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 정여신
START . 2013 . 8 . 17
Title . 동상이몽
너무 다른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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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태권도복 위에 두툼한 핑크색 노X패딩을 입고
자신의 얼굴보다 큰 귀마개를 한채 왼손은 패딩주머니에 푹 찔려넣고 오른손은 커다란 호빵을 들고 입김이 새어나오는 입 안으로 호빵을 우겨 넣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한 소년....아니 소녀
아마 태권도 도장에 다녀와서 집으로 가고 있는 걸로 보이는 이 소녀는 소녀의 집으로 추정되는 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지
어느새 커다란 호빵을 다 먹은 소녀는 다소 아쉬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가락에 묻은 앙꼬를 쪽 빨고는 오른손 마저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으 추웡~"
2월 말, 뼈를 깍는 강추위에 소녀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리 하면
"진짜 없냐?"
"네.. 진짜 없어요"
"진짜? 진짜?"
"네"
"너.."
"........"
"진짜 가오 안살아서 이런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뒤져서 나오면 100원당 10대"
.....소녀의 정의감이 집앞에 다달은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정의감은 투철하지만 상관없는 일에 끼어드는걸 그닥 반기지 않는 소녀가 가만히 멈춰서서 아파트 한가운데에 있는 놀이터를 향해 눈쌀을 찌푸리면
어릴적 소녀의 아지트였던 코끼리 미끄럼틀 사이로 이제막 중학교에 들어간것 처럼 보이는 옛된 소년이 코끼리 미끄럼틀에 가려진 악당에게 삥을 뜯기고 있었다.
'에이 뭐야, 중학생이네'
자신도 중학교 졸업한지 고작 10일 정도 지났으면서 중학생보다는 어른인 소녀는 중학생일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는가보다.
왜냐구? 쪽팔리잖아
애써 정의감을 삭히고 못본척 발길을 돌리려고 하면
"오호- 니 지갑에서 나온돈 정확히 24700원"
"...그..그건.."
"구라쟁이네"
".....죄..죄송해요!!"
"그래 죄송하면 이천사백칠십대 맞아야지?"
'아오!! 도저히 안되겟다!!! 대체 어떤 못되먹는 자식이 유치하게 삥이나 뜯고있어!!!! 이걸 못본척 그냥 가는건 내게 정의와 평화를 가르쳐준 사범님께 몹쓸짓이야!! 강봉희의 주특기 뒤돌려차기로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겟어!!!'
결국 소녀는 불타오르는 정의감으로 허리에 묶인 검은띠를 질끈 동여매고 두손을 불끈 쥔체 발걸음을 내딛지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자 코끼리미끄럼틀에 가려졌던 악당의 둥근 바가지 머리가 보인다.
두걸음
두걸음을 내딛자 악당에 걸맞은 눈으로 사악한 눈웃음을 짓고 있는 악당의 얼굴이 보인다.
우뚝..
정의를 구하러 가는 소녀의 포부넘치는 발걸음이 세걸음도 못가 다시 멈춰서지
그리고
'미안 어린 중학생소년이여'
마음속으로 겁에 질린 표정의 소년의 얼굴을 곱씹으며 몸을 돌린 소녀는 마음속으로 불쌍한 소년의 무사를 기원하며 뒤도 안돌아보고 재빨리 자신의 동 안으로 뛰어들었다.
'온샘'
'온샘...'
대체 왜 니가 거기 있는 거야!!!!!!!!!
★
소년은 무사할까?
설마 진짜 이천사백칠십대를 때리진 않겟지?
아니 어쩌면 온샘놈의 똘끼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아줌마한테 가서 이를까? 온샘이 지금 삥뜯고 있다고..
아오 근데 그건 왠지 더럽게 치사한것 같다
하지만 그 소년은 어떡해.....
애써 그일을 잊기위해 집에 들어와 샤워도 하고 티비도 틀어놓고 엄마가 숨겨놓은 홍삼액을 쭉쭉빨며 컴퓨터도 하고 있건만
내머릿속엔 온통 아까 그일 생각 뿐이다
솔직히 너..너무 비겁했어 강봉희....
이건 태권도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사범님이 아신다면 틀림없이 날 부끄러워 하셨을꺼야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오는 죄책감과 내게 실망했을 사범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울상을 지으면 갑자기 소년의 상태가 궁금해진다.
아니 어쩌면 내가 괜히 걱정하는 것일수도 있잖아? 온샘은 내가 생각하는것보다는 착한놈일지도 몰라
그래그래 착한놈 일지도..
전혀 믿음이 안생기는 소망을 품고 소년의 현황을 보기위해 베란다로 가 놀이터를 내려다 보면
어?
소년도.. 온샘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30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긴 했지만 30분 만에 녀석들이 사라졌다는건..
이천사백칠십대를 때리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 해도 되는거 아닐까?
아무리 대단한 우리 사부님이라도 30분만에 이천사백칠십대를 때리는건 무리일테니 온샘이..? 말도 안되지
그래 그럴꺼야 암 그렇고 말고 틀림없이 소년은 무사해!!!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소년은 무사한걸로 내 뇌를 쇄뇌시키고 있으면
"엄마왔다!!!"
현관문 여는 소리와 함께 신우희여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나의 귓구멍으로 흘려들어왔다.
그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난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홍삼액봉지를 나의 다늘어난 트레이닝바지 밴드 안으로 쏙 숨겨넣고 고개를 돌리지
"엄마왔어?"
"베란다에서 뭐하냐?"
베란다에 서서 의심쩍은 미소를 실실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이 신여사께서는 몹시도 수상하셨나보다
난 혹시나 홍삼액을 먹은걸 들킬새라 더욱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지
"으응.. 좀 더워서"
"덥다고?"
"응 덥네..하하"
덥다고 땀흘리는 시늉까지 하며 오버하는 날 가재미 눈으로 흩겨보던 신여사는
"미친년"
네 어머님.. 저 미친년입니다. 이 뼈를 깍는 추위에 덥다니..하하하 사실 추워 죽겟어요..
에잇!! 이 홍삼엑기스가 뭐라고!!!! 다음엔 좀더 세밀하게 훔쳐먹을 테다
"미친짓 적당히 하고 빨리 와서 이 짐이나 날라"
그런 나를 향해 우리 신여사께서는 다시 한번 일침을 날려주시지
"네 어머님"
괜히 더했다가는 더 큰 오해를 살까봐 재빨리 신여사의 말에 수긍하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신여사가 들고온 커다란 마트봉지 두개는 나의 입꼬리를 저절로 올라가게 만들었지
"우와 뭘 이렇게 사온거야?"
"오늘 옆동네 마트 세일해서 좀 질렸다"
"오홍~ 근데 들고 오기 힘들었겟다 나한테 전화하지~"
"안그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마침 버스정류장 앞에서 온샘이 만나서 온샘이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날라주고 갔다 거기다가 가는 길에 춥다고 편의점에서 이 캔커피까지 사서 주는데 어쩜 애가 그렇게 착하고 예의바른지 정말 온샘엄마 부러워 죽겟다니까! 우리집 자식들은 하나같이 저모양 이꼴 인데.. 쯔쯧"
'저모양'이라고 말할땐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에 해맑게 웃고있는 현재 국방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부대에서 군복무 중인 마이 브라더를 한번 꼬라봐주시고 '이꼴' 이라고 말할때는 내얼굴을 한번 꼬라봐주신뒤 혀를 내두르는 신여사 혹은 우리를 낳으신 어머니
우리가 뭐!!!! 물론 양봉우는 그 쉐리는 좀 문제긴 하다만.. 내가 뭐!!!.....흠..
나의 바지밴드에 낑겨있는 홍삼액를 비롯해 괜히 찔리는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아무말 없이 마트봉다리 두개를 가볍에 들고 주방으로 향하면 내 등뒤에서 온샘놈이 사준걸로 추정되는 캔커피를 꺼내며 주저리주저리 온샘칭찬을 늘여놓으시는 신여사
어머님 제생각에 그 캔커피는 아마 그 착하고 예의바른 온샘님께서 삥뜯은 돈으로 산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첫댓글 잘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