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토끼
15년 쯤 된 군대 얘기다.
그 재미없다는 남자들의 군대 얘기..
최전방 모 부대내에 파견사무실이 있을 때다.
타부대에 껴 사는 입장에 있었는데 병사들 둘이 사무실에서 거주를 했다.
사무실에 취사시설과 화장실, 내무실을 갖추어 놓고 운전병과 서무병이 있었다.
간부인 나는 거의 매일 운전병과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남아 있는 서무병은 무척이나 심심해 했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얘들은 심심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토끼띠의 해를 맞아 병사들의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위해 애완동물을 사주기로 하고
시장에 나갔다.
강아지랑 병아리랑 햄스터, 금붕어 등등을 잔뜩 널어 넣고 파는,
시장에서 항상 고정적으로 난장을 펴고 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에게 토끼를 두마리 샀다.
검은 놈, 흰 놈 요렇게 두마리..
토끼띠의 해를 맞아 미니토끼가 유행하고 있었다.
아저씨도 "이 토끼는 사육용이 아니라 애완용 미니토끼라서 아무리 커도 손바닥만 하다"고 강조 했다.
믿고 사는 신용사회..
사무실에 토끼가 들어 온 이후 병사들 뿐만 아니라 간부인 나 까지도 매우 정서적으로 안정된 듯 했다.
우리는 아침에 풀 뜯어 먹이고 점심에 풀 뜯어 먹이고 심지어는 공휴일에도 사무실에 나가
토끼랑 놀았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난 어느날..
우리 사무실에 타부대 간부가 들렀는데 나한테 그런다.
"부관님, 이 집토끼 어디서 났어요? 잘 먹였나 봐요..등치도 큰게..이젠 먹어도 되겠는데요..헛헛.."
어라..이거 미니 토낀데..
식용 아닌데..집토끼 아닌데...
순간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감을 잡았다.
그래서 평소와 같이 토끼의 두 귀를 살포시 잡고 손바닥에 올려 놓고 셋이서 관찰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야, 처음에는 손바닥 안에도 안찼지?"
"넵"
"야, 취사장 가서 거기서 키우는 개 좀 데려 와바."
"넵"
잠시후 취사장 똥개가 도착하고.
우리는 똥개와 우리 토끼를 나란히 놓고 비교를 해보았다.
이런 젠장..
개나 토끼나 등발에 별 차이가 없다.
맨날 보면서 먹이를 주고 귀를 잡아서 들었다 놨다 하다 보니
등치가 커지는지 무거워 지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마치 아령을 맨날 들면서 무게를 조금씩 늘여 운동량을 증가시키며 적응이 됐던 것 마냥..
우리 셋은 표정이 굳을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지나 가는 그 누구도, 우리 사무실을 거쳐간 그 수많은 병사들과 간부들이 물었을 때
우리는 한결같이
[미 니 토 끼] 라며 자랑스러워 했는데..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우리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니기미 당했다. 이건 사기다.
"야, 운전병 차 대!"
나는 개만한 토끼 두 마리의 귀를 양 손에 움켜 쥐고 시장으로 향했다.
그 눔들을 나에게 팔아 먹은 아저씨에게 강력하게 따졌다.
미니 토끼라고 해놓고 이게 뭐냐고.
한번 보라고 이게 미니 토끼냐고..
옆에서 운전병은 검은 토끼놈 귀를 한손으로 잡고 한손으로는 엉덩이를 받쳐 들고는
(받쳐 들고 있는 손이 토끼놈 궁뎅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무거워서 받쳐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게 미니면 보통 토끼는 도대체 얼마만한 거냐고.,..
시장에서 진풍경이 벌어 졌다.
웬 놈 둘이서 각자 흰놈, 검은 놈.
뚱뚱한 토끼를 한마리씩 들고는 주인과 싸우고 있다.ㅠ.ㅠ
결국, 우리는 그 아저씨가 사과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짖고
사과의 뜻으로 토끼 한마리를 더 받아 왔다..
그 일 이후로 우리는 토끼를 사무실 안에서 안키웠다.
밖에 개집 하나 마련해 놓고 말뚝 세 개 박아서 묶어 놓았다.
하루만 두어도 목줄 반경 안에 있는 모든 풀들이 초토화가 되었기에 우리는 말뚝을 자주 옮겨야 했다.
급기야는 소문을 들은 타부대 간부들이 부탁해서
제초작업 해야하는 곳에 그 눔들을 풀어 놓으면 모든 풀들을 다 먹어 버리는 바람에 제초작업을 안해도 됐다.
가을로 접어 들 즈음 우리 셋은 이제 적응이 됐다.
주말에 각자 토끼에 목줄 하나씩 걸고 제초작업해야 하는 부탁 받은 곳에 간다.
잘도 쳐먹어 댄다.
우리는 토끼들의 제초 작업이 끝날 때 까지 담배만 피고 있다.
우리 병사들은 개만한 미니토끼로 인해 점점 심리적 불안정과 삭막한 정서가 함양되고 있었다.
by 휴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제초작업을 안해도 되니 좋네요~한참 웃고 갑니당~ㅋ
토끼고긴 넘 질기드라구요 ㅋ
기네~ 집에가서 읽어야지...^^
ㅋㅋㅋㅋ