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왜 망가졌나
임 춘 훈 전 KBS 미주지사장

문재인 대통령의 인간적 정치적 자산 중에는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와 순수하고 진실해 보이는 성정이 한몫을 한다. 취임 2년 반 동안 국정 전반을 피폐화시키고 급기야는 조국 사태라는 해괴망측한 초대형 국정파탄 사고까지 쳤는데도 그는 굳건히 40%대의 믿기지 않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불가해한 일이지만 그의 진실해 보임과 착해 보임, 멋있어 보임의 '진선미 3박자'에 어른거리는 일종의 미시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말대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될 문재인'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장본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자신이었다. 이른바 박연차게이트(태광산업 회장 박연차로부터 600 몇 십 만 달러의 뇌물과 20만 달러짜리 피아제 시계 2개를 선물로 받은 혐의)로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재인이라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인물'이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의 '카프카적 변신'은 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문득 자기 몸이 벌레로 변한 카프카 소설 속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문재인은 어느 날 갑자기 정치 '아싸'에서 '인싸'로 탈바꿈한 자신의 운명적 실존과 만나게 된다. 노무현의 억울한 죽음을 해원해야 한다는 진영의 압박이 그를 황야의 정치판으로 내몰았다. 노무현 자살은 ‘친노진영’엔 엄청난 사건이었다. 노빠들은 노무현 죽음을 이명박 우파정권과 검찰이 공모한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로 '프레임 세팅했다.
전국 각지에 설치된 노무현 분향소를 찾은 정부 여당 우파 쪽 인사들은 적잖이 봉변을 당했고 노무현 장례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분향 도중 "여기가 어디라고 와?"하며 달려드는 백원우라는 노빠 의원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분향을 끝내고 유가족석을 찾아 머리 숙여 인사를 했지만 미망인 권양숙도 큰아들 노건호도 대통령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때 '아름다운 문재인'이 등장한다.
상주를 자임하고 노무현 장례를 총괄한 문재인은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 사과와 감사의 예를 표했다. 56세의 나이에 머리엔 이미 잿빛 서리가 내린 반백의 장년 신사 문재인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대여섯 번 허리를 굽혀 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재인의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 살았으면 요즘 광화문 나들이(?)에 바빴을 내 아내도 그때 잠시 '문빠'가 돼 "문재인 괜찮네. 대통령 해도 되겠네."어쩌구 했었다.
대중 정치인으로 존재감이 처음 드러난 그때 문재인은 '착하고 아름다운 뉴비newbie 폴리티션'이었다. 그때 각인된 '어착문'(어쨋든 착한 문재인)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조국과 거의 공범관계의 엄청난 국정 농단을 자행했는데도 많은 국민이 "설마 우리 착한 ‘이니’가?"하고 그를 감싸는 까닭이다. 헌정사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청와대로 들어가 가장 평화스런 모습으로 청와대를 나올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대통령 문재인. 11월 9일로 그는 임기 후반을 시작했다.
요즘 문 대통령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잔뜩 화난 얼굴, 짜증스런 표정, 때로는 불안하고 겁먹은 듯 한 눈 빛. 대통령 2년 반을 하면서 그의 얼굴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망가졌다. 나라 전체에 드리운 깊은 시름이 대통령 얼굴에 어둡고 침침한 데칼코마니를 각인했다. 문재인 정권의 전반기 성적표는 엉망이다. 군사독재 이후 87년 체제로는 역대 최악이 아닐까 싶다. 경제 외교 안보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등 주요항목이 모조리 낙제점이다.
남북문제 개선을 업적으로 꼽고 싶겠지만 사흘이 머다 하고 중단거리 미사일을 쏘아대고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운운하며 악담을 퍼붓는 북한과의 관계가 나아졌다고 자랑하기엔 멋적은 노릇이다. 문 정부는 연간 40~50조원의 국민세금을 아동수당 실업수당 고용보험 ‘문재인케어’ 그리고 단기 알바 노인 일자리 등 사회 안전망 확충에 쏟아 붓고 있다. 많은 국민이 혜택을 받아 문재인 고정 지지 40% 유지에 도움을 주지만 이런 식의 깨진 독에 물 붓기 식 복지정책은 베네수엘라로 가는 파멸의 지름길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했다.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로 시작한 그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취임사"라는 평을 듣는다.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국민과 소통하는 광화문 시대" "널리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 "나에게 표를 주지 않은 국민도 배려하는 대통령". 퇴근길엔 국민들과 선술집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감성적 어프로치도 곁들였다.
자, 이 중 문재인이 실행에 옮긴 것은 얼마나 될까? 반? 반의 반? 반의 반의 반? nothing, entirely nothing이다. 약속한 것과 반대로 거꾸로만 갔다. 그는 취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고 지키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입만 열면 남 탓 발뺌 거짓말이 쏟아져 나왔다. '거짓말 잘하고 책임지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좌파 본색의 '너절리스트 정치인'이 돼버렸다. 국민이 속았다. 일찍이 천정배가 말했다.
"문재인에겐 4가지가 없다. 소통 반성 성찰 책임." 핵심을 찌른 명언이다. 천정배가 누구냐? 노무현 정부에서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 할 때 법무장관을 한 사람이다. 같은 진영에서 한 솥 밥 먹던 정치적 동지다. 그 천정배가 이런 쓴 소리를 한 거다. 그가 지적한 '문재인에 부족한 4가지'가 결국 취임 2년 반 만에 나라꼴을 이렇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망조를 예감케 하는 장면 하나가 엇그제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연출됐다.
하는 일의 80%가 대 국회업무, 그 중에서도 야당과의 원만한 관계와 소통인 청와대 정무수석 강기정이 제1야당 원내대표 나경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강기정은 국회의원 시절 여의도의 주먹으로 악명 높던 위인이다. 동료의원, 의원 보좌관, 국회 경위 등에게 '분노조절장애성' 주먹을 예사로 휘둘렀다. 싸우다 힘이 부치면 상대방 귀를 물어뜯어 '여의도의 마이크 타이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뿔싸! 그날 근거리에 있었더라면 나경원도 귀를 물려 고운 얼굴이 작살날 뻔 했다. 문재인이 강기정을 정무수석에 앉히는 것을 보고 혼절할 뻔 했다는 정치권 참새들 많았는데 결국 이렇게 대형사고를 쳤다.
비서실장 노영민도 그날 별것도 아닌 야당의원의 발언에 여러 차례 버럭 화를 내 회의장을 썰렁하게 만들었다. 시인이라는 노영민은 과거 의원 시절, 의사당 안에 크레디트카드 단말기까지 갖다놓고 자기 책을 장사해 빈축을 샀던 위인이다.
정무감각이 이 정도인 노영민 강기정 같은 함량미달 참모진이 무능하고 고집불통에다 반성과 자기성찰을 모르는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고 있으니 청와대가 '봉숭아학당' 꼴이 될 수밖에 없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은 정치해서는 안 돼!"했을 때 그의 정직성, 여린 심성이 '아골 골짝'정치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은 이들이 이해했다. 그럴까? 진보진영이 자기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목표를 지향하는 것을 늘 걱정했다는 노무현은 문재인의 '품성'보다는 '능력'을 우려했던 것이 아닐까? "문재인은 정치인(대통령)이 돼선 안 될 인물"이라는 노무현의 성찰적 통찰이 새삼 깨우침을 주는 요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