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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배우는 이유
옮겨온글
가장 중요한 지식
종교개혁자 칼빈이 지적하였듯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지식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둘째는 인간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두 지식은
나의 실존과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는 지식이니,
곧 나의 생명과 삶을 결정하는 절대 절명의 지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자 하였고,
그 지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의 존재의 본질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지식이 없이는 바울 자신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을 결정할 지식
이스라엘의 영적인 혼란과 절망의 시대 속에서
선지자 호세아가 무엇을 선포하였습니까?
열심히 일하자,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자,
노력하고 애쓰자 라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자, 여호와를 힘써 알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은 선택의 문제도,
인생의 한 부분의 문제도 아닌
우리의 전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이 땅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영원까지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실존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창조주이며, 구속주이며 온 우주의 완성자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
온 우주의 완성 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설명하고 가르쳐 주는 방식이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오직 기독교라는 종교만이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를 가르쳐주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기독교 신앙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배우게 됩니다.
절대적 판단 근거: 성경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을 바르게 규정하는 장치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떠한 종교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통해서
계시하신 말씀으로서의 성경만이
참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참된 기독교 신앙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거짓이라고 하면 거짓인 것이고,
성경이 참이라고 하면 참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판단과 행위의 기준은
오직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입니다.
성경의 진의가 무엇인가?
그 진의가 오늘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모태: 성경
기독교 신앙의 모태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 역사 속에 탄생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성경을 모르거나
성경을 곡해하거나 무시하면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종교집단의 분류
성경과 관련하여 인류에 있는
종교 집단을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성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집단을 이교라고 합니다.(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성경은 인정하지만,
그 진의를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는 집단을
흔히 이단이라고 합니다(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그리고 성경의 절대적인 교의는(삼위일체론, 인간론, 구원론등) 함께 인정하지만,
세부적인 교리를(세례론, 교회정치, 은혜의 방편등) 다르게 해석하는 집단을 분파라고 합니다.
(카톨릭, 개혁주의, 복음주의, 장로교, 오순절주의등.)
성경에 의해서 종교적 집단을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세 가지 우상
그런데 이 보편 기독교 진영 안에서
성경에 대한 견해와 해석에 의해서 또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무당 같은 신비주의
성경을 자신의 종교적 경험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신비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보다
자신의 종교적 경험과 체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기도원운동으로 한동안 번성하였습니다.
이들은 성경보다 귀신을 더 좋아합니다.
걸핏하면 귀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아파도 귀신 때문이라 하고,
일이 잘 안 되도 귀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축사 기도를 해야 하고,
귀신보다 힘이 강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한다고 합니다.
가끔 귀신을 본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 주위에는 정신적으로 연약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대의 다양한 정신질환을 모두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귀신이 들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강력한 종교 집단은 될 수 없지만,
아마도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종교적 분파를 유지할 것입니다.
개척교회들 중에 그나마 버티고 있는 집단이 귀신가지고 장사하는 이들입니다.
사실 이들에게는 성경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신비주의는 범신론과 같은 이교가 됩니다.
교회의 목을 조르는 교권주의
성경보다 자신의 교권과 전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교권주의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전통과 교회법에 의해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자신들의 교권이 더 중요한 자들입니다.
카톨릭이 이렇게 우경화되어
자신들의 전통과 교권을 성경 위에 둔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교회가(그들이 말하는 교회는 카톨릭 성직자들의 모임이다.)
성경을 해석한다고 합니다.
장로교는 성경적인가?
이 교권주의는 한국교회 안에서
장로회교회 중심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정치 집단입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장로회는
사실 성경이 말하는 장로회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장로와 지금 한국교회의 장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카톨릭 교회의 정치제도를 약간 조정하여
개혁교회의 정치 체제로 도입한 교회정치 방식입니다.
장로회 제도가
교회를 운영하는데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최소한 성경적이지는 않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
장로들이 모인 회를 당회라고 하는데,
이 당회는 닫혀 있는 조직입니다.
한번 선출이 되면 죽을 때 까지 장로입니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어느 교단에서 장로가 되던
교회를 옮겨도 인정해 주는 정말 좋은 감투이지요.)
아니 묘비에도 장로라고 씁니다. (예수님은 장로라고 보지 않는데....)
종신제다보니까 한 번 되는 게 힘들지
(사실 힘든 것도 아니지요?
헌금 많이 하고, 예배 잘 드려 담임목사에게 잘 보이면 되니까요?)
되고나면
자신이 교회라는 종교기업의 이사가 된 듯 착각을 하게 합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정년이 보장되면,
운영을 방만하게 하고, 고인물이 되는 것처럼,
교회 정치도 그렇게 됩니다.
담임목사는 성도의 영적인 문제와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장로들에게만 잘 보이면 됩니다.
(왜냐면 장로들에게 인사권과 행정권이 있으니까요?)
당연히 교회 운영방식이 관료중심으로 운영되지요.
그 결과 교회의 영적 생기는 죽고, 복음적 역동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교회의 현상은
영적으로는 참된 영적 변화를 통해서만 일어나는
회심과 부흥이 일어날 수 없고,
소위 죽은 조직이라 고하는
당회, 권사회, 안수집사회, 무슨 동호모임 같은 것들만 있게 됩니다.
자기 의로 가득찬 교회생활
이런 교회에서 오래 신앙생활 한 사람들의 특징이 이상하게 모두 똑같습니다.
아주 이상한 종교적인 고집과 자기 의가 생깁니다.
내가 교회에서 장로인데,
내가 성가대를 몇 년 했는데,
내가 주일학교 교사를 몇 년 했는데...
이런 자기 의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대신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10년 20년 신앙생활 했는데, 성경을 도무지 모릅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거의 유치원 수준입니다.
직접 어떤 장로와 안수집사에게 들었습니다.
난 성경은 잘 모르지만, 교회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부교역자를 훈계합니다. 이게 무슨 기독교입니까?
교회에서 집사 안 되고,
전도회 회장 떨어지고,
장로 안 되면 쪽팔려서 교회 못 다닌다고 하는데,
성경을 하나도 몰라도 교회 생활 하는데 전혀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어떤 권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는 가봐야 알지.....
이게 한국교회 장로교회의 영적인 현실입니다.
성경보다 인간이 만든 교회의 전통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 재앙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영적 살육의 현장입니다.
성공주의
또한 성경을 통해서
이 지옥이라는 세상에서 성공과 번영을 찾으려는 집단을
번영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로버트 슐러나 조엘오스틴, 조용기 목사와 같은 사람들이 이 분파에 속합니다.
한국에서는 기복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60년에서 8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이 기복주의 기독교가 크게 번성하여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복주의의 한계는
번영과 풍요의 신이 바알과 맘몬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쓸모없는 종교가 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작금의 조국교회의 영적 형편이 기복주의 신앙으로 크게 번성하였는데,
번영이라는 복이 임하니까?
이제 기복주의는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머리 디밀고 교회 나가
하나님께 복을 빌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하니까?
교회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무당 잡교의 교리
이들의 성경해석의 원리는
구속사적 이해나, 기독론적 해석이 아니라,
성공과 번영의 원리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좀 잘되고, 성공한 사람의 예를 좋아합니다.
아니 성경의 모든 인물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 잘 보여서 복 받은 사람,
십일조 내서 돈 많이 받은 사람,
헌신하고 전도해서 자손만대가 성공한 사람
완전 무당과 잡교의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복적 신앙은
한국의 무당종교의 배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매우 쉽게 기독교 신앙을 따르게 한 장점이 있었습니다.(사실 기독교 신앙은 아니지만)
목회자들이 한국의 상황에 맞게
기독교의 토착화를 잘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놀이와 즐거움
요즘은 번영의 신학과 복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이제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까?
엔터테이먼트와 심리학적 방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나 청년부 부서는
이러한 관계와 교제, 놀이와
엔터테이먼트의 형식을 취한 종교교육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는 반드시 물놀이를 해야 하고,
청년부 여름 수련회는 계곡이나, 바닷가를 가야합니다.
아버지학교, 좋은 부모교육, 결혼학교,
요즘은 또 대안학교를 교회에서 하더군요,
이런 것이 복음 없이
엔터테이먼트와 심리학으로 교회를 운영하려는 시도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어도 하나는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영적 변화의 본질인 회심은
절대로 이런 종교 집단에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항상 비회심자로 차고 넘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줄 수 없는 사교집단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중병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자신은 병은 못 고치고, 수술도 못하니까
그냥 이 사탕이나 먹고, 개그콘서트 보면서 기분 좀 풀라고 하는 꼴입니다.
영혼의 치명적 암에 걸려 있는 그는
아마 사탕 먹고 개그콘서트 보면서
재미있게 웃다가 병원 부설기관인 영안실로 갈 것입니다.
이들에게 없는 것
이렇게 우리 조국교회의 세 우상인
신비주의, 교원주의, 성공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이들은 모두는 한 가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 대한 해석과 정당한 가르침입니다.
당연히 영적 변화와 회심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회심은 성경에 대한 바른 가르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참된 교회의 특징은 말씀의 바른 전파라고 하였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지 않으니까?
참된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칼빈이 다시 온다면 아마도 똑 같이 말할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반론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론 할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목사님은 좀 편협하십니다.
한국교회가 성경을 가르치지 않다니요?
여전히 성경을 설교하고, 교회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비판이유는
설교가 성경을 반영하지 않고,
교회 성경공부가 성경의 진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일 년이면 50편에서 100편을 듣습니다.
5년이라고 하면 500편 듣습니다.
그러면 그 500편의 설교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까?
여기에 대해 '네' 라고 한다면
그 교회는 조금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요; 한다면 그 교회는 솔직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설교를 들어도
이상하게 회중은 성경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설교가
진리의 내용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만이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알아야지
나의 실존과 본질을 바르게 규정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며 누구이며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으며
이 땅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공부해야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은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의 본문을 읽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표피와 문자만 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 문자 안에 담겨져 있는 진의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둘째는 성경을 조직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소위 조직신학적, 교리적 성경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의
연역적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역사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구속사입니다.
창조부터 타락, 예수님의 성육신과 성령강림,
교회의 시대와 종말이라는 구속사적 관점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경험적 이해입니다.
공적으로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고,
사적으로는 개인의 역사를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합적 방식으로 성경을 공부해야
성경의 진의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내 삶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방식을 통합하여 전달하는 것을 소위 강해, 강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나, 로이드존스는
설교는 반드시 강해적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교는
이렇게 성경 강해가 아니라,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 많은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니,
아무리 많은 설교를 들어도 하나님을 모르는 영적인 유아가 되는 것입니다.
거짓인 인간이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습니까?
눅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진리로 사는 삶
예수님이 바로 자기 앞에 있는데도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인 예수님이 보였는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갔습니까?
바로 진리를 깨달은 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진리를 좇는 자,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가 된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면 진리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이해하면 예수가 들어와 예수가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의 삶, 진리의 삶을 살지 못하니까?
환난과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고 자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인 신자의 삶에는 반드시 자기 깨어짐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데 교만하다
그건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런 삶을 사는 자를 마귀라고 합니다.
예수가 안에 있으면 그럴 수 없지요.
내 안에 있는 진리에 끌려 다니며
광야 속에서 옛 자아가 산산 조각가는 것이 신자의 역사이고 삶입니다.
아벨이 그랬고, 노아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고, 야곱이 그랬습니다.
바울의 삶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삶에 무슨 성공과 번영이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의 모든 인물이 진리로 산 신자들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본질
교회는 성경을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바른 목양관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목양관계 없이 성경을 배우면 결국 자기 의만 쌓입니다.
성경 열심히 공부한 자기만 남지
진리가 내 안에 들어와 내가 진리가 되지 않습니다.
진리가 내 밖에 있으면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면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리입니다. 내가 빛이고,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진리인 예수가 있으니까요?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배와 경외의 정신으로 듣고 배우는 시간이고,
봉사는 내가 경험하고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구제라는 방식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거저 받은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니까
아무리 교회 봉사를 많이 해도 절대로 자기 의가 쌓일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여전히 진리 밖에서 진리를 찾는 자입니까?
아니면 진리가 여러분 안으로 들어와 진리로 살고 있는 신자입니까?
성경을 배우지 않고 교회생활하면 괴물이 됩니다.
빨리 성경을 펼치고 진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리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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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신앙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