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가 북한과 약속했다는 협동농장 현대화, 이른바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달러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대납하게 된 구체적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김성태가 북측 인사들에게 ‘거짓말쟁이’로 몰린 이화영을 대신해 “내가 주는 돈을 경기도가 주는 돈이라고 생각하시라”며 비용 지급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모르쇠 전략’으로 버틴 이화영이 더욱 고립되는 양상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26일 오후 2시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이화영을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이화영을 대북 송금과 관련해 다시 소환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검찰은 이날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를 불러 이화영과 대질 조사를 벌였다. 김성태에 이어 대북송금 실무 책임자들과의 대질을 통해 이화영의 전면 부인 태도를 깨뜨려보려는 시도다.
“이화영은 큰형, 내 돈이 경기도 돈”
“내가 주는 돈이 경기도가 주는 돈”이라는 발언은 2019년 1월 중국 선양에서 김성태가 이화영 등과 함께 송명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 아태위) 부실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김성태가 스마트팜 사업비 대납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나왔다.
김성태의 공소장 등에 따르면, 스마트팜 사업은 이화영이 2018년 10월 북한 평양에서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을 만나 합의한 경기도와 북한 간 남북교류협력사업 6개 사항 중 하나였다. 북한의 낙후된 협동농장을 농림복합형 농장인 스마트팜으로 개선할 목적으로 500만달러 지원키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김성태는 북측과 경기도의 평양 합의 한 달 뒤인 2018년 11월 말 안부수 아태협 회장의 소개로 중국 선양에서 조선아태위 김성혜 실장, 박철 부위원장, 정찰총국 출신 대남 공작원 이호남 등을 소개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성혜는 김성태에게 “경기도가 기금으로 스마트팜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인민들을 모아 놨는데, 소식이 없다”며 푸념했다. 김성혜는 이화영을 향해 “거짓말쟁이”, “닭XXX처럼 닦아 먹었다” 등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듬해 1월의 만남은 김성태가 경색된 북측과 경기도의 관계를 풀기 위해 애쓰는 자리였다고 한다. 현장에 동행했던 쌍방울그룹 핵심 관계자 A씨는 “김성태가 북측에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이화영을 예우하라는 뜻으로 송명철에게 ‘이화영이 나보다 형이니까 큰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며 “송명철은 ‘형(김성태)이 큰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니 큰형이라고 하겠다. 큰형이 더 잘해야 한다’고 호응했다”고 전했다.
김성태는 검찰에 이 만남 직후 쌍방울그룹 임직원 수십명을 동원해 같은달 23~24일 200만달러를 중국으로 밀반출해 송명철에게 건넸고, 2019년 4월 300만달러를 추가로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쌍방울그룹이 뭐라고 북한이 지방정부 보증도 없이 한국 기업이 주는 돈을 받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9년 11월 이재명의 방북 비용조로 300만달러를 대납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성태는 이화영 부탁을 받고 보냈다고 했다. 이화영은 당연히 알 것이고, 이재명도 북한에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겠냐”고 덧붙였다.
“협동농장 현대화”vs“유리온실”
김성태 측과 이화영 측은 스마트팜 사업의 개념을 두고도 맞서고 있다. 검찰은 김성태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화영이 북한과 약속한 낙후된 협동농장의 현대화를 스마트팜 사업으로 보고 있지만, 이화영은 스마트팜 사업을 단순히 유리온실 설치 등 소규모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북측이 이화영의 약속을 믿고 황해도의 한 협동농장에 2000여명을 ‘노력동원’ 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노력동원은 사회적 운동에 대중의 노력을 동원하는 일이라는 북한말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 23일 이화영이 수감된 수원구치소 독거실(독방)에서 변호인과 주고받은 서류, 증인신청 목록, 증거기록에 대한 메모 등을 사본으로 압수했다.
이화영 집에선 아내와 주고 받은 옥중 서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분간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주 2회씩 이화영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지난 24일 쌍방울 법인카드·법인차량 뇌물수수 사건 공판에서 이화영과 함께 구속기소 된 방용철 쌍방울그룹 부회장의 입장 변경도 이화영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방 부회장은 공판 초기 이화영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했지만 지난 15차 공판에서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이에 대해 이화영의 검찰 수사 변호를 맡은 현근택은 이날 소환 조사를 앞두고 취재진을 만나 “상대방의 패를 전부 보고 진행하는 재판은 절대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며 “방 부회장의 진술 변경은 재판부에 신빙성 의문을 갖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