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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5일, 일요일>
오늘은 안동 로얄 웨이 (봉정사ㆍ안동농수산물도매시장ㆍ하회마을) 및 병산서원 트레킹을 위해 오전 7시 경 집을 나서 경북 안동으로 향합니다~
안동 로열 웨이는 1999년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에 이어 20년 후인 2019년 앤드루 왕자가 대를 이어 방문하게됨에 따라 안동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세계적으로 소개된 장소들로써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왕실에서 안동을 찾았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안동이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전 11시 38분 경 로얄 웨이 첫코스인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 입구에 도착하여 등산로 안내도와 세계유산 표석을 담고 오늘의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위치한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사찰로써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신라 때인 672년(문무왕 12) 천태종의 개조 의상(義湘) 대사의 제자인 능인(能仁)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10개 동에 이르는 불당과 동서 양쪽에 있는 암자 2채를 포함하여 9동의 건축물이 있는 안동에서는 가장 큰 사찰입니다~
봉정사에는 국보 15호인 봉정사 극락전, 보물55호인 봉정사 대웅전, 보물 448호인 봉정사 화엄강당, 보물 449호인 고금당, 삼층석탑 등 많은 귀중한 문화재가 있으며, 특히 고려의 건물로 주심포집인 극락전과 조선시대의 건물인 다포집인 대웅전이 나란히 있어 고건물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속 차도를 따라 봉정사로 향합니다~
천등산 등산로, 천등굴, 개목사 이정목을 지나고 오르막 급경사 후 평지를 이루는 곳에 위치한 일주문을 통과하는데 처마 밑에는 '天燈山鳳停寺' 라는 고색창연한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봉정사 세계유산 등재 기념 대형 표석에 도착했습니다~
봉정사는 대한민국의 산사 7곳을 묶어서 2018년 6월 30일에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山寺, 韓國의 山地僧園)중 한 곳이며, 경남 양산시 통도사, 경북 영주시 부석사, 충북 보은군 법주사, 충남 공주시 마곡사, 전남 순천시 선암사, 전남 해남군 대흥사가 이에 포함됩니다~
봉정사 표석을 배경으로 단체 인증샷을 남깁니다~
봉정사는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천등산봉정사 현판이 있는 '만세루' 하부를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향합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의 전경 입니다~
대웅전(국보 제311호, 2009년 6월 30일)의 건립 연대는 자세한 사료가 없어서 정확한 연대를 알지 못하나 건물의 일부를 해체하여 수리할 때 일부분의 묵서명이 발견되어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 추정됩니다~
화엄강당의 전경 입니다~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1967년 06월 23일)은 스님들이 교학을 공부하는 장소로 온돌방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극락전과 대웅전이 17세기에 중수시 스님들의 강학공간인 화엄강당도 함께 중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합니다~
안동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입니다~
극락전의 전경 입니다~
극락전(국보 제15호, 1962년 12월 2일)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후기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고, 극락전 해체 보수공사 때에 1625년(인조3)에 작성한 상량문을 발견하였으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께서 개창하였다고 상량문의 신라 때에 창건은 이를 가리키는바, 공민왕 1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이보다 오래 전에 이미 건물이 조영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입니다~
봉정사 삼층석탑(鳳停寺 三層石塔)은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82호로 봉정사를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으로 나누었을 때 이 3층석탑은 고금당과 함께 극락전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으며, 가람의 배치나 조성 양식으로 보아 그 건립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됩니다~
고금당 앞에는 봉정사 영국여왕 방문 안내판이 있습니다~
고금당(보물 제449호, 2009년 6월 30일)은 극락전 앞 서쪽에 세워져 있고, 동쪽에 있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건축되어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종각과 만세루 현판 입니다~
종각은 종을 걸어두는 누각으로 종루(鐘樓)라고도 불리 우며, 사찰의 의식도구인 사물(四物 :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걸어놓고 각종 불교의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사용하는데 봉정사는 범종만 달아 놓았습니다~
범종(梵鐘)은 지옥에 빠진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법물들이 걸려있는 만세루의 전경입니다~
만세루(시도유형문화재 325호, 2001년 11월 1일)는 조선 숙종 때 이층으로 건축되어 우하주는 누상주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보이고, 누문의 아래층은 사찰의 중정으로 통하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고, 목어(木魚), 운판(雲版), 법고(法鼓)등의 사물이 걸려 있습니다~
440년된 은행나무 보호수 아래로 이어진 하산길에는 기와들을 예술적으로 쌓아 놓았습니다~
능인교를 건너면 템플스테이 시설인 설법전이 있습니다~
하산길 계곡의 양지 바른 물가에는 정자 하나가 서
있습니다~
봉정사 탐방을 마치고 로얄 웨이 두번째 코스인 안동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동해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 방문기념 로얄 웨이 표석과 앤드류 왕자가 식수한 사과나무 등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꿀박이 안동 사과도 한 상자를 샀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안동찜닭과 간고등어 등으로 맛나게 점심을 즐겼습니다~
주차장부터 안동 하회마을까지 셔틀버스가 운행중이지만 낙동강변 숲길을 따라 걸어 갑니다~
로얄 웨이 세번째 코스인 하회마을에 도착하여 세계유산 표석앞에서 단체 인증샷을 남기고 어좌에 앉아 잠시 왕이 되어 봅니다~
하회마을 안내지도와 안내문을 일독하고 마을로 접어듭니다~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으로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습니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되는데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는바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가훈 장승을 지나고 사주카페 수심헌을 지납니다~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마을로써 한말까지 35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고, 마을 내에는 총 127가옥이 있으며 43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127개 가옥 중 12개 가옥이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하동고택(河東古宅) (중요민속자료 제177호) 입니다~
하회마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하동고택(河東古宅)」이라 부르는데 지금의 예천군 용궁 현감을 지낸 류교목(柳敎睦)공이 조선 헌종2년(1836년)에 세웠고, 1953년 현재 소유자의 부친이 인수하였으며, 전체 24칸의 활궁(弓)자형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한 채로 이어져 있는 민도리 집으로 특이한 점은 대문채는 초가집이지만 사랑채와 안채 등은 기와집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은 창건자가 후손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한 차례 융성하면 한 차례는 쇠락하므로 욕심을 내어 전부를 채우려 말고, 부족한 가운데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이라 하며, 또 안채 가운데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모두 열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사를 담당하는 부녀자들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600년 이상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는 삼신당에 들려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갑니다~
삼신당(參神堂)은 하회 별신굿 놀이에서 탈놀이 춤판이 가장 먼저 행해지던 곳으로 안동 하회마을 중앙 지점에 위치하는데 서낭당·국사당과 함께 풍수지리상 마을의 혈(穴)에 해당하며, 하당(下堂)이라고도 합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안녕과 무병, 풍년을 비는 동제(洞祭)가 이곳에서 치러지는데 수령 600년 이상의 노거수(老巨樹) 느티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양진당(養眞堂) (보물 제306호) 입니다~
우뚝 솟은 솟을대문과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양진당(養眞堂)」은 풍산 류(柳)씨의 대종가(大宗家)로써 사랑채에 걸려있는 「입암고택(立巖古宅)」현판은 겸암 류운룡선생과 서애 류성룡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을 지칭하며, 당호인「양진당(養眞堂)」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며,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공존하는 고택입니다~
풍산류씨의 하회마을 입향조(入鄕祖)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 공이 13세기 입향 당시에 처음 자리잡은 곳에 지어진 건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 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하여, 고려말 건축양식과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섞여 있는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正南向)의 집이며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습니다~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고, 口자 형의 안채와 그 북쪽의 사랑채를 一자 형으로 배치하였으며, 오른편 북쪽에는 2개의 사당(祠堂)이 있는데, 정면의 큰 사당은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공신이나 대학자 등의 탁월한 자에게만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하며, 불천위로 인정되면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의 관행을 깨고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립니다) 사당이며, 작은 사당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입니다~
충효당 입구 바깥 마당에는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1999년 방문시 기념 식수한 구상나무가 어느덧 이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 입니다~
충효당은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며,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으며,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합니다~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습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에 지은 집으로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후,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長孫) 졸재(拙齋) 원지(元之)공을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의하(宜河)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士大夫)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있습니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충효당으로 들어가 두루 둘러 보았습니다~
하회마을 외곽길을 따라 만송정으로 향합니다~
만송정(萬松亭, 천연기념물 제473호) 숲 입니다~
만송정은 안동 하회마을 북서쪽 강변을 따라 펼쳐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있는 소나무숲으로 조선 선조 때 서애(西厓) 류성룡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용 (1539~1601)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 부용대(芙蓉臺)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하여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여 만송정(萬松亭)이라 하며, 1983년에 세운 만송정비(萬松亭碑)에는 이 솔숲의 내력과 함께, 현재의 숲이 1906년에 다시 심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숲에는 수령 90~150년 된 소나무 100여 그루와 마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심는 작은 소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있고, 이 소나무들의 크기는 나무높이 16~18m·가슴높이 줄기지름 30~70㎝ 정도이며, 이 숲은 여름에는 홍수 때 수해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세찬 북서풍을 막아주며, 마을사람들의 휴식공간 혹은 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보호면적은 47만 6,430㎡ 입니다~
토산품 상점에 잠시 들려서 정겨운 물건들을 담아 보았습니다~
용트림을 하는 듯한 나무 줄기와 부채꼴 모양으로 멋지게 자란 수령 400년 이상의 소나무 보호수를 담고 갑니다~
낙동강 건너 부용대 정상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서 하회마을과 낙동강의 전경을 감상하고 있습니다~
매년 음력 7월 16일 밤에는 만송정 숲에서 강 건너편 부용대 꼭대기까지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선유(船游)줄불놀이가 펼쳐지는데 부용대에서부터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참나무숯의 불꽃이 하늘에서 터지고, 그 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장관으로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뱃놀이와 함께 펼쳐졌다고 하니 그 풍류를 짐작할 수 있겠고, 4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줄불놀이는 일제강점기부터 수십 년간 중단되다가 최근 다시 이어지는 전통놀이입니다~
중요민속마을로 지정된 하회마을과, 그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맞은편의 부용대와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마을숲 만송정은 그 역사적ㆍ문화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원지정사를 지납니다~
원지정사(遠志精舍) (중요민속자료 제85호)는 서애 선생이 선조 9년 (1576년)에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 만송정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 북쪽에 짓고 학문을 했던 곳으로 은퇴한 후에는 정양하던 곳이기도 하며, 원래 원지(遠志)는 한약재로 심기(心氣)를 다스려 정신의 혼탁과 번민을 풀어주는 소초(小草)를 말하는데, 하회마을의 안산이기도 한 원지산(遠志山)에서 자생하는 풀입니다~
따라서 원지라는 당호와 북향하고 있는 두 건물을 생각하면 북녘에 있는 임금님을 사모하는 선비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고 합니다~
목화체험관과 목화밭을 지납니다~
봄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는 낙동강 제방길에도 잠시 올라 봅니다~
하회탈놀이 전수회관에서 하회탈춤 공연이 진행중으로 파계승 마당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시 숲길 트레킹을 통해 매표소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합니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병산서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병산서원(屛山書院) (사적 제260호)은 고려말부터 이어져온 풍산류씨 가문의 서당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이 그 전신(前身)이며, 선조 5년(1572년)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諡號 文忠公 1542-1607년)선생이 31세 때에 후학 양성을 위해 풍산에서 병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607년 서애선생이 타계하자 광해군 6년(1614년)에 선생의 제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공이 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림(儒林)과 뜻을 모아 사당(祠堂)인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여 선생을 봉안하면서 병산서원으로 개칭 위상이 바뀌게 되었으며,
광해군12년(1620년)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된 뒤 인조9년 (1629년)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 1582-1635)을 추가 배향하였고, 1863년(철종14)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습니다~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을 통과한 후 만대루(晩對樓)로 오릅니다~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인데 병산서원의 솟을삼문은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좌우로는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습니다~
‘복례’라는 이름은 논어에서 유래하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경구로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는 유학의 자기절제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것이고, 원래는 서원의 측면인 만대루 동편에 있었던 것을 이건한 것이라 하며, 병산의 험한 형세를 피하고자 했던 풍수원리가 담겨있습니다~
만대루는 병산서원을 대표하는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장 알려져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누각으로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며, 이 웅장한 건물은 인공적인 서원건축과 자연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한국 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고, 기둥사이로 보이는 낙동강과 병산은 마치 7폭 병풍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합니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온 말 입니다~
☆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 하고, 흰 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히 즐기기 좋구나’
병산서원 입교당과 전사청 입니다~
입교당(立敎堂)은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으로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렸었으며,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며,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사청(典祀廳)은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하는 곳으로
서원에서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서애 선생과 수암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祠堂)인 존덕사(尊德祠)의 오른편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문과 신문 계단 옆 수령 390년 이상의 커다란 베롱나무 보호수 입니다~
신문(神門)은 서원의 내삼문(內三門)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는데 정면 3칸의 솟을삼문으로 사당의 출입문답게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있으며,향사례에서 신문 앞의 마당은 중요한 장소가 되어 집례를 맡은 임원들은 신문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일반 학생들은 앞마당에서 참관하여야 했습니다~
병산서원 앞 마당에 있는 풍성한 매화나무가 인상적입니다~
병산서원 문을 나서면 백사장과 강건너에는 병산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이 빼어난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배치했다는 점에서 건축적, 원림적 사고의 탁월성을 보여주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 만대루 입니다~
병산서원의 전경과 안내문을 담아 보았습니다~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병산마을 농가와 멋진 작품들이 전시된 병산공방을 거쳐 주차장으로 되돌아 나오며 오후 4시 40분 경 오늘의 행복한 안동 로얄 웨이 및 세계유산 병산서원 트레킹을 마치고 집으로 향합니다~
첫댓글 멀리 안동의 봉정사와 낙동강을 걸어 하회마을 풍산류씨의 서당인 병산서원까지
하회마을의 400년된 보호수 명품송은 정말 멋지네요.
안동의 명물 간고등어와 찜닭으로 점심 맛나게 드시며...
연말에 좋은 여행 하셨습니다. 즐감했습니다.
즐거운 성탄 되시고 멋진 송년되세요.
수고 하셨습니다.
가곡님 !
가는 곳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인 전통과 문화의 고장 안동시의 영국여왕 방문지를 연결하여 '로얄 웨이'라고 명명하고 봉정사, 안동농수산물도매시장,, 하회마을 3곳의 스탬프 투어를 진행하고 있어 안동시의 지원으로 저렴하게 참가후 추가로 병산서원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따뜻한 무릅담요를 기념품으로 주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만송정 숲보다 소나무 보호수는 그 자태 명품이었습니다~
이제 올해도 일주일 정도가 남았습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항상 격려해주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년말에도 쉬임없는 트레킹으로 볼거리를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경자년 새해
에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분트님 !
지난 12월 평화누리길 정모에서 뵈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뵙지 못했습니다~
항상 격려해주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성탄절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 건강과 더불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지난주 일요일(15일)에 安東하면 떠 오르는 하회마을, 농수산물도매시장, 봉정사를 연결한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의 Royal Way에 이어서 그 유명한 병산서원을 제수씨와 함께 다녀 오셨군요. 단체 트레킹에 나선 면면들 거의 다 아는 얼굴들이라 직접 참여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1976년 8월 22일 韓銀 조사제2부 국민소득과에서 GNP 추계 출장을 경북 봉화(奉化) 金井광산으로 갔다가 업무 마치고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에 들러 명필 한호(석봉)가 썼다는 [도산서원]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 앨범에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安東지역은 안동 金, 權 씨 세력이 원캉 커서 경상북도 부도지사를 역임했던 울 동기가 市長에 2회 낙선!
앵베실 선배님 !
지난 토요일 잘 들어 가셨는지요 ?
우걸 리더의 수고 덕분에 안동시의 후원으로 로얄 웨이 겸 세계문화유산 탐방을 가볍게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하회마을을 예전처럼 동남쪽 마을까지 여유있게 돌아보지 못하고 주요 포인트만 바쁜 발걸음을 한 것이 아쉽지만 고찰 봉정사와 서애를 모신 병산서원의 고풍스러운 전경을 충분히 볼 수 있어서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옛날 40여년전 도산서원 현판 사진을 앨범에 소장하고 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