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차(萬人茶)라는 게 있었다. 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유배가 풀려 한양에 올라간 뒤 그 곳에 남아 있던 많은 제자들은 해마다 손수 가꾼 찻잎을 모두어 섞은 합심차(合心茶)를 스승에게 보내 흠모를 했다. 이처럼 어느 한 사람을 흠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합심, 그 마음을 유형화하는 만인(萬人) 관행이 꽤나 발달해 있었다. 옛날 덕있는 사람이 회갑이나 고희 또는 회혼(回婚)을 맞으면 그를 흠모하는 주변 사람들이 덕을 치하하고 장수를 비는 짤막한 글을 써 모두어 병풍을 만들어 바쳤는데 이를 만인병(萬人屛)이라 했다. 또 사또가 선정을 베풀거나 인덕이나 인망이 높으면 고을에서 추렴해 커다란 일산(日傘)을 만들고 인덕이나 치적을 찬양하는 백성들의 글을 일산 살 끝에 주렁주렁 맨다. 이를 만인산(萬人傘)이라 했는데, 이를 들고 한양 광화문 앞 육조거리를 오가며 선정(善政)을 선전했으니 이도 만인 관행이다. 이 만인산은 탐관오리가 조정에 눈도장 찍고자 악용하는 수단으로 타락하고 말았지만ㅡ.
요즈음은 자녀교육을 위한 맹렬 어머니들이 판치지만 옛날에는 맹렬 아버지들의 극성이 대단했다. 자식을 위해서 과거 급제를 한 진사나 생원 1000명을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천자문 중 한 자를 써달라고 빌고 다녀 한 권의「천자문」을 만들었던 것이다. 글씨를 빌려 만들었다 해서 걸자(乞字)천자문이라고도 하고 만인문(萬人文) 또는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했다. 백수란 빈털터리란 뜻이 아니라 글을 익혀서 머리가 세도록 장수를 빈다는 저의를 담았다 해서 백수문이다. 1937년에 이희수란 어린이의 돌 선물로 만든 백수문을 본 적이 있는데 1000명이 각기 천자 중 한 자와 그 한자의 훈을 쓰고 자신의 이름과 서명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 팔도를 누비며 천자를 걸자하고 다니는 아버지의 정성과 그 많은 식자들의 축원을 받고 어찌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있으며 어찌 장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국교육사뿐 아니라 세계교육사에서 한 친지의 자제를 위해 이 많은 사람이 합심하는 선례도 찾아볼 수 없을 성싶다. 또 한 아이의 지적 성정을 위해 참여한 만인은 평생 그 아이와 의사(擬似)혈연을 맺으며, 글자를 써준 서로 사이에도 의사사돈을 맺고 살았으니 싱그러운 만인문화가 아닐 수 없다. 중견 서예가 1000명이 한 자씩 쓴 천인 천자문이 전북비엔날레에 전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