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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해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생각의 목적>
복음: 마태오 19,13-15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청소년회의소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학금 액수는 5만원이었지만 당시 적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뜯어 바로 그 돈으로 쌀을 사셨습니다. 막 쌀이 떨어지려고 했었다고 나중에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가정에 도움이 되어서 기뻤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갔더니 그 봉투를 가져와서 교장 선생님이 수여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봉투를 버리지는 않았을까? 이미 뜯은 봉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을 다 써서 넣을 돈이 없으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걱정을 했던 날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집에 가보니 다행히 봉투는 버리지 않았지만 이미 스템플러로 찍은 곳은 조금 찢어져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돈을 쓰셔서 이웃에게 빌려 그 봉투를 채워주셨고 다음 날 학교로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다행히 교장선생님은 왜 미리 뜯어보았냐고 하시지 않고 수여식을 잘 해 주셨습니다.
생각의 대부분은 걱정입니다. 걱정은 자신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고의 과정입니다. 아이들은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걱정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걱정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걱정해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복잡해지면 사는 게 힘들어집니다.
운동을 할 때에도 생각이 많아지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지, 저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는 볼을 빼앗기고 맙니다. 결국 생각을 많이 해서 복잡해지는데, 생각은 하나의 단순함으로 모아져야만 합니다.
물론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생각이 없어지기 위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참 어머니일까를 의심하고 생각과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어머니가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오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고심해야 했습니다. 그냥 아이들은 그렇게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인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생각은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결론을 도출하게 될 때 가장 유익한 것이 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맥도날드의 판매와 이익은 지지부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CEO였던 잭 그린버그는 대부분의 열혈 CEO가 그랬듯 새로운 맛의 메뉴를 개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44가지 아이템이 섞여 있는 복잡한 메뉴가 새로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것은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과 짜증나는 대기 시간뿐이었습니다. 패스트푸드란 이름이 무색하게 대기 시간은 길어졌고 사람들의 불평은 늘어갔습니다.
이에 고인이 된 짐 캔탈루포 CEO는 정책을 바꾸어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 않겠다.’면서 회사를 단순하고 명쾌하게 바꿨고 품질과 청결, 서비스 업그레이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고객들이 돌아왔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패스트푸드가 슬로우푸드로 뒤집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의 끝은 명쾌함과 단순함이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아무 두려움 없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의 몫이라고 하십니다. 어른들은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좋으면 그만입니다. 별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생각을 다 한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 단순한 믿음의 결과를 얻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지만 도달하지 못합니다. 생각의 목적이 어린이와 같이 단순하게 믿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의 단순함은 그냥 생각이 없는 단순함이 아닙니다. 어떤 법칙이 있습니다. 토마스 헤이즐릿은 “단순한 성격은 심오한 사색의 자연스러운 결과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목적은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함은 힘든 노력의 결과입니다. 결국 복잡한 생각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들이 쓸모없는 것임을 알게 되고 그러면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의 자질구레한 생각들을 끊어버리게 됩니다.
어른들이 수많은 생각을 해야 얻어내는 결론을 아이들은 이미 진리로 품고 있습니다. 그 규칙 안에서의 단순함이기 때문에 가장 약하지만 가장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품고 있는 진리는 사랑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머물려는 마음이 아이들의 단순함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에서 나와서 사랑으로 가야만 하는 것을 압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들의 사랑이란 기준으로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을 배워야합니다. 생각의 목적은 사랑 이외의 생각은 무의미함을 아는 것입니다.(전삼용신부)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 맺고, 겨울이면 행복한 것이 순서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꽃이 피기를 바라면 욕심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고, 추운 겨울을 준비했다고 하면 거짓입니다. 화목한 가정도 때로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은 다툼이 있을 때도 지금 일어난 일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다툼이 끝나면 지난날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다툼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 가정은 반대로 사는 것을 봅니다. 다툼이 있을 때면 지난날의 허물과 잘못을 꺼내서 이야기합니다. 지금 작은 허물은 뒷전이 되고 맙니다. 연애할 때 잘못한 일, 신혼 때 서운했던 일, 친정 부모님께 잘못한 일, 시누이에게 잘못한 일을 꺼내서 다투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행복했던 순간들까지 기억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미처 알아내지 못한 죄까지 용서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다음 고백성사를 드릴 때, 지난날의 허물과 탓을 묻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내가 잘못한 것만 들어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오늘 제1 독서도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모의 죄 때문에, 형제의 죄 때문에, 이웃의 죄 때문에 지금 나를 벌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지금 내가 잘못한 것만을 따지신다고 합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므로 용서해주신다고 합니다.
자매님들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제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욕설했다는 녹취파일을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듣기에도 부족한 세상입니다. 무엇 때문에 찾아서 욕하는 소리를 듣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저의 귀를 그런 소리에 더럽히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제 마음에 나쁜 것들이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를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따듯한 이야기를 듣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간다는 것은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 기쁨, 자유를 얻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현실의 삶에서 이미 천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 역시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어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조재형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