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의
끝자락인 12월까지 왔다. 세상은 온 통 얼룩져 있지만 일 년 마무리를 향기롭게 하고 싶다. 오늘은 12월을 힘차게 출발할 첫날이다. 한
해를 보내기 아쉬워 해피 가족과 함께 송년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잘한 것은 칭찬하고 잘못 한 것은 자기 자신 눈물이
나도록 꾸짖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한 달을 행복하게 불사를 시간을 만들고 또 지나간 시간을 반성해 보려고 경기도 포천에 있는 산정 호수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추위가 괴롭히려고 달려왔다. 일기예보는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서울 날씨는 무려 영하
13도라 하니 대단히 추운 날씨인데 북쪽에 있는 산정호수는 얼마나 더 추울까 ? 그러나 아무리 춥다 해도 가야 한다. 사랑 하는 집사 람은
사랑과 행복이 녹아내린 커피 한 잔을 가져오면서 날씨가 추우니 높은 산은 절대 오르지 말라고 심신 당부한다. 또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를
하며 빙그레 웃는다. 커피 향이 몸속에 스며들고 감미로움이 혀끝을 통해 느껴진다. 왜 이렇게 커피 한 잔이 아침을 행복으로 이끌까? 부인의
사랑이 녹아내려서일까? 아마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런 것 같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고 그 향기와 감미로운 사랑을 느끼며
집을 나섰다.
올해의 마지막 달이라는 서글픈 생각을 하며 걸었다.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추위가 손끝부터 시려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추운 날 둘레길을 과연 돌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잠실 새내역으로 부지런히 달려 갔다. 추위도 아량 곧 하지 않고
회원들은 벌써 많이 나와 담소를 하고 있다. 금년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새해는 올해의 삶보다 더욱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송년회를 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새해는 기해년(己亥年) 황금 돼지띠라고 한다. 황금 돼지가 온다고 무술년(戊 戌年)이 시기를 하나 보다. 12월 첫날부터 이렇게 추위를
몰고 와 괴롭히고 있으니 말이다. 한 달 내내 얼마나 괴롭힐는지 모르지만, 은근히 걱정된다.
추위를 제치고 달려온 버스는 산정호수
상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때가 10시였다. 시간이 충분하기에 마음이 급하지 않다. 오늘 회식 장소는 "한국인 갈비"라는 이동 갈빗집이다.
이 주차장에 1시 30분까지 오라는 간곡한 본부장의 부탁이다. 식당을 2시까지 가기로 약 속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식당까지의 거리는 약
8km가 된다고 한다.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1시 반까지 오라는 것이다. 산정호수 둘레길을 돌 팀과 명성산 산행을 할 팀으로
분류된다. 필자는 명성산은 다음에 등산하기로 마음먹고 산정호수 둘레길을 가기로 했다. 이상갑 회장 장선덕 본부장 이원갑 고문 등 대여섯 명이
한 조가 되어 걷기 시작했다. 호수 둘레길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속으로 와~^^ 소리를 질렀다. 곳곳에 설치해 놓은 예술 적인 조형물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말았다. 호수의 둘레길은 아기자기하게 미적 감각을 불어넣었다. 뺑 둘러 운치있게 수변 데크도 깔아
놓아았다. 비록 공기는 차지만 신선하다. 우리는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걷는다. 데크를 깔아놓아 걷기도 편하지만 주위가 매우 아름답다.
산정호수는 산속의 우물(山井)이라는 뜻으로 맑은 수질과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여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 된 국민 관광지라고
써 놓았다. 호수 주변으로 아름다운 둘레길이 펼쳐져 있어 물길과 숲길을 동시에 즐기며 호수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조금 걷다 보니 전설적인
역사의 인물 궁예의 흔적을 알림판에 써 놓았다. 이 곳과 궁예가 어떤 관계이기에 이렇게 가슴이 뛰도록 호기심을 자아낼까? 궁예와 산정호수라!
아리송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철원에 도읍을 정했기 때문에 이곳에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알림판에 써 놓은 것을 살펴본다.
월홍탄생(月虹誕生)이란 글을 보았다. 이 글은 궁예가 태어나던 날 궁궐지붕 에서 긴 흰 무지개가 하늘 높이 드리웠다 한다.
궁예는 신라의 제48대 왕인 경문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진성 여왕의 외할아버지인 헌안왕의 아들이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5자가 거듭된 단오날인
5 월5일에 후궁에 의해 태어난 궁예는 태어날 당시 궁궐 지붕에 긴 흰 무지개가 하늘 높이 드리웠고 태어나면서 부터 이가 나 있었다고 한다.
모함을 계획한 왕비는 일관을 시켜 이는 변괴라 하여 장차 나라에 이롭지 않은 일이 생길까 두려우니 마땅히 기르지 않으심이 좋을 줄로 아뢸 것을
권하게 된다. 왕은 고민 끝에 태어난 아기를 즉시 내다 버리도록 명했다. 버려진 과정에서 아기는 정자에서 떨어지게 되었는데 어느 한 시녀가 받아
내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이 아기의 한쪽 눈을 찌르게 되었다. 이때 궁예가 한쪽 눈을 잃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한밤중에 시녀는 아기를 안고 멀리
산골짝으로 달아났다.
청년 궁예(靑年弓裔)란 어른이 된 궁예(弓裔)를 일컫는 말이다. 17년이 지나 청년이 된 궁예는 유모인
어머니 로부터 자기가 왕족의 아들인 것과 지난 과거 사실들을 모두 알게 된다. 지난 과거를 들은 궁예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고 어머니
곁을 떠나 학문을 익히고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세달사(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지금의 홍교사)라는 절에 들어간다. 허공 스님은 궁예를 보자 마자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법명을 착할 선 (善) 마루 종(宗)자를 써서 선종이라 불리게 된다. 학 문과 무술을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닦았으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깊은 설움에 빠진 궁예는 자신의 진로를 위해 세달사를 떠나게 된다. 궁예왕굴. 궁예침전이란 울음산
위에 있는 굴이 있다. 이 굴은 궁예왕이 왕건의 군사에게 쫓기어 은신하던 곳 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약 4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 동굴이다.
교사음일(驕奢淫佚)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교만하여 사치스럽고 방탕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궁예는 점차
타락의 길로 빠져 들게 된다. 밖으로는 왕건으로 하여 금 후백제의 나주 등을 점령하는 전쟁을 계속하면서 호화스러운 황궁을 짓게 하여 백성의
마음을 잃어 가게 된다. 그리고 누구 든 뜻을 거스르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으며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말리는 왕후와 두 왕자를 처참하게
죽일 정도였다. 궁예의 이런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서 오는 심적 불안으로 인해 점차 몰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 여우고개라고
있다. 산정호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여우가 자주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는 궁예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이곳에서 서로 눈치를 보면서 여우처럼
엿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궁예도은(弓裔逃隱) 이란 말도 있다. 이 말은 궁예가 도망쳐 숨었다는 뜻이다.
궁예가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잃어가고 있을 때 신하들이 뜻을 모아 반역을 도모하여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 처음에 망설였던 왕건은
불의를 치는 것은 반역이 아님을 의연히 이를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들은 궁예는 옷을 바꾸어 입고 명성산으로 도망치게 된다. 산정호수
좌우엔 망봉이란 두 개의 산봉우리가 있다. 궁예가 이 봉우리에 망원대를 높이 쌓고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망을 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왕건의 부하 신승겸에게 궁예는 대패하였다 고 하며 궁예의 군사가 망을 보던 곳이라고 하여 망봉 이라 부르게 되었다.
궁예분골(弓裔粉骨)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궁예의 참혹한 죽음이란 뜻이다. 명성산으로 도망친 궁예는 이틀 밤을 숨어 지냈다.
그러나 배가 고파 더 참을 수 없었 던 그는 마을로 내려와 보리 이삭을 잘라 먹었다. 그 러던 중 농부에게 신분이 드러나 병사들에게 붙잡히게
되고 왕건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궁예는 그가 세운 왕국과 함께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산정호수 위쪽에는 울음산,
울음 성이 있다. 궁예가 왕건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여 울면서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산이 울릴 정도였 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또한 이산에 성이 있기 때 문에 울음 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호수는 이렇게 궁예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궁예는 방탕한 생활과 자기 말을 어기는 부하는 가차 없이 목을 베는 무서운 왕이었다. 인정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른 정치로 인해
몰락하고 말았 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은 궁예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라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도 이곳에 와서야
산정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궁예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5km의 둘레길은 어느 구간을 지날 땐 솔향이 풍겨 신선함을
안겨준다. 호수는 햇살이 쏟아져 잔잔하게 은빛 물결을 칠 땐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춤을 추듯 물고기가 떼를 지어 무희(舞姬)를 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철새들이 물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물을 가르며 먹이를 찾는 모습도 얼마나 보기 좋은지 필자의 혼을 빼앗아 간다
호수길은 새소리도 아름답게 들려온다. 겨울이지만 수려한 풍광은 신이 내린 축복이다. 호수는 1925년 일본 강점기에 농업용수로
쓰려고 개발한 인공호수라고 한다 . 우리는 걸으며 이야기꽃을 무럭무럭 피워낸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 호수의 모퉁이에 대여섯 가구의 카페
마을이 나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이 것저것을 감상했다. 그곳엔 꽃을 심어 향기를 피우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조화롭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은은하게 커피 향이 날아오고 구수하게 빵 내음도 풍겨온다. 연인과 함께라면 이런 분위기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사랑도 꽃피울 것
같다. 이곳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하우스를 만들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정호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며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운치 있게 깔아놓은 데크를 걸으며 은빛 찬란한 물을 유유히 가르며 놀고 있는 철새도 보았고 허브 농원도
보았다. 조각공원에는 고니의 사랑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세워놓았고 물속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인간의 모습도 보았다. "이중빈" 조각가의 사람과
자연이란 사람의 머리 작품과 "이일호" 조각가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 라는 거대한 조각 작품도 보았다. 나비와 고양이 같은 조형물도 보았다.
우리 일행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각가들의 섬세한 솜씨로 조각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어우러진 아름다운 조형물도 보았다. 이와 같은 아름다
움을 만끽하며 2시간에 걸쳐 둘레길을 돌고 왔다. 여유 로운 시간을 좀 더 즐겁고 행복해 보려고 상점이 운집 해 있는 길가에 서서 겨울의 단골
메뉴인 군밤도 사서 먹으며, 아름다운 산정호수를 되새겨본다.
산정호수의 즐거움도 마무리하고 상동 주차장으로 같다 . 그때
명성산을 등산한 회원들도 시간을 맞춰 도착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즐기려고 모두 차에 올랐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한국인 갈비"란 이동
갈빗집 뜰에 도착했다. 널찍한 임시 건물엔 노래방 시설까지 갖춰놓았다. 회원들은 모두 들어가 앉아 갈비를 굽기 시작한다. 배가 출출했던 차라
갈비 내음이 코를 자극한다. 미남인 장선덕 본부장이 사회를 맞았다. 이상갑 회장의 인사말을 권한다. 이상갑 회장은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회원여러분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고맙습니다. 오늘은 우리 해피가족의 특별한 날입니다.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즐겁게
맞이한다는 뜻에서 송년회를 하는 날입니다.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무술년( 戊戌年) 마무리를 잘하시고 돌아오는 2019년 기해년(己 亥年)을
힘차게 맞이합시다. 우리 해피 집행부는 좀 더 좋은 곳을 발굴해 여러분들의 즐거운 산행을 약속드립니다. 또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즐겨봅시다.
라는 힘차고 아름다운 인사말을 맺는다. 이렇게 해피가족은 산정 호수에서 2018년 무술년(戊戌年) 한해를 아름답게 보내는 하루였다. 2018년
한 해가 나라는 혼돈 속에 있으나 해피 회원들은 무사히 보내게 됨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