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빈 터
간밤 젊은 태극 전사들이 열사의 땅 카타르에서 불꽃 투혼을 발휘해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 뛴 대한 건아들의 기개에 박수를 보낸다. 꺼져가던 불씨에 희망을 이어가 다시금 강적과 맞서 좋은 결과를 거두었으면 싶다. 화물연대 파업을 비롯한 어수선한 사회와 혼란스러운 시국이 우리 축구 응원 열기와 승전보로 반전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첫추위가 닥쳐 아침 기온은 여전히 쌀쌀한 십이월 첫째 주말이다. 날이 밝아와 도시락을 챙겨 산행을 위한 차림으로 나섰다. 비탈길을 오르내릴 등산이 아닌 무난한 산간 임도를 걸을 요량이라 스틱은 준비하지 않고 등산화 끈만 조여 묶고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따라 퇴촌삼거리로 나가 창원의집 앞 정류소에서 110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 내서로 갔다.
마산 내서는 내가 사는 생활권과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자주 들리지 못한 곳이다. 예전에는 한적한 시골이었으나 근래 아파트단지가 많이 들어서 구도심 시내보다 청장년층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초중학생 취학 분포도 구도심은 공동화현상으로 학생 수가 줄어도 내서에는 과밀 학급이고 학교 규모가 모두 커 교육계나 행정 당국에서도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곳으로 알고 있다.
내가 타고 간 버스는 화개산 아래 안계로 가는 버스여서 종점까지 가질 않고 도중에서 내렸더니 상곡이었다. 아파트단지 사이에 체육시설과 작은 도서관이 보였는데 도서관은 주말이라 휴무인 듯했다. 상곡에서 월영동을 출발해 광려산 아래 신목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정류소 정보시스템엔 운행 시각이 뜨질 않았다. 시골로 가는 두 자리 수 번호는 운행 간격이 뜸해서였다.
한참 후 버스 환승 시각을 초과해 다가온 51번 버스를 타고 감천을 거쳐 신목 종점까지는 혼자 타고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버스 종점에서 광산사 방향으로 오르니 한 외딴집에서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아마도 화목과 가스를 겸한 보일러 난방으로 땔나무를 태우는 듯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거나 쇠족을 끓일 때 흔히 봤던 그 풍경이었다.
광산사 산문 들러리 일주문에 이르니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층계에서 한담을 나누며 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일어나주길 기다리며 천천히 다가가도 그대로 계속 퍼질러 앉아 있기에 일주문을 사진에 담고 싶은데 얼굴이 들어가도 괜찮으냐고 여쭈니 상관없다고 해 폰 카메라로 찍어 놓았다. 유서가 깊지 않지만 광려산 광산사 일주문 편액 글씨는 추사체여서 눈길을 끌었다.
광려산 북향 깊숙이 자리한 절집으로는 들지 않고 산허리로 길게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걸었다. 길섶의 활엽수는 나목이 되어 갔다. 새벽 산책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이가 보였는데 나처럼 밑에서 올라가는 이는 드물었다. 저 멀리 바깥의 아파트단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곳이라 평소에 산행객이나 산책객이 많지 않았다. 주말이라 간혹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이들은 볼 수 있었다.
청청한 소나무와 활엽수림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산 아래를 굽어보니 골짜기의 집들과 과수원이 드러나기도 했다. 더 바깥으로 아득한 곳에는 아파트단지 일부가 보였다. 산허리를 비스듬히 오르면서 산모롱이를 돌아가던 어디쯤 쉼터에서 배낭의 도시락을 꺼냈더니 온기가 이직 남아 있었다. 점심을 때우고 바람재에서 전망대로 올랐더니 마창대교와 그 바깥은 진해만이 드러났다.
바람재에서 무학산 꼭뒤를 바라보며 산허리를 더 돌아가니 쌀재고개였다. 쌀재는 터널이 뚫리긴 해도 감천에서 예곡으로 자동차로도 넘을 수 있는 길이다. 쌀재에서 만날재로 건너가 고갯마루에 서니 합포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건너편 두산중공업과 삼귀 해안은 진해만으로 이어졌다. 만날재 천상병 시비 앞에서 ‘새’ 구절을 음미했다.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 22.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