으로 우리에게 기대와 환희, 기쁨과 위로, 소망을 줍니다. 재림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힘있고 능력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을 확실하게 믿고 사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아멘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시니까 사도 요한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멘”으로 반응합니다. “그 뜻이 진실로 그러합니다. 나도 그렇게 동의합니다. 나도 그렇게 확실히 믿습니다”라고 약속의 말씀에 아멘으로 반응합니다. “뻥이요”가 아입니다. 예전에 제가 부목사로 섬길 때 예배당 맨 뒤에서 안내하는데 담임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믿습니까?”라고 하니까 뒤에 있는 아이가 “뻥이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뻥이요”라는 말이 유행하니까 그대로 흉내를 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뻥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뻥이 아닙니다. 복있는 신앙은 아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에 예수님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멘으로 오셨고 아멘으로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완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아멘을 세겨 넣으신 분이십니다. 세상에 아멘하지 말고 말씀에 아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이성과 과학에 아멘하지 말고 예수님께 아멘해야 합니다.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19-20)”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3만 2천 5백여 가지의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그 중에 7천여가지의 축복의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이 약속들은 모두를 위해 주신 것이지만 실제로 그 약속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아멘 신앙을 가진 자들의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 때 그 약속을 누리는 자는 아멘으로 화답한 노아 밖에 없습니다. 천국 가신 황수관 박사는 명약 중의 명약은 아멘약이라고 간증하면서 아멘할 때마다 우리 몸속에 이로운 약이 주룩주룩 분비된다고 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도 아멘 아멘 하다 보면 고쳐진다는 것입니다. 아멘이 없는 교회는 부흥도 안된다고 합니다.
토마스 해리스라는 학자는 인간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유형은 I am not O.K. You are not O.K(너도 안되고 나도 안되고)라는 유형입니다. 비관주의 염세주의자들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I am not O.K. You are O.K. 유형입니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만 하고 사는 소극적인 사람입니다. 셋째는 I am O.K. You are not O.K. 유형입니다. 자기만 옳다고 하는 독선적인 사람입니다. 네째는 I am O.K. You are O.K. 유형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아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사 예하고 순종하며 복받는 사람입니다. 찬송할 때도 ‘아멘’, 기도할 때도 ‘아멘’ 성경봉독 할 때도 ‘아멘’ 설교 들을 때도 ‘아멘’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아멘’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대중가요 노랫말 연구회에서, 가수들을 분석해보았는데, 박상희 회장의 결론은 가수들도 노래를 부른 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가수들은 한 곡의 노래를 취입하기 위해, 똑같은 내용의 가사를 보통 2,000∼3,000번이나 반복해서 부른답니다. '죽겠다' ‘슬프다’라고 부르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의 찬미를 불렀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가수 윤심덕은, 현해탄에 몸을 던졌답니다.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 남인수은 노랫말처럼 41세 짧은 인생을 마감했답니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은 49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은 29세, '간다 간다 나는 간다'라는 노래를 부른 김정호는 33세에 요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쨍하고 해 뜰 날'을 부른 송대관, '나는 행복합니다.' 부른 윤항기, ‘저푸른 초원위’를 부른 남진 등은 노랫말처럼 잘 산다는 것입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견인력과 성취력과 각인력이 있습니다. 부정적이면 좋은 것도 나빠지고 나쁜 것은 더 나빠집니다. 아멘하면 좋은 것은 더 좋아지고 나쁜 것도 좋아집니다. 말씀에 아멘하면 말씀대로 되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말은 보험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에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속히 오신다는 말씀과 연결시켜 7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은 말씀에 아멘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복은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한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시니까 어떻게 반응합니까? “주 예수에 오시옵소서”라고 반응합니다. 신속히 오실 것을 강하게 염원하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도미티아누스 황제에게 핍박을 받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 이 재림신앙을 전파한다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유배당하여 있습니다. “예수님 곧 오신다고 하였는데 왜 이렇게 오시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이런 고난을 당하여야 합니까? 왜 이런 고난당하여야 합니까?” 원망하거나 회의하지 않았습니다. 재림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마라나타”라는 말은 당시 성도들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성찬식 공도 기도문에 들어가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얼마나 성도들이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까? 황제 숭배를 거역한다고 감옥에 갔습니다. 화형을 당합니다. 십자가 형을 당합니다. 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재림 신앙을 가지고 이기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재림신앙으로 인간 문제의 해답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다스리시는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 가난, 기근, 질병, 고통, 한숨, 눈물의 문제가 주님 오시면 다 해결될 것입니다. 식량, 환경, 부의 불균등, 전쟁, 질병, 정의, 아버지 찬스, 엄마 찬스, 지역감정, 진보 보수의 갈등, 불의한 정권의 핍박 문제가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하게 해결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어떻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믿습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실 날이 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존전에 기쁨으로 설 것입니다. 모든 수고가 그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세세토록 왕노릇을 합니다. 죽음의 노예, 죄의 노예, 질병의 노예, 돈의 노예로 살지 않습니다.
21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눈물을 닦아 줍니다. 원수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다시는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섬김대로, 충성한대로 상급을 받습니다(요4:36; 마25:21). 면류관을 받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17-18)” 주님이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하면 조롱합니다. 곧 오신다고 하는데 왜 이제까지 안오시냐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3:3절에 보면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그렇게 우리를 조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적인 의식이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이요 개념입니다. 시간을 만드시고 시간을 초월한 하님의 개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시간을 말씀할 때 천년이 하루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살았던 그들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 해도 저는 기쁘게 주님을 맞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된 세상에 살면서 재림 신앙을 가지면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정말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할 수 있습니까?
아멘 생활로 승리합시다
계 22장 20~21절 / 변한규목사
오늘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저는 아멘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아멘.” 아멘은 그리스도인의 대명사입니다. 아멘은 기독교가 아멘 종교인 것을 설명해줍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믿는 사람들은 아멘 하면은 통합니다. 나도 아멘인데, 너도 아멘이냐는 말이 있듯이, 피차 예수님을 믿는 성도란 뜻입니다. 1972년도에 열렸던 미국 달라스시의 빌리 그레함 세계 집회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의 구호가 아멘이였습니다. 서로가 인사를 할 때에 인사말이 ‘아멘’ 짤막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만날 때마다 손을 들면서 아멘하곤 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모인지라 언어가 통하지를 아니했지만 아멘으로는 서로 통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멘은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멘은 성도들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면서 아멘을 자주합니다. 찬송하면서도 아멘하고 기도할 때도 아멘 합니다. 아멘하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멘하면 자신에게 은혜가 됩니다. 글자그대로 진실로 아멘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멘하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지난 주간에 부흥하는 어떤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 부흥에 비결이 무엇인고, 살펴보았더니 아멘을 잘하는 데 있었습니다. 왜 아멘하면 교회가 부흥합니까? 아멘 기도가 응답되기 때문이요, 아멘 찬송이 하늘 보좌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멘 생활의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멘을 자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땅에서 우리 모두는 아멘을 자주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 가서도 할 일이 있습니다. 아멘 아멘입니다. 하늘나라의 예배 광경을 보십시오. 24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아멘 할렐루야”란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계 19:4). 이 땅에 교회들이 많습니다.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아멘소리가 큰 교회요, 또 하나는 아멘소리가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아멘소리가 큰 교회는 대체적으로 부흥하는 교회요, 아멘소리가 작은 교회는 조용하기는 하지만 크게 부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멘은 자주 해야 하고, 아멘은 자신 있게 해야 합니다. 신명기 27:15-26을 보시면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어다’는 말을 12번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믿음 있는 성도가 아멘 잘 합니다. 그리고 아멘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전 1:20).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004년 새해 첫 주일 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멘집사가 되고 아멘권사가 되고 아멘장로가 되고 모두가 아멘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진실의 생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4-15). 여기 아멘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아멘이십니다. 여기 아멘은 진실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쓰신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헬라어 원어 성경으로는 ‘아멘 아멘 모이포테’, 아멘 아멘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멘은 진실로 뜻입니다. 인생을 진실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더욱 아멘 아멘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진실하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무슨 뜻입니까? 내가 네 진실되지 못한 행위를 아노니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진실치 못한 것을 아십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9). 사랑하는 성도여! 진실하신 예수님 앞에 이 시간도 빈 손들고 나아가십시다. 진실되지 못한 언어를 진실하신 주님 앞에서 한번 토설을 해보십시다. 진실되지 못한 나의 행실을 들고 진실하신 주님 앞에 나아가 고백하는 시간되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누가 지옥에 떨어진다 했습니까?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계 21:8).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계 22:15) 지옥 불에 떨어지리라 했습니다.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함께 죽었습니까? 거짓말하다가 그리 됐습니다. 왜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문둥병에 걸렸습니까? 은 한달란트와 옷 두벌 욕심을 가지고 주인을 속인 죄 때문이었습니다. 서양 속담에 거짓은 아무리 길어도 백년 못 간다는 말이 있고, 진실이 없는 사람의 마음에는 화장실도 짓지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의 화천풍은의 말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 무기는 진실이다고 했습니다.
존 번연이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기독교와 진실이가 허망전람회를 구경한 내용만 소개합니다. 전람회에 화려한 것들이 많이 진열되었습니다. 금, 은, 보석 등 엄청나게 많은 물건입니다. 종업원들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사시렵니까?” 진실이가 대답합니다. “진실을 사러 왔어요.” 그때에 종업원들은 화를 벌컥 내면서 하필이면 있지도 아니한 진실이냐, 책망하면서 결국은 구타하고 죽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진실 찾기가 힘듭니다. 진실이 이 땅에서 죽은 형편입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허위요, 거짓이요, 가짜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회칠한 무덤이요, 울리는 꽹과리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고, 양의 가죽을 둘러쓴 이리의 마음이요, 두 마음을 품은 인생들입니다. 또 이 세대가 무엇입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 16:4),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마 17:17), “거스리는 세대”(빌 2:15)입니다. 물론 저마다 신사복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야만이요, 분 발라놓아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회칠한 문명입니다.
구라파 여행 중 일어났던 대화입니다. 조종사가 승객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이러한 아침에 하나님이 계심을 실감하지 아니하면 비행기를 타고 구라파 여행하는 것,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밖을 내다보십시오.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랬더니 탑승했던 군목이 밖을 내다보면서 말을 했습니다. “너무도 아름답군요.” 그러면서 덧붙였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시편 시인은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어린이들은 말합니다. “하늘은 커다란 그림책입니다. 구름이 자꾸 자꾸 그림을 그려놓습니다. 저것은 양떼, 저것은 토끼. 구름이 우리나라 지도도 그립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인생을 이 자연처럼 아름답게 사십시다. 아멘 생활을 통해서 금년 한해 진실의 열매를 많이 맺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독일 사람이 혀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결국은 혀를 잘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의 말입니다. “혀를 자를 수밖에 없는데, 자른 다음에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혀 자르기 전 마지막 남길 말이 있으면 하시지요.” 환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곤 입술이 떨립니다. 겨우 입을 열어서 한마디 남겼습니다. “주님, 진실 되게 살겠습니다. 아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내 인생을 진실 되게 살아보십시다. 그리고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둘째, 찬송의 생활입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시 41:13). 여기 아멘은 뜻이 많습니다. 그런 중에 진실하다는 뜻도 있고, 여기서는 찬송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멘성도는 찬송생활을 통해서 아멘 아멘 해야 합니다.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72:19).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시 89:52). 찬송가중에 가장 짧은 찬송이 몇 장입니까? 551장입니다. 가사는 한 마디, 우리나라 글자는 두 글자 아멘으로 된 찬송입니다. 552장부터 558장까지가 아멘 아멘으로 되어 있는 아멘 찬송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찬송은 아멘 찬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성경봉독이 끝나면 아멘 하십시오. 기도가 끝난 다음에 아멘 하십시오. 또 찬양대의 찬송이 끝나면 아멘 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 찬양 내용이 우리들의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라도 아멘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믿음이 불어납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이 축복 할 때에 꼭 아멘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축복이 내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축복대로 되기를 원하는 뜻으로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아멘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요, 간증이요, 찬송입니다. 따라서 아멘은 진실 되고 성실되고 뜨겁게 해야 합니다. 아멘 없는 믿음은 김빠진 사이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뭐라 말씀하시던지 아멘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 모두에게는 아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없어요, 변명이 없어요, 아멘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입으로 아멘하면서도 아멘생활이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은 죽은 아멘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혹시는 죽은 믿음 지니고 있는 성도 있지 않습니까? 하루에 찬송을 몇 번 부르십니까? 찬송하면서 아멘을 몇 번 하십니까? 아멘의 생활은 찬송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아침에도 찬송, 낮에도 찬송, 저녁에도 찬송, 찬송을 많이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찬송은 성도의 경건한 노래입니다. 기독교는 찬송하는 종교입니다. 생각하면 찬송을 떠난 성도 없고, 성도 없는 찬송 없습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06:48). 여기 할렐루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면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아멘 할렐루야 믿음이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예배드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서도 천사들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에 찬송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계 7:12). 성도여, 찬송을 열심히 부르십시다.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멘생활로 승리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대망의 생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0:22). 여기 아멘은 대망의 뜻을 지닙니다. 아멘 생활하는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쉬지 아니하고 이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의 대망하는 것이 황금입니까? 우리의 기다리는 것이 부귀영화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부자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벽에 있는 금고를 보면서 만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금고 속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했고 저금통장, 유가증권, 가옥 등기 문서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순간, 밖에서 갑작스럽게 이상한 음성이 들여왔습니다. “누구세요?” 그때 밖에서의 대답입니다. “나는 청하지 아니해도 찾아오는 손님, 거절해도 찾아가는 손님, 나는 저세상에서 당신을 방문한 손님이외다. 어서 일어나 나오시오.” 독촉했습니다. “나는 못한 일이 너무 많은데요. 좀 기다려 주십시오.” 저쪽 대답입니다. “안되오. 내게는 기다리는 법이 없소.”“그렇다면 제 금고에 있는 것을 몽땅 드릴 테니까 좀 기다릴 수 없는지요.” 그때 죽음의 사자가 말할 것 없이 달려들어 그 사람을 몽둥이로 쳐 데려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일장춘몽입니다. 부귀영화도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니 ♬ 초림의 예수님을 알파라고 하면 재림의 예수님은 오메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확실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믿음 있는 성도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십시오. 물 없는 사막과도 같습니다. 파고 또 파 봐도 모래알뿐입니다. 신기루가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좇아가도 잡히지 아니하는 것이 신기루입니다. 그런데 재물도 신기루와 같고, 명예와 권세도 같습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부모는 날 버려도 재물을 날 버려도, 예수님만은 날 버리지 않습니다. ♬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성도여, 아멘생활을 하십시다.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십시다. 대망하는 생활을 하십시다. 그리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이란 말은 뜻이 많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동감의 뜻도 있습니다. 맹세의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멘은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습니다. 나도 그렇게 소원합니다.”는 뜻입니다. 가령 기도할 때에 “주님 뜻대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하면 나도 덩달아 “아멘”하지 않습니까? 이때에 아멘이 무엇입니까? 나도 기도하는 사람 내용과 같이 그렇게 살겠습니다는 뜻입니다. 그리곤 찬송합니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참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입술로만 아멘하고 입술로만 찬송하고 실제로 주님 뜻대로 사는 아멘생활이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것은 비극입니다. 성도의 손해입니다. 슬픔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여 “떠나라” 했더니 아브라함이 어찌했습니까? 아멘 했습니다. 그리고 어찌했습니까?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멘 했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아멘생활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멘 결과가 무엇입니까? 축복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 22:17). 주의 종이 축복을 할 때는 반드시 큰소리로 아멘 해야 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롬 15:33).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갈 6:18).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1절).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아멘하면서 축복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성탄 사건이 구원의 출발이라고 하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 사건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나의 구원 완성을 위하고, 우리 모두의 구원 완성을 위해서라도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셔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재림을 아멘으로 대망하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역사적인 사건이요, 일점일획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예언이기도 합니다. 변개시킬 수 없는 예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12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0절).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아멘 하십시오. 저도 우리 원로목사님께서 붓글씨로 써주신 ‘아마 오늘이나’이것을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놓고 자주 보면서 아마 오늘이나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셔야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한사람도 빠짐없이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한해를 살 때 우리 모두가 아멘생활로 승리하실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나타
계 22장 20~21절 / 김 조목사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금년도 시작했는가 했더니 끝이 되었습니다. 이세상도 말세의 징조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세계 곳곳에 이상기온이나 기근, 지진, 전쟁 소식과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이 주님 오실 때가 임박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던 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니라”(행1:11) 하심으로 시와 때는 아버지 권한에 있기에 언제인줄 모르지만 분명히 주님 다시 오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셨습니다.
구약에 450여번 예언하셨고 초림하신 예수님은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으나 1518번이나 재림을 약속하시고 오실 주님은 심판의 주로 오실 터인데 왜 우리에게 그때를 말씀해주지 아니하셨을까요? 그것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언제나 기다리며 살아가라는 말씀이기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초대교회 예배 의식에 자주 사용되던 것이었고, 고전16:22 “주께서 임하느니라”는 마라나타의 아람어식 발음이기에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환영하는 성도의 신앙이 되기 바라여 “마라나타”라 제목하고 그러한 신앙을 살펴 은혜 받고자 합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성경에 제일 끝에 있는 책으로 성경의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으로 세상의 시작과 끝과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역사를 말하고 있으나 본서 만큼 그리스도를 중심한 종말적인 예고를 세밀하게 말씀한 책은 없습니다. 본서는 사도 요한이 본 것(1: ), 이제 있는 일(2:-3), 장차 되어질 일(4:-22:)을 말씀하는 것으로 앞으로 되어질 일을 보여줌으로 극한 고난과 박해 속에 있는 성도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며 최후의 승리를 확신케 함으로 신앙의 변절을 막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우리 모두 “마라나타”의 신앙을 살펴 은혜 받읍시다.
1. 확실한 소망을 가진 외침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가 만나기만 한다면 병든 자 고침 받고 죽은 자 살아나고 가난한자 부자 되고 좌절한 자 새 소망 갖게 되고 세상에 그 어떤 권세로 굴하게 하시며 사단의 계교로 물리쳐 주실 것이니 그러한 것을 확실하고 소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면 육체적인 세상 모든 것 다 해결해 주실 것이니 주님 오시기를 소망하는 외침이요, 육적 문제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기쁨 주실 영적 문제로 주님 오시면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소망의 외침인 것입니다. 수 많은 전쟁과 대적들과 배신자의 아픔을 경험하고 사울 피해 도망하던 다윗도 하나님이 언제나 찾아 주시기를 기대하며 경험했던 것이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것만 자기들의 요구에 만족하지 아니하여 모셔들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의 참소망이신 예수님 확실하게 바라봄(소망)으로 영원한 기쁨 얻고 생명 얻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 되시기 바라며 이것이 “마라나타”의 신앙입니다.
2. 상 받을 준비한 믿음의 외침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신앙 고백을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요약이요, 요한계시록에 흐르는 중심 사상으로 주님께서 오시면 상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외침입니다. 상 받을 준비 없는 자에게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면 얼마나 당혹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상 받을 준비가 되고 하나님께 칭찬 받은 일 한 사람은 그 때를 얼마나 기다리겠습니까? 이렇게 주님 맞을 믿음, 상급, 준비 다한 자가 마라나타의 신앙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님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초림의 주님은 구원의 역사로 오셨으나 재림하실 주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 칭찬과 상급 받을 준비 다하고 오실 때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잘 압니다. 등은 준비했으나 기름이 없어 다섯 처녀는 신랑 맞이할 수 없었고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만 신랑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 나는 얼마나 준비했나요?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라고 칭찬 받을 준비 다하고 마라나타를 외치는 성도 되시기 원합니다.
3. 구원의 기쁨이 넘치는 외침입니다.
주님 우리 찾아 주시니 주님 은혜 아래 있어 모든 문제가 해결해 주실 것이요, 영적으로 구원함 얻어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얻게 되니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그러기에 마라나타의 신앙은 언제 어디서나 즐겁고 기쁘기만 하답니다. 그러기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외침은 기쁨과 감사와 감격에 벅찬 환호의 소리인 것입니다. 이미 구원 얻었기에 죽음의 세력도 무서울 것이 없고 죄악의 고통에서도 해방된 것이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기를 치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기도해주며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났던 스데반 집사의 구원의 기쁨은 사울을 바울 사도로 변화되게 했습니다.
구원에 감사가 있었기에 기도한다고 사자굴 속에 던져 넣었으나 살려달라고 애원은 커녕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던 다니엘의 모습 속에 그 감사와 기쁨이 바로 마라나타의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고 식물이 없고 양, 소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 같이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성도들 속에도 충만 하기를 원합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임박해지는 요즈음 우리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가 살펴보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만 확실한 소망을 두고 있는 신앙이요, 영육간에 문제 해결해 주시며 상 받을 준비가 된 믿음을 가진 성도의 외침이요, 구원의 감격에 기뻐 환호하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세상을 넉넉히 여기시고 마지막 때에 칭친 받는 성도 되시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