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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일로 詩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골드
공짜 와인 세 병을 거의 다 마셨는데도
아침 일찍 숙취도 없이,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
호텔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였다.
남국의 봄,
새벽 공기가 풋풋하다.
풋풋하다기 보담
다디 달다고 표현하고 싶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마침내 우리가 공짜로 마셨던
와인 3병의 임자가 밝혀졌다.
그분들은 운선이 형수님의 친구들인데
여자 셋이 한 방을 쓰는 분들이었다.
자유투어 여행사측에서 VIP고객인 이들에게
여행의 무료함을 덜어드리려고
배려한 선물이었는데
그만 우리가 받아 먹은 꼴이 되었다.
알고 보니 회사측의 지시도 좀 애매하긴 하였다.
셋이 한 방을 쓰는 사람한테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자 셋이 한 방을 쓰는 사람이라든가,
아니면
남자 셋이 한 방을 쓰는 사람으로
지시가 분명했어야 했다.
이 지시를 받은 가이드가
생각없이
남자 셋이 한 방을 쓰는
우리에게 갖다 준 셈이었다.
운선이 형수님의 친구들은 자기들은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는데
잘 된 일이라고 웃으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공짜와인을
우리가 먹게된 배경은 바로 나였다.
뜻하지않게 내가 이 여행에 합류한 결과였다.
경복이와 운선이 둘이서 방을 사용했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운선이 형수님의 친구분들에게
고맙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나마 운선이 형수님 내외분이 술자리에
참석하셔서 조금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와인 배달 사고는
해피 엔딩으로 그 막을 내렸다.
우리 일행은 아침 9시 30분 오클랜드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크라이스트처치로 비행하였다.
1시간 20분 비행내내 하늘색이 푸르고 푸르다.
이 하늘색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시원스런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남섬 제1의 도시이고
넓고 기름진 켄터베리 평야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인구 38만의 도시이다.
켄터베리 평야의 폭이 60Km가 넘는다니
우리의 김제나 만경평야는 이에 비하면
작은 들판에 불과할 뿐이다.
청교도적이고 보수적인 이 도시는 시청에 등록된
공원만 200개가 넘어
가든시티라고도 하며,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뉴질랜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인
루더포드가 켄터베리 대학 출신이란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고액권인
100불짜리 지폐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이곳의 링컨대학교는 세계
50대 농과대학 중 1위를 차지하는 학교로서
링컨대 생화학과는
목초연구의 세계적 권위를 자랑한다니
이 작은 도시가 갑자기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또한 서울의 송파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로서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한 편이라고 한다.
우리는 퀸스타운을 향해 장장 8시간의
버스투어 장도에 올랐다.
1시간여 버스를 달리니 고속도로 길옆에
우리의 개나리와 같은 노린꽃이
흐드러지게 피워있었다.
마오리족의 말로 코하이(노랗고 노랗다는 뜻)라고 한단다.
말하자면 이 코하이꽃이 남국의
봄을 맨 처음 알리는 전령사인 셈이다.
이 꽃이 얼마나 노랗던지
그냥 손으로 꼭 짜면 노란물이
줄줄 흘러내릴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시간여 버스를 달려 우리 일행은 이름을 알수 없는
이 작은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왕복 2차선인 이 도로를 달리면서
우린 휴게소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점심은 여행사측에서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휴게소도 없고 순로에 적당한 레스토랑도 없으니
여행사측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준비한 사정을 이해할만 하였다.
아직 바깥 날씨가 꽤 쌀쌀한 편이었지만
우린 이 풀밭의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렇지만 생수는 제주 삼다수였다.
제주 삼다수가 여기까지 수입되다니..
이 풀밭엔 몇몇의 현지 주민들과
연인들이 여기저기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이 무척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참새보다 두 세배나 큰
이곳 참새들이 사람들 주위에 몰려들어
사람들이 먹다 흘린 빵부스러기를
열심히 주워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 참새들은
길들여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테카포 호수를 지나 곧 이어지는 푸카키 호수에 이르렀다.
이 푸카키 호수위에서 우린 그 유명한 마운틴 쿡의
정상을 바라보는 행운을 입었다.
마운틴 쿡은 뉴질랜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서
해발 3,755m,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의
이름을 따서 마운틴 쿡으로 불리어지고 있지만
마오리족이 부르는 이 산의 이름은
'아오라키'이며
이는 전설속의 조상신을 뜻한다고 한다.
마운틴 쿡은 국립공원으로서
산행을 즐기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마운틴 쿡엔 많은 호텔과 숙소가 있다니
그 산장에서 바라보는 마운틴 쿡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풍광을
본다는 것은
가슴이 울렁거리다 못해
그만 빠개지는 감흥이 절로 일어나리라.
마운틴 쿡은 타즈만 빙하 보트 투어,
마운틴 쿡 정상까지의 헬기 투어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가이드도 헬기 투어를 두 번 했는데
정말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대자연에 대한
외경심에 빠져든다고 한다.
그리고 더 멋진 것은
마운틴 쿡 정상의 얼음을 깨서
언더록으로 위스키를 마시면
그 맛이 달다고 하니
다음에 또 뉴질랜드에 온다면,
자유 베낭 여행을 시도하여
마운틴 쿡 산장에 머물며
헬기투어와 타즈만 빙하 보트 투어를
한 번 해보고 싶다.
꿈을 가진다면 그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 번 여행만 해도 난 꿈도 꾸지 않았는데
이렇게 오지 않았는가?
마운틴 쿡을 감싸안고 있는
데카포 호수와 푸카키 호수의
그 청옥빛 호수의 물빛이 말할 수 없이
환상적인 색조로 나의 여심(旅心)을 적시고 있었다.
테카포 호수여! 푸카키 호수여!
끝끝내 네 색조를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굳이 말한다면 신라 금관의 곡옥(曲玉)빛 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 곡옥보다 네 물빛이
더 부드럽고 연한데 우리말엔 그 색상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을 날더러 어이하란 말인가?
푸카키와 데카포 호수여!
이 호수의 물빛은 타즈만 빙하가 녹아
호수로 흘러들면서 빙하의 머드가
물에 뒤섞여 내는 독특한 빛이라고 한다.
현지인들은 이를 milky blue 라고 표현한다.
마치 푸른 물에 밀크를 쏟아부은
그런 색조를 띈다는 뜻이리라.
마운틴 쿡을 완상하는 도중
순식간에 만년설산의 정상 옆에
설산의 높이만큼이나 큰
흰구름이 피어 올라
두개의 산봉우리를 보는 듯한
장엄한 파노라마를 만끽하였다.
아오라키여! 아오라키여!
나는 기도하고 싶다.
조상신을 뜻하는 원래의 네 이름을
되찾을 수 있기를...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인 서기 800년 경
남태평양의 Hawaii 또는 Tahiti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HawaIIki 라는 섬에서 살고 있던
폴리네시안 항해자인
Kupe라는 청년이 waka(카누의 일종인 작은 배)를
타고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끝에
그는 남섬에 상륙하면서
Atearoa(긴 흰구름의 땅)라고 감격의 일성을
토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몇날을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긴 흰구름으로 덮여있고
습도가 높아 부드러운 토양을 가진 땅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증거물로 지금도 마오리족들이 신성시
여기는 Green stone과 걸어다니는 공룡새인
모아새의 알을 고향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당시 인구가 많이 늘어 경작지가 부족해 고민했던
폴리네시안들이 드디어 그들이 살고 있던
작은 섬을 버리고 이주를 결정해
이 땅에 정착하므로서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계인 kupe가
이 땅을 발견하지 전까지
뉴질랜드는 8천만년 이상이나
외부세계와 단절된 땅이었다니
참 경이로운 일이 아닌가?
Atearoa! Atearoa!
나는 또 기도하고 싶다.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New sea land, 또는 네델란드의 질란드 해안과
닮았다고 해서 Newzealand가 아닌
Kupe가 감격에 겨워 토해낸
Atearoa란 그 가슴 벅찬 국명(國名)을 되찾기를...
뉴질랜드 국민들의 국민투표를 통해서라도...
뉴질랜드 사람들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자존심 상하는 국명임이 틀림없을테니
아마 이국민투표는 찬성으로 통과되지 않을런지...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퀸스타운으로 향발하였다.
가는 도중 테카포 호수와 푸카키 호수를 연결한 그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해내는 수력발전소를 지나갔다.
이 곳은 수력이나 풍력발전을 하여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단다.
심지어 강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교량도 세우지 않고,
산도 파괴하지 않으려고 터널을 뚫지 않고
길을 내려니
자연히 길이 꼬불꼬불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 같은 그런 길의 연속이었다.
반지의 제왕 촬영지인 린디스 패스를 지나갔다.
해발 965m인 이 고갯길은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러나 겨울철엔 눈길이어서 위험천만해
이 고갯길을 쉽게 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이 린디스 패스에는
Tussock 이라는 잡초가 산야에 무성한
길이었다.
이 Tussock은 Red Tussock과 Yellow Tussock
두 종류가 있는데 번식력이 강하고
양이나 소도 먹지 않는 풀이어서
이 풀이 무성한 근처의 초지는
가장 하급의 초지로 값도 헐값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오리 원주민들은 이 풀을 이용하여
여자들이 치마를 만들어 입고,
또
방석이나 광주리와 비옷(도롱이)등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 린디스 패스는
1870년 린디스라는 영국인이 양 1,000마리와
야생 사슴 7마리를 데리고
이 고갯길을 넘어갔다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진 길이다.
그런데 이때의 pass는 지나가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의 문경새재처럼 고갯길을 뜻한다고
가이드가 말해주었다.
린디스는 가는 도중 야생 사슴을 통제하기 힘들어
이들을 방생하였는데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70년 비행관측 결과 약 23,000마리의 야생사슴이
이 린디스 패스 근처의 야산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간섭이 없으면 야생 동물들은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번성하는 것을...
난 이 이야기를 가이드로 부터 듣고
길이란 앞서 이 지상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이고 역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도 지금 세상을 살면서
옛사람들이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가면서
시대에 맞는 필요한 새로운 길을 또 다시 개척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옛길과 새길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으로서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린디스 패스를 넘으니 원경(遠景)인 아름다운 설산과
근경(近景)인 돌산 아래로
뉴질랜드 소나무인 라디에타 나무와
푸른 초원이 펼쳐진 그림같은 풍경이
정말 그림같았다.
우리 일행은 이윽고 남섬 최대의 과수단지인
크롬웰 마을에 도착하였다.
남국의 신비로운 과일을 구경하고
잠시 머리를 식히면서도
저녁에 술안주로 쓸 건과류와
모듬과일(생과일) 한 바구니를 쇼핑하였다.
우리 일행은 퀸스타운 도착 직전 오후 5시경 번지점프로
유명한 카와라우강 다리의
번지점프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는 지난 번 내린천에서 뛰어내린 경험이 있어
다시 한 번 만년설이 녹아 흘러가는
카와라우 강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영업시간이 마감되어
서운하기만 했다.
이 곳 카와라우 번지점프대는 43m로
내린천의 63m에 못미치지만
원조 번지점프대로
세계적인 명소인 이곳에서의 뛰어내림이
더 기억에 남으련만 할수 없는 일이었다.
이 회사는 배가 부른 모양이다.
아직도 훤한 오후 5시에 문을 닫다니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요금이 175불이다.
참 비싸게 받아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루에 평균 200명 이상이 뛰어내린단다.
그리고 그들은 사고가 발생시 200만불을
보상한다고 하나
아직까지 단 한 건의 사고가 없단다.
이 번지점프대외에
스피커스 캐니언 번지점프대는
그 높이가 134m라고 한다.
타이거 우즈가 이 번지점프대에서
3번 연속 뛰어내렸다가
그의 매니저한테 몸을 함부로
놀린다고 야단을 맞았다니
야단을 맞을만도 하다.
그러나 타이거우즈가 세 번씩이나
뛰어내린 것을 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63m 내린천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릴 때
난 엉겹결에 아무것도 몰라 그리 무섭지 않았지만,
내 체중의 반동으로 다시 솟구쳤을 때의
그 공포을 경험하고 난 뒤
찾아온
그 쾌감을 어이 말로 설명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난 타이거 우즈처럼 134m 번지점프대에서
3번씩이나
뛰어내릴 수 있을런지는 자신이 없다.
한 번이라면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굉장한 스릴을 누려보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드디어 장장 8시간의 버스투어 끝에
리마커블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와카티푸 호수를 임수(臨水)로
자리잡은
과히 영국 여왕도 살만한 도시인
퀸스타운에 도착하였다.
휴양과 액티비티의 도시 퀸스타운은 다음회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다.
우린 이 퀸스타운 시내 중심부의
한식당에서 양고기 갈비로 저녁을 먹고
시내에서 10Km 떨어진
CORONET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경복이와 운선이 우리 셋은
방에 짐을 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교의 협곡까지 내려가 보았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노을색이
핑크색이었다.
우리 산하에서 노을이 핑크빛으로 물든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참으로 이 나라는 노을빛까지
나를 가슴 설레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윽고 핑크색이 아닌
레드 와인 색갈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하였다.
우린 이왕 퀸스타운 변두리 마을길을 나선 김에
왕복 2Km 거리의 마을까지 도보로 걸어
이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는
만고의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날 저녁 9시 우리 셋은 한국인 일행 24명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장장 10여일의 긴 여행인데
통성명이나 하며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제안하였는데,
뜻밖에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주었다.
내가 사회를 보았다.
먼저 내가 자기소개를 하고
순번대로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시켰다.
자기소개가 끝낸 후
우린 세상 사는
정담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이드가 말했다.
자기가 가이드 7년 생활 중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단다.
우린 내일 밀포드 사운드를 가야한다.
새벽 5시 모닝콜, 6시에 버스가 출발할 예정이니
술좌석은 단 1시간으로 제한한다고
내가 말하면서
술값은 자기가 마신대로
내가 모자를 돌릴테니 넣어달라고 말했다.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경복이의 배려가
숨어있는 이벤트였다.
즉 한 잔을 마신 분은 7불
두 잔을 마신 분은 14불
잔돈이 없은신 분은
한 잔 값을 10불 넣어주신다면
우수리는
내가 요긴하게 생활비에 보태 쓰겠다고 말했다.
물론 원화도 받고 유에스 달러도 환영한다고 했더니
우리 일행이 모두 웃었고
이 날 술장사는 2불 정도 이익을 남긴 대성공이었다.
물론 이 날 모임의 모든 기획은
경복이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난 연출만 했는데
우리 일행은 이 여행이 끝나기까지
날 회장으로 추대하여
뜻하지 않는 감투를 쓴 셈이었다.
친구도 잘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인 일행들이 모두 침실로 돌아간 다음
우리 셋은 가이드와 거의 자정까지
호텔에서 2차를 마셨다.
맥주와 위스키를 섞은 폭탄주까지
호텔로비를 나와 야외테라스에서...
기분 좋게 술이 취한
나는 갑자기 남십자성을 보고 싶었다.
가이드한테 남십자성을 보개 해달라고 부탁했건만
지금은 볼수 없다고 했다.
이곳까지 와서 남십자성을 볼수 없다니
몹시 아쉽기만 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남십자성 열개를 다 보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뉴질랜드에서는 4개만 보이고, 호주에서는
6개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영연방국가인 뉴질랜드와 호주의 국기에는
뉴질랜드는 유니온재크 아래 별이 4개고,
호주는 6개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 북반부의 북두칠성과 같은,
남쪽 나라 십자성을 다 볼수 있는 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끝>
다음 이야기- 밀포드 사운드 이야기-뉴질랜드.호주 여행기 제 4화 (2009.11.10)
첫댓글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살면 늙지 않을것 같은데, 그곳 사람들은 무병장수 하겠지요.
그곳은 어린이 장애인 노인들의 천국이었습니다.
호수와 하늘의 푸른색 농담대비가 그림같습니다.
여행을 다시한번 하는 듯 새롭고, 그 때의 추억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기억력 좋으시고, 표현력 좋으시고 앞으로 시간나는대로 연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