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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완화" 보고서·조사 연일 쏟아내
최고 세율 적용 대상 수천 명 불과한데
‘중산층 세금’인 것처럼 사실 뒤틀어
속셈은 3, 4세 경영 승계·부의 대물림
윤 정부·국민의힘 상속세 개편 총대
상속세의 근간을 무너뜨리려는 경제단체들의 공격이 도를 넘어섰다. 특정 사실을 침소봉대하거나 왜곡하는가 하면 연일 상속세 완화를 주장하는 보고서와 설문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상속세 최고세율과 최대 주주 할증 등을 완화하는 세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에 발맞춰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다.
상속세를 포함해 개별 세금의 적정성을 평가하려면 전체 세제 틀에서 봐야 한다. 더욱이 상속세는 국가에 따라 세율과 공제 방식 등이 제각각이다. 과세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계는 최고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상속세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정훈 세제실장. 2024.7.25. 연합뉴스
소득 최하위층도 상속세 완화에 긍정적?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이름만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9일 국민 10명 중 7명이 상속세 완화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12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패널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3.4%가 상속세 완화의 세제 개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계층인 1분위에서도 64.0%가 상속세 완화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2분위는 74.6%, 3분위는 74.5%, 4분위는 74.1%, 5분위는 78.5%로 상속세 완화에 대한 긍정적 응답률이 고르게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에 대해 한경협은 “중산층 이하인 1~3분위에서도 60~70% 이상이 상속세 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건 상속세가 더 이상 부유층만이 아닌 중산층도 납부하는 세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이름을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표지석. 2023.9.19. 연합뉴스
‘상속세=중산층 세금’ 주장은 허위 사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가 상속세 완화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한경협 조사도 현행 상속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여론몰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우선 설문에 응답한 대다수가 상속세 과세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상속세 납부 상속인은 작년과 재작년 기준 1만 8000명에 1만 9000명 정도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5000만 명 중에 0.04%도 안 되는 셈이다. 설문 조사 응답자 대부분이 상속세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건성으로 대답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상속세를 중산층도 납부하는 세금이라는 인식”이라는 설명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다. 재계는 상속세 과세 대상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관련 데이터를 증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상속세=중산층 세금’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인구의 0.04%만 상속세를 내고 있다. 그런데도 중산층 세금이라고 하는 건 억지다.
자료 : 국세청. 상속세 신고 현황.
근거 빈약한 상의의 ‘상속세 개편 5가지 이유’
한경협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날인 18일 대한상공회의소(상의)는 ‘상속세 개편이 필요한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속세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상의가 첫 번째로 꼽은 상속세 개편 이유는 최대 주주에 대한 상속세율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상속재산이 주식일 때 최대 주주는 최고세율 50%에 20% 할증평가가 적용된다. 실제 상속세율이 60%인 셈이다. 기업을 상속하면 피상속인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한고 그렇게 되면 지분이 40%로 감소해 외부 세력의 경영권 탈취 또는 기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게 상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족벌로 경영권을 승계해야 기업이 영속할 수 있다는 건 편견이다. 상속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이 줄면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로 거버넌스(지배구조 또는 의사결정 시스템)를 전환하면 된다. 미국과 유럽 등 자본 선진국에서는 이런 기업이 많다. 경영권이 3, 4세로 넘어가면서 오히려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상속세가 기업의 계속성을 저해한다는 상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상의는 두 번째 이유로 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인이 상속세 재원 마련 때문에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한 도전적인 투자에 나서기가 어렵고, 이런 기업투자 약화가 일자리 상실과 소비 위축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들었다. 상속세가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재와 국부 유출도 상속세 탓이라고 한다.
논리적 비약과 억지가 뒤섞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개인 사정이다. 상속세 재원을 기업투자와 연결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상속세를 내면 기업 투자가 감소한다는 건 근거가 빈약하다. 기업 투자가 일자리 상실과 소비 위축, 인재와 국부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 전개는 ‘과도한 상속세=기업투자 감소’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자료 : 대한상의. 기업 승계시 경영자 지분율 변화
한국의 상속세 실효세율 10~20% 불과
상의가 제시한 세 번째 이유는 한국에 상속세가 글로벌 표준과 괴리됐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속세가 있는 나라는 24개국이고, 상속세가 없거나 자본이득세 등으로 전환한 나라는 14개국이며, 상속세 있는 국가의 평균 최고세율은 26%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속세 실효세율(실제 조세부담률)을 보면 특별히 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가액 대비 실효세율은 23.1%였다. 최상위 1% 피상속인의 경우 실효세율이 10% 내외였고 범위를 상위 2%로 넓히면 실효세율은 7%대에 불과했다. 법정 최고세율 50%와 격차가 큰 것이다.
이외에도 상의는 이중과세와 탈세 유인을 각각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중과세는 소득세 납부 재산에 상속세를 다시 부과한다는 점에 때문에 거론한 것이다. 물론 상속재산만 보면 이중과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속인의 불로소득에 과세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상속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절세와 탈세를 부추긴다는 것도 지나친 주장이다. 상속세율은 소득세와 재산세를 비롯해 관련 세금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적정성을 판단해야 한다. 세율이 높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탈세를 합리화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
자료 : 나라살림연구소. 과세 가액 대비 상속세 실효세율.
상속·증여세 완화하면 5년간 18.6조 세수 펑크
상속세와 증여세 완화는 재정 건전성에도 상당한 타격을 준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상속세 개정안이 통과되면 향후 5년간 18조 6000억 원의 세수가 감소한다. 문제는 감세 효과의 90%가 상속세를 내는 최상위 1%에 귀속된다는 사실이다. 피상속인 숫자로는 3000~4000명 정도다. 이들 초부자를 위해 정부가 16조~17조 원의 세금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계 요구로 정부와 국민의힘이 총대를 맨 상속세 완화 방안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아파트 등 자산 가격이 오른 현실에 맞춰 공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만 동의하고 있다. 민주당은 상속세에 대한 이런 원칙을 바꿔선 안 된다.
출처 :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