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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2: 6 돈궤를 맡고 - 요 12: 8 너희와 함께
요 12: 6 돈궤를 맡고 -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그러나 유다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었고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가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진리보다 돈에 관심이 있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보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마음에 가득하였다.
1]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도둑질은 죄악이다.
교회 직분자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
* 딤전 3: 3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목사와 장로들은 재정을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일들에 책임을 가진다. 교회 재정은 성경에 교훈된 대로 전도와 구제를 위하여 바르고 정직하게 또 절약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 재정을 잘못 관리하고 함부로 쓰면 하나님께 큰 벌을 받을 것이다.
2]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다른 제자들이 마리아를 비평한 것은, 부주의로, 혹은 피동적으로 그리하였다.
* 마 26: 8 -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 막 14: 4 -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그러나 유다는 이 구절에 나타난 대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위선자(僞善者)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계획적인 악행이었다.
유다는 저렇게 탐심이 강하였고, 그것 때문에 자기 선생을 파는 무서운 죄악까지 범하였다.
* 눅 22: 3-6 –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매 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평소에 그의 마음 속에 자라나던 죄악(탐심)이 결국 그로 하여금 큰 일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탐심(貪心, Greed)은 탐내거나 부당한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탐심의 죄악 때문에 노하셔서 그들을 치셨다고 말씀하셨다.
* 사 57: 17 -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헬라어로 탐심'은 '플레오녀시아'로 '더 많은'의 뜻을 가진 '플레온'과 '소유하다'의 뜻을 가진 '혀시'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킨다.
* 눅 12: 15 -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여기서 지적되는 것은 단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모든 종류의 죄악 된 성향(性向)을 총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 시 39: 6 -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 합 2: 9 -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 딤전 6: 9-12 –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정의하였다.
* 골 3: 5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물질을 추구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요 12: 7 간직하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마리아는 좋은 일을 했다.
그가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장례식을 위해 돈을 쓴 것과 같다. 평소에 돈을 잘 안 쓰던 사람도 사람이 죽으면 돈을 쓴다. 물론 평소에도 돈을 적절히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값비싼 관이나 수의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오히려 평소에 부모님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이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남은 것을 보관하라.
"그 여자로 하여금 지금 향유 붓고 남은 것을 보관시켜 후일에 나(예수님 자신)의 장례 때에 사용하게 하라"는 뜻이다.
(2) "그 여자의 향유 붓는 행동을 중단시키지 말라.
그 행동이 나(예수님 자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의미를 가진다"라는 뜻이다.
이 해석이 옳다.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란 말(*)은, "향유를 보관한 일이 되게 하라"는 의미인데, 그것을 보관해 왔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 한 때에 사용하기 위하여 향유를 그때까지 보관하였던 것이다.
칼빈(Calvin)은 이 점에 있어서 귀중한 뜻을 지적한다. 곧, "마리아는 그런 값 비싼 의식(儀式)을 흔히 실행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음을 위하여 이렇게 희귀한 행위를 취한 것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흔히 외부적으로 찬란한 의식에 치중함을 금하신다. 어떤 해석가들이 마리아의 이 일에 기준하여 추론하기를, 의식을 성대히 갖춘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리아의 한 일은 그 한 때에 필요하였으나 신약 계시가 완성 된 후에는 그런 방식의 의식(儀式) 행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Calvin's Commentary, John's Gospel, Vol. , 가가. 13-14).
(3) 예수님의 칭찬
예수의 제자들과는 달리 마리아의 행동을 헛된 낭비로 본 것이 아니라 귀한 헌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조만간 십자가에 죽을 줄 알고 계셨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아의 헌신적인 행동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가치 있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주님을 영예롭게 하려고 자기의 최선과 최고의 것을 바치는 것은 결코 헛된 낭비가 아니라 헌신이다.
요 12: 8 너희와 함께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너무 구두쇠처럼 살지 말고 평소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 남을 위해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
돈은 쓰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먹을 것도 적절히 먹고 입을 것도 적절히 입으며 살라고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은 특히 하나님의 일들을 위해, 교회 일들을 위해, 전도를 위해 써야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우리는 도와줄 힘이 있을 때 가난한 교우와 이웃을 위한 선한 일에 돈을 써야 한다.
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서부 사본(西部寫本)의 대표격인 베사 사본(D)에는 이 말씀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더 유력한 사본들에 있으니, 이 말씀은 원본대로 전해진 것임이 분명하다(Godet).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란 것은 신 15: 11의 말씀과 같다.
* 신 15: 11 -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언제나 돌아볼 책임이 있음을 지시하신다.
* 요 13: 29 -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다만 시간적 순서로 볼 때, 그 때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중요성을 예언적으로 표시하는 의미에서 그 값 비싼 향유를 사용함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언 행위는, 복음 전파의 행위이다. 그것은 지극히 귀한 일이며, 따라서 그 일을 위하여 값비싼 향우라도 소비할만하다.
스킬더(K. Schilder)는 말하기를,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왕으로 말씀하시면서 "먼저 나요 다음에 너희들이라"고 하신 셈이라고 하였다(Christus in Zijn Lijden, Kampen, p. 45).
2] 옥합을 깬 마리아 (요 12: 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이 베다니에 이르셨다. 얼마 전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곳이라 그를 대접하는 자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을 주빈으로 하여 잔치하는 이 자리에서 마르다는 대접하는 일에 봉사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리아는 값비싼 나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주님의 머리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흘러 내려오는 향유를 씻어냈다.
(1) 옥합을 깨뜨린 두 여인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이 나드 향이 든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부어 드린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이 사건이 4복음서에 다 나오기는 하지만 누가복음에 나온 여인의 경우는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나드 향이 든 옥합을 깬 여인은 마리아만이 아니라 다른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은 한 바리새인이라고 했다.
* 눅 7: 36-50 –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곳에는 예수님을 초대한 목적이 없다. 집주인이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도 드리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지극히 호의적인 대접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경우는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했으며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있는 정성을 다 기울였다. 누가복음의 경우는 기름을 부은 여인은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인”으로 나와 있으며 예수님을 이곳에서 처음 만난 여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경우는 이 여인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여인으로 죄인이라고 비췬 곳이 한곳도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건 이 사건은 주님의 마음에 큰 위로와 기쁨을 드렸다. 이로 인하여 한 여인은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한 여인은 말할 수 없는 칭찬을 받았다.
(2) 마리아의 옥합
마리아가 주님의 머리에 부은 나드 향은 티베트와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의 고지에서 자라나는 희귀한 나무에서 짜낸 비싼 향유이다.
① 마리아가 옥합을 깬 것은 사랑의 표시다.
마리아는 가난한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에게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옥합에 든 나드 향 뿐이었다. 이 향유의 값은 무려 300 데나리온으로 이 돈은 노동자 임금이 300일분이다.
마리아가 이것을 능히 송두리째 주님께 부어드릴 수 있었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그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② 마리아가 옥합을 깬 것은 자기 헌신의 증거였다.
물질과 마음은 서로 통한다. 마리아는 그의 사랑의 마음과 함께 자기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중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렸다.
③ 마리아가 옥합을 깬 것은 은혜의 보답이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며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까운 것이 없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아온 은혜, 구원을 받은 은혜, 자기 오라비의 생명을 살려주신 은혜, 이런 것들이 그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았다.
(3) 옥합을 깬 사건의 영향
마리아가 이처럼 주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은 즉시 제자들 간에 반응이 일어났다.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가 마리아에게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한 것이다. 이 일로 마리아가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장사 할 날”이란 예수님이 죽으실 일에 대한 예언인데 예수님은 마리아가 그에게 나드 향을 부은 일을 장사할 날을 위한 일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마태복음에서는 이처럼 말씀하고 있다.
* 마 26: 6-13 –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가 깬 옥합에서 순전한 나드 향이 흘러나왔으며 이 향은 온 집안에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채웠다.
우리가 여기서 영적인 교훈 두 가지를 든다면
① 하나는 옥합 속에 들어 있는 나드 향은 바로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우리의 몸은 질그릇이요 그 속에 담겨진 주님은 보화이시다.
* 고후 4: 7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옥합인 이 육의 사람을 깨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밖으로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육신에 대하여 죽는 생활을 해야 한다.
② 이 향내가 예수님이나 다른 제자들에게는 값진 향기로 맡아졌지만 멸망한 가룟 유다에게는 그러하지 못한 일이다.
이것은 같은 복음이라도 구원을 얻을 사람과 멸망 받을 사람들과는 풍기는 냄새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다.
* 고후 2: 15-17 –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세상에는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므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기회는 항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며칠 후 죽으실 것이다. 예수님은 그때까지 아마 마리아가 부은 것과 같은 그런 값비싼 향유를 발라보신 적이 없으셨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향유를 바를 만큼 귀한 분이 있으시다면,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시다! 예수님보다 더 귀한 분은 세상에 없다.
실상 인간은 값비싼 향유를 바를 만큼 그렇게 고상한 존재가 아니다. 돈의 여유가 있으면 그런 것을 바를 수 있다. 그것이 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과분한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는 분명 예수께서 그의 값비싼 향유보다 더 귀한 분이심을 알았다. 예수께서는 그의 형제 나사로의 생명의 은인이셨다.
마리아는 또 예수께서 자기 생명의 구주이심을 믿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마리아는 예수님을 바로 알았고 그를 믿고 섬기며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났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 구제하는 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뜻이며,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일은 선한 일이요 우리가 힘써야 할 의무이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살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둘째, 돈은 정직하게 벌어야 한다.
우리는 정당하게 수고하지 않고 남의 것들을 훔치거나 불의하게 돈을 벌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 잠 16: 8 -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 돈을 버는 자가 되어야 하며 또 번 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절약하며 써야 한다.
셋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 돈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유를 바르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참된 교회와 복음을 위해 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돈을 쓰자. 또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가장 귀한 보화를 사용하자.
마리아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매우 귀한 향유를 주께 부어드린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몸과 재능, 시간, 물질,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건립과 확장을 위해, 그리고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일을 위해 바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