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간밤에 남기매가 알려준대로 소파에 요을 깔았더니 한결 잠자리가 편해졌다.
덕분에 약간의 숙면을 취하고 다시금 길을 나서기 위해 맟춰둔 알람을 끄며 친구들을 재촉하지만
3일차 여행길에는 각자의 짐을 완벽하게 정리하여 들고 나가야 하므로 다들 이르게 일어난다.
역시나 대 수도여고인들의 잽싼 동작은 교련시간을 방불케 하고 문득 교련 선생님이 기억을 파고든다.
새삼스럽지만 불쑥 떠오르는 그녀는 내게 그다지 마녀는 아니었지만 치를 떨었던 기억도 있긴 하다.
어쨋거나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감겨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아침 식사를 위해 소문난 순두부 맛집으로 향한다.
물론 웬만해서는 거기가 거기인 양양시내를 잠시 벗어나와 바다를 끼고 돌아 송림이 어우러진 곳에 자리한
"청산본가 설렁탕" 으로 향해서 미리 준비된 순두부 차림새를 쓰윽 훑어보자니 다들 매운 순두부를....
힝, 매운 순두부는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거늘 그곳까지 가서 고소하고 순수한
두부 본연의 맛을 자랑하는 "숨두부"를 먹지 않는다니, 어이쿠야 싶었다.
게다가 숨두부로 나왔어도 식성에 따라 간장양념을 넣어먹는 친구들을 만류하며 진정한 콩맛이 전해지는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은 본래의 숨두부를 먹으라고 강권을 했지만 귓등으로도 안듣더라고.
이래봬도 먹는 것에 진심이고 진정으로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건만 어쩌겠나.....
익숙치 않은 것에 도전하는 것이 어려운가?
막간을 이용하여 해변길 삼매경에 빠진 친구들의 기분좋은 탄성이 멀리서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감정의 격정을 참지 못한 캐나다에서 온 장현수는 바지를 걷고 바닷물을 향해 돌진.
춥지 않느냐는 친구들의 말에 캐나다 보다 훨씬 따스하다나 뭐라나, 역시 감정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여하튼 만족스런 아침 식사와 해변 돌발상황을 즐기고 가리왕산을 향해 가는 길,
드디어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타는 순간은 또다시 콩닥콩닥....사진 촬영하러 숱하게 다녀간 정선이지만
여고 친구들과 함께 오르기는 처음이라 새로운 감성의 맛이 전해진다.
그러다 보니 케이블카 안에서도 그저 희희낙락이 남발하고 건너가는 길목에 내리지말라는 경고문에는 왜애?
투명한 하늘 사이로 초록은 점차로 색을 잃어가고 오래된 나무들이 그득했던 가리왕산은
마구잡이로 잘려나간 나무들의 흔적이 안타까웠고 그 동계올림픽 후유증으로 흠집을 당한 채
다시 원상복구를 위해 애쓰는 중이나 무릇 나무 하나 자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지를 알고 있는 고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랬어도 정상에 올라 절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늘님의 선물이 바로 이곳이렸다....운해 없는 산자락이라니.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산세가 한편의 동양화 같았다면 산자락의 풍광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수묵화였다.
그 순간 아무도 찾지 않았을 이른 아침의 깊은 고요와 여운이 전달되는 것 같아서 움찔, 감탄사를 연발하기에도 미안했다.
와중에 푸른 하늘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였으며 살랑거리는 가을 바람결 사이로 들려오는 친구들의 감탄과 찬사는
산허리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고 우리는 다시 한번 자연의 위용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틈새를 놓치지 않고 촬영에 푹 빠진 친구들을 보자니 웃음이 절로 번진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친구들과, 그것도 교복소녀 시절의 친구들과 이 가리왕산의 가을날을
만끽하겠는가 싶어 슬쩍 얼굴을 디밀어 한 컷 촬영에 몸을 맡긴다.
사실 아무리 예쁜 척 포즈를 취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된다며 V를 그리고 하트를 뿅뿅 날려도
우리는 황혼을 향해 가는 "늙어서도 빛나는 그 꽃" 이겠지만 말이다.
드디어 소문으로만 들었던 "로미지안 가든"을 향해 가는 길, 이쯤이면 다들 차안에서 졸아야 하는 법.
역시나 차안은 조용하고 눈치빠른 기사님은 불을 꺼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나름 관광버스 기사님으로 잔뼈가 굵었지만
이렇게 품격있는 여행길은 거의 없었다는 칭찬도 하사?하셨다 는 후문.
울울창창한 산길을 돌아 한 남자의 사랑이 치유의 숲이 되었다는, 삶의 지혜로 피어난 정원이라는 "로미지안 가든"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찾아들면 엄청난 언덕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수고로움을 자청해야 한다지만
우리는 단체라는 효용가치를 버릴 수 없어 차량 탑승으로 빠르게 오르기로 했는데
가는 동안에는 기본적으로 친절한 기사님의 부연 설명에 귀기울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마디로 멀티 공간이긴 하다....식사와 쉼이 주어지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한번 제사랑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지만 우선 점심으로 주어지는 돈가스를 맛보기로 한다.
일식형 돈가스와 진한 커피는 나의 취향이었고 어울린 풍광은 두말할 것도 없는 굿굿굿.
그러나 역시 옥의 티....단체에 익숙치 않은 까닭인지 커피는 한참의 시간을 갉아먹고 나서야 등장을 하여
시간에 쫓기는 우리들의 발길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친구들의 찰칵 소리는 정.겹.다
하였어도 역시 두눈에 휘리릭 담은 풍광은 가슴에 얹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내려온다.
물론 순식간에 여기저기를 공략하며 사진 촬영은 뒷전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긴 길자락을 따라 내려오는데 그냥 기분이 좋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그리고 일찍 내려온다고 상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서둘러야 했을까로 후회하기는 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 죽전에서 내리지 아니하고 서울행을 감행하면서 저녁은 패스.
양재 "산들해"에서 얼마나 웃음꽃을 피우며 여행길을 마무리 하였을지는 안봐도 알겠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2박3일 여행을 마치면서 마음은 급하게 집으로 향한다.
아들보다 먼저 집으로 도착하겠다는 일념하에....그 아들,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을 거쳐 뉴질랜드로 갔다가
다시 뉴질랜드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일정이 무척 바쁘다고 했다.
해서 친구들과 마지막 마무리를 못하고 돌아와 5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들을 보내고
이렇게 급하게 후기를 휘리릭 쓰는 중이다.
하여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여행 스케치는 바이...
추신 : 친구들을 위한 준비로 행사는 물론 여행까지
온전하게 책임지며 열 일 하여준 임원진과
역할을 맞아 물심양면으로 27기 친구들을 위해
자진 헌신을 아끼지 않은 담당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수고로움을 자처한 마음자락 너른 그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언감생심.
과연 이런 분에 넘치는 여행길을 선사받을 수 있었을까나?
무탈하게 여행길까지 완벽하게 끝내준 그대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동행 친구들을 대신해 전. 한.다
첫댓글 역시나 사진은 무작위로 올렸다.
그저 글자락에 맞는 부분 중에서
보이는대로 올렸으므로 오해 없기를...
역쒸나~! 로미지안에선 어찌나 서둘러 내려가던지
같이 사진을~?하고 둘러봐도
보이질 않더라니... 산들해의
저녁 식사도 모두들 만족해하며 먹더라구.
그집이 후회없는 음식을
제공하긴 하니까~!
자세히 써서 옮겨주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어~!
이래 옮겨주니 생각날때마다 들어와 읽어볼 수 있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