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인데 아직도 열리는 오이를 따며
오늘이 벌써 10월 1일,한가을 아침 햇살은 너무나 강렬하고 들판의
풀잎새들은 이미 아래밑둥 부터 갈색으로 말라오르기 시작한지 오래
고 밤나무 아름 들은 밤송이 툭툭 떨어져 내리기도 다 한지 한참이건
만 아직도 오이는 열리고 여물어 내게 제 몸을준다.이미 말라 비틀어
진 잎새들 사이를 헤집어 질긴 줄기 비비틀어 오이를 따내느라면 목
욕탕에서 쉽게 마주치던 연세 많은 노인네들의 말라 축늘어진 젖가슴
새를 연상시켜 문득 미안하고 송구하다.고추,오이, 저녘 짓다 생각나
면 쪼르르 .달려나가 툭툭 하나씩 따가져와 찌개도 끓이고 뚜걱 뚜걱
썰어 상에 내어 씹으면 그 맛이 얼마나 풋풋할꼬 생각만 해도 짜르르
하게 좋아서 작년 봄 고추모종들과 함께 오이 몇포기를 심었었다.흐
뭇하니 오이 딸 생각에만 취해서 지켜보고있자니 키가 하루가다르게
커올라 바람불 때마다 설렁설렁..안 되겠다 싶어 고춧대 박아주고 그
러다가 1m 쯤 되는 고춧대 위로 넘실거리는 잎사귀,넝쿨들에 깜짝 놀
라 다시 대나무 뚜걱뚜걱 톱질해 기둥을 높여주었는데 나중엔 그것도
모자라 세 번째로 기둥 높여주는 작업을 하여야 했다. 밑에선 쉼 없이
풀 자라 올라오지,좌우상하로는 오이덩쿨과 줄기가 정신없이 뻗어 출
렁거리며 지들끼리 얽히고 설키는데 오이를 먹을 줄만알았지, 한번도
열리는 것 본적없던 나는그저 심어두면 무릎 아래로 주렁주렁 열리겠
지..방심하고 있다가,나중엔 아예 좁게 벌려놓은 이랑 사이를 헤집고
들어갈 수 조차도 없이되었었다.그렇게 쑥쑥 자라나는 뒤치닥꺼리에
만도 허덕거려 첫해 농사로배운 교훈이있다면 아이들에게'오이 자라
듯 한다'는 옛말은 하나 틀린 거 없다는 한가지였다 올해는 모종 사다
심기는 남들 보다 다소늦은 5월 초이긴 했으나,깊게 삽질한 흙은 떡쌀
처럼 부드러이 부수어 퇴비도 넉넉하니 섞어두고 두고랑 사이는 넓게
벌려 한 고랑에 6 모종씩을 줄 맞춰 심었다.모종 심고 일주일도 안 되
어서 사관 생도 의장대 사열하듯 멋지게 버팀대도 세워 만반의 준비를
갖췄었다.그 후로는 가끔 풀 뽑아주고, 흘러 내린 넝쿨이며 줄기, 위로
올려 버팀목에 걸쳐주고 한 것밖엔 없는데 오이는 올여름 내내 푸르고
싱그런 오이를 쉼없이 우리에게 내주었다.늘어지면 늘어진 대로 땅 위
에 누운채로라도 열매는 자라고,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면서도 열
매는 자라나 내게 말했다.'나를 따렴' 뚜걱 하나 잘라다 방울 토마토랑
접시위에 올려 싱그러움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때로 송송 썰어 묵도 무
치고 -오이 피클도 질리도록 해먹었다,여기저기 병에 담아 선물도 하면
서- 제때 못 따 노랗게 익기 시작한 오이는 아예 진한 소금물 푹푹 끓여
오이지도 담궈먹고.한여름을 장에서 오이 한번 안 사고 그렇게 잘 먹고
지냈는데 그 긴비와 태풍을 지나 이가을 한가운데 이르도록 아직도 열
두 그루의 오이는 자기 몸을 내어 자꾸 나를 염치없게 만든다.참,그러고
보니 올해 여든 하나 되신 내어머니는 요즘도 전화를 하시면 여기 시골
서 오두막히 사는 딸네의 안위를 걱정하고 이번김장때도 와서 도와주겠
노라 벼르신다.늘 미덥지 않고 걱정만 끼쳐드리는 딸이다.이제는 입장이
바뀔 때도 되었건만 내가 드리는 어머니의 안부는 건성이고,어머니가 물
으시는 내 안부엔 늘 어머니의 진심이 묻어나서 가슴이 메인다.그럼에도
어쩌랴, 오이가 서운할 것같아 그마른 가슴패기에서 오늘도 오이를 비틀
어 따고,응석부리는 딸이 편안하시겠거니 싶어 여든넘으신 어머니의 걱
정을 자연스레 받는다.그리곤 그저 '고마워' 하고 '감사합니다, 어머니'
할 뿐이다.오이야, 이제 그만 편히 쉬렴 올 여름내, 가을내 정말 애썼고
고맙다.그리고 알아,나 지금껏 살아도 내 힘으로 산게 아닌 걸..다 누리
고 살 수 있도록 나누어주는 모두가 고맙고 감사해.(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