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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이 곁자락을 내어준 겨울에게 자리를 넘기고 총총히 사라져 버리려는지
한때 줄기차게 찾아들었던 명동길을 걸으며 옛날 기분을 맛보겠다던 그날 12월 2일은 매서운 바람이 명동길을 강타했다.
그리고 여전히 소란스럽고 분주하던 명동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듯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과거의 기억과 추억은 아스라히...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번잡스런 명동길의 존재가 이제는 버겁기만 했다.
그렇게 길을 돌아 찾아든 롯데호텔 앞에서 맞는 바람은 또 왜 그리 거세게 불어오는지 바쁘게 실내로 들어가
두리번 거리자니 저멀리 현우가 눈에 들어오고 우리반 혜란이도 총총걸음으로 찾아든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잠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한컷을 누리며 엘리베이터에 탑승을 한다.
롯데호텔 3층 전관을 빌렸다는 소문에 힘입어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려는데 입구에 우리들의 영원한 자원봉사자
27기 친구들이 눈에 뜨이고 기매와 길희, 은희에게 수고로움에 대한 치하를 하며 잠시 대화를 나눈다.
나름 일찍 대열에 합류하였으나 이미 손빠르고 발빠른 27기 임원진 친구들이 자리 세팅을 완료하였고
잔치를 아우를 수 있는 중간 즈음에 길게 나란히 앉게 된 27기 능력의 확장세를 느낄 수 있어 아주 굿굿굿 이었다.
암튼 그렇게 5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총동문회는 자꾸 시간이 늦어지고 참다 못해 결국 총동문회 총무를 찾아나서
멀리 돌아갈 참석자들을 위해 빠른 진행을 부탁하는데 "몇기냐"고....".27기" 라고 전하고 "빠른 진행을 부탁드린다"는 강력어필.
그러나 알고보니 그날의 준 주인공이자 내빈인 용산고 대표단이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 지체되었던 사정은
나중에 등장하는 그 남자들을 보면서 아하, 저들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 용산고는 사실 수도여고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막역한 사이이기는 하다.
여고시절, 길 건너 소년들의 동행이 소녀 시절을 함께 추억하는 사이로 자리매김 되고
오랜 전통의 주역, "용수회"의 내리 시작점이기도 하니 말이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용수회 만남으로 알게 된 용산출신 남사친들과는 여전히 진행중으로 친하다.
하여 한달 전 즈음에는 남쪽으로 거처지를 옮긴 남사친을 만나기 위해 시詩요일 지인들과 영암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용수회 파트너였던 "돈호세", 찾아들었던 시점으로 3주전에 하늘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이기도 했다.
"칼멘"의 남자로서 대학로에서 제1한강대교를 건너 노량진까지 교복 입고 걸으며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걔가 내 파트너였잖아...말도 없던 애가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던지 오래도록 긴 추억이었고 간간이 소식을 듣긴했어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충격이다"
말끝에 남사친 왈 "그 용수회 프로그램을 나랑 걔가 함께 설계한 거였는데 네가 파트너였어?"
적잖이 놀라는 눈치를 뒤로 하고 "너는 제발 건강하게 잘 견뎌라...."라며 강건하길 기원한다.
여하튼 우리에게 용산고 출신들은 무작정 잘해주었던 기억이 많았고 오래도록 어울리면서는 많은 추억이 공존했다.
하지만 한때 40주년 행사 후 즈음에는 무례?했던 태도에 "용산고 촌놈들"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던 기억도 스멀거리며 떠올랐지만
이제는 죄다 지나간 시절의 뒷이야기 이긴하다.....그들의 등장에 힘입어 지연됐던 동문 행사는 시작의 팡파레를 울렸다.
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패턴으로 길고 지루한 행사의 진행은 시간을 내어 달려온 동문들에게는 좀 민폐이지 아닐까 싶었다.
하긴 이때가 아니면 언제 동문회장의 긴 이야기를 듣겠으며 내외빈이 축사를 하겠으며 격려사와 감사패를 주고받겠는가만은
사실 총동문회 입장이라는 것이 있으니 각자 개인 대화를 접어야겠으나 그게 또 참 간만에 만난지라 할 말은 많은 법.
해서 식은 진행되고 객석은 떠들썩 왁자지껄이었어도 순서대로 진행은 되긴 하였고 우리 27기는 의리파를 드러내며
최다참가상 1등과 우수활동상 2등 아울러 차세대 리더상을 받게 되면서 와중에 환호로 화답한다.
사실 우리는 수도여고 출신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잇고 지키고 기억하며 살아왔을 것이니 당연하다.
무튼 진행되는 그때 그 자리, 그 순간에는 동문 하나 하나가 그 역사이자 자부심일 터...
그래서 총동문회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만나진 우리는 그저 단순한 행사를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보내준 선물이었을,
우리가 쌓아온 인연의 증거로서 자리매김하며 그 시간을 기꺼이 누리는 것이니 의리를 발휘하는 것도 마땅하다.
드디어 축하케잌 커팅과 더불어 만찬이 이어지고 다들 이어져 나오는 식사에 민감해진 신경줄을 다시 제자리로 잡는다.
진행되는 식이 늦어지는 관계로 끼니가 늦다는 것에 반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마구 웃었다.
게다가 친구 한 명의 음식이 늦게 나오게 되자 즉각 반응을 하며 "여기 아직 안왔어요" 를 외쳐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 아줌마들, 참 성질도 급하네...가져다 준다잖아. 너무 격 떨어지는 행동들은 삼가자고" 라지만
여전히 아랑곳 하지 않고 기꺼이 친구의 끼니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엄청나게 웃기긴 했어도 역시 의리파들일세.
그렇게 정찬 코스 요리를 맛보며 흐뭇해지고 여유로워진 친구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만찬을 즐긴다.
그러면서 나는 또다른 깨달음을 얻는다.
친구로서 친해진다는 것과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은 긴 세월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 저녁 디너를 누리면서 초정가수 "박성현"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웠음은 물론이요 간간이 친구들이 들려주는 대화 속에
세월이 흘러서일까? 아니면 삶의 지혜를 듬뿍 묻힌 까닭일까 싶도록 알지 못했던 친구와 친밀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었으니
동문회 참석에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 순간이기도 했다.
늘 마주치지만 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최임선" 그녀는 긍정마인드가 가득인 친구 같았다.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결론은 좋게 생각하는 쪽으로 흘러간다...그녀가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정답이다.
유쾌, 발랄 "김정혜"의 새로운 면모와 적극성을 보면서는 몰랐던 친구를 새삼 알게 되는 순간이었으며
오랜 친구이면서 늘 마음 속으로만 친했던 친구 "이정순"의 삶자락에는 존중을 담는다.
그냥 그녀는 "무조건 따고 2백점"의 멋진 친구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인 시키면서도 조심스레 안아주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들은 11반 테이블에 함께 동석하게 된 5반 친구들이다.
문과, 이과라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만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다보면 친구 사이도 지향점이 달라지는 법.
그렇게 향방을 달리하다 보면 친한 친구들도 강건너 불보듯이 바라보게 되고 한참을 다른 방향을 가다가
다시 만나면 어색해지지만 그래도 더러 이런 기회가 생겨 그 옛날의 추억 속에서 각자의 추억을 꺼내어 들여다 보니
공유할 부분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어 늦은 나이에는 친구들과 교류, 잦은 만남이 역시 좋긴 좋더라는 말이 되. 겠. 다
어쨋거나 3부 레크레이션 타임이 돌아왔다.
백합합창단을 시작으로 다양한 즐김의 시간이 오자마자 어느새 꿈틀거리는 욕망의 분출이 시작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마, 아내, 자녀의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로서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시간.
테이블위에는 만찬의 흔적과 프로그램이 난무하고 은근히 내려오는 빛은 마치 우리의 지난 시간을 축복하듯
따듯하게 내려앉았으며 우리는 잃어버린, 잊혀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며 또 하나의 시간을 만든다.
더불어 지난 세월에 대한 감사는 물론 지금 이 순간에 누리게 될 행복감과 앞으로 이어질 인연의 약속까지
수도여고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무방비인 채로 서로를 이해하며 그 시간을 즐기면서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은빛소녀 합창단의 노래는 훌륭했고 디제잉 타임에는 너도나도 미친듯이 몸을 흔든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그녀들의 세월은 아직도 청춘에 머물러 있고 몸과 마음은 여전히 "빛나는 그 꽃"이 되어간다.
틈틈이 행운권 추첨에는 기발나다는 생각을 했으며 살면서 한번도 행운같은 것이 따라주지 않았다던
그래서 추첨 따위는 1도 관심 없다는 바로 곁의 임숙이가 당첨되는 순간, "웬일이래? 별 일 일세...."였다.
하여 우연한 순간에 찾아든 행운같은 교복소녀 시절의 우리의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총동문회에서 다시 이어진 우리의 행보와
오늘의 기억은 앞으로의 만남을 더욱 빛나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각자에게 세월은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곁에 머물러 있었음을 느끼게 했으므로 더더욱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마무리를 못하고 돌아선 내게 날아온 즐거운 소식은 "신은희, 전령"과 함께 월간 "객석"에 당첨되었다는 것.
늦은 시간 탓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쁘게 딸네집으로 돌아간 이후로 다음날 까지 핸폰을 열지 않았더니만
떡하니 단톡방에 알림이 떴더라고...웬 횡재냐 싶었다.
사실 살면서 제일 중요하지만 하찮은 비중으로 취급되는 문화비는 총체적 난국의 경제난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고려대상이 되는 법.
그리하여 문학지를 비롯하여 몇몇 정기구독하던 잡지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하고 그나마 좋아하던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과
폐간 수순까지 갔다가 다시 회생한 "샘터"는 올해를 끝으로 구독취소 결정을 하여 아쉬운 마음 가득이었건만
정말 좋아했어도 구독하지 못했던 "객석"의 가족이 되어 문화 전반과 클래식을 더욱 사랑하게 될 상황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형옥에게 고맙다는 말을 지면으로나마 전. 한. 다
여하튼 계속 이어지는 스케줄 덕분에 딸네집으로 돌아와 들려준 꾸러미를 살펴보니 활자중독증이자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딱 맞는 책자와
수도여고 마크가 새겨진 손수건과 에코백이 동문회 이름으로 들어있었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그밤에 늦도록 잠들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여전히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며 존중했고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만나진 그 연결 끈의 지축이 된 나이든 동문을 비롯하여 기수별 동문 모두의 재회가 남긴 설렘 때문일 터.
그리하여 총동문회라는 것은 하룻밤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앞의 오래된 길 위에
다시 한번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와 감정의 소용돌이와 끈끈함을 남긴 시간때문 에라도 소중하다 여겨질 일 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사실은 "수도여고"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걸어온 길이자 앞으로도 지켜갈 지침이자 품격이 될 것이다.
그렇다....무엇하나 소홀함 없이 이런 행사를 치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차세대 리더상을 받게 된 27기 대표 "한은희"는 그 짐을 무겁게 짊어지려 한다.
그야말로 타고나지 않으면 어려울 일이나 그 즈음에는 친구들이 짐을 나눠들어야 할 터.
이미 "남기매"와 "이혜경"이 총동문회 일을 시작하였으므로 머지 않아 27기 단독으로 총동문회를 빛낼 기회가 주어지리라.
그때까지 우리 친구들은 여전히 건강한 삶을 이어가면서 자신들의 삶 보따리를 튼실하게 유지하며
잘 지내다가 그 시절의 즐거움을 또 만끽해
보는 걸로....곧 이어 2026년 2월의 만남도 기대 하면서 말이다.

첫댓글 화욜에 집나선 후
어젯밤 늦게 딸의 집에서 돌아와
새벽에 일어나 총동문회 소감 한자락 휘리릭...
사진은 천천히 올릴 예정임.
수고 많았다네 총동문회 소회까지 쓰느라, 덕분에 즐거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